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298화 (297/405)

2부 38화

감찰국

‘허세일 거다.’

블랙이 주먹을 꽉 쥐었다.

첸스를 잃은 이상, 엘릭에게 또 다른 패가 있을 순 없었으니까.

그리고 주위만 둘러봐도 알 수 있었다.

여론이 자신의 편에 있다는 것을.

제국의 공작이 혁명군과 결탁한 게 아니냐는 블랙의 질문으로 인해 이미 청문회장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원장이 목청을 높이며 이들을 달래려 해도 효과는 없었다.

그만큼 블랙의 말은 파격적이었으니까.

사람들이 서로 귓속말하며 술렁거리고, 기자들의 펜대가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것을 눈치 챈 사자공가와 감찰국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탑 쪽 인사들을 노려봤다.

이 때문에 그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까지 엘릭과 함께 엮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유일하게 엘릭과 가이만 평온한 모습.

마탑 측 인사들 중 몇몇이 당혹한 표정으로 가이에게 작게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립니까! 혁명군과 결탁했다뇨!”

“그런 말씀은 없었잖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짜증에도, 가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댈 뿐이었으니.

다 생각이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기세.

“…!”

“…!”

“크흠!”

“가이 님이 그러하시다면… 험험!”

“네레스타 가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이유가 있는 거겠지.”

마법사들은 저마다 헛기침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무리 혼란에 빠진다고 해도, 가이가 얼마나 마탑의 주도권을 평상시에 잡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후우…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건지….’

그런 모습을 보며 션은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째 아버지가 점점 엘릭을 닮아가시는 것 같았으니까.

평소라면 좋게 타이르고 마셨을 일을, 저렇게까지 기를 꺾어버리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면서도 션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정말… 이제 어떻게 하려는 거지?’

저쪽에서 엘릭과 혁명군을 엮으리란 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그 때문에 엘릭이 아버지인 가이와 따로 얘기를 하는 거 같긴 했는데.

친구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결론이 났는지를 모르니, 션으로서는 그저 불안할 따름.

블랙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낸 건 그때였다.

“어서 말씀해주시지요. 대체 왜 저흴 막으려 하신 겁니까?”

어느덧 그의 얼굴에서 보였던 불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엘릭의 침묵을 자신의 승리로 여긴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엘릭이 그동안 가만히 있던 건 ‘소식’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소식’은.

『왔군.』

지금이었다.

짜악!

블랙이 다시 한번 엘릭을 재촉하려던 그때.

뜬금없이 박수를 치는 엘릭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은 안 하시고 무엇을 하시는…?”

콰쾅!

그 순간, 갑자기 큰 폭발과 함께 천장에서부터 무언가가 블랙의 옆으로 떨어졌다.

“꺄아아악!”

“뭐, 뭐야?”

이전에 첸스의 사망 소식이 있어서일까? 객석에 있던 이들이며 의원들까지 모두가 화들짝 놀란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시선이 블랙 옆으로 쏠렸다.

그러다 식겁하고 말았다.

괴상한 뿔을 달고 박쥐 같은 날개를 지닌 존재.

마족이었다.

“허억! 저, 저것은…!”

“마족이다!”

“마족이 대체 여기서 어떻게!”

청문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마법사와 기사들 모두 놀라 벌떡 일어나며 각자 검을 쥐거나 곧바로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마쳤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가이와 황금사자뿐.

언제 일어났는지 엘릭은 느긋한 표정으로 마족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무슨…?”

“찬성공작! 당신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는 겁니까?”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엘릭을 바라봤다.

엘릭은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러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러곤 쓰러져 있는 마족을 가리켰다.

“보시면 알겠지만, 딱히 위협이 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있으니 별 수를 쓰지 못할 겁니다.”

확실히 악마는 포승줄에 꽁꽁 묶인 채로 기절해 있었다.

게다가 구속구에 적힌 룬 문자도 마력 구속이라는 것을 알아본 뒤에야,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엔 황금사자나 가이와 같은 제국의 최강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라면 그들이 먼저 나서줄 테지.

그래도 여전히 심장이 놀란 건 어쩔 수 없어서, 사람들은 겨우겨우 자리에 앉으면서도 마족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젊은 시절 대마전쟁을 실제로 겪었던 세대.

게다가 최근에 아자젤의 분란까지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쉽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한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블랙의 동공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 안 돼! 대체 어떻게…!’

그는 마족이 등장하자마자 그의 정체를 눈치 챈 상태였다.

휘하에 있는 부국장 아번. 그가 인장을 가동시켜 마족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감찰국이 악마와 결탁한 것만큼은 숨겨야 했다.

“흡!”

블랙은 쥐고 있던 펜을 재빨리 아번에게로 날렸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은밀하게.

쇄애애액-

하지만.

채앵!

어디선가 날아든 비수 탓에 암살은 미수로 끝나고 말았다.

‘젠장!’

블랙이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한 사내가 뻥 뚫린 천장에서 내려와 조용히 탁상에 올라섰다.

“너, 너는!”

“별 되지도 않는 수작을 부리는군.”

블랙을 보고 비웃음을 던진 사내는 나무탈을 쓰고 있었다.

네임리스.

그를 알아본 블랙의 손끝이 떨려왔다.

