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4화
감찰국
하지만 엘릭은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느냐, 메르빙거.”
쿠르르릉!
엘릭 앞으로 무언가가 수직으로 떨어졌다.
잔뜩 응집된 뇌기가 깃든 검기.
엘릭은 재빨리 방향을 꺾어 거리를 벌렸고,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로 뇌전이 작렬했다.
콰쾅, 콰콰콰쾅-
그러면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번져가는 폭발은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이 굴었으니.
‘강하다.’
엘릭은 직감적으로 상대가 여태 상대했던 요원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국장 블랙과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실력.
아니, 살갗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살기로 봐서는, 실력 면만 따진다면 그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강자인 것 같았다.
휘휘휘…!
살짝 드러난 먼지구름 사이로 잔혹한 표정을 지닌 한 남자가 나타났다.
감찰 5국장. 코노텐이 나타난 것이다.
“그대는 여기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저기요. 제가 지금 좀 바쁘거든요. 비켜주실래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코노텐은 듣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파직, 파지지직!
코노텐이 들고 있는 검에서 다시 뇌기가 크게 방출되었다.
엘릭은 그것이 마법과 비슷하되, 마법과는 전혀 다른 기질의 사술(邪術)이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마법은 정리된 법칙에 따르나, 저 사술은 그보다 훨씬 미지와 신비의 영역에 다다라 있었다.
마기.
인장이 발동되고 있는 것이다.
“황실의 신망을 떨어뜨리고, 혁명군과 결탁한 역적. 여기서 지워주마.”
콰드득!
역혈대법을 사용한 탓에 그의 몸집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화산이 폭발하듯이 터져나오는 마기.
파지지지직!
그 마기를 따라 뇌기의 힘도 더욱더 커졌다.
『많이 왜곡된 걸 봐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뇌정(雷霆)’과 ‘괴력(怪力)’, ‘역병(疫病)’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메피스토는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긴 그 역시 마족이니, 마족의 진명인 인장을 마구잡이로 사용한 감찰국의 행태가 더 불쾌하게 와 닿을 테지.
[각각 어떤 특징을 갖고 있죠?]
『…내가 굳이 그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나?』
[인간들이 인장을 함부로 가지고 노는 게 싫다면서요?]
『이전에도 말했지만, 인장은 단순한 현상이나 힘 따위가 아니다. 마족에게 있어서는 근원, 뿌리이자 영혼이다. 그것을 장난감처럼 갖고 논다는데 누가 좋을 수 있을까.』
[그러니 말해달라는 거죠. 저 악당들, 깨부숴야죠? 마족만도 못하다는 건데.]
『….』
메피스토는 저 말을 대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잠시 골몰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단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거다. 뇌정의 인장은 발산하는 에너지에 뇌기를 담는다. 가장 파괴적이고 빠른 힘이지. 하지만 그만큼 육체에 막대한 무리를 주기 때문에 근력을 강화시켜주는 괴력의 인장으로 이를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인장 간의 상성을 잘 연구한 것 같다는 뜻.
[역병은요? 다른 두 개랑 전혀 연결이 안 되는데.]
『일종의 필살기겠지.』
[비밀 무기 같은 거군요?]
『뇌기에 정신이 팔려 급급할 때에 독기라도 천천히 스며들게 해서 적을 무너뜨리는 게 목적이 아닐까 한다만….』
메피스토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사실 저건 말이 역병일 뿐이지, 진짜 역병의 인장이라 할 수 없다. 기괴한 것들을 이리저리 욱여넣어서 만든… 쓰레기. 그래. 쓰레기다. 당장 치워버려야 해.』
엘릭은 이토록 분노한 메피스토를 거의 본 적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가.’
인간에 대입해보자면, 인간을 실험체 삼아 이리저리 알 수 없는 형태로 기괴하게 합쳐 놓은 형국이라고 해야 할까.
메피스토는 진심으로 역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만약 그가 비위가 약한 일반 마족이었다면 헛구역질을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엘릭이 말했던 대로.
감찰국은 마족에게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더 한 쓰레기였던 것이다.
“그딴 꼬락서니를 하고서 황실의 신망을 논한다고?”
당연히 엘릭도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없었다.
“댁이 지금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인지는 하고 있나?”
“역시 듣던 대로 주둥이부터 앞서는군. 그만한 실력이 되는지 보자.”
파아아앗-
코노텐의 신형이 사라졌다.
빠른 움직임.
하지만.
“【묶어라】.”
