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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83화 (282/405)

2부 23화

사자(獅子)

‘크롬헬의 결혼 상대가 황금사자의 딸이었어?’

딸을 위해서라는 황금사자의 말.

그리고 예정된 크롬헬의 결혼식.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모든 게 이해됐다.

왜 평소엔 황실의 말을 듣지도 않던 황금사자가 직접 여기까지 온 건지도.

이렇게 되면 황금사자를 설득할 방법도 없었다.

‘미칠 노릇이네.’

엘릭이 침음하는 사이, 처음으로 황금사자가 움직였다.

* * *

‘역시. 죽이기 너무 아까워.’

황금사자는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바로 나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실력 때문이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아직 어린 거 같은데 말이야.’

끽해봐야 이십 대.

많이 잡아봐야 삼십 대 초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음 가면의 사내가 보여준 실력은 마탑은 물론, 사자공가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근접 전투도 나쁘지 않고.’

자신이 든 ‘사자의 첫 번째 발톱’을 이렇게 흔들어 댔던 사람이 최근에 있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방금 전에 보여준 악마라든가, 아니면 신성력과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라던가.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던 것도 같은데.’

황금사자는 얼추 동부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더 자세히 생각나지 않아 생각하기를 멈췄다.

애당초 그는 외부 일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잡아서 물어보면 될 일이니.’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으로 봐서 순순히 따라올 거 같지 않으니, 정체는 잡아서 천천히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황금사자가 발을 떼는 순간.

콰아아아아!

‘호오?’

엘릭이 엄청난 기운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더 싸울 힘이 남아있었나?’

<런치 컨트롤 - 2단계>

가뜩이나 몸에 막대한 무리를 주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더 같은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그러자 마력회로가 타 들어갈 듯이 날뛰고 시야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치까지 능력을 끌어올린 상태라 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흡…!”

엘릭은 덜덜 떨려오는 몸을 간신히 억누르려 중심을 잡았다.

「미쳤나 보군!」

「거기서 더 하면…!」

곧바로 나하트람과 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엘릭은 전혀 개의치 않고 신성력 끌어올렸다.

콰드드드득.

엘릭이 서 있는 지반이 부서지고 그의 머리카락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듯, 주변 일대의 물리 법칙이 흔들리면서 돌조각 따위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이라도 최대한 끌어야 해!’

황금사자와 직접 붙어본 바로.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 그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소한 시간을 끌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조금이라도 더 도망칠 수 있겠지.’

파지지지직-!

엘릭은 끌어올린 신성력을 창에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앙!

엘릭이 폭발적인 속도로 황금사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 엘릭의 모습을 보며 황금사자가 감탄을 내뱉었다.

“거기서 더 보여줄 게 있다니. 음! 확실히 그냥 죽이기엔 아까워. 하지만.”

황금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덤빌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지 못해서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엘릭이 창을 내질렀다.

후웅!

황금사자는 고개만 살짝 움직여 공격을 피한 뒤 주먹을 뻗었다.

“…!”

콰아아앙!

엘릭이 반응할 틈도 없었다.

무언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 엘릭은 땅에 처박히고 있었다.

동시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마법도, 신력도 전부 단번에 바닥을 보였다.

“커헉!”

끼유유유유!

용용이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그때였다.

엘릭의 복수라도 하려는지, 새끼 용들은 브레스를 뿜으며 황금사자에게 덤벼 들고 있었다.

“이젠 용까지? 하하!”

드래곤 피어의 영향권에 들어왔음에도, 황금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금 간지럽다는 투.

“마침 딸아이의 혼수 선물로 뭘 가져가면 좋을까 했더니. 괜찮은 게 걸렸군.”

황금사자가 새끼 용들을 향해 손을 뻗자, 막강한 기압에 새끼 용들이 일제히 눈을 뒤집으며 추락했다.

“제길…!”

“가만히 있어라.”

이를 악물면서 일어나려는 엘릭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황금사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려던 그때였다.

쩌적!

마력이 전부 바닥난 탓에 엘릭이 쓰고 있던 가면이 우스스 부서져 내렸다.

“음?”

순간, 황금사자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처음으로 미간을 좁히며 당황스럽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너…!”

엘릭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 황금사자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금발… 녹안… 설마, 메르빙거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응.

“그렇…!”

엘릭이 그렇다고 맞받아치려는 순간이었다.

쿵!

갑자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

전신의 피가 빠르게 돌았다. 시야가 점차 흐릿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표하는 그때.

화아악!

시야가 반전되며 순식간에 내면세계가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미아부터 다미르까지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나?”

“괜찮을 리가! 그 정도로 힘을 끌어다 썼는데. 미친 새끼. 아무리 오토 한과 닮았다지만…! 닮을 걸 닮아라. 어떻게 거기서 그딴 짓을…!”

“다들 나와 줘.”

한 마디씩 하는 다미르와 나하트람의 사이로 미아가 비집고 들어왔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해.”

미아는 엘릭의 맥을 짚어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원래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던 그녀도, 여태 엘릭이 보인 무책임한 모습에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그녀가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죄송합니다.”

