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9화
감찰국
『결국 네놈이 예상한 대로 되고 말았구나.』
[원래 인간이라는 생물은 말이죠, 생각을 하고 사는 동물인 겁니다.]
엘릭은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면서 우쭐댔다.
메피스토는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엘릭은 자신만만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감찰국 측에선 입막음을 위해서 첸스를 어떻게든 암살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름 감찰국 부국장이었던 첸스였기에, 어중간한 자가 암살에 나서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1국 부국장이라는 대어가 낚인 거지. 월척이구만, 월척이야.’
네임리스와 적사자 둘을 부른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최소 부국장, 최악의 경우 감찰국장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블랙은 처음부터 끝까지 엘릭이 짜놓은 판 위에서 알아서 움직여 준 셈이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항복까지한 놈을 그렇게 써먹다니. 하여간 메르빙거의 인성이란… 쯧쯧!』
[네? 걔가 왜요? 어차피 그놈도 휴일란 사람들 죽이려던 놈인데. 제가 왜 거기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엘릭이 막지 않았다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학살에 동참했을 놈이었으니.
엘릭은 첸스의 죽음이 딱히 안타깝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감찰 1국장님?”
엘릭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블랙에게 시선을 돌렸다.
“….”
그의 얼굴은 이미 죽을 상이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가족들…. 이대로는 아내와 아이들까지 위험해진다…!’
마족과의 결탁은 즉결 처형은 물론, 연좌제까지 묶일 수 있는 위중한 사항.
아무리 냉혈한이라고 해도, 그 역시 가족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왜 말이 없어? 그럼 허락한 걸로 안다?”
엘릭이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 검에 가져다 대려 했다.
“…주마.”
“뭐라고? 찐따라서 잘 안 들리는데?”
낮게 중얼거리던 블랙의 목소리가 엘릭의 귓가에 들어왔다.
흠칫!
그의 몸에선 검은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눈치 빠른 몇몇은 청문회장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섰다.
“죽여 주마, 메르빙거!”
콰아아아!
짧은 외침과 함께 블랙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꾸드드득!
그이 몸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족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아예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는 메르빙거를 제거하고 나면… 4황자께서도 뒤를 봐주실지 모른다! 가족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
블랙은 마지막 도박수에 목숨을 던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커진 덩치.
기형적으로 자라난 여러 개의 팔과 다리.
블랙에게선 사람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꺄아아아악!”
“도망쳐!”
안에 있던 의원들과 기자들이 부리나케 의회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콰콰쾅!
블랙은 서 있던 중앙 단상을 부수면서 단번에 엘릭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짓밟아주마!”
그러면서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지만.
카앙!
“…!”
엘릭의 곁에 있던 네임리스의 검과, 방청석에 있던 적사자의 검이 서로 교차하면서 발톱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를 예상했다는 듯 엘릭은 이미 뒷짐을 진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쪽을 보는 시선에는 이제 아무 감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웃음조차도.
“네놈들…!”
카가가각!
블랙의 발톱과 두 검이 힘겨루기에 들어가면서 불똥이 튀어오르는 가운데.
적사자, 안드레 윈즈가 인상을 쓰는 블랙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드디어 너희들에게 받았던 지난 수모를 대갚음할 수 있겠군.”
과거에 가만히 있던 자신을 마족과 결탁했다며 모함하여 반란군으로 정치공작을 벌였던 곳이 바로 감찰국이었으니.
그 중심에 섰던 것이 1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확실한 복수의 장소도 없었다.
“네 목은 반드시 내가 가져가 주겠다.”
터엉!
안드레가 블랙의 팔을 강하게 쳐내더니 그대로 그에게 돌진했다.
쐐애애액-
블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건방진 놈! 폐인 주제에 감히 누구의 목을 벤다는 것이냐?”
제국을 지탱하는 ‘동쪽의 기둥’이라 불리던 적사자, 그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양손을 번갈아가며 쓰는 변화무쌍한 검술이 바로 그의 주특기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한쪽 팔이 사라진 지금, 세간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안드레가 제구실을 할 거라 믿지 않았다.
그나마 새롭게 붙은 팔도 엘릭이 붙여준 의수에 불과하니.
“왜 이렇게 쫑알쫑알 말이 많은 거지?”
하지만 안드레는 평온한 표정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쉬쉬쉬쉭!
빠르게 질주하는 검술.
블랙은 그것을 일일이 튕겨내면서 인상을 굳혀야만 했다.
‘어, 어떻게 외팔 검사의 힘이…!’
생각보다 묵직한 힘.
블랙은 팔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통증에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반격을 가해야 하나 싶은 그 순간.
흠칫!
블랙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야 했다.
안드레의 검이 곧바로 자신이 서 있던 곳을 깊게 베고 지나간 탓이었다.
후웅-!
수십 개로 분리된 검기가 거칠게 사방으로 흩날렸다.
만약 저기에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파, 팔을 잃기 전의 무위로 돌아왔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흔히 감찰 0국을 제외한 다른 13국의 국장들은 팔사자와 잘 비교되곤 한다.
활동하는 무대가 달라 부딪쳐 볼 일이 잘 없지만, 그래도 한 세력의 수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랙은 내심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감찰국이 사자공가 보다 위에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고.
국장들 역시 음지에서 살기에 이명이 알려질 기회가 적을 뿐, 그깟 사자 따윈 얼마든지 쉽게 짓밟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물며 이렇게 마족화까지 시도하면서 몇 배의 무위를 갖추게 된 지금이야 오죽할까?
