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267화 (266/405)

2부 7화

3류 각본

용의 둥지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여관의 어느 방 안.

타샤는 하나비가 가져온 보고서를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논문이며 책, 심지어 필요하다면 소설까지 포함되어있는 보고.

사람 키는 훌쩍 넘을 법한 활자의 탑이 이루어져 있었다.

“와… 이게 뭐라고?”

타샤는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비의 말을 잘못들을 게 아닐까 싶어서 다시 한번 되물었다.

하나비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 하루 동안 엘릭 님이 새로 집필한 자료들입니다.”

“뭐? 그니까, 원래 있던 자료들을 정리만 했다는 거지?”

타샤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저 정도 양이면 최소 3일은 걸릴 만한 것들인데?’

하지만 하나비가 헛웃음을 지으며 던진 말은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아닙니다. 직접 하나하나 분석하셔서 새롭게 정리하고 집필하신 자료에요.”

“…!”

타샤는 하나비의 말을 듣고서 충격 받았다.

그녀는 곧장 엘릭의 자료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이거…. 정확도나 깊이가 거의 논문 수준인데? 그런 걸 정리가 아니라 집필? 그것도 단 하루 만에?”

“저나 마도학자들도 모두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타샤는 질린 얼굴이 되고 말았다.

“진짜 저런 사람이 여태 어떻게….”

타샤는 엘릭이 지금껏 마나 절맥증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을 제외하고서라도, 엘릭이 가진 재능이나 지식 수준은 이미 상상을 초월했다.

우스던 아카데미의 웬만한 교수들조차도 가볍게 찜 쪄 먹을 수준.

그런데도 여태 묻혀 있었다고?

“저희들 모두 신기하게 여길 따름입니다.”

하나비의 목소리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흥분이 잔뜩 감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시종이기 이전에 마도를 추구하는 학자. 뛰어난 실력자의 등장에 경외감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엘릭의 강의를 듣고 느끼는 바가 컸는지 그에게 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건 이성적인 추종이 아니라 뛰어난 지식에 대한 추종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메르빙거가 몰락했단 거에만 집중해서 그런 거라고 봐야 하나…. 하여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정말이지 대단해.”

타샤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보고서 탑의 가장 위쪽에 있는 걸 손에 짚었다.

<용의 습성과 생식에 대한 새로운 유추>

“하긴 현재까지 나온 용과 관련된 지식들은 죄다 터무니가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려나….”

천 년 전. 용들이 멸종하고 난 뒤, 사람들은 용들의 생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시조인 용의 생태계를 파악하다 보면, 그동안 미지로만 남아 있던 여러 마법 분야에 대해 더 큰 지식이나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수백 년간 수많은 학설과 논물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으니.

문제는 그것들 대부분이 추측성 설화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정론이라고 알려져 있던 이론들도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깨져버리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이 몇십 년은 진보된 이론을 내놓게 된 것이다.

타샤는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이 보고서들이 학계에 제출되기만 한다면, 또 한 번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이라고.

‘황실이 어떻게 반응할 지가 제일 궁금하긴 하고.’

자기네들이 용의 수호를 받았느니, 용의 간택을 받았느니 하면서 통치의 정당성을 외치던 황실이 아니던가.

그런데 과연 엘릭이 용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사실 엘릭 님이 이런 보고를 작성하게 된 계기가 용용이들 때문이니까.’

타샤는 지금쯤 새끼 용들 돌보며 한창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엘릭을 떠올렸다.

‘그래도 정말 속은 따뜻한 분이시란 말이지. 션에게 들었던 것과는 생판 다르다니까?’

타샤는 엘릭이 동생과 절친한 사이인 만큼 그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엘릭이 유명하지 않을 때였기에 당시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용의 엘릭과, 지금의 엘릭은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되게 이기적이거나 멋대로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자신이 거둔 생명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저렇게 헌신하시는 거니까. 대단하신 거지.’

타샤는 션이 들었다면 울화통이 터졌을 생각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엘릭은 새끼 용들을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으니.

엘릭에 대한 오해 아닌 오해, 좋은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빨리 일 끝내고 용용이들 보러 가고 싶다.’

물론, 그런 선입견의 주된 원인은 타샤가 새끼 용들에 대한 호감도가 만점이기 때문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가문에서 무슨 서찰이 왔다면서?”

