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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90화 (289/405)

2부 30화

의문

마차가 멈췄을 때부터.

사실 엘릭은 마족의 등장을 눈치 챈 상태였다.

-메피. 이거 릴리스의 마력이죠?

-흥! 그래도 한 번 느껴봤다고 바로 알아보는구나.

그것도 릴리스의 추종자들인 릴림들.

내뿜는 마력이 모르드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기운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엘릭은 마족들이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일 거였으면 진작 죽였을 테니까.’

하물며 저들은 아직 엘릭과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상태.

굳이 최면까지 걸어가며 엘릭의 일행을 생포하려는 건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 놈들의 목적이 뭔지 알 수는 없으나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엘릭까지 전부 생포한 후에 자신들의 본거지로 향할 거라는 것.

-그래서 어쩔 셈이냐? 순순히 잡혀주기라도 하려고?

메피스토의 말에 엘릭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좋은데요?

그러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그건 또 왜 감아?

-아픈 척이라도 해야 최면에 걸린 척 하기가 쉽죠. 실제로 덜 나은 것도 사실이고.

혼자 감는 거라 제대로 묶이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상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마침내 카니예가 마차를 열었고, 엘릭은 순순히 최면에 걸리는 척 행동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엘릭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용용이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이 망친 거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끼유유.

끼유유유!

새끼 용들을 신경 쓰지도 않는 눈치였다.

여전히 사색이 된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카니예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기만 할 뿐.

『본왕이 늘 말하지 않았더냐. 자고로 용이란 족속들은 신뢰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고, 늘 자신들의 재미로 훼방 놓기 일쑤라… 미주알고주알. 어쩌고저쩌고.』

메피스토가 일장 연설을 늘여 놓는 동안, 엘릭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에휴. 어쩌겠냐. 이미 일은 일어나버렸는데.’

한숨을 푹 내쉰 엘릭의 시선이 카니예에게 향했다.

흠칫!

용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니예가 더 거칠게 몸을 떨었다.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 너희 본거지를 알려줄 생각 없지?”

“…제가 미치면 아마 가르쳐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그럴 거 같았어.”

콰앙!

그 말을 끝으로 엘릭이 카니예에게 달려들었다.

강한 냉기가 해일처럼 다가왔다.

‘황금사자와 싸우면서 크게 다쳤던 게 아니었나!’

카니예는 식겁하고 말았다. 조사했던 것과 다르게 엘릭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너무 강렬한 탓이었다.

퍼어어엉!

옆으로 데구르르 구르는 카니예의 자리로 얼음 송곳이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금세 먼지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금껏 보여준 기품 넘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진 상태.

엘릭은 그런 카니예를 보며 조소를 띠었다.

“그래도 괜찮냐? 너 원래 그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시끄… 럽다!”

지금까지 존대만 하던 녀석이 반말을 하다니. 어지간히 조급한 모양이었다.

엘릭은 카니예를 제압할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으나, 그래도 놈들의 본거지는 알아내고 죽여야 하니.

그렇게 엘릭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그때였다.

“【휘몰아…! ”

화르르르륵!

옆에서 네레스타 마법사들의 공격이 날아왔다.

“이크!”

엘릭은 서둘러 마법을 취소하고 몸을 뒤로 뺐다.

쾅, 콰쾅!

고개를 돌리니 카니예의 부하들이 최면에 걸린 마법사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쟤들이 있었지?’

뒤늦게 네레스타의 마법사들이 최면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엘릭이 공격을 멈췄다.

그러자 카니예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격을 멈추고 순순히 따라와라, 엘릭 메르빙거! 네놈도 저들이 죽는 걸 원치 않겠지?”

목소리에 힘이 넘치는 게, 엘릭을 잡았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카니예의 예상과 달리 엘릭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뭐래. 휼.”

가볍게 카니예를 무시한 엘릭이 휼을 불렀다. 그러자 입맛을 다시는 소리와 함께 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도와줄까?

“배고프지? 싹 다 먹어치워.”

최면? 그게 뭔 대수란 말인가.

어차피 시전자만 죽여버리면 그만일진대.

하물며 저쪽은 마족들이다.

하루라도 빨리 마왕이 되고자 하는 휼에게는 맛난 먹잇감이나 다름없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란 말이지. 크하하하!

그림자가 꿀렁거리면서 거대한 짐승이 나타나 마족들을 차례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카니예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림자 위로 풀쩍 튀어나와 마족들을 잡아먹는 맹수라니!

어떻게 잡아보려 해도, 먹이를 낚아채고는 순식간에 다시 그림자 안으로 숨어버리는 탓에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콰드득! 콰득!

삽시간에 주변은 끔직한 소리로 가득 차고 말았다.

릴림의 마족들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야, 야! 어, 어디 가!”

“도, 도망쳐…!”

“도망쳐야 해!”

사색이 된 마족들이 무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휼이 아니었다.

파아앗!

순식간에 도망치는 릴림들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휼의 사념은 아가리를 쩌억 벌리면서 도망자의 목부터 낚아챘다.

