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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72화 (271/405)

2부 12화

흉의 일족

쐐애액-

검은 그림자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판자촌 위를 빠르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비상사태다! 이 소식은 최대한 빨리 국장님께 전달 드려야 해!’

지금 황급히 휴일란을 벗어나려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감찰국 제6국의 부국장 첸스였다.

감찰국의 부국장씩이나 되는 자가 휴일란에 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현재 감찰국은 0국과 1국을 제외한 모든 부서가 크롬헬을 황태자로 옹립시키는 데 의중을 모은 상태.

물론 몇몇 부서들은 다른 황자와 황녀들에게 따로 조금씩 줄을 대고 있기도 했지만.

결국 현재 크롬헬이 가장 유력했기 때문에 감찰 6국도 그에게 줄을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현재 6국은 흉의 일족 토벌을 계획하고 있었다.

‘제길,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이런 줄 알았으면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었는데!’

제국의 윗선에서 흉의 일족의 숨겨진 수장이 누구인지 밝혀내라고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즈음.

오랫동안 황실의 지원자였던 트랑이 사실 흉의 일족이라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솔직히 감찰 6국 내부에서도 말이 되냐는 소리가 나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국장인 그가 온 것이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해 있는 와중에 트랑의 은신처를 확인했고, 그 속에서 엘릭 메르빙거와 접촉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

그러니 반드시 감찰국에 알려야만 했다.

하지만 첸스는 얼마 달리지 못하고 멈춰 서야만 했다.

콰쾅!

마력의 움직임을 느끼고 피한다고 피했지만, 바로 눈앞에 멈춰있는 얼음송곳.

파앗-

황급히 뒤로 물러선 첸스의 은신이 풀렸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탁!

첸스를 거의 꿰뚫을 뻔한 송곳 위로 엘릭이 조용히 팔짱을 낀 채 착지했다.

“하여간, 이놈의 쥐새끼들은 참 잘도 도망친단 말이야?”

습격자가 누군지 확인한 첸스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날 놓아주시오, 찬성공작. 자세한 것은 임무 상 말씀드릴 수 없으나, 지금 공작 각하께서는 위험 분자와….”

“예비 반란자들과 접촉을 하고 있으니 행동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엘릭이 먼저 선수 치듯 말을 꺼내자, 첸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설마…!”

“어디까지 알고 있냐고? 글쎄. 자세한 건 모르겠고, 그냥 어디서 크롬헬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서 여기저기 두들기고 다니고 있다는 것 정도? 너희들, 감찰국이지?”

첸스는 기겁을 했는지 눈알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감찰국이라는 것을 들켰다는 것보다, 감찰국에서 아주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엘릭이 알고 있다는 것은 큰일이었으니까.

첸스는 언젠가 1국장 트라이탄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 감찰 4국이 죄다 모가지가 날아간 이유를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제라이츠를 지지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야.

-그럼…?

-모든 건 바로 찬성공작, 엘릭 메르빙거 때문이지.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첸스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반드시 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하지만 엘릭은 전혀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일단 나도 사정이 있어서 여기 있는 거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거든? 그러니까 좀 잡혀 주라.”

팔짱을 끼고 있는 엘릭의 뒤편으로 얼음송곳 수백 개가 빼곡하게 생성되었다.

“아, 참고로.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고.”

엘릭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얼음송곳을 발출시켰다.

파바바박!

따다다당-

첸스가 이를 악물면서 검을 뽑아 얼음송곳을 하나하나 쳐냈다.

감찰국의 특성상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을 뿐, 첸스는 소드 마스터라고 자칭할만한 실력자였으니까.

‘제아무리 메르빙거라도 내가 마음먹고 도망간다면 잡지 못할 터!’

첸스가 스멀스멀 뒷걸음질을 치면서 빠져나갈 길목을 물색하자, 엘릭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하여간.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안다니까.”

엘릭이 입을 연 순간 기회를 포착한 첸스가 위로 튀어 올랐다.

“【쏟아져라】.”

엘릭의 진언과 동시에 얼음송곳이 한순간 수십 배로 불어나면서 첸스를 뒤덮었다.

따다당!

첸스가 오러 블레이드를 쏟아내며 튕겨내려 하지만, 돌풍을 동반한 송곳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도리어 부서진 얼음 조각들이 피부에 달라붙으면서 동상을 일으키고, 가루는 숨을 쉴 때마다 호흡기로 들어가 내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크윽!”

뒤늦게 첸스가 호흡을 중단했지만 이미 진탕된 속에서 피가 울컥하고 튀어나왔다.

깊은 내상에 마력 운용이 잘 되지 않았는지, 오러 블레이드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흐려졌다.

“【얼어붙어라】.”

