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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36화 (235/405)

236화

윈즈 변경주

수하가 서둘러 유령을 부르러 간 사이.

츠츠츠츠-

오거스틴을 둘러싼 하얀 수증기가 어느새 하늘을 빼곡하게 물들였다.

그리고 점점 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 세상에 새하얀 장막이라도 드리운 것처럼.

수십, 수백 미터도 넘는 광경이 하얀색으로 뒤덮이는 기현상(奇現象)은 보고 있던 이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으, 으으으!”

“저, 저게 무슨…!”

“저건 괴물이야!”

병사들 사이에서 적잖은 동요가 일었다.

그들도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적사자군의 정예인 만큼, 마법이 일으키는 기적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저 엄청난 광경을 실제로 보고 있으려니 침착해지려 해도 도무지 침착해질 수가 없었다.

흔히 하얀색은 순결 혹은 신성과 연관되어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많이 주곤 하지만.

오히려 단순히 하얀 수준을 넘어서서 투명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짙은 백색을 띨 경우, 사람들에게 혐오와 공포를 부르기 십상이었다.

저것이 그랬다.

어느새 ‘하얀 밤’으로 뒤덮인 듯한 광경은 병사들의 가슴을 계속 두려운 감정으로 물들였으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테단이 다급히 마법사 부대를 불러오게 하여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불의 기둥】!”

“【작렬하는 벼락의 칼】!”

“【망령의 환란지대】…!”

촤촤촤촤-

휘휘휘휘!

그러한 마법들은 성곽을 얼마 벗어나지도 못하고, 도중에 허공에서 완전히 흩어지고 말았다.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역시나…!”

마법사 부대의 부대장 얼굴이 짙은 수심이 어렸다.

“왜 마법이 통하질 않는 겁니까?”

테단의 다급한 질문에 부대장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로서는 절대 ‘저것’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럼 결계를 맡은 부대원들까지 데려와…!”

“아닙니다. 그들을 더한다고 한들, 아니, 적사자군 내에 있는 모든 마법사를 데려온다고 한들 ‘저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부대장은 하얀 장막을 가리키면서 억울한 어조로 한탄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말씀…!”

“바스타드 소드께서는 ‘하얀 밤’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전혀 생뚱맞은 질문.

하지만 테단은 그것이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알지 못합니다. 주군께서 저자를 주의하라는 말씀밖에는….”

“저자는 사실 저희에게 있어 금기(禁忌)입니다.”

“금기…?”

“예. 언급하는 것도, 그를 떠올리는 것도 금기시되어 있지요.”

“…?”

“만약 네레스타 가문이라는 거대한 우산이 없었더라면, 진즉에 마탑과 전쟁을 벌였을 겁니다. 그는 태생부터 걸은 길까지, 온통 인외(人外)와 비도(非道)로 얼룩져 있으니 말입니다.”

“…!”

“사실 저자가 이곳에 나타날 줄 알았다면… 이곳에 자원해서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

테단은 마른 침을 삼켜야만 했다.

인외와 비도로 얼룩진 마법사. 대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로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오거스틴이 가지는 명성과 위압감이 자신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황금사자 님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봐야 하나…?’

기사와 무도가들 사이에서도 황금사자는 절대 넘볼 수 없는 벽과 같으니까.

‘아냐. 달라.’

하지만 테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언컨대, 테단은 여태 살면서 ‘하얀 밤’ 오거스틴 네레스타라는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반면에 조금 전에 생각한 황금사자의 경우, 무도가는 물론 제국 내에서 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정정한 모습으로 백여 년을 살아온 존재.

제국에서 유일하게 ‘대공’이라는 작위를 받은 존재.

홀로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평가받을 만큼 대단한 존재이지 않던가.

그런 그의 위상과 비교할 만한 작자는 딱 한 명, ‘별의 마도사’ 우스던 메르빙거밖에 없었을지니.

반면에 오거스틴은 마법사 세계, 그것도 상층부에 해당하는 이들만이 어렴풋이 알 뿐이지 그 명성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철저하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과 행적이 가려졌다는 뜻이었다.

그게 마탑의 수완인지, 아니면 감찰국에서 나선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절대 세간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오거스틴의 이름이 금기어라는 표현은 바로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 이상은 저도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저자를 대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자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될 테니… 까요.”

테단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항상 위를 향해 달려왔던 그로서는 도저히 부대장이 보이는 공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그가 오거스틴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헛소리라도 떠드는 건가 싶었지만.

“….”

“….”

‘…모두 내 눈을 피하는군.’

다른 마법 부대원들도 황급히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마치 눈이라도 마주쳤다가 행여 그가 오거스틴에 관해 물어올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덜덜덜…!

테단은 부대장의 손끝이 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저것’을 계속 저대로 내버려 둬야 한단 말이오? 저게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대마법의 술식이 완성되기 전에 시전자를 방해하거나 처치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그건…!”

부대장이 뭐라고 대답을 하려던 그때였다.

“아아! 아아악! 놔! 놓으라고! 저런 걸 대체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결국 공포에 질린 병사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에 쥐고 있던 창을 집어던지면서 어떻게든 자리를 이탈하려 했지만.

스걱!

푸우우-

근방에 있던 독전관이 다급하게 도망치던 병사의 머리를 자르면서 소리쳤다.

“다들 혼란스러워하지 마라! 침착하게 대응해라! 저건 어디까지나 우리를 겁주기 위한 위협용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좀처럼 병사들의 동요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창을 들고 있는 손이 눈에 띄게 덜덜 떨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에 테단이 나서려는데.