* * *

“저 사람, 설마!”

“마, 맞지 않아?”

“나무탈… 은밀한 기척… 맞아 그놈이야! 네임리스!”

“동부로 끌려간 거 아녔어? 왜 여기에…!”

나무탈의 암살자, 네임리스.

그를 알아본 귀족과 기자들은 가만히 인상을 굳히며 몸을 떨었다.

네임리스가 얼마나 지독하고 유명한 암살자인지 기억하고 있는 탓이었다.

막말로 그에게 걸리면 차라리 자살을 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

심지어, 과거엔 대놓고 4황자 크롬헬이 있는 곳에 들어와 그를 죽이려 한 적도 있었다.

황실의 사람조차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다니는 암살자이니 더욱더 신경 쓰일 수밖에.

하지만 다른 것보다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머릿속엔 하나의 의문만 남아 있었다.

절대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던 그가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심지어 마족을 제압한 채로.

그리고.

그 의문이 풀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군,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임리스가 엘릭의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엘릭은 아무렇지 않게 네임리스의 보고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모든 이들이 입을 쩍 벌렸다.

‘동부에 귀속되었다는 말이 단순한 헛소문이 아니었던 건가…!’

‘청사자와 적사자에 이어서 네임리스까지…. 대체 메르빙거의 전력은 이제 얼마나 되는 거지?’

‘야만족들도 휘하에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허! 말도 안 나오는군.’

사람들은 그제야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메르빙거를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몰락 가문이라고 여길 수 없다는 것을.

“이 자가 증인이자 참고인이었던 첸스를 죽인 범인입니다. 살해에 쓰인 범행도구는 이것입니다. 제대로 지켰어야 하는데…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네임리스가 한 손에 들려 있던 검을 공손히 건넸다.

이를 받아 든 엘릭은 볼 수 있었다. 검에 말라붙어 있는 누군가의 혈흔을.

“이 자의 정체는?”

“감찰 제1국.”

네임리스의 말은 아주 나지막했지만, 이상하게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의 귓가에 너무나 선명하게 박혔다.

나무탈 아래. 네임리스의 눈동자가 블랙에게로 향했다.

그는 분명히 블랙을 비웃고 있었다.

“부국장 아번입니다.”

“…!”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찬성공작!”

“1국 부국장이라니! 그럼 저기 계신 블랙 공의 수하란 말이 아니오!”

“지금 찬성공작의 말은 감찰국에 마족이 숨어있기라도 했단 말이오?”

이미 회의장은 처음 마족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쑥대밭이 되고 말았고.

“모, 모함입니다!”

블랙은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우리 1국에는 저런 작자가 없…!”

“이 자가 아번인지 아닌지는 조사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이 단검에 묻은 혈흔도 죽은 첸스의 것이 맞는지 감식반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테고.”

웅성웅성-

블랙은 속이 바짝 타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미 분위기는 모두 엘릭 쪽으로 넘어간 상태.

실제로 엘릭의 요청에 따라 탐문 수사가 들어가면 감찰국이 증인을 없애려 했을 뿐이 아니라, 마족과 결탁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만천하에 드러날 수가 있었다.

아니, 그러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저마다 블랙 쪽을 의심스럽게 보면서 무언가를 쑥덕대기 바빴다.

엘릭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눈치껏 알아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껏 엘릭이 혁명군 쪽에 붙었다는 얘기는 소리, 소문 없이 묻히고, 감찰국과 마족이 결탁했다는 소식만 더 파다하게 퍼질 테지.

‘잡아떼야 한다! 어떻게든!’

블랙은 버틸 생각이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감찰국 모두가 위험했다.

“메르빙거!”

블랙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엘릭을 노려봤다.

“어디서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 드는 거냐!”

“그게 무슨 말이지?”

“마족 하나를 어디서 잡아 와서는 억지를 쓴다고? 우리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그래?”

엘릭은 검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혈흔 탐식 스크롤로 이 칼에 묻은 혈흔과 참고인의 혈흔과 비교해보면 될 것 아냐?”

“거절한다! 네놈들이라면 필시 날조된 증거를 가지고 올 터! 믿을 수 없!.”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네임리스가 엘릭에게 말했다.

“주군. 범인이 감찰국에서 나왔으며 증인을 몰래 암살하는 것까지 녹화한 영상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온 적사자가 몰래 촬영한 것이었다.

네임리스가 품에서 영상구를 꺼내 재생을 시도했다.

그러자 드러나는 아번의 얼굴. 그는 분명히 첸스를 살해하고, 창문으로 도주를 시도하고 있었다.

화면은 곧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네임리스와 아번의 대치. 거기서 아번은 인장을 잇달아 발동시키며 마족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였다.

“….”

“….”

“….”

의원장이고 관객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씨익!

“이런데 어쩌지?”

엘릭의 비웃음에 블랙은 한순간 세상이 뱅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이, 이대로는…!“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궁지의 상황.

블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꽉 깨물었다.

도무지 지금 상황을 벗어날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크롬헬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

그러나 크롬헬 역시 꼴도 보기 싫다는 듯 홱 하고 돌아서 버린지 오래였으니.

옆에 있던 황금사자도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어하는 투였다.

그 순간.

그동안 최소한의 냉정함을 유지하던 블랙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