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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15화 (314/405)

2부 55화

시로

똑똑!

가볍게 노크한 엘릭이 가주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엔 가이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왔군. 몸은 어떤가?”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직 통증이 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군. 상황이 상황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이쪽으로 오게.”

가이가 앉아 있는 책상으로 향하자 펼쳐진 대륙의 전도(全圖)가 눈에 들어왔다.

지도 위엔 다양한 모양의 말들이 올려져 있었다.

엘릭이 옆에 착석하자, 가이가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찾았네.”

그 말에 엘릭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감찰국이 생체 실험을 진행하는 장소를 찾아냈다는 것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역시 마탑주다운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곳이 어딥니까?”

엘릭이 묻자 가이는 손가락으로 지도 한쪽을 찍었다.

그곳엔 ‘유령성’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휴일란에서 황도로 넘어 올 때 자신들을 습격한 자객들의 본거지.

가이는 그 주위에 포위하듯이 세워진 말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미 마탑의 워메이지를 모두 그쪽에다 집결해놓은 상태다.”

탁!

가이는 유령성 위로 말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실력자들이 결계를 몇 겹이나 둘러쌌으니 쉽게 빠져나가질 못할 것이다.”

가이는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일에 자신 있다는 뜻일 테지.

거기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을 테고.

엘릭도 똑같이 웃고 말았다.

“그럼 이번 기회에 감찰국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겠군요?”

“그렇지.”

다른 중요한 자료들도 유령성에 숨겨져 있을 테지만, 생체 실험과 관련된 증거만 제대로 입수해도 감찰국을 완전히 지옥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럼…?”

가이의 눈이 반짝였다.

“잘만 하면 사자공가까지 전부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감찰국과 가깝게 지내는 사자공가이니,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테지.

엘릭은 거기서 눈치 챘다.

가이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판세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마탑이 사자공가 위에 설 수도 있는 것이다.

* * *

모든 논의가 끝난 뒤.

엘릭은 가이와 함께 곧장 유령성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마탑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니 도착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휘이이이!

아주 좁고 높은 협곡을 따라 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쳤다.

험준한 절벽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원주민들 외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다는 ‘칼날의 협곡’.

그 주변을 따라 주민들의 소개가 이뤄지고, 그 주변엔 마탑에서 펼쳐놓은 결계가 겹겹이 둘러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가이를 발견한 현장 지휘관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상황은?”

“아직 그대롭니다. 협곡 틈 사이에 은신 마법으로 가려져 있던 성채를 발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거기서 꿈쩍도 않고 있습니다.”

“알았네. 수고하게.”

“예!”

짧게 대답한 지휘관은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가이와 엘릭은 결계를 지나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깎아지를 듯이 내지른 협곡 위로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성채가 보였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의 성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저만한 것이 있었다면 그동안 목격되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정말 보고대로 그동안 은신 마법으로 모습을 꽁꽁 숨겨뒀던 모양이었다.

유령성은 마치 밤하늘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엘릭이 있는 절벽과 유령성이 있는 절벽 사이로, 구름다리가 아주 불안하게 걸려 있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엘릭은 심안을 활짝 열어 주변을 살펴보곤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예 나올 생각 자체가 없겠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결계는 마탑에서만 세운 게 아니었다.

유령성의 주변 일대도 다른 형식의 결계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외부의 침입을 절대 허락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격추, 폭파, 강풍 등의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아예 작정하고 농성전을 벌이려는 게 틀림없었다.

“대체 저 구름다리는 왜 멀쩡히 둔 거랍니까?”

“우리가 건너려고 시도하면 바로 끊어버릴 참인 거 같다더군. 교량 끄트머리에 폭발 마법이 걸려 있다는 보고일세.”

“저기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요?”

“보다시피.”

가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엘릭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구름다리가 아니라 협곡을 그냥 통과하려면 어떨까?

험준하기 짝이 없는 절벽은 너무 높아 함부로 등반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저격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겠는데.’

비행 마법으로 침투하는 것도 마찬가지.

저쪽 결계에 각인된 격추 마법이 즉각 발동될 것이다.

콰콰쾅!

더군다나 내구도는 또 어찌나 튼튼한지, 워메이지들이 연신 폭격을 가하고 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찰국에서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꾸민 거 같았다.

‘그렇다면 결국 저놈들의 의도를 알고도 구름다리를 건널 수밖에 없다는 건데….’

결계를 부술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유령성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비밀 통로 같은 건 장소가 워낙 협소해서 꿈도 못 꿀 거 같았다.

‘쉽게 넘어가긴 글렀네.’

답답한 마음에 엘릭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들의 의도를 따라주기 싫어서 결계가 부서질 때까지 기다려 보려고 해도, 저쪽에서 응원군이 도착하면 승패는 더 어려워질 테니 속전속결로 끝낼 필요가 있었다.

현재는 기습을 노린 탓에 저쪽에서도 아무런 대응책도 마련해두지 못한 상태.

하지만 만약 황금사자나 크롬헬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온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만다.

