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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89화 (288/405)

2부 29화

의문

타샤는 하나비에게 턱짓을 했다.

“하나비 나가서 확인해 봐.”

“예, 타샤 님.”

하나비는 익숙한 듯 곧바로 마차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너희들은 뭐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들의 등장에 하나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을 점거한 건 감찰국이 아닌 마족들이었으니까.

그것도 아예 보라는 듯이 뿔과 날개가 돋은 본체를 유지한 채로, 마기까지 풀풀 날리고 있었다.

하나비가 당장이라도 싸울 듯 기운을 끌어올리자, 한 마족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그는 대뜸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소인은 릴리스 님을 옆에서 모시는 일등 집사 카니예라고 합니다.”

자신을 카니예라고 소개한 마족.

그는 릴리스를 따르는 마족인 릴림이었다.

“마족이 맞군. 지금 당장 죽여주지.”

“아아,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하나비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허공에다 마법진을 떠올렸다. 휴일란 사건을 겪고 난 뒤, 그녀는 유달리 마족에게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카니예는 여전히 여유롭게 손사래를 치며 말할 뿐이었다.

“잠시만 손길을 거둬주십시오. 저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릴리스 님의 전언을 전달하러 온 것입니다.”

“뭐?”

타샤가 밖으로 나온 건 그때였다.

“무슨 일 있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단 것을 눈치채고 나타난 것이다.

타샤를 발견한 카니예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마침 잘 됐군요. 삼신성 중 한 분이신 타샤 네레스타께서 나와주시다니. 얘기가 더 빨리 진행될 거 같습니다.”

그러나 타샤는 상대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얼굴을 와락 구겼다.

“마족 따위와 할 얘기는 없을 거 같은데?”

“먼저.”

그러거나 말거나.

카니예가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먼저 휴일란에 닥친 변고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바입니다. 허나, 이는 한편으로는 저희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흉의 일족 중 일부는 릴리스에게 의탁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카니예는 흉의 일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자신들의 탓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피해에 따른 합당한 보상과 함께 한 가지 제안을 하는 바입니다.”

“제안?”

타샤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녀석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짜증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건의 관계자인 엘릭의 의견이 더 중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슬쩍 안쪽을 곁눈질 했고, 엘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카니예 쪽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현재 엘릭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상태.

아무래도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예. 안에 찬성공작께서 계시지요?”

“엘릭 님은 왜 찾는 거지?”

화르르륵.

카니예가 엘릭을 언급하자 타샤의 팔에 화염이 타올랐다.

여차하면 불태워버리겠다는 뜻.

“저런,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분명 말씀드렸는데….”

카니예는 양 손바닥을 보이며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그제야 타샤의 기운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에 카니예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듣기론 흉의 일족을 포함한 휴일란의 다른 일족들에게 영토의 일부를 내어주셨다죠?”

그리고 이어진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희 릴림들도 똑같이 받아달라는 제안입니다.”

이는 곧 메르빙거의 영토에 마족들이 살도록 해달라는 말이었으니까.

그 말을, 타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엘릭이 타이홀에게 같은 제안을 한 건 불과 몇 시간 전이었으니.

그런데 눈앞의 마족들이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지.

흉의 일족과 릴리스와의 관계를 모르는 타샤였기에 모를 만한 일이기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몰라도 뭐?

그보다 더 먼저 짚고 넘어갈 만한 사실이 있었다.

타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족들을 메르빙거의 영토에 들여 보내달라고?”

“맞습니다. 마차에 계신 찬성공작 님께 전달해주시겠습니까?”

“하!”

가문 대대로 마(魔)를 상대하던 메르빙거 가의 영토에 들어가게 해달라?

타샤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답변을 기다리…!”

카니예가 허리를 살짝 숙이고 뒤로 물러나려는 찰나였다.

화르르륵!

푸른 불덩이가 카니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타샤는 잔뜩 분노한 표정이었다.

“엿이나 먹지 그래?”

