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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06화 (305/405)

2부 46화

감찰국

그 순간, 코노텐은 뭔가 위협을 느끼고 말았다.

‘위험하다!’

여태껏 자신의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던 불길함이 등골을 섬뜩하게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아무래도 엘릭은 여태껏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감찰국이 메르빙거에 대해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밀리는 척 연기를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를 챈 마당이라면…!

“죽어어어엇!”

쿠르르릉!

코노텐이 전력을 다해 손을 아래로 거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하늘을 따라 잔뜩 뭉쳐 있던 마기가 한데 뭉치면서 엘릭의 머리 위로 연거푸 떨어졌다.

뇌정구와 독정이 한 데 융합된 독뢰(毒雷).

코노텐에게는 인장의 힘을 극한까지 쥐어짜 탄생시킨 비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휼!”

그 순간, 코노텐의 등 뒤로 산만 한 크기의 거대한 짐승 그림자가 나타나고.

조악하기 그지없는 버러지로군. 이런 걸 보면… 헛구역질이 나온단 말이지.

그것은 코노텐을 한껏 비웃으면서 앞발을 세게 내리쳤다.

다급히 뒤돌아선 코노텐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그 얼굴은 경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큭! 도, 동방에서 넘어왔다는… 마투술의 마왕이… 이… 것…!”

코노텐은 마기를 날개 형태로 응집해 허공에다 교차시켰다.

몸이 짜부라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주변을 엄습했다.

호오! 버러지 주제에. 나를 아나?

휼의 사념체는 코노텐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얼굴이었다.

코노텐은 거기에 맞장구를 칠 겨를이 전혀 없었지만.

“하지만 분명히 본국에서 조사하기로는… 편린만 남… 아서… 신경 쓸 게 없… 다고 판단했… 었는데…!”

감찰국에서 메르빙거만 조사했을 리는 없다. 마탑의 네레스타 역시 감시 대상에 올라와 있었으니. 특히 오거스틴 네레스타는 특급으로 분류된 요주의 대상이었다.

동방에서 넘어온 마투술의 계승자로서 천 년을 넘도록 대적해왔던 오랜 숙적을 처치한 대현자.

‘백야’라는 이름이 주는 이름값은 가이 네레스타와 비교해서 높았으면 높았지, 절대 낮지 않았다.

그런 만큼 오거스틴 네레스타가 엘릭 메르빙거와 사승관계를 맺었다는 소식은 감찰국을 한때 술렁이게 만드는 사안이었고.

그 과정에서 오거스틴이 엘릭에게 이식한 것으로 짐작되는 흉악의 인장은 더욱더 신경 쓸 요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랜 추적과 감시 끝에 내린 결론은 ‘아직은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다’였으니.

이는 엘릭의 그림자에 기생하게 된 휼의 사념체가 딱히 큰 활약상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살펴는 봐야 하나, 아직은 감찰국의 행보에 방해가 되지 않을 수준.

딱 그 정도의 평가였었는데…!

하하하하! 우습구나. 네까짓 것이 대체 무엇이건대 나를 평가한다는 것이지? 인장을 가지고 장난밖에 칠지 모르는 저급한 너희들 따위가?

휼의 사념체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메피스토나, 그나 코노텐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비슷했다.

버러지.

마족의 힘을 탐내고자 아무런 기반도, 체계도 없이 마구잡이로 인장을 뭉그러뜨려서 부리는, 덜떨어진 저급 실험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휼의 사념체는 코노텐과 더 이상 말을 섞는 것이 싫은 듯, 앞발에 잔뜩 힘을 실었다.

콰아아앙-

콰직!

엄청난 폭발과 함께 압박감이 심해지면서 마기의 날개에 잔뜩 균열이 갔다.

콰지지지직-

코노텐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여기서 어떻게든 벗어나야…!’

동공을 데구르르 굴리며 퇴로를 파악하려는데.

“어딜 가려고 그러시나?”

엘릭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코노텐이 황급히 시선을 돌린 곳.

엘릭이 새하얀 광휘를 내뿜으면서 이쪽으로 검지를 겨누고 있었다.

파아아아-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일까.

독뢰의 독기가 엘릭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순백색 광휘 위를 계속 겉돌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광휘라고 생각되는 것은 얼음 결정인 것 같았다.

수증기를 급속도로 꽁꽁 얼렸을 때 만들어지는 결정들.

거기서 흘러나오는 냉기로 보아, 급격하게 끌어내린 온도로 독기를 막아냈다는 사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동계의 권능

절대영도

엘릭이 어느새 권능을 발동, 주변의 수분과 함께 독뢰의 독기마저 얼려버린 것이다.

휘휘휘휘!

얼음 결정과 독 결정이 같이 엘릭의 검지를 따라 소용돌이를 그렸다.

“갈 때 가더라도 이건 돌려받고 가야지?”

“아, 안…!”

코노텐은 엘릭이 무슨 수를 노리는지를 깨닫고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지만.

“【떨어져라】.”

시동어와 함께 소용돌이가 한데 응집되어 벼락이 되었다.

시조 비전

뇌벽의 세

동계의 권능

설중매

콰르르르릉-

한 줄기 벼락이 휼의 사념체에 의해 묶여 있던 코노텐에게 작렬했다.

벼락은 단숨에 마기를 박살 낼 뿐만 아니라 코노텐의 상반신마저 찢어발겼으니.

상처에서 일어난 빙독이 육체의 신진대사를 단숨에 떨어뜨리고, 그 위로 역병까지 퍼뜨리면서 코노텐을 단숨에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으어어어…!”

푸시시시!