엘릭은 자신의 맥을 짚어보는 미아를 보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다미르와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는 나하트람을 차마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잠시 뒤, 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냐.”

후유증은 엄청나겠지만.

엘릭은 미아가 덧붙이지 않은 말을 알 것 같았다.

아마 족히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년을 정양에만 신경 써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저는 왜 이리로 부르신 겁니까?”

내면세계가 외부 세계와는 시간 흐름이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는 일.

한 시가 촉박한 이 상황에서 신경이 딴 곳에 팔려 있다간, 정말 큰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하물며 황금사자 같은 괴물을 상대하고 있음에야.

“가만히 놔뒀으면 필시 죽었을 거다.”

“일단 지금은 후퇴해라.”

미아 대신 다미르와 나하트람이 꺼낸 말에 엘릭은 잠시 침묵했다.

그도 아는 것이었다.

황금사자와 자신의 실력의 격차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하지만 엘릭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순 없어요.”

“뭐?”

“제가 여기서 물러나면 휴일란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지잖아요.”

다미르가 팔짱을 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들을 위해 그대의 목숨을 내놓을 생각인 거냐?”

“그렇게까지는 힘들겠지만….”

엘릭이 말끝을 흐리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조부님께서 지키시던 것을 지키고 싶어요.”

엘릭이 말을 마치자, 가신들의 눈이 동시에 맞았다.

‘역시 메르빙거는 메르빙거인가.’

‘한 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먼 과거. 자신들이 모시던 오토 한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장난기가 많은 것처럼 보여도, 실은 누구보다 속마음이 깊고 진지했던 사람.

그 또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었다.

엘릭은 목숨까지 걸 생각은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말만 저렇게 할 뿐.

그래야 할 상황이 온다면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설 거라는 것을.

황금사자와의 전투만 봐도 그랬다.

엘릭은 몸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힘을 끌어와 황금사자를 상대하려 했다.

그게 설사 자신의 목숨에 영향을 끼친다 해도.

미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엘릭에게 말했다.

“따라와.”

“…예?”

“따라오라고.”

미아의 말에 엘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전 밖에…!”

“해결책이. 있어. 그러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엘릭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자신이 알지 못했던 다른 안배라도 있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거죠?”

“심연.”

그렇게만 말하며 미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자세히는 말해주지 못한다는 듯이.

* * *

“으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습니까?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타샤는 휴일란의 초입에서 멍한 표정으로 휴일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부를 재촉해 서둘러 왔건만.

그래도 이런 건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마을 전체가 불에 타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한 채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끔찍한 풍경에 타샤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만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제 딸아이가… 제 딸이 저기에 갇혔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인이 불에 타 다 무너져가는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있었다.

타샤의 장기는 불 속성. 그녀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화르르륵!

타샤는 손짓 한 번으로 집을 태우고 있던 불을 하늘 위로 날려 버리고, 무너지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으아앙! 엄마!”

얼마 가지 않아 불에 그슬린 여자아이가 방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걱정 마렴.”

타샤는 무사히 아이를 구한 뒤, 어머니에게 아이를 안겨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인은 연신 고개를 숙이곤, 서둘러 다른 사람들을 따라 대피했다.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타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갑갑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 때였다.

스릉!

날붙이의 소리와 함께 단검 한 자루가 그녀의 목에 겨눠졌다.

대체 언제 뒤를 잡힌 걸까. 아무리 급박한 순간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순식간에 타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에 서 있는 자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뭐지?”

“마법을 부리는 걸 봐서, 제국 측 사람으로 보이는데. 맞나?”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

타샤는 손끝에다 마력을 응집시키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럼.”

목소리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죽어라.”

혁명군의 암살자가 타샤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으려는 그때였다.

“아가씨, 숙이세요!”

다른 쪽에서 들린 목소리. 타샤가 재빨리 몸을 아래로 숙였다.

그리고 날아든 불덩이.

콰아아앙!

암살자가 뒤로 튕겨나는 게 보였다.

“잘했어, 하나비!”

타샤는 간만에 도움이 된 비서에게 칭찬을 날리면서 마법을 발동시켰다.

손끝에서부터 일어난 푸른 불꽃이 삽시간에 거대한 새의 형상을 갖췄다.

그녀에게 삼신성이라는 명예를 쥐어준 화염계 정령의 왕.

피요오오-!

타샤는 푸른 불꽃을 잔뜩 휘감은 채 아직 숨통이 붙어있는 암살자에게 마법을 겨누었다.

“…마법 실력이 제법이로군.”

암살자는 몸에 붙으려는 불길을 가볍게 끄면서 차갑게 웃었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얼굴.

얼마나 많은 전장을 헤치고 나온 건지 상처로 가득한 얼굴은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었다.

그 순간, 타샤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상대가 누군지 단번에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제국이 공적(公敵)으로 점지한 수배자들 중에서도 최상단에 위치한 인물 중 하나.

“…‘푸른 눈’의 제프.”

자유혁명군.

제국에서는 ‘반란군’이라 부르는 이들 중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는 군단장의 등장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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