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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97화 (296/405)

2부 37화

감찰국

엘릭이 메피스토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블랙의 심문이 시작됐다.

그에게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감찰국장 블랙. 이번 휴일란의 학살극은 본인이 계획한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제가 이번에 벌인 일은 오직 4황자 님에 대한 저의 무책임한 충성 경쟁이 빚은 결과이며, 황금사자께서는 저의 간곡한 부탁을 억지로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청문회는 순조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의원들이 질문하면 블랙이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술술 밝히니 더 몰아붙이기도 애매했던 탓이다.

“이에, 저는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감찰국장이란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덧붙여진 말에 엘릭이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쪽이 준비한 질문에 반박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되면 기껏 설득해서 데려온 첸스의 활용도가 떨어지게 됐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 갑자기 블랙이 엘릭이 있는 쪽을 보며 웃었다.

싱긋!

“…?”

엘릭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 모습에 약간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 순간, 션의 시종인 카를이 강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심각한 표정을 한 그는 션에게 다가가 뭐라고 귓속말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션이 엘릭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그러곤 입술을 벙긋거렸다.

-조금 전에 첸스가 죽은 채로 발견됐단다. 제기랄.

“…!”

엘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노림수가 있었어.’

저쪽이 포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순순하게 인정한다 싶더라니.

결국 모종의 수를 부린 모양이었다.

문제는 대체 어떻게 첸스에게 접근했냐는 것이었다.

분명히 외부에서 발각되지 않도록 비밀리에 옮겼을 텐데….

내부에 눈이라도 심어둔 걸까?

“덧붙여 원고 측과 함께 있다는 참고인, 제6국의 부국장 첸스와 몇 가지 확인 절차를 가지고 싶은데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그런 엘릭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블랙이 엘릭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영락없는 조소.

마치 부를 수는 있겠냐는 투.

새카만 동공은 마치 너희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왜 그러시죠? 어차피 제 다음 순서는 참고인을 통한 증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블랙은 미소를 유지한 채 엘릭을 재촉했다.

“저 역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그런 거니 양해 해주시면 감사할…!”

벌컥!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강당의 문이 열렸다. 숨을 헐떡이며 경비병은 사색이 된 채로 들어와 소리쳤다.

“우, 원고 측 참고인이 사, 사망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모두 조용하세요!”

의원장이 의사봉을 세게 두들기며 목소릴 높였다.

그제야 내부 분위기가 겨우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럴수록 블랙의 조소는 더 짙어져만 갔다.

의원장이 소리 높여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자세히 설명하시오! 참고인이 죽다니? 그것도 이 성스러운 평의회 안에서? 설마 누가 그런 참혹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그렇… 다는 전언입니다. 외부 침입자에 의해 살해된 흔적이 있다고….”

“허! 이런 참담한 일이!”

의원장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상석에 앉은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

평의회는 제국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주요 회의 기구였다. 의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황제조차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신성불가침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건만.

그런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이것은 명백한 귀족 모독이자, 제국에 대한 무시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서로 간에 몇 가지 오해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이를 확인하고, 제 잘못을 참회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게 됐군요.”

블랙은 짐짓 안타까운 표정으로 과장된 표현을 보였다.

몇몇 의원들은 이 일에 그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으나,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이렇다 할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감찰국을 몰아붙일 수도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 증거는 영원토록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감찰국의 능력일지니.

블랙은 멀뚱히 앉아 있는 엘릭에게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느냐, 애송아? 이것이 바로 감찰국의 능력이다. 네놈 같은 햇병아리 따위가 어떻게 비벼볼 만한 곳이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곧 제국이고, 제국이 곧 우리일지니. 이미 사라졌어야 할 몰락 가문 따위가 함부로 고개를 치켜든단 말인가.’

엘릭 측에서 중요한 증인이었던 첸스가 죽었으니 이제 상황이 저쪽에 많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감찰국이 마족과 결탁했다는 걸 본 증인은 모두 사라진 셈. 주군인 크롬헬은 의심받을 여지조차 완전히 없어졌다.

