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5화
감찰국
감찰국은 오랫동안 마족에 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인류의 적을 말살하기 위해서.
하지만 대마전쟁을 겪고 난 뒤.
그들은 생각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마족을 연구하고 그 힘을 빼앗는 것만으로는 마족을 막을 수 없어.”
“그것은 단순히 이쪽의 돌을 괴어다 다른 쪽의 구멍을 막는 것일 뿐.”
“홍수를 막기 위해서는.”
“인류의 존속을.”
“황실의 안녕을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오랜 논의 끝에 0국을 제외한 감찰국의 열세 국장들은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나누었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메르빙거.”
“이제 쓰러져가는 마도명문의 힘을 우리 손에 넣자.”
“그리한다면.”
존속과 안녕을, 아니, 그보다도 더 값진 영광과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
* * *
‘그냥 방관한 정도로만 알았는데… 결국 그 정도가 아니었단 거지?’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다.
가문의 몰락에는 감찰국과 황실의 손길이 깊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천 년을 넘도록 영화를 구가하던 가문이 아니던가.
심지어 대마전쟁 때는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두 명의 가주가 일찍 죽었어도, 이렇게 빠른 몰락을 겪는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그러니 황실의 방관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하는 것과 그걸 사실로 확인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더더욱.
‘조부님.’
어이가 없었다.
‘정말 당신의 희생은 값진 것이었습니까?’
대륙을 위해, 황실을 위해.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결과가 고작 이따위의 대우라니.
어쩌면 마탑이 자신의 봉신 가문이 떠나도록 도운 것도 황실이 배후에서 꾸며낸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엔 그들 모두 황실에 충성을 맹세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자신과 누나인 헤이즈가 그토록 무시 받으며 고생했던 일이 빠르게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꽈드득!
엘릭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잘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다.”
“뭘 말이냐?”
“내가 묻고 싶은 게 좀 많거든.”
코노텐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날 제압할 수 있다면.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야?”
꾸드드득-
녀석은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는 듯, 남은 인장의 힘을 더욱더 개화시켜나갔다.
코노텐의 이마에서 작은 뿔이 솟아났다. 그러면서 검과 팔이 연결되면서 기괴한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니.
파직, 파지지직!
뇌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마기에 뒤섞이고.
뚝, 뚝.
치이이이-
마기가 바닥에 떨어진 장소에서는 썩은내가 진동했다.
이제는 엘릭이 확실히 기 싸움에서 밀리는 양상에 가까웠다.
코노텐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이렇게까지 심적으로 몰아붙였는데도.’
거기서 코노텐은 속으로 기함을 삼키고 있었다.
‘어떻게 동요 한 번 없을 수가 없지?’
전력이 낱낱이 파훼되었다는 것.
공략법이 완성되었다는 것.
무도가에 있어서. 그리고 마법사에 있어서 이보다 더 끔찍한 말도 없을 것일진대.
실제로 그만한 실력을 보여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엘릭은 여태 흔들리는 기색 한 번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르빙거가 오랫동안 감찰국과 황실의 주요 타깃이었다는 것.
마족의 힘을 이용해서 전력을 강화했다는 것까지도.
분명히 인류를 위해 희생을 선택한 별의 마도사를 우롱하는 처사임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지도 않는 모습이, 코노텐에게는 오히려 더욱더 기괴하게 느껴졌다.
마치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지금도 보라.
저 무덤덤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런 감정조차 없는 인형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조금 전까지 그들을 상대로 분노하고 희롱하던 메르빙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 보이는 엘릭의 녹안은 아무런 기색조차 읽을 수 없었다.
최소한 사람이라면, 화를 내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코노텐을 조금씩 안달 나게 만들었다.
혹시 자신이 무언가 엘릭에 대해 놓치고 있던 게 있나 싶어서.
‘아니. 그딴 건 없다. 우리는 완벽했어!’
0국을 제외한 13개의 감찰국은 각기 다른 국장의 지휘 아래 서로 다른 운영 체계를 가진다.
때문에 때때로 각 국마다 의견이 엇갈려 부딪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엘릭과 동부에 대해 분석한 정보를 2국과 5국만 알고 있던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과 1국은 정치적 방향이 아주 많이 달랐으니까.
언젠가 엘릭과 동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에 사용할 비장의 한 수로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뜻하지 않게 이것을 먼저 꺼내게 된 셈이었지만.
‘어차피 여기서 놈을 지워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메르빙거의 힘을 우리가 완전히 손에 넣게 되는 것이야!’
코노텐은 이것을 기회의 발판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황실을. 감찰국을. 제국을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고오오오-
하늘을 향해 뭉게뭉게 퍼져나가던 마기가 순식간에 거대한 날개의 형상을 갖추고.
“쏟아져라.”
쿠르르르릉!
날개가 하나로 접힌다 싶더니 거대한 번개 기둥이 엘릭이 있는 자리로 내리꽂혔다.
콰릉, 콰릉, 콰르르릉!
엘릭이 한 손에 얼음창을 쥔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마다 빠르게 벼락이 내리꽂혔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5미터 남짓한 크기의 크레이터가 파이고, 그 자리에는 검은 독기가 풀풀 날리면서 강한 산성액의 악취가 풍겼다.
뇌정과 역병. 두 종류의 인장이 섞이면서 생긴 효과.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
코노텐은 조금씩 의기양양해졌다.
엘릭이 정면에서 부딪칠 용기가 나지 않아, 자꾸만 승부를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메르빙거, 메르빙거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애송이에 불과할 뿐! 동부에서 활약을 보였다고 해도,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에 불과한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거야!’
