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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14화 (313/405)

2부 54화

흉신(凶神)

“설마 이게 전부냐!”

어느덧 전투는 이전보다 훨씬 고조된 상태였다.

오거스틴이 다리 하나를 날리며 외치자, 휼은 짜증나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크르르르…!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져 회복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저 가까스로 오거스틴의 공격을 막고만 있을 뿐.

콰아아앙-

쿠르르르!

뒤이어 날아온 일격에 휼의 몸이 절반가량 폭발했다.

사방으로 그림자가 핏물처럼 마구 휘날렸다.

쌔액.

쌔액.

휼은 이미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존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이로써 두 번째가 되겠군.”

오거스틴은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손을 높이 들었다. 손바닥 위로 하얀 눈이 활짝 열리면서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단단히 응집된 마력구(魔力球)는 당장 폭발할 것처럼 이글거렸다.

크아아아아!

휼도 위험을 느꼈는지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지만, 이미 백야의 잠식이 세상 전부를 뒤덮다시피 한 상태였다.

휼의 행동은 그저 처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대로 휼이 무너질 것 같던 바로 그때였다.

츠츠츠츠-

갑자기 휼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그림자가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

오거스틴이 미간을 좁히면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허!

그림자가 뭉친 곳이 바로 엘릭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씨익.

엘릭이 이쪽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오거스틴이 놀란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엘릭의 몸에서 마력은 물론이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마기까지 줄줄 흐르고 있었으니.

겉으로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거스틴은 속으로 적잖게 감탄하고 있었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로고. 대체 누구의 제자인 건지, 허허허!’

개인적 원한과 새로이 연구한 마투술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이렇게 싸울 자리를 만든 것도 있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엘릭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으니.

그런데 아무래도 자신이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은 모양이었다.

‘마기까지 바랐던 것은 아닌데 말이지. 영특한지고.’

그 순간, 엘릭의 그림자가 크게 일렁였다.

파아아앗!

그림자가 엘릭을 타고 올라와 그의 전신을 뒤덮더니 짐승의 형상을 띠었다.

마치 또 하나의 존재가 그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불안정하게 마구 충돌하는 마기와 마력.

불가사의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엘릭은 정확히 오거스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이제부턴 제가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

그러나 오거스틴에게 이보다 더 기꺼운 말은 없었다.

“하하하하! 그거 좋구나. 어디 한 번 해보자꾸나.”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파아앗!

오거스틴의 신형이 사라진다 싶더니 어느새 엘릭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가늘게 세운 손날이 칼날처럼 매섭게 엘릭의 뒷덜미를 노렸다.

번- 쩍!

바로 그때, 엘릭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모든 인장이 화려하게 빛나면서 짐승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협곡을 뒤흔들었다.

우르르르-

여진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아고고….”

엘릭이 침대에 누운 채 앓는 소리를 냈다.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 자세 좀 바꾸겠다고 살짝 움직인 것뿐인데.

곧바로 전신을 타고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아주 죽을 맛이었다.

결국 엘릭은 원래의 자세로 돌아와 다시 대(大)자로 뻗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피스토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멍청한지고.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마왕 급의 힘을 쓰려하다니.』

오거스틴과의 전투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엘릭은 깨달음을 얻은 뒤, 곧바로 힘을 시험했다.

새로 터득한 마기와 인장의 사용법부터 두 눈으로 보고 익힌 새로운 마투술까지.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새로 얻게 된 능력을 실컷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패배.

아무리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다 해도, 오거스틴을 당장 이기기란 불가능했으니까.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마기와 마투술, 둘 모두 어떻게 써야 할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만, 그만한 힘을 쓴 대가는 확실했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아주 꼴좋구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다니. 낄낄낄.』

전투가 끝난 이후로 도통 움직이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왜?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느냐?』

“닥… 쳐요….”

『싫은데? 싫은데싫은데? 싫어서 어쩌지? 계속 놀리고 싶은데? 계속 이렇게 깐족거리고 싶어서 죽겠는데?』

“….”