물론, 이번 일로 자신은 옷을 완전히 벗어야겠지만.

뭐, 그게 어떻단 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자리 따위가 아니었다.

권력이 어디에 있고, 그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실권자가 누구냐일 뿐.

블랙은 이미 자신은 정계에서 은퇴한 것처럼 꾸미고, 배후에서 1국을 움직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다 크롬헬이 황좌에 앉고 난 뒤에는 시간도 한참 흘렀을 테니, 자신을 기억하는 이들도 드물 것이다.

그때 자연스럽게 돌아와 0국의 국장 자리에 앉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음지에서 제국 전역을 다스리는. 흑막의 왕이자, 제국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후후후.’

첸스가 죽은 이상 엘릭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증거가 부족해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거고.

이미 의원장을 비롯한 여러 재판장들도 감찰국에서 미리 내사해두었던 약점으로 인해 이쪽의 편을 들어주기로 한 상태.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

블랙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젠 마지막 승기를 거둘 때였다.

* * *

“…오늘도 이만큼이나 온 건가?”

“그렇습니다.”

청사자, 헤르만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쌓여있는 신문들을 바라봤다.

하나 같이 전부 엘릭이 첫 면이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들.

아니, 최근에 발간되는 신문이나 잡지들은 하나 같이 엘릭과 관련된 소식을 싣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문에 최근 헤르만이 지내고 있는 동부 지대의 공작성(公爵城)은 때 아닌 난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신문과 잡지들을, 시종들이 일일이 분류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헤르만이 거기까지 신경 쓰지는 않고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나쁜(?) 상사인 셈이었다.

헤르만은 혹여나 하는 생각에 바로 앞에 있던 신문 하나를 집어 들었다.

<메르빙거와 감찰국의 청문회. 과연 승자는?>

<메르빙거.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정의인가? 아니면 반란인가?>

<미래를 알 수 없는 황태자와 메르빙거의 밀월 관계!>

.

.

신문들 중에는 종종 크롬헬이나 황금사자와 관련된 내용도 보이긴 했지만, 마무리는 반드시 엘릭과 연관 지어 끝냈다.

“허참….”

헤르만은 신문을 내리며 혀를 찼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주군이자 사위인 엘릭의 소식이라 살펴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지만 내용들이 한결같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이제는 지루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럴 땐 유명한 사위를 두는 게 참 괴롭군.”

“그게 엘릭다운 게 아닐까요?”

헤르만이 한숨을 푹 내쉬자, 곁에 있던 이사벨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어머! 애가 벌써부터 자기 아빠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걸 알아듣나 봐요.”

“허…!”

싱글벙글 웃는 딸의 모습에 헤르만은 답답한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엘릭에게 야속한 생각이 든 탓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지금껏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그놈들도 요즘 안 보이고 있지.’

문득 적사자와 네임리스가 떠올랐다.

며칠 전에 편지 한 통을 받은 둘. 그들은 내용을 확인하더니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렸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는 가벼운 미소만 지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엘릭에게 무슨 부탁을 받은 게 확실한데.’

그게 아니고서야 속세의 일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싶어하는 그들이 나설 이유가 없었으니.

문제는 그들 두 사람이 제국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남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에게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 순간, 불안한 헤르만은 불안한 기분이 들어 허리를 쭈뼛 세우고 말았다.

‘이거 설마…?’

그는 여전히 산처럼 쌓인 신문들을 보며 생각했다.

‘…더 늘어나는 건 아니겠지?’

헤르만은 내심 자신의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랐다.

* * *

사사사삭-

누군가 평의회 건물 위를 유유히 지나고 있었다.

감찰 1국의 부국장, 아번이었다.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조용한 발걸음에 그 누구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감찰국 내에서도 간부 급에게만 전수되는 <밤고양이의 발걸음>.

이를 익힌 이들은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는 특징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블랙의 명을 받아 첸스를 처리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후후, 이거 너무 쉽군.’

그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어루만졌다. 옷깃 너머로 은은하게 비치는 살결에는 여러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모두 릴리스와의 거래를 통해 얻은 힘들.