“저런… 소인은 싸울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린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죠.”

카니예가 양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마기가 파문을 그리면서 소용돌이를 그렸다.

푸른 불덩이가 부서지면서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릴리스 님을 모시는 영광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진심이라는 듯이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푹 숙이는 카니예.

“뭐라는 거야.”

하지만 타샤는 어느새 불사조의 청염을 온몸에 휘감은 채로 카니예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퍼퍼퍼펑!

청염과 마기가 도중에 격돌하면서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카니예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건 그렇고 제 ‘진명’은 알고 덤비시는 겁니까?”

“뭐?”

“대마전쟁을 겪지 않으신 세대라 그런가, 아무리 삼신성이라 하시어도 너무 안일하시군요.”

순간, 카니예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그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이 향기롭게 바뀌었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따라갈 것만 같은 달콤한 향.

카니예의 입고리가 올라갔다.

“현혹(眩惑). 그것이 바로 제 진명이랍니다.”

그의 등에 박혀 있는 인장은 뱅글뱅글 도는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니예를 따라온 릴림들 또한 같은 인장을 갖고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타, 타샤… 님…!”

타샤는 녀석의 눈을 계속 마주치고 있으면 위험할 것 같다는 사실에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뒤에서 괴로워하는 하나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나비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비!”

그녀는 양손으로 스스로를 끌어안으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제어하고 있었다.

덜덜덜….

몸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가득했다.

“타샤… 님…!”

타샤는 그제야 카니예의 능력이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최면! 정신계 마법이야!’

정신을 직접 조종하려 드는 마법은 마탑 내에도 몇 개 되지 않는다. 단순히 금술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만큼 인간의 의식에 관여하는 행위 자체가 아주 힘들고 어려운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족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기현상(奇現象)에서 비롯되는 불가사의(不可思議)적인 존재들.

당연히 정신 조작에 특화된 녀석들도 적잖게 있었다.

그렇기에 대마전쟁 때에도 그런 놈들로 인해 유독 피해가 컸다고 들었는데…!

실수였다.

마족을 상대해본 경험이 아주 적었기에 발생하고 만 실수.

하나비는 이에 최대한 저항하려는 듯했으나, 이내 초점이 사라지며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완전히 최면에 빠졌다는 증거였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사아아-

주위의 공기가 가라앉으며 타샤의 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죄송하지만, 저희의 능력은 한 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어서 말입니다.”

타샤는 하나비뿐 아니라, 네레스타 가문의 모든 마법사들이 멍하니 있는 것을 봐야만 했다.

“너…!”

타샤가 격노하며 이를 악물었다. 욕지기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당장 그녀의 정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압박감을 견뎌내는 것만 해도 힘든 상태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여러분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동료인 흉의 일족을 따라 메르빙거 님의 영지로 같이 들어가길 바랄 뿐이랍니다. 그러니 잠시만 포로로 잡혀주시면 됩니다.”

으득.

타사가 이를 악물었다.

“잠깐 잠들었다가 깨면 모든 게 끝나 계실 겁니다.”

우웅.

카니예의 보라색 눈이 요요하게 빛났다. 그가 타샤의 턱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안… 치워?”

화르르륵!

타샤가 신경질적으로 청염을 뽑아올리자, 카니예가 뒷걸음질을 쳤다.

“크윽!”

“가뜩이나 요즘 들어 짜증나 죽겠는데… 부하들까지 전부 통째로 불살라주겠어!”

타샤의 손끝에서 피어난 청염이 불사조의 형상을 띠면서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엄청난 화력 앞에 카니예를 비롯한 릴림의 마족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사라졌다.

“하나비!”

순간, 타샤는 정신을 압박하던 미지의 기운이 사라지자 다급하게 하나비와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하나비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그녀가 다급하게 받았다.

“하나비! 괜찮은 거지? 어서 일어나!”

“타샤 님… 제가…!”

하나비가 서서히 최면에서 풀리는 것이 보였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타샤는 그제야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래. 난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고. 천천히 말해봐. 왜?”

