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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62화 (261/405)

2부 2화

봄의 안배

기묘(奇妙).

마족을 구성하는 3대 부류 중 하나로, 각각 <실존>, <기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세간에 알려진 마족은 자아를 가져 <실존>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마족은 원래 미지(未知)에서 기인한 존재들이므로, 각종 특이한 ‘현상’들도 마족에 포함이 된다.

지금 엘릭이 보고 있는 <기묘>가 바로 ‘현상’에 속하는 것들 중 하나로, 사람들의 상상이 빚어낸 독특한 존재다.

엘릭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묘가 보기 쉽지 않은 유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황실에서 크롬헬을 밀어주기 위해 타겟으로 삼을 정도는 아닐 텐데?’

“숙주에 기생해 사는 기묘는 사실 가장 흔한 유형이지. 그런데 황실이 그걸 잡으려 한다고?”

모르드는 엘릭의 의문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그냥 내릴래?”

그 태도에 엘릭이 인상을 쓰며 짜증을 내자, 그제야 모르드가 서둘러 말했다.

“아니요. 이건…. ‘난교’의 기묘입니다.”

엘릭은 이제야 모르드가 그토록 이 기이한 마력을 숨기려고 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거 릴리스의 마력이었어요?]

『그럼 내가 기분 나쁘다고 한 게 뭐였겠냐?』

[메피 성격이면 기분 안 나쁜 걸 찾는 게 빠를 것 같은데요.]

『이, 이 녀석이!』

‘아무튼… 최악이네.’

난교는 4대 대마왕 중 하나인 릴리스의 인장.

릴리스는 한때 다산(多産)과 풍요(豐饒)를 의미하는 지모신(地母神)의 일종으로 여겨졌지만, 언제부턴가 좋지 않은 의미로 퇴색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점차 그녀의 권속들도 이지를 잃고, 모든 생각과 사고를 릴리스에게 바쳐 그녀의 부림을 받게 되었다.

즉, 기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오버마인드(Over Mind)를 구성하는 군집체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런 릴리스의 기묘를 이식하고 있는 흉의 일족을 황실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엘릭의 표정을 살피던 모르드는 슬슬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문제는 일족들이 난교에 긍정적이라는 겁니다. 이대로 계속 탄압만 받다가 죽느니, 차라리 마족들에게 귀의하자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이죠.”

엘릭은 어이가 없어 모르드를 비웃었다.

“참나, 그쪽도 기묘가 이식된 걸 봐서는 릴리스를 추종했던 것 같은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지?”

엘릭의 비웃음에 모르드는 그것을 후회한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원래 그랬습니다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뭣 때문에?”

“저희 일족이 기묘를 이식받은 건 어디까지나 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였습니다. 릴리스를 진심으로 추종한 건 전혀 아니었고요.”

모르드의 표정은 한껏 비장했다.

“그러다 엘릭 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족의 선조들의 옛 여왕이라 추측되는 동백의 신과 친분을 맺었다는 소식과 야만족을 구원했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래서 나를 무작정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엘릭은 모르드가 자신을 도박하는 심정으로 찾아왔다는 것을 유추했다.

‘어찌 보면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엘릭은 흉의 일족을 구원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계산했다.

분명 머나먼 조상이 마족이긴 했지만, 옅어진 피 때문에 일반인에 가까웠기 때문에 엘릭의 세력으로 흡수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거지.’

생각에 잠긴 엘릭의 모습을 보고 다급해진 모르드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희 일족을 구원해주십시오! 제가 기꺼이 당신의 개가 되겠습니다!”

엘릭은 머리를 바닥에 쥐어박으며 구걸하는 모르드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왜?”

모르드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을 부릅떴다.

“이유는 충분히….”

당황한 모르드가 재빨리 엘릭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엘릭은 귀찮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인상을 썼다.

『하, 이렇게 보면 누가 마왕이고, 누가 인간인지 모르겠군. 아니, 대마왕인가?』

‘【다물어라】’

『읍, 읍!』

“아니, 그건 알겠는데. 내가 너희들을 뭘 어떻게 믿고 그렇게 해주냐고.”

“그, 그건…!”

“됐고, 일단 나도 급하게 들러야 할 곳이 있으니 차차 생각해보자고. 나도 널 지켜보고 판단할 테니까.”

‘일단 너희 세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보자고.’

정확한 계산이 서지 않은 엘릭은 승낙도 거절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했다.

모르드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신뢰를 사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숙였다.

* * *

며칠을 달려 드디어 도착한 보석룡 샤이나크의 둥지.

원래는 독충과 몬스터들이 들끓던 오지 중의 오지였지만, 지금은 네레스타 가문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수많은 인부들이 오가고, 감독관들이 소리치며, 학자들이 발굴된 수많은 유물들을 이리저리 품평하면서 열띤 토론장을 열었다.

“우와, 시장 바닥이 따로 없네.”

엘릭은 처음 왔을 때와는 완전히 바뀐 환경에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어때요? 활기차죠?”

그때, 엘릭의 감탄하고 있는 표정을 본 타샤가 다가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놀랍네요. 누가 보면 완전히 다른 장소인 줄 알겠습니다.”

엘릭은 진심으로 네레스타 가문의 역량에 감탄했다.

현재 자신이 추구해야 될 가문의 방향성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산.

‘그러려면 잘 배워둬야겠지.’

엘릭은 용의 둥지를 관리하고 있는 네레스타 가문의 체계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만큼 관리를 장난 아니게 했으니까요. 자, 이제 들어가실까요?”

타샤는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엘릭을 데리고 지휘 막사로 향했다.

“아, 오셨습니까. 타샤 님, 엘릭 님.”

막사에 도착하자 학자들이 물품을 분류하다 말고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고생들 하시네요. 이쪽으로 가시죠.”