엘릭은 이미 허공에다 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촤르르륵!
허공에서 얼음 사슬이 잇달아 튀어나왔다.
엘릭에게 달려들려던 코노텐은 빨랐지만, 엘릭은 이미 그런 녀석의 속도와 방향에 따른 위치 지점까지 추측하고 있었다.
촤촤촤촤!
덕분에 엘릭의 바로 코앞에서 코노텐이 꽁꽁 묶인 채 나타나고 말았고.
“…너!”
코노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뇌기를 폭발시켜 얼음 사슬을 부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신성력.
어느새 다미르의 힘이 더해져 있었던 것이다.
인간 형태를 계속 띠고 있었다면 모를까, 역혈대법으로 마기를 유동한 순간 신성력에는 쥐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엘릭은 바로 이 순간을 노렸던 것이다.
히죽!
엘릭이 차갑게 웃었다.
“명색이 밥 먹고 나면 늘상 계산하는 게 일인 마법사에게 맨몸으로 돌진하는 놈이 미친 거 아니냐?”
고오오오-
엘릭이 녀석에게로 양손을 거칠게 뻗었다.
손에서부터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아의 인장이 밝게 빛나면서 몸이 녹색 빛깔로 뒤덮였다.
화아아악!
“【깃들고】, 【또 깃들어라】.”
마력은 신성력이 깃든 빛으로 변하여 등 뒤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육체를 이루던 근질은 더욱 단단해져 신체 능력을 향상시켰다.
나하트람과 다미르의 힘이었다.
더블 캐스팅.
이전이었다면 이렇게 손쉽게 풀어내지 못했겠지만.
이미 내면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체내 곳곳으로 뻗어가고 있는 신아의 인장 덕분에 더 이상 큰 무리가 없었다.
마력 폭풍이 얼음창이 되어 섬광을 그렸다.
목표는 묶여있는 코노텐의 심장.
얼음창을 쑤셔 넣어 안쪽에서부터 폭발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다면 억지로 쑤셔 넣은 인장들이 서로 연동되는 것도 힘들어질뿐더러, 신성력으로 마기까지 모조리 박살 내버릴 수 있을 테니.
“네 말이 맞다.”
신성력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코노텐은 웃고 있었다.
“마법사에게 맨몸으로 돌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지.”
파직, 파지지직-
“하지만 믿을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콰르르릉!
갑자기 코노텐의 발아래에서부터 뇌기가 터져나왔다.
채채채채챙-
그리고 일제히 깨진 유리처럼 터져나가는 얼음 조각들.
‘어떻게?’
쐐애액!
어느새 코노텐이 엘릭 앞까지 도착해 손을 뻗고 있었다.
“어떻게 했냐 싶은 얼굴이로군.”
코노텐이 어떤 원리를 사용했는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하트람의 빠른 동체 시력은 녀석의 숨겨진 모든 술수들까지도 파악해내고 있었으니까.
얼음 사슬이 나타나기 직전, 녀석은 뇌기를 잔뜩 응집시킨 뇌정구(雷霆球)를 따로 떼 내어 땅 밑에다 숨겨둔 상태였다.
불가사의한 힘인 인장의 힘을 활용해 육체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다 미리 마법을 이식시켜둔 것이다.
그리한다면 신성력으로 육체가 봉인되어도 언제든 떼어둔 마법을 발동시키면 그만이었으니.
즉, 코노텐은 엘릭이 신성력으로 그의 움직임을 속박하려 들 것이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단 뜻이 되었다.
문제는 엘릭이 얼음 사슬을 뽑아낼 것을 어떻게 알았고, 거기에 맞춰서 대응을 했냐는 것.
“우리는 감찰국이다. 제국의 안전에 방해가 될지 모르는 이들을 사전에 차단하고 제거하는 임무를 띤 황제 폐하의 그림자들.”
마기로 뒤덮인 녀석의 손바닥이 엘릭의 얼굴을 덮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적을 상대하기에 앞서 그의 허실을 미리 파악해두는 것쯤이야 상식이지 않겠는가.”
그 말인 즉, 이미 감찰국에서는 엘릭을 적으로 상정하고 상대할 만한 수단을 모두 강구해뒀단 뜻일까?
그렇다면 엘릭의 공격 패턴을 미리 예측하고 이런 대응책을 마련했어도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엘릭을 비롯해 엘릭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파악해뒀을지도 몰랐다.
