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4화
감찰국
촤르르르르!
어느덧 엘릭의 마차와 거리를 제법 좁힌 자객들이 갈고리를 던졌다.
철컥!
마차 위로 떨어진 갈고리가 단단히 고정됐다.
그러자마자 자객들은 연결된 사슬 위에 올라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자객들은 그 위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사사사삭!
순식간에 그들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이내 엘릭 앞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죽어라!”
자객들은 각자의 암기를 들고 엘릭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강체술.
맹호출현.
퍼버버벅-
“끄아아악!”
“커헉!”
곧바로 반격당하고 그만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엘릭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차에 걸린 갈고리 중 하나를 붙잡았다.
“【얼어붙어라】.”
쩌저저적-
그러자 엘릭이 잡은 곳에서부터 쇠사슬이 빠르게 얼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그 위에 올라타려던 자객이 황급히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냉기는 그를 끝까지 쫓아 발목을 붙잡았으니.
촤촤촤촥!
“끄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자객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냉기가 삽시간에 전신에 퍼지면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던 것이다.
와장창!
곧이어 바닥으로 떨어진 자객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
“…!”
그 모습을 본 나머지 적들이 황급히 사슬을 끊으면서 거리를 벌렸다. 근접전은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처저적!
그리곤 바로 창을 꺼내 엘릭을 향해 날렸다.
슈슈슈슉-
수많은 창들이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하나 같이 <폭발>과 <확산> 마법이 내장된 암살 아티팩트들.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창이 부서지면서 파편들이 목표 대상을 해치도록 되어 있었다.
“【감겨라】.”
물론, 그마저도 엘릭이 일으킨 와풍(渦風)에 휘감겨 도로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니, 오히려 엘릭은 파편들을 휘감고 있던 와풍을 유령성의 머리 위로 도로 돌려주었다.
“【쏟아져라】!”
손을 힘차게 아래로 내려치는 순간, 파편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된 상태로 유령성들을 휩쓸고 말았다.
속도, 내구도, 냉기까지 전부 더해지면서 파괴적인 살상력이 만들어졌다.
두두두두-
히힝! 히히히힝!
삽시간에 말들은 수십 개의 구멍이 숭숭 뚫린 넝마가 되어 쓰러지고, 자객들은 낙마한 채로 말발굽에 짓이기고 말았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냉기며 얼음 조각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붉은 핏물과 찢긴 살점들이 끔찍하기만 했다.
“…!”
“…!”
“…!”
유령성의 궤멸.
감찰국의 하위 기관이기에 앞서 음지에서는 꽤 대단한 악명을 가지고 있었던 유령성이었기에.
보는 이들에게 주는 충격은 아주 클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본 일행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엘릭은 이미 그들이 재단할 수 있는 수준의 인물이 아니라고.
초인(超人).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무언가였다.
* * *
“젠장! 철수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릭의 예상대로 유령성 자객들은 막대한 피해만 입은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황도에 다다른 것이다.
“…다행히 물러나네요.”
마차 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타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령성을 궤멸 직전까지 몰았다고 해도 아직까지 엘릭의 몸 상태는 완전하지 않았고, 계속 어디선가 적의 병력이 충원되다 보니 체력이 슬슬 바닥을 보였던 것이다.
“바로 저희 가문으로 가신다고요?”
그리고 엘릭은 목적지를 네레스타 가로 정했다.
“네. 가주님께 드릴 얘기가 있어서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분은…?”
타샤가 말끝을 흐리며 엘릭의 곁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곳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담담한 표정의 첸스가 앉아있었다.
“이 사람이 가주님께 소개해드릴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첸스는 겉모습과 달리 숭숭한 속마음을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다.
‘대체 내가 왜 그런 말을.’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감찰국 부국장인 자신이 황실을 배신할 생각을 하다니.
그렇다고 지금 말을 바꾸기엔,
끼유유?
끼유?