물러나거나, 정말 대외적인 충돌을 벌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겠지.

그러니 반드시 응원군이 오기 전에 생체 실험과 관련된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설 수도 없고.’

유령성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한 함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가이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고.

“결계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 만한 방법만 있었어도… 음?”

그렇게 중얼거리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엘릭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영 좋아 보이지 않는 웃음이로군.』

메피스토는 엘릭이 저렇게 웃을 때면 뭔가 사건 사고가 크게 터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겐가?”

“예.”

기분 좋게 대답하며 엘릭이 휼을 불렀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이런 식으로 날 써먹는군.

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지만, 엘릭의 부탁을 거절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쿠쿠쿠…!

절벽에 낮게 깔린 유령성의 그림자가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뭐지?”

“왜 갑자기 응달이…?”

“그, 그림자가 움직인다!”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던 워메이지들이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다들 폭격 마법을 정지하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고.

[다들 진정해도 좋다.]

가이가 내보낸 메시지 마법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위로 번쩍 들었다.

[저것은 엘릭 메르빙거의 대마법이니까.]

“메르빙거의…?”

“이만한 마력 파동이라니….”

“대체 얼마나 방대한 인지 영역을 갖고 있는 거지?”

이 넓은 범위의 공간을 모두 간섭하려 든다는 말이, 같은 마도를 걷는 이들로서는 경탄만 나올 뿐이었다.

이미 엘릭이 육망성의 여러 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 이보다 더 확실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쫘아아아악!

출렁이던 그림자가 수십 미터나 높이 치솟으면서 어느새 유령성을 아래에 두고 있었다.

때마침 잘 됐군. 가뜩이나 짜증나는 인간 놈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풀 구석이 필요했는데 말이야.

츠츠츠츠-

휼은 짐승의 형상을 갖추면서 유령성을 굽어다보았다.

그의 하체는 유령성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림자를 매개로, 결계를 완전히 에워싸는데 성공한 것이다.

‘좋았어.’

엘릭은 첫 번째 시도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활짝 펼쳤던 주먹을 꽉 쥐었다.

“【휘둘러라】.”

언령과 함께 휼의 마기도 덩달아 증폭되었다.

크오오오!

휼이 거친 포효와 함께 거대한 앞발의 발톱을 거칠게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거친 폭발. 어마어마한 굉음. 협곡을 뒤흔들 정도의 지진까지.

결계 위로 엄청난 크기의 발톱 자국이 남았다.

“허!”

“미쳤군….”

워메이지들은 감탄을 흘렸다. 폭격 마법으로도 내지 못했던 흔적이 처음으로 남았다.

가이도 가볍게 탄성을 흘릴 정도의 위력.

“【날뛰어라】.”

그리고 엘릭이 휼의 자유를 허락한 순간, 휼의 안광이 매섭게 빛나면서 난타가 시작되었다.

쾅쾅쾅쾅쾅!

엄청난 진동에 구름다리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절벽에선 낙석들이 후두두둑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결계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위이이잉-

결계에 심어진 마법들이 일제히 발동되었다. 하늘에 수놓은 수십 개의 마법진들이 일제히 회전했다.

피이잉-

피잉-

청록색 빛의 광선들이 휼의 몸뚱이 곳곳에다 구멍을 숭숭 뚫었지만.

하! 망할 ‘눈’들에 비하면 이 따위야 간지러운 수준에 불과하지.

오거스틴의 백야를 말하는 것이다.

뚫린 부위는 마기로 금세 메워졌다. 결계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휼은 주먹을 높이 들어 거세게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콰직, 콰지지직-

퍼어어엉!

첫 번째 결계가 폭죽처럼 터져 나가고.

“【나타나라】.”

여전히 결계 위를 감싸고 있는 그림자에서부터 용아병들까지 모조리 소환되어 안쪽 결계를 찔러댔다.

물론, 용아병들도 똑같이 격추 마법에 부서지긴 했으나.

“【다시 나타나라】.”

일개 소환수에 불과한 용아병은 역소환되어도 얼마든지 다시 뽑아낼 수 있었다.

거의 무한대로 수급이 가능한 것이다. 거기다 마력을 빠르게 회복해 주는 신아의 인장이 있으니, 육체적 부담도 덜했다.

쾅쾅쾅쾅!

두두두두!

“와…!”

워메이지들은 이제 감탄만 흘리면서 멍하니 그 모습을 관전하고 있었다.

“뭐해요? 어서 폭격 안 하고.”

“아, 아! 해야지.”

“안 그래도 지금 하려고 했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엘릭의 핀잔을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다시 폭격 마법이 재개되었다.

콰지지지직!

콰르르릉!

결계 전체를 아우르는 공격들.

그리고.

콰드드드드-

남은 결계가 버티지 못하고 모두 박살나고 말았다.

“지금이다!”

이를 본 엘릭이 빠르게 구름다리로 몸을 던졌다.

“엘릭 님을 따라라!”

“와아아!”

그리고 일제히 절반가량의 워메이지들이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공성전의 시작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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