“위협용이라고?”

“…!”

“…!”

“…이렇게나 먼데, 우리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오거스틴의 것이라고 짐작되는 목소리가 모든 병사와 장교들의 귓가에 선명하게 꽂혔다.

절대 사자후나 전음 같은 기술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지막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어 직접 그들의 귓가에다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저 비정상적인 하얀 밤이 어느새 성곽까지 덮어서 보이지 않는 귀신이 중얼거리기라도 하는 걸까. 너무나 먼 거리인데도, 분명히 왜소한 체구인데도, 오거스틴의 몸은 그들의 눈에 너무나 또렷하게 보였다.

이 세상에 그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니, 그건 이 늙은이로서는 좀 섭섭한 표현인걸?”

오거스틴은 뒷짐을 쥔 채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병사들은 톡 치면 영혼이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대부분이 입술을 쩍 벌렸지만, 비명은 지르지 못했다.

단순히 말문이 막혀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호들갑을 떤다면. 소리를 지른다면, 저 인간 같지 않은 존재가 자신을 알아볼 것 같았다.

하얀 밤, 이 너머에 있는 미지의 존재가 자신부터 먼저 날름 집어삼키지 않을까.

그들 중 누구도 하얀 밤에서 벗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늦게 눈에 띈다면 살 희망이 있을 수도…!

“그러니 지금부터 특별히 보여주마.”

하지만 그건 단순히 그들만의 희망 사항일 뿐.

오거스틴은 적이 그런 섣부른 희망을 꿈꾸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 적으로 만난다면, 그 뿌리까지 짓밟아야 직성이 풀렸다.

“이 늙은이가 누구인지 말이다. 흘흘흘흘…!

그 순간.

번쩍!

하얀 밤의 사이사이로 수십, 수백 개의 실금이 횡대로 쭉 그어지더니, 위아래로 크게 활짝 벌어졌다. 그 너머에 있는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성곽 위에 있는 병사들을 찾았다.

그것‘들’이, 눈을 떴다.

* * *

오랜만이군, 저 광경도. 키키킥!

오거스틴이 기현상을 일으켰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휼의 사념이었다.

8할을 뜯어먹었는데도, 아직 저만큼이나 남아있단 말이지? 크크크. 역시 저건 사람이 아니야.

“8할?”

엘릭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그도 성곽을 거의 뒤덮다시피 한 하얀 장막과 그 너머에 있는 여러 ‘눈’들을 보았다.

수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오토 한과 겨울 6장으로부터 마법을 배운 엘릭조차도 처음 보는 기현상.

오거스틴의 한쪽 팔인 다크 엘프의 것과 연관이 있나 추측하는 게 전부였는데, 휼의 사념은 저것을 아주 잘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오거스틴을 거의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은 건 휼의 사념이 유일했다고 들었으니까.

키키킥! 저 늙은이가 말해주지 않았나 보지?

엘릭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휼의 사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자기 좋을 대로 떠들어댔다.

저걸 보고도 모르겠다면, 그 눈깔부터 바꿔라.

키키킥. 휼의 사념은 그렇게 웃어대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저건.

나와 같은 부류다.

엘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거스틴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녹야라는 학파는 원래 일반적인 학파와는 궤를 달리한다고. 세상에 수많은 금기가 존재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것들마저 전부 수용해버린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이 저런 걸 보여주시는 건 처음인데.’

엘릭은 오거스틴의 힘을 실제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오거스틴만이 아니었다.

비록 하얀 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원로들도 하나둘씩 마법을 전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휘휘휘…!

저들을 중심으로, 막강한 마력풍이 불어닥치는 게 보였다. 마력장이 뒤엉키고, 마력향이 강하게 풍겼다.

사실 이미 별의 종군은 원로원으로부터 널찍이 떨어진 상태였다.

자칫 마력풍에 휩쓸려 사달이 날 것을 대비해서였다.

“허…! 괴물들이 따로 없군. 대체 저런 것들을 품고 있던 네레스타는 대체 정체가 뭔가?”

헤르만이 헛웃음을 흘리며 션을 돌아봤다. 그 역시 황금사자를 쫓아 강해지는 것을 추구하면서 어느덧 다른 무도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여섯 개의 체인을 완성하기 직전까지 갔다지만, 원로원은 그런 그의 상식마저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션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검지로 볼을 긁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직계라지만 가문에 대해서는 사실 자신도 잘 몰랐으니까. 원로원도 가문이 품은 여러 비밀 중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니, 그 끝을 짐작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마 가문 내에서도 가문에 대해서 모든 걸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인 가이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이들의 공동전인이 되다시피 한 엘릭이 이제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엘릭은 그런 오거스틴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거스틴을 비롯한 원로원이 갑자기 저렇게 전면에 나선 이유.

전부다 엘릭의 부탁 때문이었다.

바스타드 소드와 붉은 성만큼은 ‘온전히’ 생포하고 싶다던 자신의 부탁.

저들을 인질로 삼아 적사자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여태 마법을 바로 전개하지 않고, 하얀 밤을 일으키면서 겁을 주었던 것도 전부 사기를 꺾기 위해서였을 뿐.

다행히 적의 동요도 어느 정도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곧 마법 폭격이 시작될 터였다.

“시작한다.”

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얀 밤에 걸쳐 만들어진 수많은 눈동자 앞으로 수많은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일제히 발동되려던 그때.

파아앗!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거스틴의 목덜미 쪽으로 섬광 하나가 날아들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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