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2화
의문
메피스토가 아가리를 쩌억 벌려 릴리스의 본체를 깨물었다.
콰지직!
이빨이 닿은 자리에선 엄청난 양의 마기가 핏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스파크 때문에 주변에 있던 잔재와 영혼이 마구 찢겨나갔다.
하지만 릴리스도 만만치 않았다.
사아아악!
물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이면서 메피스토의 목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뿌드드드득.
메피스토의 목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치악력도 치악력이었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따로 있었다.
마독 침투.
릴리스의 독니에서부터 새어 나온 마독이 메피스토의 체내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사실 릴리스의 진정한 장기는 최면과 세뇌가 아니었다.
단순히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최소한 백치로 만들 정도로 지독한 독성에 있었으니.
이렇게 물리는 것만으로도 메피스토에게는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피스토는 릴리스를 한 번 잡은 손길을 절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찢어버릴 듯이 머리를 거칠게 흔들어댔다.
콰아아아앙!
그러다 릴리스의 머리가 거세게 지면에 처박혔다.
독니가 빠진 자리. 검은 피가 철철 흘러넘쳤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한 손에 마기를 잔뜩 응집시키며 거대한 창을 만들어냈으니.
보석룡 샤이나크를 제거한 전적도 있던 바로 그 마창(魔槍).
메피스토는 그것을 붙잡아 그대로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콰콰콰!
퍼어어엉!
강한 마기를 견디지 못한 릴리스의 한쪽 머리가 터져 나갔다.
크아아아아-!
「감히! 감히이이이!」
릴리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시끄럽군. 그 남은 주둥이도 마저 찢어주마.』
메피스토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다른 머리 쪽으로 마창을 거칠게 휘둘렀다.
릴리스는 별안간 눈을 반짝이며 이를 피하고 도리어 마창을 크게 휘감았으니.
쫙 벌어진 아가리가 단숨에 메피스토를 잡아먹을 듯이 굴었다.
쿵! 쿵! 쿵! 쿵!
두 대마왕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거친 폭발로 인해 내면세계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이 거칠게 흔들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고 물리는 싸움.
그러다.
쩌저저저적!
내면 한쪽 구석에서부터 유리창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잔뜩 퍼졌다.
쿠르르르릉-
그 위로 덮쳐오는 마기 폭발에 균열은 더 크게 벌어졌다.
이대로 격전이 계속 이어져 나갔다가는 정말 내면세계가 붕괴될 것 같았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튕겨나는 것이라면 다행일 테지만, 그게 아니라 이곳에 갇히기라도 한다면….
엘릭은 갖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거, 아자젤과의 전투랑은 비교도 안 되잖아…!’
물론, 당시와는 여러모로 상황이 많이 다르긴 했다.
아자젤과 달리 릴리스는 천 년 간 회복에만 전념한 상태. 메피스토도 그때보다 힘을 더 많이 회복하지 않았나. 그러니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아자젤 때와는 다르게, 당장 여기서 엘릭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건 엘릭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무언가 도울 게 없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엘릭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처음에 봤던 의식의 잔재들과 허공을 떠돌아다니던 영혼들.
“…그러고 보니까, 릴리스가 힘을 어떻게 회복하더라?”
자신의 기묘를 심어 숙주를 만들고, 숙주가 죽으면 그 숙주의 마력을 흡수하는 식.
그리고 눈앞의 영혼이나 잔재들은 릴리스의 숙주였던 자들.
“오?”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씨이익!
엘릭의 입가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이때, 릴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드는 섬뜩함에 허리를 쭈뼛 세웠다.
“【베어라】.”
언령이 발동된 순간, 엘릭을 중심으로 칼날 같은 얼음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촤촤촤촤-
삽시간에 여러 개의 영혼이 단말마를 남기고 사라졌다.
순간, 릴리스가 몸을 움찔하고 떨면서 이쪽을 바라봤다. 메피스토 때문에 입었던 상처의 복구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빙고.
엘릭은 그런 생각에 더 크게 웃었고.
「메르빙거어어어어!」
릴리스는 약점이 들켰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 * *
“푸핫! 설마가 악마 잡는다더니 진짜네?”
엘릭은 가설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지체하지 않았다.
어차피 릴리스는 메피스토를 상대하는 것만 해도 정신없는 상황. 자신을 노리긴 힘들 게 분명했다.
“【찢고】, 【또 찢어라】. 【부수고】, 【또 부숴라】.”
엘릭은 내면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공격 마법들을 난사했다.
퍼퍼퍼펑-
촤촤촤촤!
끼아아아악!
곳곳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허공을 방황하던 영혼들은 찢기고, 잔재들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네까짓 놈이 감히…!」
저것들은 모두 릴리스의 부활을 위해 사용되는 마기의 원천.
그것이 삽시간에 바닥 날 위기에 처하자, 릴리스는 잔뜩 노호를 터뜨렸다.
하지만.
『감히 본왕을 상대로 한 눈을 파는 것이냐? 오만하군!』
그러기 무섭게 메피스토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 릴리스의 몸통을 물어뜯었다.
촤아악!
「꺄아아아악!」
“오, 우리 메피가 처음으로 도움이 다 되네.”
엘릭은 메피스토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주곤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휘휘휘휘-!
방해꾼이 사라져 엘릭은 더욱 편하게 잔재와 영혼을 없앨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실시간으로 릴리스의 힘이 빠르게 깎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간을 압박하던 그녀의 기세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것이다.