타샤가 인사를 받아주며 엘릭을 안내했다.

“여기가 둥지에서 발견된 아티팩트들을 모아둔 곳이에요. 가까운 건 천 년 전부터 멀리는 고대까지 사용되었던 엄청난 보물들이죠.”

타샤가 몇 번을 봐도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엘릭에게 아티팩트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엘릭으로선 그 설명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정도는 가문의 안가에도 널려 있는데….’

타샤가 아니었다면 당장 설명을 그만두고 용의 알의 부화 방법부터 찾자고 했을 터였다.

한창을 신나서 설명하던 타샤가 엘릭의 시선이 창밖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건 크게 관심이 없으신가 보네요.”

‘아차, 좀 그랬나?’

엘릭은 아무리 그래도 절친한 친구의 누나인데 너무 예의가 없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찾을 게 따로 있다 보니….”

“그럼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가시죠.”

타샤는 그런 것쯤은 신경도 쓰지도 않는다는 건지, 엘릭이 찾는다는 게 뭔지 깨닫고 오히려 바라던 바라는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정말이지 션이 용 성애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니까.’

타샤의 한층 더 빨라진 발걸음을 따라 둥지 깊숙이 들어선 엘릭.

다만, 다급한 발걸음과는 별개로 안전 장비는 단단히 갖춘 채였다.

그럴 리는 거의 없겠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마법 장치가 그들을 다치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엘릭은 통로를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들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 여기를 어떻게 통과했었지?’

엘릭은 처음 보석룡의 둥지에 발을 들였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정말 죽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어느덧 달라진 모습으로 이곳에 서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더군다나 예전과는 달리 대기 중에 흐르는 갖가지 마력향에서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마법 체계들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나도 참 많이 성장했구나.’

그렇게 도착하게 된 공동.

용아병들이 튀어나왔던 그 공간들을 보며 옛 생각이 또다시 떠올랐다.

[메피, 여기 기억나요?]

『읍!!』

[아, 아직도 그러고 있었어요?]

입을 꾹 다문 채 소리치는 메피스토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언령을 풀어주자 메피가 쏘아댔다.

『젠장, 본왕이 그것도 기억 못 할 것 같으냐.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본왕에게는 불쾌함, 그 자체란 말이다!』

[아, 눼이눼이~]

메피스토는 정말로 불쾌했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그런데…. 여기서 ‘봄’과 관련된 걸 어떻게 찾지?’

엘릭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곳에 온 이유는 순전히 용의 알 때문.

분명히 산악 민족들의 수호룡에게서 들었던 정보는 용왕을 찾아가면 안배를 열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하도 오래 지나서 착각했나?’

용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심안을 열고 샅샅이 뒤져봐도 둥지 내에서 보석룡 샤이나크의 다른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엘릭이 그런 의문이 들 즈음.

우웅-

힘들지도 않은지 연신 입을 열고 있는 타샤의 말이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을 무렵, 엘릭이 끼고 있던 인터레시아의 반지가 울렸다.

‘이거 혹시…?’

엘릭의 눈이 빛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법 창고를 열어 용의 알 세 개를 꺼내자 역시나 알들이 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꺄아악!”

그런 용의 알을 보자 타샤가 얼굴을 붉힌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엘릭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둥실 떠오른 알에 시선을 집중했다.

우우웅-

점점 빛으로 물들어가는 용의 알들.

동시에 엘릭의 심장 옆에 자리 잡은 마정석이 요동치면서 마력이 솟구쳤다.

‘이런, 갑자기 이게 무슨!’

『음? 용의 마력이 반응하는데?』

메피스토가 말을 걸어왔지만, 엘릭은 도저히 대답할 수 없었다.

솟구치는 용의 마력이 제어가 되지 않는다.

여태 차원이 다른 마력 제어 능력을 보여 왔던 엘릭이었지만.

미친 듯이 달려드는 용의 마력 앞에 무력하게 뚫리고 있었다.

‘크윽!’

끔찍한 고통이 밀려와 잠시 당황했던 엘릭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달려드는…. 아…!’

수호룡이 말했던 안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력 제어 능력을 가진 엘릭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같은 메르빙거 가문의 안배임이 분명했다.

엘릭은 마력을 제어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을 멈추고 억지로 잡고 있던 용의 마력을 놓았다.

그러자 용의 마력이 척추를 타고 뇌문(腦門)을 두들겼다.

동방 지역에서는 상단전이라고 불리는 영역, 뇌문.

그와 동시에 정신의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절이 아닌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이었다.

정신과 영혼이 자리 잡은 공간이 활짝 열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무의식의 세계가 펼쳐졌다.

「무슨… 지…?」

「안배… 시… 되는… 거 같은….」

「벌써… 봄을 만나….」

「아르세우스…!」

‘으으, 시끄러.’

겨울 6장들이 모두 시끄럽게 떠들어 댔지만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목에 걸고 있던 마도경식 중에서 에메랄드 부분이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눈앞이 번쩍이면서 백색 세계가 나타났다.

* * *

언젠가 무의식 세계에서 본 적이 있던 보석룡.

용왕의 자리에 올랐던 그 보석룡이 누군가에게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아마 보석룡이 마지막 용왕의 타이틀을 얻기 전, 새끼일 때인 것 같았다.

끼익- 끼이익-

좋아 죽겠다는 듯 하울링을 하며 애교를 부려대는 대상은 하얀 머리카락에 녹색 눈을 가진 따스한 광채가 흐르는 성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엘릭은 본능적으로 그가 ‘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얀 법복을 입은 채, 어딘지 모르게 초췌해 보이는 인상의 ‘봄’이 엘릭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시조가 말했던 먼 미래의 우리 후손이구나?”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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