그를 아주 잠깐 놀라게 만들었던 포커 페이스도, 결국 겉보기에만 그럴 듯한 허울 좋은 블러핑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계속 이리저리 도망치는 통에 근처에 있던 요원들만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었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커허억!”
“구, 국장님…!”
“제발 멈추시…!”
뇌전에 얻어맞은 사람들의 결과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뉘었다.
강렬한 뇌기에 몸이 찢기거나, 혹은 독기에 감염되어 고목처럼 메말라 죽거나.
하지만 코노텐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말단들의 피해쯤은 얼마든지 채울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오로지 엘릭을 잡는 것뿐.
하지만 그 도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뇌전과 엘릭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질뿐더러, 어느새 원하는 지점까지 몰아붙이는데 성공까지 했으니.
이 역시 엘릭을 연구한 끝에 얻은 공략법 중 하나였다.
토끼몰이.
그리고 엘릭이 어느새 원하던 지점에 다다랐을 무렵.
“터져라!”
뇌정구를 뭉쳐뒀던 것처럼, 미리 트랩 방식으로 묻어뒀던 독정(毒精)이 폭발한 것이다.
콰릉, 콰릉, 콰르르릉-
콰콰콰콰!
거친 화염 기둥이 엘릭을 뒤덮고, 뒤이어 희끄무레한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는 동안.
‘지금!’
코노텐은 땅을 거칠게 박차면서 독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휘두르는 검격.
검기가 독안개를 가르면서 그 중심부에 있던 엘릭에게로 다다랐다.
짙은 안개 때문에 엘릭의 모습은 그리 잘보이지 않았다.
차아아앙!
스걱-
하지만 검에서 느껴지는 타격감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엘릭이 자랑하던 얼음창이 무참하게 썰렸단 것을.
아니나 다를까.
엘릭이 독안개 뒤쪽으로 힘없이 튕겨나오는 게 보였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코노텐은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검격을 연거푸 휘둘렀다. 기존의 폭발에 더해 괴력의 인장으로 발휘한 검기가 금방이라도 엘릭을 난도질할 것처럼 굴었다.
촤촤촤촤-
얼음창은 물론, 계속 올려 세웠던 엄폐물들도 줄줄이 부서져 나가고.
“끝났다!”
코노텐은 승리를 확신하면서 검을 거세게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앙!
수직으로 내려찍은 공격에 겨우겨우 얼음창을 소환해 이를 막은 엘릭의 무릎이 살짝 굽혀졌다.
가가가가각!
그대로 압사시키려는 듯, 코노텐은 이를 악물고 검에 무게를 잔뜩 실었다.
불똥이 거칠게 튀었다. 얼음창이 조금씩 갈라지면서 검기로 넘실거리는 마검이 당장에라도 엘릭의 정수리로 떨어질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어떠냐, 메르빙거의 힘이.”
코노텐은 여전히 죽음을 앞에 두고도 무감각한 엘릭을 보며 한껏 비웃음을 던졌다.
조소.
혹은 경멸.
“단언컨대, 네가 복구한 것으로 보이는 메르빙거의 힘은 ‘진짜’가 아니다. 너는 모르는. 그리고 너의 선조들도 몰랐던. ‘진짜’ 힘이 있었지.”
코노텐은 메르빙거라는 위대한 이름을 갖고 태어나고도,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모르는 멍청한 후손에게 마지막 남은 자비를 베풀어주고자 마음먹었다.
“과거. 이제는 기억하는 이들도 거의 없을 아주 머나먼 신화 시대. 기록에도 남지 않았던 그 당시에 메르빙거는 무적(無敵)이었고, 불패(不敗)였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마를 삼키고, 자신의 것으로 발현하는 힘에 있었으니.”
원래대로라면 감찰국 내에서도 아주 극비에 다뤄지는. 심지어 1국에도 비밀로 한 채 0국에서 주관하던 프로젝트였기에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네게 남은 메르빙거란, 껍데기에 불과할지니. 너는 일개 그림자에 불과하다, 메르빙거의 혈손이여. 그래도 그 속에 든 알맹이에 최후를 맞게 된 것이, 메르빙거에 대한 우리들의 헌사라고 생각하고.”
콰직!
“이만 죽어라.”
코노텐의 일갈과 함께 검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로써 얼음창이 깨지고, 엘릭도 반 동강이 나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파아아아-
얼음창이 꿈쩍도 않았다. 검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새카만 검신을 타고 새하얀 서리가 잔뜩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
코노텐은 인장이 주는 직감에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고 몸을 뒤로 널찍이 떨어뜨렸다.
촤촤촤촥!
그 순간, 조금 전까지 엘릭을 몰아붙이던 검이 얼음으로 뒤덮이고, 땅밑에서는 얼음송곳이 한가득 튀어나왔다.
그리고.
코노텐은 볼 수 있었다.
여태껏 무감정했던 엘릭의 동공에 처음으로 살의가 깃드는 것을.
“그거였구나? 너희들이 믿던 것. 단순히 우리 가문을 연구하기만 한 게 아니었어.”
왜일까.
오소소소. 전신에 소름이 쫙 퍼졌다.
분명히 기세 면에서도, 전투 면에서도 그가 승기를 붙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공포심이 들었다.
“우연히 찾았었던 거야. 선조들의 무덤을. 거길 발굴하면서 우리들의 비밀을 알았던 거고. 그렇지?”
감찰국이 인장을 빼앗고 힘으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이유.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 순간, 엘릭은 더 이상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미래의 후손을 기다리고 있을 선조들의 무덤이.
자신의 손길을 애타게 그렸을 분들의 소중한 영면이.
저들의 더러운 손으로 더럽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