부들!

엘릭은 당장에라도 언령으로 메피스토의 주둥이를 다물게 만들고 싶었지만.

마력을 억지로 쥐어짜면 거기에 따라 또 통증이 찾아오니 도저히 그럴 수도 없었다.

신아의 인장 덕분에 신체적 회복은 빨랐지만, 정신적 피로와 탈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메피스토는 간만에 거머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계속 옆에서 깐족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엘릭으로서는 참으로 갑갑할 노릇이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대체 누가 그 위대한 마지막 용왕을 쓰러뜨린 대마왕이라고 생각하겠냐고….

그렇게 혼자서 미래를 다짐하며 울분을 삭이고 있을 때.

옆에서 핀잔을 던지는 건 비단 메피스토뿐만이 아니었다.

겨울 6장 또한 지겹도록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간만에 저 악마 놈이 맞는 말 했네. 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 가주는 미친 게 맞는 거 같군.」

「동감. 뒤를 조금도. 생각지 않아. 초단순.」

그 뒤로도 계속해서 와다다 쏘아지는 잔소리들 때문에 머리가 울렸다.

황금사자 때보다 더하네.

엘릭은 귀찮은 듯 눈을 감았다.

물론 그들이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기에 마력에, 거기다 인장의 힘까지 증폭해 사용했다.

아무리 신아의 인장이 작동 중이라지만, 못할 짓이긴 했다.

「다음부터는 말이라도 좀 하고 하란 말이야.」

「그래야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뉘예뉘예.”

엘릭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꾸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군. 어찌 한낱 인간의 그릇으로 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지.

휼이 그림자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상시에 자주 보이는 짐승의 얼굴이 아닌, 기억에서 봤던 아귀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이전까지 광증에 젖어 반쯤 죽어가던 놈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였다.

숙주인 네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 조심해줬으면 하는데.

엘릭으로서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적어도 너는 그러지 말지?”

기껏 죽을 뻔한 걸 살려줬더니 같이 맞장구나 치고 말이야.

좀 편들어 주면 어디가 덧나나.

후후. 휼은 자신도 조금 무안했던지 멋쩍게 웃으며 슬쩍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이내 눈만 내놓고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날 구해준 이유는 뭐지?

가만히 있었으면 휼은 오거스틴에게 죽을 처지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굳이 구해줄 필요도 없었다.

오거스틴의 말대로 마족은 일종의 ‘현상’일 뿐. 엄밀히 말해서 진명이 손상되지 않는다면,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엘릭은 일부러 휼과 그림자를 불러와 전투를 중단시켰다.

휼은 그동안 이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봤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물은 것이었다.

마(魔)를 없애는 메르빙거가 자신을 도와줬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아 그거?”

휼의 질문에 엘릭은 무심하게 답했다.

“별 이유 없어. 구해준 것도 아니고.”

그럼?

“황금사자 같은 괴물들을 상대하려면 전력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지 않겠어?”

앞으로 엘릭이 상대할 적은 상식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황금사자만 해도 그랬다.

시조 비전에 트리플 캐스팅까지 사용해도 겨우 한 발자국밖에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마기와 새로운 마투술을 익힌 지금이라 해도, 여전히 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그렇기에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힘이.

설령 그게 마족의 힘이라 해도.

“기껏 인장의 격도 올랐는데, 다시 초기화시킬 순 없잖아?”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긴 했다.

기억에서 봤던 여인.

휼에게 처음으로 따스한 온정을 보여주었던 그녀의 마지막 눈빛이 계속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휼이 계속 그 사람의 유언을 쫓아 움직였던 건….’

엘릭은 생각을 길게 하다가 도중에 도로 삼켰다.

이건 어디까지나 휼의 감상일 뿐.

자신이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휼에 대한 이해가 생겨 마왕의 힘을 개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요긴하게 쓰일 게 분명했다.

앞으로 황금사자 말고도, 언젠간 릴리스와 같은 대마왕들을 직접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메피까지도…!’