어째서인지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용들이 너무 신경 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실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하아! 될 대로 되라지.’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숨을 내쉬는 첸스를 보며 메피스토가 혀를 찼다.
『쯧쯧, 불쌍한지고. 하여간 메르빙거의 손바닥에 올라갔던 인간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농락당하는 신세였지. 본왕의 신세도 그러하고.』
[농락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실을 전한 거지.]
『그래서 유혹의 인장을 그딴 식으로 쓰나? 지독한 것.』
사실 단순한 설득만으로 황궁에 대한 충성 세뇌로 한평생을 산 첸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혹>이 더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녀석의 무의식에 깊게 가라앉아 있는 여러 감정들을 자극할 수 있으니.
살고자 하는 욕구.
황실에 대한 배신감.
이 두 가지 감정을 극대화한 것이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도록.
[뭐 어때요. 제가 틀린 말한 것도 아니고.]
그 말에 메피스토가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허, 뻔뻔하기까지. 릴리스의 힘을 가지더니 릴리스보다 더 한 놈이로고.』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 * *
엘릭과 일행들은 황도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레스타 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차의 문양을 확인한 호위병들이 곧바로 정문을 열어주었다.
“왔냐.”
마차에서 내리니 미리 연락받은 션이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는 엘릭을 저택으로 안내하며 물었다.
“야, 넌 어째 황도에 있는 꼴을 못 보냐. 마차 꼴은 또 왜 저래?”
“저거? 별거 아냐.”
손사래를 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엘릭의 모습에 션이 살짝 짜증을 냈다.
“별일 아니긴 무슨! 딱 봐도 뭔 일 터진 게 분명한데!”
“아, 소리 좀 그만 질러. 귀 아파.”
“이놈이 그래도…!”
“그리고 솔직히 내가 어디서 맞고 다닐 놈은 아니잖아?”
히죽 웃는 엘릭의 얄미운 모습을 보면서 션은 걱정스런 마음이 생겼다가도 팍 식어버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션은 슬쩍 고개를 돌려 엘릭이 타고 온 마차를 봤다.
네레스타의 것인 만큼 여러 보호 마법이 이중 삼중으로 걸려 있는 마차.
그런데도 저 지경이 됐다는 건 보통 일이 일어난 게 아닐 텐데.
‘누나도 뭔가 기력이 없어 보이고.’
결국 ‘소문’이 사실이었던 게 분명했다.
“황금사자와 겨뤘다는 게 그럼 사실…!”
“어차피 졌는데 그게 뭐 대단하다고.”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다른 것도 아니고, 뭐? ‘황금사자’랑 붙어놓고 그게 뭐 대단하냐고?”
들리는 소문만 해도 보통 일을 벌인 게 아닌데 저렇게 태연하듯 행동하다니.
“하여간 좀 그만 숨기고 자세히 말 좀 해봐. 허구헌 날 촌구석에 처박혀 있다는 그 꼰대가 왜 갑자기 거기서 나타났…!”
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끼유?
엘릭의 풍성한 로브 자락 안에서 놀고 있떤 새끼 용들이 엘릭의 어깨 위로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뭐, 뭐야, 이거…? 드, 드래곤?”
션이 화들짝 놀란 눈이 되고 말았다.
새끼 용들은 엘릭에게 애교를 부리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얘들? 귀엽지?”
진작에 고대 용종이 ‘부화’했다는 말은 타샤가 보낸 편지를 통해 알고 있긴 했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보고 있으니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고대 용종은 새끼인 해츨링 때부터 고고할 것이라던 학계의 정설을 제대로 박살 내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엘릭에게만 저런 모습을 보이던지.
하지만 엘릭은 그런 대단한 상황을 맞으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새끼 용들의 턱을 긁어주며 놀아주고 있었다.
그러다 션의 표정을 본 엘릭이 씨익 웃었다.
“어째 네 누나랑 표정이 똑같다?”