엘릭은 첸스가 힘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보고 한쪽 발을 빙판과 같이 얼려버렸다.

“이제 도망은 못 치겠고.”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첸스가 체념한 듯 검을 역수로 잡았다.

“힘의 격차가 이렇게 날 줄이야….”

희망이 없다고 느낀 그는 얼어붙은 다리를 자르더라도 어떻게든 도망갈 생각이었다.

“왜? 그거 자르면 진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한껏 비웃는 목소리.

첸스는 이를 악물면서 아래로 검을 내려쳤다.

‘이거나 써볼까?’

검이 다리를 자르기 직전.

엘릭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자라나라】.”

순간, 옷깃에 가려졌던 신아의 인장이 화려한 빛을 토해냈다. 첸스가 딛고 있던 땅이 꿈틀거렸다.

“미, 미쳤…!”

어느 정도 움직임이 멈추자 땅이 갈라지며 튀어나오는 나무 넝쿨.

첸스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빙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나무를 다루는 마법이라니. 아무리 메르빙거라고 해도 이렇게 속성 변환이 자유로운 마법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사이에 또 성장했다니…!’

피하고 싶어도 몸이 마음처럼 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미 내상을 적잖게 입은 데다가, 뼛속까지 한기가 침투한 덕분에 몸이 꿈쩍도 않았던 것이다.

결국.

질질질….

엘릭이 손에 잡힌 넝쿨을 잡아당기자, 첸스가 팔다리가 죄다 묶인 채로 끌려왔다.

입에는 재갈 대용으로 나뭇잎까지 물려 있는 상태였다.

“자, 이쪽은 이만하면 된 것 같고.”

엘릭은 손을 탈탈 털면서 장난기 섞인 얼굴로 씩 웃었다.

첸스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읍읍! 읍읍읍!”

“아저씨, 가만히 계세요. 더 자꾸 신경 쓰이게 하면 개목걸이처럼 묶어서 아예 네 발로 걸어 다니게 합니다?”

“으으으읍!”

『이 꼴을 보아하니 네 취향도 참 알 만하구나.』

[제가 뭘요?]

『몰라 묻느냐? 재갈에다 매듭법도 꼭…. 게다가 네 발? 하여간 모솔들이 성벽도 변태적이라더니. 쯧!』

[누가 모솔이라는 겁니까?]

『누구긴 누구… 너, 설마?』

메피스토는 충격 받은 얼굴로 엘릭을 돌아봤고.

엘릭은 어느새 기세등등한 얼굴이 되어 콧대를 잔뜩 세우고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흐. 다 그런 수가 있죠.]

『평생 여자 손도 못 잡아봤던 놈이…!』

[원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도 먼저 올라가는 법이죠. 그것도 모릅니까?]

엘릭이 메피스토와 농담 따먹기를 하던 그때.

‘어? 뭐 좀 이상한데.’

엘릭은 갑자기 조용해진 첸스가 이상하다 싶어 얼굴을 살폈다.

그 순간.

파직!

온몸이 터질 듯 붉어진 첸스가 사지를 속박한 넝쿨을 터트렸다.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

얼굴 가득히 핏대가 섰다.

“…뭐야, 설마 역혈대법?”

“흐. 흐흐흐. 이것까지 알고 있는 거냐? 그럼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고 있겠군!”

역혈대법(逆血大法).

감찰국 내에서 부국장 이상 급에게만 전해지는 비술이었다.

사용하면 평소의 몇 배의 힘을 내지만, 그만큼 생명력을 대폭 깎아내기에 정말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비술.

첸스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내건 것이다.

파아앗-

녀석이 화살처럼 이쪽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진짜 그냥 제압만 하려고 했었는데. 별의별 짓을 다하네! 【묶어라】!”

엘릭은 다시금 첸스를 속박하려고 했지만.

쿵! 쿵! 쿵!

이미 몸이 철벽처럼 단단해진 녀석은 얼음과 나무를 모조리 쓸어내며 엘릭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저희와 함께 해주셔야겠습니다!”

첸스가 오러로 뒤덮인 손을 이쪽으로 뻗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잠시 기절시키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엘릭이 마법사의 특징상 근접전에는 매우 취약할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다 손끝이 엘릭에게 다다르려는 순간.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렇게 접근을 시도하면 피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텐데…!

히죽.

‘웃어?’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딴에는 잔머리를 굴린 것 같지만, 좀 미안하네?”

첸스가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엘릭은 근접전에서도 아주 뛰어나다는 것.

그동안 그의 활약이 동부 변경 지대에만 국한되어 있어 미처 감찰국에는 보고되지 못해서 생긴 판단 착오였다.

[나하트람.]