처음엔 마족과 거래를 한다는 게 굉장히 찝찝했으나, 막상 힘을 사용하고 보니 그런 생각이 싹 가신지 오래였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은 물론,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다.

이번 임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은둔>의 인장이 효과가 좋았다.

첸스가 머무는 방에 몰래 들어가 죽이고 나올 때까지, 아무도 자신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옆 방에 있던 호위 병력들까지도.

‘이렇게 되면 드디어 내가 감찰국을 손에 쥐는 건가?’

아번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첸스를 성공적으로 죽이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블랙이 사라진 자리에 자신이 앉게 되었다.

물론, 블랙이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을 양반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결국 모든 권력의 중심은 크롬헬에게 있음이니.

눈 밖에서 멀어지면 권력에서도 멀어지는 법.

아번은 블랙을 완전히 밀어내고 자신이 크롬헬의 오른팔이 될 자신이 있었다.

“병신 같은 놈.”

아번은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준 첸스를 떠올리면서 한껏 조소를 던졌다.

아직도 죽기 직전의 첸스의 눈이 선했다.

말도 제대로 못 해 어버버거리다 목이 떨어지던 꼴이란.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최후였다.

“뭐, 덕분에 편하게 임무를 마치긴 했지만.”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그 순간이었다.

오소소!

아번의 갑작스런 소름에 허리를 쭈뼛 세웠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

[내가 봤을 땐 너희들이 더 병신 같은데. 어쩌지?]

‘누구…!’

본능적으로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은 아번이 빠르게 고갤 돌렸다.

하지만.

뻐어어억!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무릎이 날아와 아번의 턱에 꽂혔다.

그 탓에 아번의 머리는 돌렸던 방향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아, 안…!”

제대로 턱을 맞은 덕분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좀처럼 움직여지질 않았다.

‘대체 누구…!’

그리고 기절하기 직전.

아번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바로 나무탈이었다.

* * *

블랙이 침묵에 잠긴 주변을 쓱 훑어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직위를 내려놓기 전에. 먼저 양심선언을 하나 할까 합니다.”

갑작스런 말.

주변의 시선이 다시 블랙에게로 쏠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말씀드린 대롭니다. 제가 휴일란을 두고 계략을 꾸미긴 했지만, 그곳은 정말 토벌당해 마땅한 곳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망발이오!”

“그곳엔 무고한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블랙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엘릭 측에서 나오는 말들을 한 귀로 흘렸다.

의원장이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곤 블랙에게 물었다.

“그 증거는 있소?”

“있습니다.”

블랙이 뒤쪽으로 눈짓하자, 감찰국 요원들이 커다란 상자 하나와 서류뭉치를 가지고 왔다.

쿵!

요원들이 블랙의 앞에 상자를 놓았다.

그리고 요원들은 주변 의원들과 기자들에게 서류를 한 움큼씩 건네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잘 살펴 보십시오. 그게 바로 혁명군이 휴일란에서 준동하였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겨우 서류 하나만 가지곤 이를 입증할 수 없소!”

“물론 그래서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블랙의 손이 상자로 향했다. 그가 뚜껑을 열자 주변 사람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상자에 들어 있던 건 다름 아닌 혁명군의 간부, 푸른 눈 제프였으니까.

높은 현상금이 걸린 이였기에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를 몰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 범죄자는 황금사자 님께서 토벌한 장수입니다. 그런데!”

블랙이 엘릭을 훽 하고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찬성공작께서는 이를 막으려 드셨던 건지요?”

충격적인 말에 강당 내부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뭐? 혁명군을 지키려 했다고?”

“그럼 설마…!”

“잡아뗄 생각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미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증인들을 모두 확보해두었습니다. 이번 일을 조사하면서 저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주위를 쭉 훑어본 블랙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르빙거의 진의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해명해주시겠습니까?”

한 마디로 혁명군에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말.

그런데.

씰룩!

“…?”

가만히 엘릭을 노려보고 있던 블랙이 미간을 좁혔다.

어째서인지 엘릭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는 탓이었다.

그는 주변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거기서 블랙은 뭔가 불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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