엘릭은 그렇게 생각하며 곁에 있는 메피스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뭘 보냐는 식으로 엘릭을 노려봤다.

『뭐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왜? 그새 본왕에게 삐치기라도 한 것이냐?』

“그런 거 아닙니다.”

『삐친 거 맞군.』

“정말 그런 거 아니거든요?”

『증믈 그릉 그 으니그등요?』

“…계속 이러깁니까?”

『그슥 으르깁니끄?』

“아 쫌!”

『으 쯤!』

“아오, 진짜!”

엘릭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참 동안 울분을 토해내야만 했다.

* * *

늦은 밤.

길리티가 술이 든 호리병을 들고 한 절벽으로 향했다.

그곳엔 오거스틴이 홀로 앉아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뒤엔, 이전에 있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다시 봐도 참….”

길리티는 완전히 뒤죽박죽 된 땅을 보며 혀를 찼다.

털썩!

그러다 그는 오거스틴 바로 옆에 앉으며 호리병을 건넸다.

“몸은 좀 어떻소?”

“몸이야 늘 안 좋지. 매일 같이 삭신이 쑤시는데.”

오거스틴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호리병을 받아 들이켰다.

크으!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가를 훔쳤다.

“맛이 좋군. 어디서 구했나?”

“구하긴, 직접 담갔지. 좋지 않소?”

“좋다마다.”

오거스틴의 칭찬에 길리티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더 술을 들이켠 오거스틴이 호리병을 돌려주었다.

길리티도 한 모금 마시곤 입을 뗐다.

“그나저나 엘릭이 성취가 있어 좋겠소?”

“그럼.”

엘릭의 얘기가 나오자 오거스틴의 표정이 밝아졌다.

설마 하루 만에 그 정도로 성장할 줄이야. 지금 생각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속도였다.

‘새로 연구한 것을 조금만 보여주려 했었는데 말이지. 이로써 또 밑천을 싹 다 털린 셈인가.’

그 때문에 원로들이며 빈객들이 던지는 성토를 피해다니느라 고생하는 건 덤이었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야.”

“보통 천재도 아니요. 지금껏 그런 녀석을 본 적이나 있소?”

“없지.”

제법 오랜 시간을 살았음에도, 엘릭 같은 마법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오거스틴은 문득 엘릭이 자신의 제자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한풀이는 좀 된 거 같던데.”

“한풀이?”

오거스틴이 술을 마시다 말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길리티에게 호리병을 툭 던졌다.

“되었겠냐? 그 녀석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

겨우 한두 번 죽인 걸로는 그동안 쌓인 분노가 사그라지진 않을 테니까.

엘릭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다시 찾아가 휼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이 가슴 속에 남은 한(恨)은 절대 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길리티는 씁쓸하게 웃으며 호리병을 집었다.

“이제 그 친구도 그만 놓아주쇼.”

그의 시선은 붕대로 칭칭 감긴 오거스틴의 왼팔에 고정돼 있었다.

세트.

왼팔의 원주인.

젊은 시절에 야인이었던 길리티가 자유혁명군에 들어갔던 이유이자 나오게 된 계기이기도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오거스틴과 의형제가 된 계기도 세트 덕분이었다.

그들 세 명이야말로, 한때 세상을 좁다 하며 같이 돌아다니던 망나니들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함께 있진 못하지만.

옛 생각을 떠올리며 길리티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경치가 좋아서 그런가.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게 맛이 좋았다.

그렇게 옛 생각을 하며 술을 몇 번이고 주고받았을 때였다.

오거스틴이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놈. 왔다더라.”

그 말에 호리병을 입가에 가져다 대던 길리티의 손이 멈췄다.

그놈.

여기서 말하는 그놈은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다고 알려진 자유혁명군의 총수.

한때 길리티 또한 혁명군의 간부였던 만큼 인연이 있던 자였다.

“듣기로는 황도까지 얼씬거린다는데 어떻게 할 거냐?”

“글쎄올시다.”

길리티는 어딘가 모르게 미묘한 표정을 짓곤 작게 중얼거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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