그러다 타샤는 문득 오전에 다른 수하에게서 들었던 보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순간, 하나비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

타샤는 하나비가 건넨 두루마리 서찰을 받아 펼쳤다.

그리고 곧.

그녀의 표정이 점점 딱딱해졌다.

“황태자가… 제라이츠가 죽었다고?”

* * *

새끼 용들은 지난 사흘 동안 내리 잠만 잘 뿐, 눈을 몇 번 뜨지도 않았다.

심지어 눈을 떴을 때 활동하는 시간은 끽해야 일이십 분 정도.

다 합쳐도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짧은 시간이었다.

사실 타샤에게는 딱히 즐겁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엘릭에게는 정말, 저어어엉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아….”

엘릭은 새끼 용들이 자는 모습을 한숨을 쉬며 지켜보았다.

잘 때는 이렇게 천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건만.

어째서 잠에서 깨어나면 어찌나 칭얼거리는지.

“육아라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겁니까?”

『흥. 그딴 걸 본왕에게 물어본다고 한들, 대답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긴 그도 그러네요….”

마족은 미지에서 비롯되는 기현상. 당연히 일반적인 부모자식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차라리 이참에 그 꼴 보기 싫은 것들을 치워버리는 것 어떠하냐? 용의 시체는 새끼라 해도 수거할 게 꽤 많다.』

“개소리 할 거면 달나라에나 가서 하라고 그랬죠?”

『아쉽군.』

“전혀 아쉬울 거 없거든요?”

그나마 육아 고민을 같이 해볼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던 메피스토는 틈만 나면 용들을 치워버릴 생각밖에 하지 않으니 별 도움도 되질 않는다.

사실 용이 깨어나고 사흘이 지나는 동안 엘릭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애도 키워본 적 없건만, 생전 팔자에도 없는 새끼 용들을 상대해야만 했으니까.

심지어 용들에 대한 육아 방식의 정보는 죄다 틀린 것들 투성이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체 뭘 먹여야 되는 거야.”

새끼 용들은 알에서 깨어난 후로 여태껏 단 한 끼도 못 먹고 있었다.

고기를 주면 한 입만 우물거렸다가 ‘퉤’하고 내뱉기 일쑤.

혹시 입맛이 까다로운 것일까 싶어 양고기나 소고기를 가져다줘도 그때마다 뱉기 바빴다.

그러고는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며 잔뜩 토라진 얼굴이 되어서 다시 잠들었다.

-용들은 큰 덩치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엄청난 양의 육류를 섭취했을 것이다.

그동안 용에 대해 학계에서 가지고 있던 추측 중 하나.

심지어 엘릭도 그동안 정설로 믿고 있었지만.

“개소리였어.”

전혀 아니었다.

-드래곤이 아무리 마법의 조종이라고 해도 새끼일 때는 마나를 잘 다루지 못할 것이다.

이 역시 정설에 가까운 추측이라고 믿었지만.

“설마 브레스를 장난삼아 내뿜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고.”

브레스, 통칭 ‘용의 숨결’은 마나 원소의 응집체.

그런 걸 아무 곳에다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턱에 머리가 몇 번이나 타버릴 뻔하지 않았던가.

이미 이 용들은 태생적으로 마나를 부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타샤가 붙여줬던 마도학자들은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네레스타가 붙여준 짬밥은 어디 안 가는 건지,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새끼 용들을 24시간 관찰하며 습성들을 새롭게 정리해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은 전혀 얻지 못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정말….”

끼유유.

그때 골드가 자신의 목을 긁는 엘릭의 손길을 느끼면서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레드와 블랙도 일어나 서로 날개를 깨물고 놀다가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끼잉, 끼이잉.

그러면서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웃기 바쁘다.

물론, 엘릭의 표정은 여전히 시큰둥했지만.

“대체 너네들은 뭘 먹고 사는 거니? 배는 안 고프냐?”

끼유?

골드는 엘릭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석룡이나 수호룡은 잘만 말하던데, 왜 너희들은 못하는 건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챙겨 줄 거 아니야.”

골드는 눈을 깜빡이며 이번엔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웃거렸다.

끼유유?

“할 줄 아는 말이 끼유 밖에 없냐?”

