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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61화 (2부) (260/405)

2부 1화

봄의 안배

숨길 수 없는 기품이 흘러넘치는 마차.

마차는 네레스타 가문의 문양이 위풍당당하게 건 채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타샤가 다리를 꼰 채 은은한 미소와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타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하나비가 오묘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원래라면 주제넘게 타샤에게 질문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비가 아는 그녀는 감정 기복을 아랫사람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물어봐달라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말을 꺼냈다.

“그럼, 있지. 있고 말고.”

타샤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지난 밤, 엘릭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서 수하의 앞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하나비는 타샤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하나비를 발견한 타샤는 ‘뭘 봐?’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하나비가 금세 눈을 내리깔았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어?”

“네,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흐음,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마부를 최대한 채근해 보겠습니다.”

하나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대는 저 질문에 대충 대답하며 마부를 재촉했고.

그 모습을 보며 타샤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이지. 엘릭 님을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운이라니까.’

그녀의 머릿속은 조금 전처럼 어제 일을 또 다시 회상하기 시작했다.

* * *

“서, 설마 이거….”

타샤는 항상 엘릭의 앞에서만큼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용의 알을 보는 순간,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입을 떡 벌린 채 물었다.

“네. 용의 알입니다.”

“그, 그것도 세 개씩이나...!”

타샤는 자신이 엘릭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타샤는 션에게 툭 하면 ‘용 성애자’라고 불릴 정도로 용을 사랑하는 학자.

그녀는 이성의 끈을 붙잡지 못하고 손을 벌벌 떨면서 용의 알에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동안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용의 둥지에만 몰두할 정도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실제로 용으로 부화할지 모르는 용의 알을 보고도 이 정도의 추태만 보였다는 것 자체가 용할 정도였다.

“우아아…!”

“흠흠!”

타샤는 아름다운 보물을 본 것 마냥 황홀함에 빠져 정신을 놓고 있다가 엘릭의 헛기침에 정신을 차렸다.

“저는 이 알을 부화시킬 생각입니다.”

“용의 둥지를 갈 생각이시군요….”

타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오랜 세월을 방치된 상태로 있었지만 생기를 전혀 잃지 않고 있는 용의 알.

분명 알을 깨우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할 텐데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으니 용의 둥지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용의 둥지를 발견한 지도 시간이 꽤나 많이 흘러, 발굴 작업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둥지에는 방대한 양의 고서와 실험실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밀의 방까지 추가로 발견된다면, ‘마무리’는 절대 마무리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흥분되는 일인데 거기에 용의 알을 부화시킨다면….

천성이 마도사인 타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당장 출발하시죠.”

* * *

‘어서 둥지에 도착했으면…!’

타샤는 용의 둥지로 향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긴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싶은 심정.

만약 용의 둥지가 오지에 있지 않았다면 진즉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비, 이제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그…. 마부를 재촉한 지 한 시간도 안 지났습니다.”

하나비는 항상 완벽해 보이던 타샤의 의외의 모습에 신선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재촉하는 그녀 때문에 슬슬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물론, 타샤는 ‘어쩌라고?’하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지만.

“…다시 채근해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게 좋을 거야. 할 게 많다고.”

“네….”

타샤는 하나비의 한숨을 뒤로 한 채,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신의 마차와 같이 관도를 나란히 달리고 있는 다른 마차를 바라봤다.

거기엔 메르빙거 가문 특유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그 안에서 엘릭이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엘릭이 저 마차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지도 벌써 며칠째.

식사시간이나 될 때에야 겨우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엘릭의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도 그제야 겨우 확인할 수 있었으니.

타샤는 그때마다 싸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 일족’이 분명할 텐데.’

타샤는 눈을 샐쭉하게 뜬 채 남자를 쳐다봤다.

‘엘릭 님은 어째서 저런 저주받은 일족과 합석을 하고 계시는 걸까?’

* * *

엘릭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맞은편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별의 종군과 갈라져 용의 둥지로 향하던 중에 만났던 사내.

그는 여러 모로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제 이름은 모르드라고 합니다.”

엘릭의 맞은편에 앉은 그 사내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흉의 일족’으로서 성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흉의 일족?”

엘릭은 눈살을 찌푸린 채 흉의 일족에 대해 떠올렸다.

흉의 일족은 고대의 이름 모를 어느 대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대가로 일족의 번영을 약속받은 자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피에는 마(魔)의 인자가 흐르고, 덕분에 마법에 대한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나 한때는 아주 큰 번영을 이루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옛날이야기.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민족들처럼 평범할 뿐이었다.

아니, 따지자면 오히려 그들은 비참하게 몰락한 편에 속했다.

마족에 대한 인간들의 증오가 점차 커지면서, 흉의 일족도 그들과 똑같이 취급을 받아 수많은 박해를 받은 탓이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대륙에는 그들을 탄압하거나 배척하는 정서가 아주 강했다.

하지만 엘릭은 알고 있었다.

흉의 일족이 분명히 대악마와 어떤 관련이 있던 것은 사실이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대를 거듭하며 유전자가 많이 희석되어 이제는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엘릭은 눈앞의 녀석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눈앞의 이 녀석이 반마(半魔)의 특성이 느껴진다는 건데….’