코노텐은 시체 썩는 듯한 지독한 악취와 함께 삽시간에 미라 몰골이 되고 말았다.

퀭하게 내려앉은 두 눈덩이에서는 살고자 하는 발악만이 느껴졌다.

“네가 실수한 게 뭔지 알아?”

뚜벅, 뚜벅-

엘릭은 천천히 그런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어느새 주변으로 퍼진 절대영도 때문에 바닥은 빙판이 잔뜩 깔려 있었다.

“감히 선조님들이 가진 비전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모든 걸 다 알아낸 척, 그리고 가진 척했다는 거야.”

“…!”

“천 년을 넘게 마족과 대적해오면서 이 세계를 지켰던 것이 바로 우리 메르빙거다.”

코노텐은 어떻게든 엘릭에게서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무거워진 몸뚱이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설마 그 세월이 지닌 역사를, 단 몇 년 만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분명히 웃고 있는 얼굴인데.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야.”

왜 이렇게 무섭기 짝이 없단 말인가.

“내가 좀 덜 화가 날 거 같거든.”

엘릭의 손이 코노텐의 얼굴을 덮었다.

“사, 사, 살려다오! 우리가 뭘 알아냈는지! 우리가 뭘 조사했는지! 메르빙거에 대한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고 싶을 것 아니냐! 다 말해주마! 묻는 건 다 불 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코노텐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비정하게 수하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던 그였지만, 실상 그 자신은 죽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혹시 내가 했던 말 기억하냐?”

“뭘…?”

“내가 묻는 말, 제대로 대답할 생각하라고.”

“…그럼 기억하고 말고! 너는 첸스도 살려두지 않았었나! 그놈처럼, 아니 그놈보다도 더 많은 걸 알고 있으니 불 수 있다! 불고 말고!”

코노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으, 으응?”

“생각이 바뀌었어.”

“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퍼어어억!

코노텐의 머리가 부서지면서 시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여기서 캐낸 정보도 꽤 많고, 대답해줄 것 같은 인사도 많아서.”

엘릭이 차가운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얼이 빠진 채로 있는 감찰국 요원들이 보였다.

“【나와라】.”

츠츠츠-

그림자가 길쭉하게 퍼지면서 용아병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전부 제압해. 저항하는 놈들은 모두 죽이고.”

키아아악!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용아병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 * *

네 말과 다르게 더럽게 맛이 없고 영양가도 없지 않느냐!

휼의 사념체는 짜증 섞인 얼굴로 투덜거렸다.

인장이 가득하니 여기서 간만에 만찬을 즐길 수 있을 거라던 엘릭의 꼬드김과 다르게.

실제로는 코노텐만 퀄리티가 괜찮을 뿐, 나머지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하급, 아니, 저급에 불과했다.

실제로 맛 또한 이토록 끔찍할 수 없었으니.

휼의 사념체는 힘이라도 회복할 생각에 억지로 삼켰으나, 그마저도 미미했기에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잔뜩 성만 냈다.

“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냐. ‘그럴 것’ 같다고만 했지.”

하! 또 말장난을 치는 거냐? 이제는 아예 짜증이 날 정도인데.

메피스토가 팔짱을 낀 채로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속고도 모르겠나? 세상에는 절대 믿어서는 안 될 것이 세 가지가 있느니라.』

세 가지?

『그래. 첫째는 메르빙거의 말이고, 둘째는 이 꼬맹이의 말이며.』

셋째는?

『엘릭 메르빙거의 말이니라.』

엘릭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메피스토와 휼의 사념체를 번갈아봤다.

설마 저런 되도 않는 말을 듣고 화를 안 내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으로 휼의 사념체를 올려다보는데.

…확실히. 일리가 있군.

녀석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기까지 했다.

『그렇지?』

오랜 삶을 영위한 대마왕이라 그런가? 이럴 때는 확실히 사건을 꿰뚫는 안목과 통찰력이 있군. 그동안에는 실없는 꼰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뭐 인마?』

휼의 사념체가 피식 코웃음을 치면서 하는 말에 메피스토가 발끈했지만, 휼은 이미 엘릭을 돌아보고 있었다.

하여간 다음에는 제대로 된 놈을 데려와라. 별 쓸모도 없는 일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하는 건 질색이니까.

엘릭은 가볍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러다 다음부터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피차 좋을 게 없었으니까.

“알았어. 다음에 제대로 된 걸 준비해둘게.”

…알겠다. 일단 한 번만 더 속아주도록 하지.

휼의 사념체가 조용히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어리석은 게 분명한 놈이로고. 아마 녀석은 동방에서도 호구 취급을 받았을 것이야.』

엘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메피스토를 바라봤지만, 굳이 여기서 저 마왕을 괴롭힌다고 해도 귀찮기만 할 것 같아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대신에 그는 사망한 코노텐과 제압한 5국 요원들이 실어나르던 서류더미 중 하나를 집어 내용을 살폈다.

“확실하네. 이 정도면.”

엘릭은 서류 중에서도 자신의 가문과 관련되어 보이는 것들만 쏙쏙 골라 인터레시아에 전부 던져 넣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콰아아아앙!

슬슬 저쪽 상황 정리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폭발 중심에서 가이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타났다.

그의 손아귀엔 기절한 2국장 베텐이 질질 끌려나오고 있었다.

“저것들이 마지막이다!”

“저쪽에 화력을 집중해!”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율법사들도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그 틈에서 다소 밝은 표정을 한 타샤를 볼 수 있었다.

“커헉!”

마지막 남은 감찰국 요원의 단말마와 함께 전투가 끝났다.

가이와 시선을 교환한 엘릭은 곧바로 네레스타 가로 귀환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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