“제가…!”

하나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비로 보이시나요?”

“…!”

섬뜩하기 그지없는 말.

순간, 타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 다급하게 하나비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하나비의 두 눈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카니예의 두 눈과 똑같은 색깔로.

우우우웅-

“…제기… 랄…!”

짙은 마기가 타샤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몸 구석구석 퍼지는 마기.

어째서인지 마기는 몸을 노곤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제프에 이어 이번에도…!’

한낱 마족들에게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다니.

타샤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꼴이 너무 비참하기만 했던 것이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들만 겪는 걸까.

“그럼 얌전히 기다려주십시오.”

어느새 나타난 카니예가 타샤의 등을 두어 번 두들겨주고는 천천히 마차로 향했다.

벌컥!

마차의 문을 열자 그곳엔 그가 그토록 찾던 엘릭이 앉아 있었다.

이미 릴림에서 예상했던 대로, 엘릭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아마 여태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일 테지.

카니예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반갑습니다. 엘릭 님. 얘기는 다 들으셨겠죠? 저는 릴리스 님의 일등 집사 카니예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의 두 눈이 다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 * *

우우우웅-

카니예는 엘릭이 무슨 일을 벌리기 전에 서둘러 최면을 걸었다.

그의 몸에서 나온 마기가 엘릭에게 스며들었다.

이전보다 더 농도가 진한 마기.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툭!

얼마 안 있어 엘릭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면서 한쪽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최면 마법이 통한 것이었다.

‘후후. 메르빙거도 별거 없군.’

그간 들어오던 활약도 있고, 겨울 현자의 영향으로 항마력이 대단해 최면이 힘들지 않을까 여겼더니.

‘나야 편해지니 좋지만.’

듣기로는 아자젤 쪽은 엘릭 때문에 몰락 직전까지 내몰렸다고 들었건만.

‘멍청한 것들.’

카니예는 과연 대마왕의 권속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은 놈들에게 한껏 비웃음을 던지면서 엘릭에게로 손을 뻗었다.

“자, 그럼 어떻게 요리해볼까?”

우선 엘릭을 릴리스 님에게 가져다 바쳐야 할 것이다. 메르빙거 특유의 마법 체계는 릴림에서도 연구 대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분석하여 파훼법을 완성하는 순간, 더 이상 이 땅에 릴리스 님과 릴림을 건드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그런 생각에 자신만만하게 웃는데.

끼유유!

엘릭의 등 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카니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릭의 뒤를 확인하려는 그때,

끼유!

끼유유!

갑자기 엘릭 등에서 용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어억! 요요요, 용?”

갑작스러운 용들의 등장에 카니예는 사색이 되며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용이 무엇이던가?

마족에게만큼은 원수, 아니,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메르빙거와 함께 누구보다 마족을 많이 죽인 존재 중 하나였으니까.

오죽하면 그들을 겪은 마족들 모두가 아직도 ‘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떨까!

“부, 분명 멸종됐을 텐데!!”

게다가 카니예가 알기로 용들은 분명 멸종했었다. 대마왕 메피스토의 창에 보석룡이 최후를 맞이하면서.

그런데 대체 이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용들은 그런 카니예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브레스를 쏟아냈다.

화르르륵!

쾅, 콰콰쾅!

레드의 입에선 불이, 블랙의 입에선 독이, 그리고 골드의 입에선 빛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골드가 뿜고 있는 빛은 카니예의 몸이 타들어 갈 정도로 지독했다.

치이이익-

“히, 히익!”

카니예는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숨결 속에서 걸음아 나 살려라, 부리나케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놀랄 만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면에 걸린 줄만 알았던 엘릭이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짜증이 팍팍 나는 얼굴을 하며 툴툴대고 있었다.

“아, 망했네. 너희들 때문에 저것들 소굴에 못 들어가게 생겼잖아.”

하지만 용들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끼유?

끼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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