“아니, 이건 우리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하아! 아니다. 말을 말자.”
대화할수록 답답함만 더 늘어난다.
션은 결국 입을 다물고 있기로 마음 먹었다.
* * *
“왔는가?”
저택 안.
가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실내가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전하시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다만. 역시 인간 치고는 아주 쓸만해.』
메피스토의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만족스럽다는 듯이 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요?]
『그래. 이전에 휴일란에서 봤던 놈만큼은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이 정도면 본왕에게 덤벼도 기분 좋게 상대해 줄 수 있을 정도는 되느니라.』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 그만큼 가이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처음에 봤을 때도 호승심을 느꼈었지.’
그런데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
보통 저만한 경지에 오른 이들이 새로운 성장을 위해서 얼마나 뼈 깎는 노력을 하는지 잘 알기에 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현재 그런 상태였으니까.
정체기.
엘릭은 더 큰 성장을 바라고 있었다.
“듣기로 오는 동안 꽤 힘들었었다고 들었다. 많이 지쳐있을 테니 우선 식사부터 하도록 하지.”
식당에는 이미 갖가지 만찬들이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이를 모두 기분 좋게 마치고 후식이 나올 때쯤.
“휴일란에서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모양이더군.”
가이는 에프터 티를 가볍게 즐기다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면서 엘릭을 바라봤다.
“자사자를 꺾고, 감찰국도 한바탕 들쑤시고 다녔다고 들었네만.”
엘릭은 거기서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감찰국 일까지 알고 있다고?
휴일란에서의 일이야 워낙 규모가 커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다.
마찬가지로 황금사자의 등장도 워낙에 증거가 커서 숨기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감찰국은 달랐다.
아주 비밀리에 격전이 벌어졌고, 추적도 은밀하게 이뤄졌으니.
‘대단하네.’
엘릭은 네레스타의 정보망을, 나아가 세계 각지에 뻗어있는 마탑의 눈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들을 부리는 가이 네레스탸야 말로 엄청난 수완가였다.
어떤 면에서는 적으로 돌렸다간 황금사자보다도 더 골치가 아플 수 있는 상대인 것이다.
물론, 친구 아버지와 드잡이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네. 맞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들을 벌인 건지 궁금하네만. 혹시 자네의 속내를 말해줄 수 있겠나?”
이렇게 묻는 것도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엘릭이 벌인 일은 전부 황실에 반하는 행동이었으니.
자칫 역모죄를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일들.
하지만 엘릭은 자신의 행동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너무 크지 않나?”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엘릭이 말끝을 흐리면서 조심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도와주십쇼.”
“푸웁!”
그 말에 옆에 있던 션이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었다.
“야, 무, 뭐라고?”
그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 말만 들으면 같이 황실을 상대로 역모 작당을 꾸미자는 것이었으니.
“아, 죄송합니다.”
그러다 션은 뒤늦게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가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엘릭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 영양가 없는 말을 한 것이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반면에.
가이는 침착했다.
아니, 오히려 턱을 괴면서 슬며시 웃기까지 했다.
“괜찮다. 그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지?”
“아시겠지만 얼마 전, 황실의 휴일란 토벌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크롬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벌어진 정치 공작이었으니.
“거기다 이번 일에는 마족도 결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족과?”
처음으로 가이의 표정이 변했다.
마족이란 단어가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대마전쟁을 겪었던 전장의 주역.
당연히 마족을 증오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자네가 조금 전에 꺼낸 말, 아주 위험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나?”
한 층 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
심장이 떨릴 정도로 대단한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엘릭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연합니다.”
“증거는?”
“증인이 있습니다.”
엘릭이 웃는 모습에 가이도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패인가 보군.”
“네.”
“그게 누구지?”
“감찰국의 부국장을 잡았습니다.”
“…!”
여태 평온하던 가이의 미간이 처음으로 꿈틀거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