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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17화 (316/405)

2부 57화

시로

“실을 사용한다고요?”

『그래. 저들이 쓰고 있는데 네가 쓰지 못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이냐?』

메피스토의 말에 엘릭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이라고 실에 올라타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물론 평범한 실이 아닌 만큼 그 위에 올라가기 위해선 저들만의 방법이 분명 존재할 터였다.

‘감찰국의 역혈대법처럼 무슨 비기가 있겠지.’

분명 지금 상황에서 적들의 기술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엘릭은 자객들의 움직임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식!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비슷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온 것이다.

엘릭이 보기에 자객들은 마치 실과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파도를 타듯,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그 사실을 눈치 채기 무섭게 엘릭의 머릿속에 오거스틴에게 배웠던 녹야의 마투술 응용법이 떠올랐다.

녹야는 마법을 사용하고 체술이 그 뒤를 따르는 기술이 아니었다.

체술이 선(先)이 되면서 이를 마법이 보조한다. 그리고 이를 심상에서 그려낸 대로 전투법을 풀어내는 것.

즉, 체술 위에 마법을 연계해 자연스레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야 했다.

엘릭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법과 체술이 하나 된 것처럼, 실과 자신을 하나로.

“후우…!”

엘릭은 심호흡하며 최대한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집중했다.

자객들처럼 자신도 천잠사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 있는 모습을 심상 속에 그렸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마법들은 모두 기초 마법으로 가능하니, 마기로도 얼마든지 보조가 가능했다.

“【따라라】.”

언령에 따라 검은 아지랑이가 몸을 타고 소용돌이를 그렸다. 그리고 몸 곳곳에 떠오르는 검은색 마법진.

파라라락!

엘릭은 추락하던 몸의 중심을 바로 잡았다.

목표는 바로 아래에 있는 천잠사.

발끝이 실에 닿게 할 생각이었다.

“허튼짓을 하려 드는군!”

엘릭을 노리던 자객들은 한껏 비웃음을 던졌다.

천삼사의 예기는 상상을 불허한다.

강철도 무처럼 베어버리는 것이 천잠사인 만큼, 특별한 기예 없이 섣불리 이 위에 올라타려 했다간 몸만 잘리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저게 무슨…!”

“마, 말도 안 돼!”

그들의 기대는 너무 쉽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탁!

엘릭이 자연스럽게 실 위에 올라타 버렸으니까.

실이 출렁이면서 잠시 균형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몸을 바로 잡고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쩌적, 쩌저적!

실에는 얼음 조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그의 발을 단단히 받치는 중이었다.

디스펠 마법 때문에 금세 얼음이 녹아도, 그 자리를 다시 마기가 채워주었으니.

단순히 얼음을 생성하기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쩌저저저적-

엘릭은 균형이 완전히 갖춰졌다 싶을 때, 자신의 주변만 감돌던 검은 아지랑이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아지랑이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얼음이 맺혔다.

마치 겨울철 처마에 자리 잡은 고드름같이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얼음들은 사람을 받치기에 충분한 면적을 갖고 있었다.

“잡아! 서둘러!”

“크윽!”

“차, 차가워…!”

“살았다!”

워메이지들은 그것이 엘릭이 마련한 구명줄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고, 허겁지겁 고드름이나 빙판을 잡아채면서 위로 올라섰다.

그들은 드디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사이. 엘릭은 아지랑이를 손바닥으로 끌어 모으고 있었다.

나선형을 그리면서 뭉친 아지랑이 위로 얼음 결정들이 수도 없이 튀어 올랐다.

활짝 열린 심안이 굳은 얼굴로 이쪽에 떨어지던 자객들에게로 고정되었다.

“다시 해보자고.”

엘릭은 차갑게 웃으면서 활짝 펼친 손바닥을 앞으로 내질렀다. 얼음 결정이 미친 듯이 튀어 오르면서 대기를 난도질했다.

“【찢어발겨라】.”

설산왕 비기.

빙열(氷裂).

쩌거거거걱-

차가운 칼바람이 협곡을 타고 매섭게 올라가고, 얼음 조각이 화살처럼 자객들을 덮쳐갔다.

빙열은 말 그대로 단단한 얼음을 찢어버리는 힘.

이렇게 협곡을 따라 수없이 걸쳐진 천잠사에 맺힌 고드름은 오히려 엘릭에게 이로운 환경이었다.

더군다나 설산왕의 비기는 마법이라기보다는 마투술에 가까운 것.

녹야와 같이 섞어 풀어내니 이보다 더 확실할 수도 없을 터였다.

“산개!”

자객들은 칼바람에 휘말렸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악!”

“컥!”

퍼퍼퍼퍽-

공격 범위에서 달아나지 못한 자객들이 줄줄이 격추되어 협곡 아래로 떨어지고.

티티티티팅!

천잠사가 끊어지는 소리에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균형을 다잡았다 싶었을 때에는.

크오오오오!

어느새 그들의 등 뒤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뒤를 돌아본 자객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이미 성채의 결계를 부서뜨린 전적이 있던 휼이 그들을 보며 안광을 빛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미난 짓들을 벌이더군?

휼이 거대한 앞발을 아래로 거세게 휘두르자, 천잠사를 가득 채우고 있던 검은 그림자도 똑같이 꿈틀거렸다.

촤촤촤촤!

십여 개의 천잠사가 단번에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이래서는…!”

자객들이 줄줄이 협곡 아래로 떨어졌다.

겨우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허겁지겁 다른 천잠사로 이동했지만, 그럴 때마다 불어 닥치는 칼바람과 휼의 발톱 때문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 몸이…!”

