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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42화 (241/405)

242화

화려한 귀환

적막이 내려앉은 도시의 밤.

엘릭은 유유히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번에 말한 그 수인족의 왕인지 뭔지 하는 놈이 살던 곳이 여긴가?』

“네. 그렇다네요?”

비에른 시가 한때 동부 지역 최고의 도시로 손꼽혔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400여 년 전에 대륙 북부의 패자가 되었던 수인족의 지배자가 제2의 수도로 삼으려 했던 전력(前歷) 때문이었다.

당시에 상당히 많은 인프라가 깔렸다 보니.

자연스레 인구도 그쪽으로 밀집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인족이 다시 흑의 설원으로 물러난 뒤, 제국에서는 이것을 수치라고 여기고 비에른 시의 발전을 의도적으로 막아왔다.

그래서 지금은 기억하는 이들도 극히 드문 곳이 되어버렸지만.

벨렌체 왕으로부터 율호왕의 안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엘릭은 이곳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수인족이 물러나고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거늘, 안가가 아직도 남아있으려고?』

메피스토는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들이 수인족의 지배를 수치라고 여긴다면, 당연히 그들과 관련된 것들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으니까.

“안가가 왜 안가겠어요?”

『…?』

메피스토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엘릭이 도착한 장소를 보고 헛웃음을 터뜨려야만 했다.

『일리가 있는 맞는 말이긴 하군!』

엘릭이 도착한 곳은 시청의 청사(廳舍)였다.

제국에서 임명한 시장이 업무를 보는 곳.

하지만 지금은 적사자군이 접수했다가, 또다시 이를 별의 종군이 접수하게 되면서 텅 비게 되어 버린 곳.

사람 하나 찾을 수가 없어 을씨년스런 분위기만 풍겼다.

그토록 제국을 증오하던 수인이 제국이 만든 건물에 안가를 세웠다?

외려 이를 눈치채는 게 더 이상할 터였다.

‘하여간 율호왕도 참 특이한 양반이란 말이지. 어떻게 이런 얄궂은 생각을 했지?’

안배에서 만났던 율호왕은 확실히 일반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사람이긴 했다.

그러니 엘릭도 그만큼 더더욱 끌렸던 것이겠지만.

“어디 보자, 독수리상이 세워진 분수대가… 저기 있다!”

엘릭은 아테에게 몰래 부탁해 보았던 시청 도면을 떠올리면서 금세 청사의 중앙에 마련된 커다란 분수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처럼 보이는 독수리상의 부리에서는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찾아라】.”

엘릭은 마나 스캔을 넓게 퍼뜨렸다.

여기서부터는 안가의 정확한 입구 위치와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듣지 못했으니까.

조금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이 양반이 한 거라서 조금 불안하긴 하단 말이지….’

벨렌체 왕이 준 율호왕의 일기장에도 안가에 대해서는 딱 이렇게만 기술되어 있었다.

-누가 오게 될지 몰라도, 서프라이즈 파티가 되도록 만들어놨다. 하하하. 그걸 직접 못 보는 게 아쉽군.

…그 말인즉슨 누가 되더라도 골탕 먹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는 뜻이 아닌가.

‘여기에 이걸 세웠을 때면, 그래도 나이도 지긋하게 먹었을 거면서…. 그쯤 되면 철 좀 들지.’

아니, 철이 안 드는 게 더 율호왕다운 걸까.

하여튼.

엘릭은 별반 어려움 없이 안가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엘릭 나름으로서는 자신이 있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혈은 육체에 힘을 가득 불어넣는 중이었고, 마법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여차하면 빙의를 시도해도 되니, 엘릭은 율호왕이 안가에다 어떤 수작질을 해놨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여긴가?’

그러다 엘릭은 분수대 뒤편, 물이 쏟아지지 않는 부근 아래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쪽으로 이동해 손으로 톡톡 건드려봤다.

확실히 아주 조금이지만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거기냐?』

“예. 그런데 이거….”

『왜 그러지? 그냥 열릴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우와악!』

메피스토는 엘릭이 손댄 부위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마력을 실어 힘을 강하게 주었다.

아자젤의 힘을 흡수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 물리적 행사도 가능했기에 벽돌이 자연스레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자 흡족하게 웃었다.

하지만 벽돌이 끝도 없이 들어가면서 메피스토도 순간 균형을 잃고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안쪽에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조심히 내려가야겠다고 말하려던 거였는데.”

엘릭은 그것을 어이없다는 투로 바라보다가, 자신도 구멍 속으로 훌쩍 몸을 던져 넣었다.

얼마나 깊은지 한참 동안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천천히 떨어져라】. 【환하게 밝혀라】.”

이전에 사용하던 언령으로는 단순히 단편적인 의지만을 투영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리는 게 가능했다.

엘릭을 둘러싼 공기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낙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어둠만 깔려 있던 주변은 새하얀 광구(光球)가 떠오르면서 아주 환하게 밝아졌다.

‘깊네, 생각보다.’

지하 안가로 향하는 통로는 수직 방향으로 아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거나, 뛰어난 무술 실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추락사할 수도 있을 만한 엄청난 높이.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그긍, 철컥!

퓨퓨퓨퓻-

갑자기 벽면 곳곳을 따라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쇠 화살이 엘릭에게로 잇달아 쏘아졌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기능이 정지되어 있던 곳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예리한 각도와 움직임이었다.

“【둘러쳐라】.”

