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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10화 (309/405)

2부 50화

실험

건방진!

실컷 농락당한 휼이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쾅쾅쾅!

더 짜증나는 건 일부러 자신의 공격을 스치듯 피하는 오거스틴의 움직임이었다.

분명 다 잡은 것 같은데 잡히질 않으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파아아아-

주변이 온통 휼 사념체의 마기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오거스틴에게 분노한 만큼 마기도 그만큼 거세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오거스틴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앞발이 허공을 할퀴려는 순간.

오거스틴은 비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부터 여러 개의 마법진이 발동되면서 뇌전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때.

사락!

휼의 사념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그러곤 오거스틴의 발 바로 아래에서 아가리를 쩍 벌린 채로 나타났다.

마치 수면에 있는 먹이를 낚아채는 상어를 보는 것 같았다.

텁!

그러나 이번에도 허망하게 입 다물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따아아악!

또다시 딱밤 소리와 함께 휼 사념체의 형체가 일그러지면서 그림자 저 깊숙한 곳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크아아악! 젠장!

같은 부위만 계속 맞아서일까.

다시 밖으로 튀어나온 휼의 사념체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땅에 마구 비벼댔다.

뭘 해도 잡질 못하니.

휼의 사념체로서는 정말이지 복장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 * *

“이야. 아예 뼈를 못 추리네.”

엘릭은 오거스틴의 움직임을 보는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스승의 날렵한 움직임은 경이로웠으니까.

『과연 동부의 대악마를 어떻게 잡았을까 싶었었는데. 확실히 그럴 만하구나.』

오죽하면 메피스토도 칭찬할까.

정갈하면서도 딱 필요한 만큼의 움직임.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적재적소에 부여하는 마력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마법의 연속까지.

저것이야말로, 마투술(魔鬪術).

마법과 무예의 조악한 조합 따위가 아닌 예술적인 합치였다.

엘릭은 오늘 처음으로 저것이 바로 자신이 다다라야 하는 녹야의 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거스틴은 이미 휼의 공격을 모두 예상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힘을 제대로 쓰지 않는데도 이 정도일 줄이야.

[지금 드는 생각인데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스승님과 황금사자, 두 사람이 부딪치면 누가 이길까요?]

『흠.』

또 엘릭이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할 줄 알았던 메피스토는 제대로 대답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

『사자 놈이다.』

[…스승님을 이길 수 있다구요?]

엘릭은 믿기지 않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황금사자와 오거스틴. 두 사람 모두 이 대륙에서 우위를 가리기 힘들 만큼 뛰어난 고수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우열을 판단할 수 있다고?

물론, 황금사자가 신의 영역을 엿보고 있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거스틴 역시 녹야의 새로운 경지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황금사자와 견줄 정도는 될 줄 알았던 것이다.

『때때로 느끼는 거지만, 너는 ‘신(神)’이라는 것에 이따금 감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구나.』

[그건….]

『신은 필멸자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끝끝내 초월에 초월을 거듭하여 법칙의 이명(異名)까지 손에 넣은 것이 바로 신이다. 사자 놈은 그러한 신의 영역에 한 발을 걸쳐 반신이 된 자이고.』

[….]

『하지만 네 스승은… 그래. 신의 영역을 엿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 이대로 있으면 언젠가 발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능히 천하를 발아래에 뒀을, 세계제일인이라는 이름이 아쉽지 않았을 걸물이지.』

엘릭은 메피스토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이 순간만큼은 장난을 칠 수 없었다.

『하지만 발을 들인 것과 들이려 하는 것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그 차이를 빨리 깨닫지 못한다면, 너 역시 저기까지 다다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다.』

[….]

엘릭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말이 엘릭의 심장을 강하게 짓눌렀다.

메피스토가 매번 겉으로는 틱틱거려도 속으로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기꺼우면서도.

어서 쫓아가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한편으로는 황금사자가 가진 깊이를 모두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깊이가 대체 어디까지 닿아있을지 도저히 짐작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앞으로 황금사자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엘릭으로서는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럼 그 신의 영역에 완전히 들어선 사람이 있기는 합니까?]

『있지.』

팔짱을 낀 메피스토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네 시조.』

[…!]

『초대 메르빙거는 아예 그마저도 뛰어넘어서….』

콰아아앙!

이전보다 훨씬 큰 딱밤 소리가 메피스토의 말을 도중에 지웠다.

『…까지 했다. 너희 메르빙거란 족속들은 그만한 것들이었어.』

엘릭이 더 자세히 캐물으려는데, 오거스틴이 여태 딱밤을 갈기던 자신의 손을 무심하게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확실히 마왕의 힘은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군그래?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오거스틴의 시선이 휼의 사념체를 직시했다.

오거스틴의 눈이 휼의 눈과 마주쳤다.

휼의 사념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또 다시 반파된 몸.

그림자를 빨아들여 수복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덧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엘릭의 마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장의 내구도가 닳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휼의 사념체는 지금까지 보였던 모습과 다르게, 이번엔 섣불리 덤비지 못했다.

계속된 실패에 망설이게 된 것이다.