모르드는 엘릭의 시선을 느끼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제 기질을 보면서 의아한 마음이 드시나 보군요. 올바르게 보신 게 맞습니다. 저는 일족의 일부가 타고난 혈인 능력을 좀 비정상적으로 타고났습니다. 덕분에 평소에는 이렇게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다닙니다.”

엘릭은 눈앞의 모르드라는 사내가 타고난 혈인(血因) 능력, 즉 반마의 특성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대악마가 동백의 신이었나?”

동백의 신.

따르던 백성들을 잃고, 겨울궁전에서 오랫동안 세월을 보내다가 꽃의 신전에 잠들었던 이.

녀석에게서는 그녀의 마력향이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제 선조 중 일부가 지금은 동백의 신으로 불리는 분의 신도들과 혼인을 하셨습니다. 같이 버려진 처지라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였군.’

흉의 일족에게서 동백의 신의 기운이 느껴진 연유를 이해한 엘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질문을 이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는 뭐지?”

모르드는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엘릭의 눈을 바라봤다.

“버림받은 산악 민족들을 구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엘릭은 모르드의 의도를 눈치채고 산악 민족을 구원한 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는 듯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리고 모르드는 엘릭을 향해 고개를 바짝 숙이며 소리쳤다.

“저희 일족도 같이 구원해주십시오. 보잘 것 없지만 제가 당신의 개가 되겠습니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엘릭은 다짜고짜 일족을 구원해달라는 모르드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모르드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번에 제라이츠 황태자가 실각되고, 크롬헬 4황자가 황태자로 추존될 분위기가 흘렀다.

그래서 크롬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황실과 감찰국이 모두 나서서 그에게 아주 큰 공을 세워주게 할 계획을 짰다.

여기까지 들은 엘릭은 자연스럽게 뒤이어질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흉의 일족이다?”

“그렇습니다.”

“명분은?”

“흉의 일족을 탄압하는데 언제부터 이유가 있었습니까.”

“….”

엘릭은 말없이 모르드를 바라봤다.

모르드는 무엇이 불안한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며 엘릭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 녀석 봐라?’

엘릭이 모르드를 마차에 태워준 것은 그가 고위급 마왕의 힘, 심지어 동백의 신의 기운을 풍겨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이유가 가장 크긴 했지만, 모르드에게서 다른 마족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마력을 느꼈기 때문이었으니.

‘자기 딴에는 감춘다고 감췄겠지만, 확실히 느꼈어.’

분명 모르드의 힘은 확실한데, 이질적이면서 동떨어져 있는 기운. 제 것이 아닌 것을 이식한 듯한….

엘릭은 이 기이한 마력을 억누른 채 그에게 익숙한 동백의 신의 힘을 풍기며 자신에게 접근한 모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피, 이 녀석 뭔가 있는 거죠?]

『흥, 네놈도 느꼈구나. 이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기운은 잊을 수가 없지.』

메피스토가 정확히 어떠한 기운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모르드가 지닌 이질적인 마력이 자신에게 드러낼 만큼 떳떳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메르빙거에게 마력을 숨긴 채 접근한다라. 멍청한 건지, 대담한 건지 잘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네? 괘씸죄 추가.]

엘릭은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받았다.

‘감히 나한테 구걸하러 온 주제에 꿍꿍이를 숨겨?’

한참을 말없이 모르드를 바라보던 엘릭의 표정이 딱딱해지며 달리던 마차의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에, 엘릭님?”

한창 네레스타 가문의 마차와 경쟁하듯 나란히 빠르게 달리고 있던 마부 브라이언이 화들짝 놀라 속도를 줄이며 엘릭을 불렀다.

그러나 엘릭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나가.”

“어, 어째서…!”

모르드가 잔뜩 당황한 채 어쩔줄을 몰라했다.

“도와달라는 새끼가 그럼 수상하게 꿍꿍이를 숨기는데 내가 봐줄 것 같냐?”

“…!”

모르드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할말을 잃었다.

“안 나가?”

엘릭이 강제로 그를 마차에서 끌어내리려는 행동을 취하자 모르드는 그제서야 결심을 굳힌 듯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아니, 이제 필요 없어. 그냥 내려.”

“한 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러니 제발!”

차가운 눈빛으로 모르드를 내려보며 싸늘하게 말하는 엘릭.

“이제 말로 안한다.”

엘릭은 진심을 담았고, 그것은 의지가 되어 주변의 마력이 끓어올랐다.

모르드는 엘릭의 눈빛을 보곤 체념한 목소리로 윗옷의 단추를 벗으며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 그러시다면….”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던 엘릭은 뜬금없이 옷을 벗기 시작한 모르드의 행동을 일단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후.

옷에 가려져있던 모르드의 상체를 보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엘릭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르드의 상체에는 등을 따라 구역질을 유발하는 검은 어둠이 암세포처럼 퍼져 득실대고 있었다.

“이건….”

도무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기괴한 느낌.

이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족의 일종이었다.

숙주에게 달라붙어 영양분을 빨아먹고 끝내 좀비처럼 휘두르는 지독하고 고약한 존재.

바로 ‘기묘(奇妙)’의 흔적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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