엘릭은 동계의 인장에다 마력을 불어넣고 재빨리 손을 허공에다 흩었다.

그러자 대기 중에 서리가 잔뜩 응결되면서 시퍼런 보호막을 몇 겹이나 형성했다.

차차차창!

태태태탱-

수도 없이 많은 쇠 화살들이 잇달아 힘없이 튕겨 나갔다. 보호막도 몇 번씩이나 박살이 났다가 다시 복구되길 반복했다.

“이 양반이…. 여기 잘못 들어온 사람은 죄다 고슴도치로 만들 생각이신가?”

일반인이라면, 아니, 어느 정도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추락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건만.

이렇게 위협적인 장치들을 여러 개 달아놓아서야…. 이건 절대 ‘장난’을 운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탁!

엘릭은 어이없다는 투로 투덜거리다가, 드디어 지상에 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진다 싶더니, 보이지 않는 압박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큽!”

동시에 그의 신변 곳곳에서 뭔가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철컥-

철컥-

「이건…!」

「마법이 잠길…!」

엘릭은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두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갑자기 체내를 감돌던 마력이 거짓말처럼 잠기기 시작했으니까.

나하트람을 비롯한 겨울 6장이 뭐라고 소리치는 듯했지만, 곧 희미해지면서 묻히고 말았다.

저주였다.

그것도 난이도가 상당한.

“【떨어져라】!”

엘릭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마력에다 의념을 잔뜩 불어넣으면서 인장을 최대로 출력시켰다.

이대로 있다간 마법이 전부 잠길 판국이라, 어떻게든 저주를 씻어내려 했지만.

파아아!

‘발동이 취소된다고…?!’

엘릭의 손끝에서 이펙트가 맺히다 말고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마력장도 형성되다 말고 다시 실타래처럼 풀리면서 사방으로 결이 흩어졌다.

철커덩!

그러다 마력이 완전히 잠기고 말았다.

“【해소되어라】!”

“【씻겨나가라】….”

“【부서져 흩어져】!”

엘릭은 그 뒤에도 몇 번씩 저주를 떨쳐내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텅, 터터터텅!

마법은 그때마다 맺히다 말고 부서졌다. 마력은 여전히 꿈쩍도 하질 않았다.

마나의 완전한 구속(拘束).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야. 이만 좀 내려오지?』

엘릭이 당혹스러워하던 중, 갑자기 발아래에서 메피스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터라, 감각도 무뎌져서 엘릭은 메피스토가 어디 있나 고개를 돌리다 말고 ‘푸화앗!’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메피스토가 자신의 발아래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내 머리를 밟고 있는 건 네놈이지 않더냐! 얼른 내려오래도!』

엘릭은 훌쩍 바닥으로 내려왔다.

메피스토도 퀭한 얼굴을 한 채로 천천히 몸집을 일으켰다.

그의 행색은 정말이지 말이 아니었다.

무슨 볏짚 인형처럼 몸 여기저기에 쇠 화살이 무더기로 꽂혀 있었고, 얼굴에는 엘릭의 신발 자국까지 남아있었다.

거기다 조금 전까지 풀풀 날리던 허울 좋은 기세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무의식 세계에서 아자젤을 상대로 그 엄청난 위압감을 보여주던 대마왕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

마력이 구속되면서 그도 원래의 평범한 상태로 되돌아가고 만 것이다.

『제기랄! 본왕은 그냥 방에 남아있을 것을…! 심심하다고 괜히 따라와서는 이딴 꼴을 봐야 한단 말이냐.』

메피스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리저리 투덜거리다가,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물었다.

『그 수인족 왕이라는 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더냐?』

“무슨 소립니까?”

『죽은 지 수백 년도 더 지난 놈이라면서?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강한 사념을 남겨둘 수 있냐는 말이다.』

엘릭은 메피스토를 따라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그긍-

천장, 벽면, 바닥… 벽돌 너머로 기계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여전히 함정 기관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뜻.

마력도 구속된 상황에서 여길 전부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순간 막막해졌다.

엘릭은 메피스토의 말뜻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력과 마법이 전부 구속된 게, 율호왕이 남긴 의지 때문이라는 겁니까?”

『그래. 그만한 세월이 지났으면 사념도 어느 정도 사라질 법 한데도,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 오히려… 세월이 지나면서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메피스토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팼다.

『보통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있지.』

“심상 세계….”

『그래. 심상 속에 그려낸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거다. 그만한 짓을 저지를 수 있으려면, 최소한 너희들 기준으로 ‘초인’의 반열은 훨씬 뛰어넘어야 하고.』

상상한 것을 물리적으로 직접 구현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일정 영역에 걸쳐서 모든 법칙을 제 입맛대로 뒤틀어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반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인의 반열마저도 뛰어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이러한 인물을 두고,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반신(半神).

신의 경지에 반쯤 발을 들인 사람이라고….

‘율호왕이 그렇게 대단했다고?’

사실 따지고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엘릭이 안배에서 봤던 율호왕만 하더라도, 이미 젊은 나이에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 뒤로도 계속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강체술을 완성해나갔더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긴 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곳에다…!’

여전히 이런 심상 세계를 구축한 이유는 이해가 되질 않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생각을 더 이상 길게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또 뭐가 시작되는군.』

엘릭이 뭔가 싶어 메피스토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기함하고 말았다.

저 멀리.

천장이 돌아가는 듯싶더니, 펄펄 끓는 쇳물이 바닥으로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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