“자, 이제 누가 건방지지?”

오거스틴은 그런 녀석을 보면서 완전히 뒷짐을 쥐었다. 말려 올라간 한쪽 입술 끝이 녀석을 조롱하고 있었다.

네놈!!!!

흠칫.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분노 섞인 포효.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엘릭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황금사자와 붙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화를 내진 않았었는데?

한편, 오거스틴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대쪽 입꼬리도 올리면서 한껏 크게 웃고 있었다.

‘설마 일부러?’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츠츠츠츠-

그림자로 이뤄진 휼 사념체의 몸뚱이가 기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콰앙!

그는 바닥을 한 번 크게 찍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발로 서니 가뜩이나 큰 몸집에 마치 주변이 온통 녀석의 그림자로 다 가려지는 것 같았다.

파직, 파지지지직!

그리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마기에서부터 스파크가 크게 튀어 올랐다.

『각성하려나 보군.』

메피스토가 턱을 쓰다듬었다.

[여기서요?]

각성이라면 딱 하나였다.

인장의 진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닐 텐데?

『저 늙은 마법사가 무슨 수라도 썼나 보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만큼 오랫동안 싸워왔다면 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휼의 사념체가 갖고 있던 진명은 흉신(凶神).

하지만 오거스틴에게 패해 힘을 잃은 후, 최하위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그 인장이 다시 격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으니!

콰르릉! 콰르르릉!

휼의 몸을 감싸던 스파크는 어느새 검은 벼락이 되어 땅을 강하게 때려대고 있었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서 불길이 거칠게 타올랐다.

쿠구구구구!

휼의 사념체 몸집은.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사념체가 아닌 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존재는 기존보다 몇 배는 더 커지고, 선명해진 상태였다.

더 커진 주둥이에서는 삼중으로 된 톱니 이빨이 자글자글 했고, 살기가 들끓는 안광은 당장이라도 폭사할 것 같았다.

휘이이이이-

사방이 휼의 마기로 뒤덮여 새카맣게 변해버렸다. 심지어 등 뒤의 하늘까지도.

그림자가 해일처럼 넘실거리며 휼을 감싸 안았다.

살을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살기(煞氣)와 광기(狂氣)가 엘릭의 등골마저 오싹하게 만들 정도였다.

까우우우우-!

휼은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엘릭은 어느새 변화를 마무리한 흉신의 인장을 매만지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같은 설화 등급의 인장인데도… 어쩐지 동계의 인장과 흉신의 인장이 주는 차이가 너무 컸다.

뭐랄까?

동계의 인장은 차가워 보이는 이름과 다르게 몸과 영혼을 따스하게 안는 느낌이었다면.

흉신의 인장은 당장이라도 엘릭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흉포함이 느껴졌다.

그릇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느낌.

‘이대로 놔뒀다간 큰일 나겠는데.’

엘릭은 자신이 성장했다는 느낌보다도 우려가 먼저 들었다.

까드드득.

휼이 으스러져라 턱을 갈더니 곧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눈빛에서는 더 이상 녀석이 이따금 보이던 예리한 이성이 느껴지질 않았다.

콰콰콰콰콰-

“…!”

엘릭은 황급히 휼과의 간격을 벌리면서 오거스틴에게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죠?”

휼이 각성했다는 건 알겠는데, 상태가 너무 심상치 않았다.

오거스틴은 뒷짐 지던 팔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마다. 이제야 겨우 해볼 만 해졌구나.”

‘해볼… 만?’

대체 이 영감님이 또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걸까.

엘릭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오거스틴이 난데없이 양손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츠츠츠츠!

화아아아-

휼의 힘으로 새카맣게 변한 하늘. 그 위로 새하얀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얼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백야(白夜)!’

오거스틴의 별칭이자, 그가 탄생시킨 녹야의 완성본이 시작되려 했던 것이다.

얼룩을 따라 수십 수백 개의 실선들이 그어졌다.

그 광경이 마치 별이라도 총총히 박힌 것 같았다.

이내, 그것들이 위아래로 활짝 벌어졌다.

그리고 드러나는 눈동자들.

오거스틴을 찾아, 엘릭을 찾아, 또 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던 동공들이 한 곳에서 멈췄다.

동시에 갖가지 마법들이 일제히 발동되면서 그림자를 찢어내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

오거스틴의 백야와 휼의 그림자.

서로 상반되는 흑백이 충돌을 거듭했다. 세상이 진동했다. 절벽과 협곡이 붕괴하면서 일대가 변화했다.

“무엇을 하느냐, 휼! 이쪽이다!”

그런 참상을 빚어내면서도.

오거스틴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한껏 웃으면서 휼을 불렀다.

이성을 잃고 날뛰던 휼이 멈칫거리다, 오거스틴을 뒤늦게 발견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거… 스틴…!

쾅쾅쾅쾅쾅쾅!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매서운 움직임이었다.

쐐애애액-

“오냐! 내가 여기 있다, 와라!”

오거스틴이 포악하게 웃었다.

휼의 웃음을 닮은 미소였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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