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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96화 (295/405)

2부 36화

감찰국

휘황찬란한 이전 마차들과 다르게 온통 칠흑색으로 더해진 마차.

하지만 정중앙에 박힌 문양이 유독 눈에 띄었다.

포효하는 사자.

흑사자의 마차였다.

“화, 황자 전하시다!”

“여기까지 오시다니…!”

방금까지만 해도 짐승처럼 흥분해 달려들던 기자들이 알아서 움직여 길을 텄다.

아무리 그래도 황자에게 결례를 범할 순 없어 눈치껏 행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사이로 호위병들이 들어와 누구도 감히 넘어올 수 없도록 인의 장막을 형성했다.

잠시 뒤, 크롬헬이 조용히 마차에서 내렸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 정도 인파는 익숙한 덕분이었다.

어느 한 기자가 용기 내 질문을 던졌다.

“세기의 친구였다가 갑자기 4황자님의 저격수가 된 엘릭 메르빙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롬헬은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제게 있어 둘도 없을 소중한 친구입니다. 이번엔 사소한 오해가 있었을 뿐. 금방 풀릴 것입니다.”

질문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았던 마탑의 사람들과 달리, 친절히 답변해주는 크롬헬의 모습.

그러자 잠잠했던 이들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 마탑의 행보에 대해…!”

“감찰국의 실수를 어떻게…!”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어?”

“다른 사람이 있… 어?”

크롬헬의 마차에서 또 다른 인물이 내린 탓이었다.

그것도 말문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황금색 장발.

아름답게 반짝이는 푸른색 눈.

어찌나 미모가 뛰어난지 쉴 새 없이 터지던 셔터가 순간 멈추기까지 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알 수 있었다.

저 여인이 여태 소문으로만 들리던 황자비, ‘시로’라는 사실을.

지금껏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그녀를 보호하듯이 다른 한 사람이 내린 탓이었다.

“화, 황금사자!!”

마치 거대한 사자가 내려온 듯이 거대하게만 느껴진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오죽하면 황제보다 보기 힘들다는 황금사자였다.

그런 그가 앞에 있으니 취재진들의 분위기도 저절로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대서특필 감이야!”

“황금사자가 이곳에 오다니…!”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사진 찍어! 어서!”

기자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이.

크롬헬은 부드럽게 황자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자비가 가만히 거기다 손을 얹자, 크롬헬이 씩 웃으면서 황금사자를 돌아보았다.

“들어가시지요, 장인어른.”

“그러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황금사자는 묵묵히 크롬헬을 따라 걸었다.

“…방금 뭐?”

기자들이 멀어져 가는 크롬헬의 일행을 보며 벙 찐 표정을 지었다.

바삐 움직이던 그들의 손은 멈춘 지 오래였다.

“황금사자가 4황자 님의 장인이었다고…?”

크롬헬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로 인해 평의회 앞은 더욱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 * *

“쯧.”

3층 관저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션이 혀를 찼다.

그의 눈동자엔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을 상대하는 크롬헬이 맺혀 있었다.

“멍청한 제라이츠랑은 확실히 다르네. 언론을 즐길 줄을 알아.”

크롬헬은 감찰국이 벌인 작당 때문에 자칫 오물이 묻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아니, 그냥 여유로운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는 듯한….

그러면서도 드문드문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는 것이, 이번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려는 것이 보였다.

‘그 반면에….’

션의 눈이 엘릭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정복의 단추를 잔뜩 풀어 헤치고 있는 엘릭은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파에 반쯤 눕듯이 걸터앉아 눈을 감는 게 여간 헤퍼 보이는 게 아니었다.

“…”

또 관자놀이가 지끈거려 온다.

션은 검지로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대체 이번 청문회 어떻게 할 거야? 저쪽 표정들 보니까 절대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더군다나 감찰국 쪽에서 갑작스레 날짜를 정한 탓에 청문회를 제대로 준비할 틈이 없었다.

물론, 증인이 있는 이상 이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긴 하나, 그래도 상대는 황실 소속의 감찰국이었다.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만큼, 확실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엘릭은 불안해하는 션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음, 적당히? 어차피 감찰국을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뭐?”

엘릭의 말에 션의 눈이 커졌다.

감찰국을 상대로 하는 청문회에서 그들을 이길 생각이 아니면 대체 누굴 이긴단 말인가?

“그럼 청문회 요청은 왜 한 거야?”

“그건….”

엘릭이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짧게 문을 두드리더니 관저 안으로 들어왔다.

평의회 사람이었다.

“찬성공작 전하. 의원님들이 모두 오셨습니다. 이만 자리로 가시죠.”

“그러죠.”

엘릭은 귀찮은 듯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션과 함께 관저를 나왔다.

션은 한참 동안 그런 그를 묘한 눈길로 바라봐야 했다.

‘대체 또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아무리 자신의 친구라지만, 정말이지 이해가 잘 안 가는 종자였다.

* * *

청문회가 진행될 홀의 분위기는 굉장히 엄숙했다.

공기마저 무거워 숨을 쉬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찬성공작께서는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안내인은 엘릭에게 평의회에서도 고위 귀족들만 앉을 수 있는 첫째 줄의 좌석을 권했다. 작위가 공작인만큼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다.

엘릭은 고맙다고 인사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아 홀을 살폈다.

우측에는 사자공가와 감찰국 같은 크롬헬의 사람들이, 좌측에는 마탑과 메르빙거의 일파로 완전한 중립 혹은 4황자를 견제하는 일파가 앉아있었다.