그야말로 사냥감을 단번에 낚아채는 맹수가 따로 없었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손쓸 새도 없이 빠르게 줄어가는 부하들.

카니예는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는 상태에 몸을 덜덜 떨어야만 했다.

그사이. 하나비와 네레스타 마법사들이 최면에서 풀리고 있었다.

“타샤 님!”

하나비는 최면에서 풀려 어리둥절해 하다가, 뒤늦게 괴로워하는 타샤를 발견하곤 황급히 그쪽으로 뛰어갔다.

“타샤 님! 괜찮으세요?”

“하나비…!”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카니예의 주먹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에겐 낭패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자신들이 모시는 릴리스는 애초에 전투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대마왕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유혹하고 세뇌를 걸어 그 속에서 숨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대마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크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고, 다른 마족들과 달리 인간 세계에 꽤 깊숙하게 융화된 채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뒤집어서 말했을 때에는 유혹과 세뇌가 풀렸을 경우, 그 누구보다 쉽게 박멸될 수 있단 뜻이 되기도 했다.

물론, 마족이니만큼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엘릭이나 타샤 같은 전문 마법사들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이대로라면 릴리스 님의 문책을 절대 피할 수 없다…!’

그는 릴림에서 실패한 집사가 어떤 ‘처분’을 받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해야만…!

“【묶어라】.”

하지만 카니예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갑자기 발밑에 깔린 빙판에서부터 얼음 사슬이 잇달아 튀어나오면서 그를 칭칭 감아버렸다.

“크윽…!”

“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아니란다. 어딜 가려고?”

“아, 안 돼!”

카니예가 발버둥칠 때마다 얼음 사슬은 더욱더 빳빳해질 뿐이었다.

쿵!

결국 카니예의 한쪽 무릎이 지면을 찍었다.

피부 위로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느새 체내로 파고든 빙독이 녀석을 꽁꽁 얼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녀석은 얼음 때문에 제대로 말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알만 휘릭휘릭 굴리고 있었다.

저벅!

엘릭이 어느새 사악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조금 전에는 재미있어 죽을 것 같았지? 왜? 사람들을 마음대로 갖고 노니까, 어째 자기가 신이라도 된 줄 알았어?”

우! 우우우!

카니예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은 눈치였다.

어떻게 엘릭이 이렇게 빠른 회복이 가능한 건지 묻고 싶은 얼굴.

하지만 엘릭은 녀석의 생각을 읽고도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뻣뻣한 주먹을 풀기 위해 뱅글뱅글 돌리기만 할 뿐.

‘신아의 문장 덕분이라고 어떻게 말하겠어? 안 그래?’

원리는 모른다.

그저 아르세우스가 남겨주고 육체와 영혼을 단단하게 해준다던 이 문장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저 육체를 한계로 내몰면 내몰수록 이 문장도 같이 발전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지레짐작하는 것뿐이었다.

세계수의 특징이 바로 ‘생명’이었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엘릭은 기절해 있는 동안 타샤나 다른 마법사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일 수 있었고.

어느새 마법을 발동해도 전혀 이상이 없는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거기다 마력의 수용량도 대폭 늘었어. 이제 마정석도 거의 9할 가까이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뜻하지 않게 얻게 된 엄청난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한 마력량을 다룬다고 해도, 아직 경지가 깊어진 건 아니었기에 더 많은 진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이제 이것만으로도 대륙에서 그와 비견할 만한 인물은 몇 명 되지 않으리라.

“왜 대답을 안 하냐. 어쩔 수 없네. 제대로 대답할 때까지 좀 맞자.”

엘릭은 카니예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기 무섭게 그의 턱에다 주먹을 세게 꽂았다.

뻐어어억!

“커헉!”

카니예의 입을 막고 있던 얼음이 깨지면서 고통에 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본거지 위치만 말해. 그럼 내가 아프게 덜 때린다.”

“그, 그, 그게…!”

“응? 말하기 싫다고? 에이. 그럼 어쩔 수 없네. 더 맞아야지.”

“자, 잠…!”

카니예는 이제야 겨우 턱 관절이 자유로워진 탓에 다급하게 뭐라 말하려 했지만.

퍼버버벅.

뻐억! 뻐어어억!

엘릭은 쉴 새 없이 카니예를 두들겨 팼다.

* * *

“끄으으으… 차, 차라리 죽여…!”

엘릭이 때리기를 멈췄을 때, 카니예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릴림답게 꽤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던 카니예였건만.

지금은 불어 터진 만두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말할 생각 없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릴림으로서… 릴리스 님께 반하는 행동을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아…!”

그런 카니예의 모습에 엘릭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예상은 했어.”

“…?”

엘릭의 말에 카니예는 ‘그럼 대체 왜 때린 거냐?’하는 얼굴로 바라봤다.

“그냥.”

“…?”

“그냥이라고.”

“….”

카니예는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눈앞의 마법사가 미쳤다는 것을.

『아무리 봐도 이쪽이 마족 같은데…』

그 모습을 보며 메피스토는 혀를 찼다.

“예? 뭐라고요, 메피?”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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