그런데.
처음으로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웅, 후웅-
“제길!”
뒷걸음질 치던 블랙이 멈춰 섰다.
파지지직!
아무리 날뛰어봤자 적사자의 팔은 하나.
한 손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손으로 감당하면 되지 않을까.
블랙의 여러 개의 팔에서 마기가 뇌전처럼 줄기차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안드레에게 주먹을 뻗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마기 뇌전.
하지만 안드레는 피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후읍!”
대신, 그는 검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제자리에서 몸을 비틀어 큰 원을 그리듯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
엄청난 풍압과 힘에 블랙의 팔이 전부 튕겨져 나갔다.
“컥!”
“마족에게 붙어먹은 놈 따위에게 져서야.”
쐐애애액!
안드레의 검이 빛살이 되었다.
“어디 사자라고 할 수나 있을까?”
퍼어억!
빛살이 고스란히 블랙의 미간에 적중하고 말았다.
“안…!”
쩌적, 쩌저적-
미간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얼굴로, 목을 타고, 상체로 번져 나갔다.
“…돼!”
블랙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려는 것 같았지만.
와그작!
파스스….
그대로 잘게 부서져 바닥에 흩어지고 말았다.
안드레는 검을 조용히 거둬 도로 검집에 밀어 넣으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금사자와 흑사자 크롬헬이 앉아있는 곳.
-마족에게 붙어먹은 놈 따위에게 져서야 어디 사자라고 할 수나 있을까?
안드레가 했던 말은 사실 블랙에게 던진 말이 아니었다.
사자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그리고 그 다음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크롬헬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고.
황금사자만은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많이 장성했구나.”
“….”
안드레는 과거의 주군이었던 이에게 가볍게 목례를 보내고는 이제 현재의 주군인 엘릭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닥에는 이제 조각난 블랙의 사체만이 보였으니.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생각했다.
오늘자로 추락한 줄 알았던 적사자는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것.
청사자와 마찬가지로 재기(再起)에 성공한 것이다.
안드레는 자신에게 새로운 힘과 기회를 준 엘릭을 응시했다.
엘릭은 예상보다 너무 잘해준 신하를 보며 씩 웃어주었다.
* * *
자유혁명군 본진.
대막사의 분위기는 한창 날이 바짝 서 있었다.
혁명군이 본격적으로 준동하기 위해 개시하였던 휴일란 전투가 대패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혁명군의 기둥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제프의 죽음은 앞으로 그들의 행보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계획을 재고 해봐야 하나.”
자유혁명군의 총수는 올라온 보고서를 쭉 훑어보고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그는 오늘 보았던 병사들의 사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씁쓸함이 감도는 모습.
그만큼 제프의 죽음이 혁명군에게 준 충격은 너무 컸다.
이 꺾인 기세를 다시 되살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졌다.
바로 그때였다.
“보고 드립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복면을 쓴 첩보원이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직 보고할 것이 남아있었나? 무슨 일이라도 있나?”
“청문회와 관련된 일입니다.”
“청문회?”
총수는 첩보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내는 빠르게 품에서 신문과 종이 뭉치를 꺼내 총수에게 건넸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대체 왜?
하지만 총수는 신문을 살핀 순간, 첩보원이 왜 이걸 가져왔는지 알 수 있었다.
황도에서 벌어진 사건을 마법 통신망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전달해주는 3류 찌라시 신문.
하지만 이번에 실린 내용만큼은 절대 그저 그런 찌라시가 아니었다.
‘방법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군.’
신문을 읽는 시선이 아래로 향할수록, 그의 입꼬리도 조금씩 올라갔다.
그러다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그의 입가엔 만족에 찬 미소가 걸려있었다.
툭!
총수는 신문을 도로 반으로 접으면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가보아도 좋다.”
“예.”
짧은 대답과 함께 첩보원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
무언가를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총수의 시선은 여전히 신문 헤드라인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족과 결탁한 감찰국!>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감찰국이 마족과 결탁했다는 증거가 나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그 중심엔 어김없이 엘릭 메르빙거가 있었다.
<찬성공작은 가신인 적사자와 함께 감찰국장에 비신임을 물어….>
<엘릭과 마탑 연합은 이번 일을 시작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찰국을 압박할 예정이라고 밝혀….>
“됐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흐름이 바뀌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군. 그대로 황실을 들이받아 버리다니.’
휴일란에서 감찰국을 적대했던 메르빙거.
그가 이렇게 전면에 부각된다면, 그만큼 휴일란의 사건 또한 알음알음 전국에 번질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혁명군은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고.
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며 침음했다.
“감찰국은 한동안 발이 단단히 묶여서 바깥은 신경 쓰지도 못할 테고….”
조직의 특징상, 음지에서 움직일 일이 많은 자유혁명군의 발목을 그동안 가장 크게 잡던 곳이 바로 감찰국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메르빙거 덕분에 운신의 폭이 자유로워진 셈.
그리고 이 일을 적극적으로 비화시켜 감찰국의 배후에 있는 황실에까지 불신이 묻게 한다면….
‘혁명은 그만큼 더욱더 순조로워진다.’
휴일란 때와 같은 실패는 두 번 다시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패는 단 하나.
“오랜만에 외유를 나서봐도 되겠군.”
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우선 길리티. 그 친구부터 만나봐야 하나?”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