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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09화 (308/405)

2부 49화

실험

길리티는 한참 껄껄 웃다 말고, 갑자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렇게 매몰차게 떼어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매일 같이 엘릭 기사를 보면서 이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이래도 정말 괜찮은 거요?”

“괜찮고 말고 할 것까지야. 당연히 괜찮지. 처음부터 그것들이 엘릭을 제자로 삼으려 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오거스틴이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순번이니 뭐니,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정하기나 하고 말이야.

거기다 툭하면 엘릭을 찾는 게 좀 짜증나는 게 아니었다.

감히 자신의 제자를 탐내다니.

그래서 골려줄 생각으로 엘릭이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자랑해댔는데, 설마 뒤로 그런 독기를 품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엘릭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그렇게 달려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먼저 엘릭을 만났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그대로 제자를 뺏길 뻔했다.

“그건 나도 동감이오. 원래 맛있는 건 혼자 먹을 때 더 맛있는 거 아니겠소?”

“역시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오거스틴과 길리티는 다시 한번 폭소를 터뜨렸다.

그럴수록.

“에효….”

엘릭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 *

분위기가 진정됐을 때쯤이었다.

엘릭은 간만에 스승님들을 뵌 만큼 그간의 안부를 여쭈었다.

“스승님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 나야 요 최근에 바쁜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

그렇게 말하는 길리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스쳐 지나가듯이 보면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작은 변화.

하지만 엘릭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자유혁명군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하긴. 신경을 아예 안 쓰실 수가 없으시겠지.’

지금이야 황실의 눈을 피해 오거스틴과 함께 지내고 있다지만, 길리티는 과거에 자유혁명군에서도 손에 꼽는 간부였다.

당연히 그곳을 나왔다고 해도 지난 인연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테지.

‘휴일란에서도 그랬었고.’

당시 황금사자의 등장으로 자유혁명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바.

그중에서 죽은 제프는 길리티와도 인연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엘릭은 구태여 더 묻지 않았다.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기도 했고.

뒤이어 오거스틴이 입을 열었다.

“마투술을 새로 연구 중이었다.”

“마투술을요?”

그가 말하는 마투술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녹야.

과거부터 휼을 잡기 위해 대대로 계승되던 기술로, 엘릭 또한 그로부터 배운 기술이 있었다.

녹야 계승자들의 숙원인 휼을 잡은 이후부터는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줄 알았건만.

“최근에 떠오른 것이 있어서 말이다.”

“…더 떠오를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녹야의 숙적이었던 휼이 죽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녹야의 발전도 거기서 그친 줄로만 알았더니.

“제자가 이리도 잘났는데, 스승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그래서 말이다만.”

말끝을 흐린 오거스틴이 슬쩍 엘릭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우리의 숙적, 잘 있느냐?”

휼을 말하는 것이었다.

엘릭은 곧바로 오거스틴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스트해보고 싶으신 거구나.’

손에 칼이 들리면 뭐라도 썰어보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즉, 오거스틴은 휼과의 전투를 통해 마투술이 먹히는지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재미있겠는데.’

순간, 엘릭도 흥이 동했다.

오거스틴이 새로 연구 중인 마투술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지금도 대단한 녹야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를 보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휼의 사념체가 반응을 한 것은.

크크큭, 나를 찾는다고?

그림자가 길쭉하게 일어나면서 포악한 짐승의 형상을 갖추었다.

휼의 사념체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오거스틴을 노려봤다.

* * *

오거스틴은 휼의 사념체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다소 실망한 투로 중얼거렸다.

“흐음.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약해 보이는데?”

그동안 엘릭이 성장한 만큼 휼 또한 그만큼 힘을 많이 회복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엘릭의 성취에 비해 휼의 사념체가 풍기는 격은 기대 이하였다.

말 그대로, 사념체(思念體).

아직 ‘진정한’ 휼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모로 많은 점이 부족했다.

크르르!

당연히 휼의 사념체는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송곳니를 잔뜩 드러내는 모습에서 살의가 묻어났다.

…약해 보인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나?

피식!

오거스틴은 가볍게 실웃음을 흘리더니 오른팔을 조용히 뒷짐 졌다.

“당연하다마다.”

한껏 말려 올라간 한쪽 입술 끝.

영락없는 비웃음이었다.

“지금 네 녀석의 상태라면 이 한 팔로도 우습겠다만?”

그동안 참 많이 오만해졌구나. 나에게 감히 그딴 말을 내뱉다니. 과연 그런 자격이 있나 확인해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휼 사념체의 몸이 잔뜩 부풀기 시작했다.

‘…흡!’

동시에 엘릭도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인장이 미친 듯이 그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쿠드드드득!

휼의 사념체가 단번에 수 미터를 넘어 십여 미터만큼이나 자라나면서 주변을 온통 녀석의 그림자로 뒤덮었고.

크와아앙!

이윽고 하늘을 보면서 거칠게 포효를 터뜨렸다.

우르르르…!

그 기세가 얼마나 사나웠던지, 산천초목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세상이 온통 휼의 사념체가 풍기는 살기로 들끓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

오거스틴의 비하와 다르게, 녀석은 이미 충분히 ‘마왕’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 정도는 된 상태였다.

너는 언젠가 나를 죽였었지.

오거스틴을 바라보는 휼 사념체의 두 눈이 차갑게 이글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꾸나.