「그 말만 기다렸다고!」

엘릭은 나하트람을 빙의 시키면서 찔러오는 검을 오른손으로 슬쩍 밀어내고, 도로 간격을 바짝 좁히면서 왼손바닥으로 가슴팍을 후려쳤다.

그야말로 신속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퍼어엉-

“쿨럭!”

첸스가 피를 토하면서 크게 튕겨 나고.

파라라락!

동시에 땅에서 다시 자라난 넝쿨이 녀석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거기다 넝쿨 위로 딱딱한 나무껍질이 일어나면서 첸스를 그 안에다 가둬버리기까지 했다.

이것은 단순한 구속구가 아니었다.

역혈대법처럼 두 번 다시 마나를 뽑아낼 수 없게 아예 마력 봉쇄(魔力封鎖)를 가한 것이다.

『쯧. 정말 양심도 없구만.』

[뭐, 그래도 효과만 확실하면 그만이잖아요?]

엘릭은 가볍게 손바닥을 털면서 히죽 웃었다.

사라락-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이 유독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배달 왔습니다.”

엘릭은 넝쿨에 꽁꽁 묶여 기절한 첸스를 트랑 앞에다가 던졌다.

“이렇게 벌써…?”

트랑과 모르드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감찰국의 요원을 이렇게 쉽게 발견하는 거로도 모자라, 금방 생포까지 해버리다니.

두 사람은 엘릭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를 감시할 정도라면 감찰국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일 텐데….”

“아, 부국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의 모임인 감찰국의 부국장을 누구 집 개 이름 부르듯 하는 엘릭의 태도에 트랑은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어쩐지 우스던이 생각났다.

“오, 아직 따뜻하네.”

아까 트랑이 내어준 차가 식지도 않았는지 여전히 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호로록-

“확실히 향이 다르네요. 가볍게 몸을 움직여서 그런가. 맛까지 좋네.”

모르드는 먼 동방에서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던 어느 장수의 일화가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 일단 그럼 심문하기 앞서서.”

엘릭이 마시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순간, 트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 같은데 어디 짐작되는 곳은 있습니까?”

“…각별히 주의한다고 했지만, 짚이는 바가 없습니다그려.”

“가신들 중에는 없습니까? 행수들이라던가요.”

“그건….”

트랑은 내부에 간자가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숙였다.

그때, 대뜸 모르드가 끼어들었다.

“한 명 있습니다.”

“모르드!”

그리고 트랑이 화들짝 놀라며 모르드를 막아섰다.

“왜 그러십니까? 엘릭 님에게 줄을 대기로 했으면 숨기는 거 없이 제대로 말씀을 드려야죠!”

조금 흥분한 목소리의 모르드는 어딘지 모르게 얼굴이 잔뜩 불쾌해 보였다.

‘이것들이 또 뭔가 숨기네…. 응?’

엘릭은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모르드와 트랑을 번갈아 보았다.

그때 젠이 소리쳤다.

“우리 아빠는 나쁜 사람 아냐! 전부 너희들이 배신자라서 그런 거라고!”

엘릭은 그제야 대충 상황이 짐작 되었다.

“이 꼬맹이 아빠랑 관련이 있나 보네요?”

“나 꼬맹이 아니거든!”

“키 작으면 꼬맹이지, 무슨.”

“꼬맹이 아니라고!”

“끄믕이 으느르그~”

『대체 누가 꼬맹이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군.』

한심할 정도로 유치한 꼬맹이와의 말다툼에 메피스토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트랑이 뭔가를 다짐한 듯 말했다.

“우선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저희가 겪고 있는 일에 관해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트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엘릭을 어디론가 안내했다.

끼이익-

그리곤 응접실 한쪽 책장의 책을 하나 뽑으니 벽이 돌아가며 숨겨진 비밀 공간이 드러났다.

“어라, 여긴?”

엘릭은 열리는 틈 사이를 들여다보고는 크게 놀랐다.

굉장히 낯이 익은 내부 전경.

‘동백 신의 기억에서 봤던 궁전과 똑같잖아.’

겨울 바람이 쌀쌀하게 불던 겨울 궁전.

거기서 보았던 정경.

그때의 모습과 똑같은 내부가 완전히 드러나자, 트랑이 굉장히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선 앞서서 저에 대해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일족을 이끄는 16이맘 중 한 명이자, 당대 파로스의 제사장인 트랑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일족은 성씨를 쓰지 않습니다.”

“이맘? 파로스?”

처음 듣는 표현.

엘릭이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트랑이 싱긋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렇게 설명을 드리면 모르시겠군요. 이맘은 대스승이라는 뜻이고….”

엘릭은 트랑이 말을 마치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동백의 신이신 분을 한때 모셨던 얼음과 서리의 백성들을 파로스라고 불렀습니다.”

“…!”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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