‘그럼 블랙은 왜 그걸 못한 거지?’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0국을 제외하면 감찰국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는 블랙은 왜 안드레 윈즈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던 걸까?
수많은 의문이 엘릭의 머릿속을 스쳤다.
“【치솟아라】.”
하지만 거기에 계속 생각을 매달릴 수 없는 일.
엘릭은 재빨리 왼발로 지면을 세게 밟았다.
어그적!
빙판이 부서지면서 엘릭 앞으로 얼음벽이 높이 치솟으면서 코노텐과의 간격을 벌렸다.
역시나 신성력이 부여된 얼음벽.
콰아아앙!
파지지직-
코노텐의 손바닥에서 뇌기가 작렬했다. 손바닥이 닿았던 자리를 따라 검은 탄자국이 남고, 스파크가 위로 튀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얼음벽을 부숴버릴 것처럼 으르렁거렸지만, 얼음벽은 끄덕도 없었다.
“【부서져라】!”
그때, 거대한 얼음벽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면서 코노텐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람 머리통보다도 더 큰 얼음 덩어리들에 깔렸다간 몸뚱이가 모조리 박살날 것처럼 보였다.
하물며 신성력이 깃든 우박 세례라면 더더욱.
하지만.
휘리리릭!
콰릉, 콰릉, 콰르르릉!
코노텐이 거칠게 몸을 회전시키면서 일으킨 강풍에 뇌기까지 뒤섞이면서 얼음 조각들이 허공에서 모조리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말하지 않았나? 메르빙거, 너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났다고.”
코노텐은 자신만만했다.
아무리 마도명문인 메르빙거라고 하더라도, 절대 자신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정보면 정보.
무력이면 무력.
자금이면 자금.
자신들은 모든 걸 가지지 않았는가.
“4황자에게 줄을 대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던 멍청한 블랙 따위와 우리는 다르다.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휘휘휘휘-
코노텐이 차갑게 웃으면서 다시 검을 몰아붙였다.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전혀 쉴 틈을 내어주지 않는 검격은 아주 집요하게 엘릭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간간히 터지는 뇌기는 날카롭기 이를 데가 없어서 엘릭이 자꾸만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새 나하트람의 무술까지 파악했었나? 예상보다 빡빡하게 준비했군.』
싸움을 구경하던 메피스토의 두 눈이 차갑게 번들거리는 동안.
퍼어어엉!
창과 검이 충돌했다.
촤촤촤촤-
빙판이 잘게 부서지면서 얼음 가루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팽팽한 힘겨루기.
신성력을 머금은 얼음창과 뇌기를 품은 검이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상대에게 맞서기를 반복했다.
‘마기 위에 검기를 덧씌워서 신성력을 밀어내고 있어. 이것도 공략법의 일종인가?’
엘릭은 빠르게 코노텐의 기술을, 그리고 감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추론하면서 내심 놀라워하고 있었다.
검기와 마기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진 이질적인 능력들.
그것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절대 웬만한 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역시 녀석이 한 말마따나 오로지 엘릭을 적으로 상정하여 미리 준비해둔 공략법인 셈이었다.
‘그럼, 설마…?’
여태 전투에 집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이제야 눈치챈 것이냐? 느리곤.』
[이게 대체…!]
엘릭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휘휘휘휘-!
여태 국장이나 부국장 급만 다룰 줄 알았던 인장의 힘을.
2국과 5국의 평범한 요원들까지 전부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녀석들이 흘린 수많은 마기들이 뭉쳐 하늘을 더욱더 새카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네놈들이 어떻게 인장의 힘을 사용하는 거지? 아무리 마족을 연구한다 한들, 가능한 일이 아닐 텐데.”
감찰국장들이야 그렇다 해도 평범한 요원들까지 전부 인장의 힘을 사용하다니.
아무리 릴리스와 거래를 했다고 한들,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본래 마족을 잡아먹어 그들의 힘을 쓰는 건 메르빙거만의 고유한 기술이었으니까.
그런데.
피식!
코노텐이 웃었다.
“설마 우리가 연구한 게 마족뿐이라고만 생각한 건가? 메르빙거 가주답지 않게 순진하군그래?”
“…!”
순간, 엘릭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저 말의 뜻은 단 하나.
“…설마 우리 가문까지 연구한 거냐?”
“빙고.”
코노텐의 미소가 더욱더 사악하게 빛났다.
“사라진 메르빙거가 되는 것. 그것이 원래 우리 감찰국이 추구하던 목표였다.”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