파아아!

쐐애애액-

그 엄청난 거구에도 불구하고, 휼의 사념체가 보이는 속도는 너무나 날렵했다.

마치 거대한 동산이 무너져 이쪽으로 쏠리는 듯한 모습.

그럼에도 오거스틴은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여전히 뒷짐을 쥐고 있었다.

죽어라!

휼이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공간이 찢기는 듯한 끔찍한 소리와 함께 다섯 줄기의 벼락이 오거스틴이 있는 자리로 떨어졌다.

하지만 오거스틴은 가볍게 위로 도약하며 공격을 피했다.

쥐새끼 같구나.

파앗, 파앗, 파앗!

쾅, 쾅, 쾅-

우르르르릉!

앞발이 대지를 찍을 때마다 지반이 내려앉고, 격진이 찾아와 주변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뒤이어 날아온 공격도 마찬가지.

공중으로 떠오른 오거스틴을 향해 휼의 사념체가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팟!

오거스틴은 점멸을 시도, 아가리 속에서 나와 어느새 휼 사념체의 코를 밟고 있었다.

촤아아악-

날카로운 이빨이 허공을 찢는 것과 동시에.

오거스틴이 왼손의 중지를 고이 접으면서 앞으로 내뻗었다.

목적지는 휼 사념체의 콧잔등.

그리고.

따악-!

…?!?

그대로 딱밤을 날렸다.

물론, 단순히 평범하게 날린 건 딱밤은 아니었다. 그의 마력과 녹야의 기운이 담긴 딱밤.

퍼어어엉!

휼 사념체의 얼굴이 절반이나 터져나가는 무지막지한 파괴력과 함께 몸뚱이가 수십 미터나 튕겨나고 말았다.

녀석이 쓸려 지나간 자리로 엄청난 고랑이 파이고.

쿠르르르…!

쿵!

한참이나 떠밀리다가 어느 절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와르르르-

잔뜩 균열이 퍼졌던 절벽은 끝끝내 버티지 못하고 휼의 사념체 위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

『…허!』

엘릭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고, 메피스토도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 정도셨다고?’

저걸 두고 대체 누가 ‘마투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저건 그냥 농락이었다.

휼의 사념체를 갖고 노는 농락.

물론, 그 속에 담긴 묘리까지 단순한 건 아니었다.

마력의 유동과 수급, 마법의 발동과 증폭… 단순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수많은 계산들이 섞여 있었다.

과연 인간의 뇌로 감당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연산량.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 오거스틴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였다.

‘진짜 휼이 돌아와도… 전성기 시절의 휼이 온다고 해도 이제는 절대 스승님을 이길 수 없어.’

엘릭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오거스틴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를 딛고 있다는 것을.

쿠쿠쿠쿠!

낙석 더미가 몇 차례 들썩이다가 휼의 사념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진 머리는 어느새 다 복구된 상태였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휼의 사념체는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거스틴이 한 손으로만 자신을 상대하는 것도 짜증날 판국인데, 자신이 ‘딱밤’에 당했으니 오죽할까.

차라리 농락을 당하는 게 나았다.

이건 멸시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자네의 힘이 너무 미약한 걸 어쩌겠나? 그에 맞게 대해줘야지.”

오거스틴은 휼을 자극하려는 듯, 비아냥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의 공격이 한 번이라도 내 몸을 스칠 수 있다면… 뭐, 그때는 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정말이지. 시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하긴 너는 원래 그런 놈이었지.

휼의 사념체는 과거 오거스틴과 부딪히던 시절을 떠올리며 으르렁거렸다.

처음 오거스틴이 녹야의 전승자가 되었을 때. 그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당시에는 지금보다 심했다.

지금은 실력이라도 뛰어나지, 당시에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수습 마법사에 불과했으니까.

-반편이 같은 놈이로군. 이딴 수준을 하고서 내게 덤빈 것이냐? 꺼져라. 물어 죽이는 것도 못 할 짓인 것 같으니.

‘휼(獝)’이라는 존재는 이름만큼이나 항상 광기에 젖어 있다.

그러니 한 번 덤빈 자들을 절대 용서하는 법이 없었지만, 오거스틴만큼은 예외였다.

너무나 보잘 것 없었으니까.

괜히 죽였다간 자존심만 상할 것 같아 손속을 아꼈던 상태였다.

물론, 그냥 보낼 수는 없었으니 녀석의 스승을 통째로 날려버렸지만.

그때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미리 죽여 놓을 것을.

괜히 여흥을 부린답시고 내버려뒀다가, 지금 자신이 이런 치욕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오냐.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 부릴 수 있나 보자.

휼의 사념체는 자신이 누군지를 떠올렸다.

동대륙의 폭군이자 지배자였던 몸.

또 어떤 곳에서는 신으로 떠받들어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 위엄을 몸소 녀석에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파아아앗!

…그것이 휼의 사념체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 뒤로, 그는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하고, 공격에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해야만 했으니까.

그 어떠한 공격도 오거스틴에게 닿지 않았다.

하나 같이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따악!

“느려.”

따악!

“뻔하고.”

따악!

“지루하군.”

몸집을 키우기도 했고, 모습을 그림자 속에 감춰 그의 뒤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위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주변을 그림자로 포위해 사방에서 일제히 공격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

따아아악!

“너무 약하군.”

오거스틴이 한껏 비웃음을 던졌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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