‘역시, 이것들이 릴리스에게 힘을 주고 있었어.’
자신의 예상이 맞자, 엘릭은 더욱 적극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시조 비전
폭멸천지탄
퍼퍼퍼퍼펑-
“완전 장관이구만.”
허공을 가득 수놓는 불꽃들이 꼭 축제 때 보는 폭죽놀이 같았다.
릴리스는 필사적으로 메피스토에게서 빠져나와 비명을 질렀다.
「메르빙거! 메르빙거어어어! 기어코 네놈들이 또 내 일을 방해하는구나!」
그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메피스토와 싸우다 지나, 엘릭 때문에 힘을 잃고 지나 똑같을 것이다.
결국 릴리스가 이 거대한 메피스토보다는 엘릭이 만만할 거란 생각에, 한 놈이라도 죽이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가리를 쩍 벌리며 엘릭에게 돌진했다.
카아아악!
하지만.
『본왕의 말이 말 같지 않나 보군.』
메피스토가 손을 높이 들었다. 높이 치켜든 마창의 끝으로 마기가 잔뜩 밀집했다.
『넌 오늘 바로 여기서 죽을 것이니라.』
「아, 안…!」
『이럴 때마다 저 무례하기 짝이 없는 메르빙거의 아이가 유행어처럼 지껄이는 말이 있지.』
콰아아아아-!
『돼.』
메피스토의 창이 정확히 릴리스의 정수리를 뚫고 지나가며 굉음을 터뜨렸다.
콰직-
퍼어어어엉!
콰콰콰콰콰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수십 수백 개의 파문을 그리면서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균열이 삽시간에 내면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조각들이 하나둘씩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이 힘을 줘 창을 더욱더 깊숙하게 아래로 꽂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릴리스의 숨통을 끊겠단 심산.
그녀의 힘을 모조리 흡수하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끼아아아아-
츠츠츠츠!
부서진 릴리스의 몸뚱이에서부터 새어 나온 망령들이며 잔재들이 귀곡성을 내뱉으면서 메피스토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마기도 있었다.
릴리스가 지난 천 년 동안 십시일반 모으고 또 모아서 쌓은 마정(魔精)이.
『강해진다. 본왕은 더 강해져 이제 완전한 부활을 이룰 것이니라!』
메피스토의 두 눈이 완전한 광기로 물들었다.
무려 천 년이었다. 천 년!
쥐 죽은 듯이 살며 완전한 부활을 꿈꾸던 것이.
그리고 드디어 그 소망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으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눈을 보면서. 부서진 머리 때문에 흐릿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릴리스는 생각했다. 아니, 깨달을 수 있었다.
메피스토의 진짜 목적을.
‘원죄…! 메피스토펠레스가 바라는 건… 원죄의 완전한 부활…!’
원죄(原罪)는 마신이 남긴 4대 힘 중 하나일지니.
메피스토는 부활을 넘어 인장이 주는 제약, 그 너머를 보려 하고 있었다. 릴리스의 인장인 <난교>를 합쳐서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마신(魔神).
마왕과 마족. 그 원류가 되는 존재로 말이다.
그리고.
메피스토는 거기까지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부활은커녕, 소멸할 수도 있었다.
「이이익! 제기라아아알!」
릴리스는 가물어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으면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
놈들을 막을 수 없다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의 목숨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개의 머리.
따라서 그녀가 ‘가진’ 내면세계도 총 두 개였다.
콰아아아아!
릴리스의 몸에서 이전과 다른 마기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살겠다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메피스토가 뭔가를 느끼고 손을 대려 했지만, 이미 그보다 먼저 릴리스가 시도를 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마치 종이가 찢어지듯이. 내면세계가 반으로 찢어졌다.
터어엉!
어떻게 저항할 새도 없이, 엘릭과 메피스토가 현실 밖으로 완전히 튕겨 나왔다.
“…흡!”
갑작스러운 변화에 숨을 크게 들이쉰 엘릭의 시선이 카니예에게로 향했다.
“끄르르르….”
카니예는 눈이 뒤집혀 진 채 거품을 물고 발작하듯 몸을 떨고 있었다.
엘리과 메피스토가 내면 세게에서 워낙 난리를 피운 탓에 정신적으로 무리가 온 것이었다.
파스스스-
그러다 어느새 몸이 완전히 잘게 부서져 사라졌다.
『젠장! 본왕에게 힘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메피스토는 바닥을 콱콱 밟으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릴리스가 도망친 것이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냥 보내준 건 아니잖아요.”
엘릭이 슬쩍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이전에 흡수한 유혹의 인장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내면세계가 부서지며 상당량의 릴리스의 힘을 고스란히 흡수한 덕분이었다.
메피스토의 원죄의 인장 또한 마찬가지.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밝기로 빛이 발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메피스토는 영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100을 얻을 수 있는 걸 50밖에 못 얻었는데 뭐가 그리 좋은 게냐?』
메피스토도 릴리스가 내면세계를 두 개나 갖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동안 다른 대마왕들에게도 숨기고 있던 비장의 한 수였던 셈.
그 탓에 절반밖에 흡수하지 못한 인장으로는 원죄의 인장을 재각성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히지만 엘릭은 그리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본거지는 알 수 있었잖아요. 거기서 잡으면 그만이죠, 뭐.”
『그것도 그렇지만…. 후우.』
릴리스의 힘을 흡수하며 그녀의 기억을 엿본 덕분이었다.
“설마 황도에, 그것도 황궁 한복판에 놈들이 숨어 있을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요?”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