“빙독! 대체 어느새…!”

다음 천잠사로 이동하려던 도중에 발이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려야만 했으니.

어느새 천잠사에 맺혀 있던 고드름이 그들의 발까지 꽁꽁 얼어붙게 했던 것이다.

휘이이잉!

그리고 동시에 불어 닥치는 냉혹한 추위.

자객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공포가 드리웠다.

“역시 되네.”

엘릭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휼의 그림자에 동계 인장의 힘을 섞어 보내본 것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효과적이었다.

얼음과 그림자.

둘 모두 음기를 다루는 힘이다 보니 이런 효과를 보인 모양이었다.

덜덜덜…!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의 공포 때문일까.

자객들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이미 체내로 파고든 빙독은 관절과 마력마저 모두 얼어붙게 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를 잘도 갖고 놀았지?”

엘릭은 차갑게 웃는 모습 그대로 그림자에다 다시 마기를 몽땅 쏟아부었다.

“이제는 우리가 갖고 놀 차례네. 【쏘아져라】.”

푸푸푸푹!

얼어붙었던 자객들의 그림자에서 그림자와 얼음이 뒤섞인 송곳이 잔뜩 튀어나와 무수히 많은 구멍을 만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녀석들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격추되고 말았으니.

일급 자객들이 그토록 뛰어난 암살 실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천잠사를 이용한 기예와 날렵한 몸놀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 뿐.

그 모든 장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지금 자객들이 맞게 될 운명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동안 대륙을 유령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들이 단 한 사람에게 전멸하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겨우 흉신의 인장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엘릭은 흉신의 인장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흡족하게 웃었다.

마법사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함정이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 단초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확실히 오거스틴과 휼의 전투에서 얻은 것이 크긴 큰 모양이었다.

지금 이 순간.

엘릭은 자신의 마투술의 경지가 몇 단계는 더 상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일단 마무리부터 해볼까.”

엘릭은 크게 숨을 고르면서 협곡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마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마력이 잠겨 있는 상태로는 혹시 더 있을지 모를 유령성의 전력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워메이지들도 이대로 뒀다간 짐밖에 되지 않았다.

‘네레스타 가주님이나 다른 육망성들도 전력을 다하기가 힘들 테고.’

최대한 빨리 광역 디스펠 마법을 해제할 필요가 있었다.

보통 광역 마법에는 중심핵이 있기 마련.

그래서 그걸 찾으려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유령성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였다.

저 멀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잠사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한 자객이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로 차가운 눈빛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내.

자객들을 지휘하던 유령성의 간부로 보였다.

‘저 녀석부터 잡아야겠어.’

저만한 작자라면 분명히 광역 마법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타다다닥!

엘릭은 징검다리를 밟듯이 빠르게 위쪽으로 달렸다.

“휼!”

화아아악!

자객의 그림자에서부터 휼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가리를 쩍 벌렸다.

간부가 서 있는 천잠사를 물어뜯으려는 것이다.

워낙 빠른 속도로 접근한 탓에 간부는 뒤늦게 자신이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런!”

그는 재빨리 몸을 흔들어 천잠사의 반동을 이용해 반대쪽으로 날았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엘릭과의 정면승부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딜!”

그렇다고 가만히 그를 놓칠 엘릭이 아니었다.

엘릭 또한 간부와 마찬가지로 딛고 있던 천잠사의 반동을 사용해 속도를 높였다.

단숨에 두 사람의 간격이 좁혀지고.

“【흩어져라】.”

휘휘휘휘-

녀석을 쫓고 있던 휼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싶더니 단숨에 간부를 덮쳤다.

그리고 그 위로 잔뜩 피어나는 얼음꽃.

쩌저적!

순식간에 그의 몸이 절반쯤 얼어붙었다.

그림자와 얼음을 이용한 속박 마법이었다.

“크흑…!”

잔뜩 인상을 쓴 그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자,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그사이 엘릭이 어느새 간부 앞으로 떨어지면서 검은 아지랑이와 하얀 얼음 결정이 맺힌 손바닥을 앞으로 내질렀다.

콰아아악-

“잡았다.”

“…!”

빙열.

간부를 완전히 제압하려는 것이다.

그러던 그때.

터어어엉!

갑자기 빙열이 간부를 덮치다 말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거칠게 튕겨나고 말았다.

엘릭은 반동력에 튕겨난 채로 허공에서 몸을 뒤틀어 다시 균형을 다잡아야만 했다.

탁!

출렁-

천잠사의 끝과 끝. 엘릭은 반대쪽을 노려보면서 심안을 가늘게 떴다.

“서, 선조님…!”

-멍청한 것. 어찌 유령성의 주인이 되어 이렇게 멍청하게 있느냐.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더냐?

간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앞에는 검은 빛이 도는 노인이 노한 표정으로 서서 역정을 내고 있었다.

빙열을 막아냈던 바로 그 ‘무언가’였다.

그런데 노인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다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유… 령?”

형체조차 반투명한 것이 인세의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노인은 한참 동안 간부를 질타하다가, 곧 엘릭을 향해 몸을 돌리면서 뒷짐을 쥐며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오랜만에 외지인을 보니 반갑군.

“넌 뭐지?”

엘릭이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물었다.

-본인은 유령성의 선대 성주이니라. 원래는 죽은 몸이지만, 릴림의 농간에 이곳에 억류된 상태이지.

“그래서?”

-이대로 있다간 내 후예들이 전멸을 면치 못할 것 같아서 말일세. 해서 자네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하고 싶네만.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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