그사이에선 묘한 신경전이 오고 가고 있었다.

“허! 학살이라니. 아무리 충성심을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나더라도 그렇지! 선이라는 걸 전혀 생각지도 않는 건가?”

좌측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혼잣말이었으나, 이 자리의 사람들 중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번에 크롬헬 측의 사람들 표정이 굳었다.

크롬헬의 옆에 앉아있던 황실파의 고위 귀족 한 명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 말을 받아쳤다.

“아무리 찬성공작이라고 할지라도, 감찰국은 황실 직속의 정보 기구입니다! 그들을 막아서고 일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체 황권을 뭐로 보는 겁니까!”

그러자 곧바로 마탑 측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학살을 막는 일임에도 말입니까?”

황실 측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네! 그럼에도 말입니다! 본인이 지엄한 황실의 권위 아래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면, 막아설 게 아니라 사태 파악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감찰국이 황권을 함부로 농단하는데 그게 어떻게 권위를 막는 일입니까!”

“농단이라니요! 지금 말씀 다 하셨습니까?”

“다 했다면! 뭐 어쩔 텐가!”

“이 작자가 어디서 망발을…!”

“생긴 건 쥐새끼 같이 생긴 게…!”

“뭐? 쥐? 야! 너 나이 몇 살이야?”

“나 먹을 만큼 먹었다, 왜! 나이 많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나!”

언쟁은 순식간에 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어 들어가 멱살을 쥐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

그렇게 장내의 공기가 날카롭게 벼려질 무렵.

탕! 탕!

“모두 정숙! 정숙하십시오! 계속 본 회의장을 시끄럽게 한다면, 강제 퇴거 조치를 하겠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의원장이 의사봉을 두들기면서 경고 조치를 한 뒤에야 과열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정됐다.

강당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의원장의 입이 열렸다.

“좋습니다. 그럼 청문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찰국 1국 국장 블랙은 공식 석상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저벅, 저벅-

그때, 대기하고 있던 블랙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왔다.

그 순간, 의원석 위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던 엘릭과 잠시간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의 순간.

메피스토의 입이 열렸다.

『끔찍한 혼종이로군.』

[혼종이요?]

『다양한 인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대충 보이는 것만 해도 은둔, 흑막, 쇄풍, 세 가지 있군.』

[…인장을?]

엘릭은 순간 놀라 메피스토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주위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엘릭을 쳐다봤다.

엘릭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놀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장 흡수는 원래 저희 가문만 되는 것 아니었어요?]

마(魔)를 먹으라.

마를 삼켜라.

마를 마시라.

이 세 가지야말로 고대부터 내려온 가문을 정의하는 가훈이 아니던가.

마의 힘을 흡수해서 힘으로 사용하는 건 오로지 메르빙거만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엘릭이 알고 있기로는 그랬다.

그런데 자신의 가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감찰국장이 인장을 갖고 있다?

마족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서야 가능할까 싶었다.

『흥!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이미 마족들은 이 대륙에서 진즉에 멸종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럼 뭡니까?]

『저것은 열등품이다.』

[열등품?]

『그래. 너희들이 가진 힘을 모방하고자 하였으나 그리 되지 못한 열등품. ‘진짜’가 되지 못했기에 혼종이 되고만 잡것.』

[…그렇군요.]

가만히 메피스토의 말을 되뇌던 엘릭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녀석, 릴림이군요?]

『그러하니라.』

메피스토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 * *

릴리스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표식인 ‘기묘’를 심어 꼭두각시로 삼곤 했다.

그리고 꼭두각시가 죽게 되면, 릴리스는 그가 생전에 갖고 있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일 그들 중에 원래부터 마족이었던 자가 있으면 어떻게 될 거 같나?』

메피스토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엘릭이 입을 열었다.

[릴리스가 그 마족의 인장을 흡수할 수 있군요.]

『그렇지. 그렇게 되면 흡수한 인장을 릴림에게 물려주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블랙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이 엘릭의 머릿속 한 편에 강하게 자릴 잡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마족이라면 황실이나 마탑에서 몰랐을 리가 없잖아요.]

두 장소 모두 온갖 강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런 강자들이 마족 하나를 몰라볼 리가.

릴리스가 어느 정도 힘이 있는 황실이야 그렇다 쳐도, 마탑에서 블랙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엘릭은 근처에 있는 가이를 슬쩍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보니 블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이의 주위에 있는 육망성들조차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대마전쟁이 끝난 지 고작 몇 십 년.

엘릭이 바라본 이들은 모두 대마전쟁에서 상당한 활약을 했던 이들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블랙의 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메피스토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무언가 아는 듯한 메피스토의 말투에 엘릭이 물었다.

[왜요? 뭐 알고 있죠?]

『알다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단순한 주종관계가 아니라 거래 관계라 그런 걸 거다.』

한 마디로 릴리스의 힘, 즉 ‘기묘’를 받지 않은 거라는 뜻이었다. 인장은 거래를 통해 받은 것이고.

『어차피 인장이야 쓰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지 않던가?』

[음. 그도 그렇네요.]

메피스토의 말에 엘릭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블랙의 정체를 몰랐던 건지.

거래의 내용까진 알 수 없으나, 하나의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감찰국은 완전히 릴리스에게 장악된 것이 아닌, 일종의 동맹관계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더 최악이야.’

엘릭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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