파닥파닥!

끼유!

말을 알아듣기는 한 건지 날개를 파닥거릴 뿐이었다.

“그래, 그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사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요 근래 들어 엘릭이 새끼 용을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무섭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데리고만 있어도 유명세를 타니 남는 장사이긴 하지.’

메르빙거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용을 부활시키고 키우기 시작했다는 소문이었다.

‘이 녀석들이야말로 우리 가문이 부흥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거야.’

메르빙거 가문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게 된다면 과거의 영광을 금세 따라잡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새끼 용들이 장성하고 나면….

‘드래곤 라이더가 될 수도…!’

“으흐흐…!”

엘릭은 어린 시절 소설에서나 읽었던 용기사를 떠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메피스토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엘릭의 음흉한 속내를 읽었는지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또 나왔군. 저 변태 같은 웃음. 하여간 세상 사람들은 저걸 왜 모르고 매번 속는 거야?』

투덜거리던 메피스토는 새끼 용들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와 용은 천적과도 같은 관계.

특히 메피스토는 마족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해당하는 대마왕이었다.

그런 메피스토의 입장에서는 이미 멸종한 용들의 새끼가 눈앞에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게 굉장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끼유유!

어느새 골드가 엘릭에게서 떨어져 날개를 파닥이면서 메피스토에게 날아 왔던 것이다.

『이, 이런…!』

메피스토는 자신의 품에 안긴 녀석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끼유! 끼유유!!

심지어 애교까지 한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어이가 없단 말이지.”

엘릭은 새끼 용들과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새끼 용들이 메피스토에게 호감을 보인다는 것을.

『아니, 이것들은 용으로서 본능도 없나! 왜 이렇게 엉겨 붙는 거냐고! 좀 떨어져!』

메피스토가 기겁을 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소름이 끼쳤는지 머리카락이 죄다 곤두설 정도였다.

어느덧 뒤늦게 합류한 레드와 블랙은 오히려 그게 더 재미있다는 듯 머리와 어깨에 달라붙었지만.

『젠장! 이 녀석들 좀 어떻게 해봐…! 떨어지란 말이다!』

그 모습이 꼭 열매 맺힌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아 웃겼다.

“보기 좋네요. 계속 그렇게 같이 좀 놀아주세요.”

『뭐? 그걸 지금 말이라…! 아악! 본왕의 머리에서 대체 뭘 하는 거야? 멈춰! 거긴 화장실이 아니라고! 멈추… 아아아악!』

메피스토가 괴로움에 몸부림을 이리저리 치는 동안.

엘릭은 육아의 시름을 한결 놓으면서도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겨야 했다.

‘그나저나 진짜 이제 더는 정말 굶기면 안 될 것 같은데….’

사실 생각해보면 용들이 육류를 좋아한다는 게 웃긴 소리긴 했다.

과거 그 많던 용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서 매 끼니마다 육류를 섭취했다면 진즉에 식량 부족으로 멸종했을 테니까.

‘직접적인 섭취가 아니라면 대체 뭘…. 아!’

순간 엘릭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법의 종주, 거대한 마력….”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내내 여러 생각이 스쳤다.

‘마나가 없이는 살지 못하는 놈들이니까, 혹시 마력이 담겨있는 걸 섭취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마나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물질은 무엇이 있을까?

“흔히 마법사들의 연구 재료로 쓰이는…?”

엘릭은 작게 중얼거리다 말고 문득 드는 생각에 목에 걸린 마도경식을 매만졌다.

십자 모양의 끝에 박힌 네 보석.

순도 높은 보석은 사실 마법사들에게도 아주 귀한 보물이기도 했다.

사치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속에 풍부한 마나 원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에이, 그래도, 설마….’

엘릭은 애써 자신의 예감을 무시하고자 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무시해야만 했다. 만약 진실이라고 드러난다면, 메르빙거는 머지않아 파산의 길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돌아서려는 그때.

끼유유!

갑자기 골드가 메피스토와 놀고 있다 말고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엘릭을 쳐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엘릭의 손에 든 마도경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짝반짝!

마치 맛난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있는 포식자의 눈.

츄릅. 심지어 입에서는 군침까지 흐를 정도였다.

엘릭은 그제야 골드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