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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32화 (231/405)

232화

아자젤

“하아… 하아…!”

엘릭은 숨을 크게 헐떡였다.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

이대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뒈지는 줄 알았네.”

아자젤에게 뇌벽의 세를 연거푸 먹였을 때. 사실 그는 이미 몇 번이나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가 무의식 세계의 법칙을 손에 쥐었다고는 해도, 뇌벽의 세를 구현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모든 심력을 쏟아부어야 겨우 하나를 구성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것.

그런 마법을 연달아 전개한 셈이니….

그래도 끝까지 버텼던 건, 아자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어떻게든 반격을 꾀할 준비를 하려 할 게 분명했으니.

“흐, 흐흐흐.”

하지만 다행히 아자젤은 완전히 붕괴한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그가 지배하고 있던 무의식 세계의 영역이 빠르게 엘릭에게 넘어오고 있었으니까.

보이지 않던 영역의 결까지 보인다는 게 그 증거였다.

더군다나.

‘마기가 있어.’

아자젤이 남긴 순수 마기가 허공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해치, 웠나…?”

그때, 미아도 한시름 놓았던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긴 했지만, 그녀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스토오오옵! 말 바꿔요, 당장!”

엘릭은 그런 미아에게 재빨리 비명을 질렀다.

미아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엘릭을 돌아봤다.

왜 그러느냐는 얼굴.

“뭘…?”

“조금 전에 한 말 바꾸라구요!”

“무슨 말? ‘해치웠나?’, 이거?”

“예! 그러니까요!”

“왜…?”

“원래 그런 말은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더 강해져서 다시 살아나는 클리셰라구요!”

“….”

미아는 순간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하나 갈등하는데.

“굳이 그런 게 아니어도 녀석은 되 살아난다.”

불쑥 미아 옆으로 메피스토가 불쑥 나타나 아래로 떨어졌다.

미아는 재빨리 그에게서 널찍이 떨어져 경계의 자세를 갖췄다.

아자젤과 같이 맞서 싸웠다지만, 그녀에게 있어 메피스토는 원래 아자젤과 크게 다를 게 없던 적.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별반 개의치 않는다는 투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격전을 벌였기 때문인지, 여전히 그에게서는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사나운 기질이 계속 휘몰아치고 있었다.

“되살아난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반면에 엘릭은 ‘이 양반이 또 똥폼 잡네’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메피스토를 돌아봤다.

“말 그대로다. 대마왕에게 ‘죽음’이라는 게 있을 것 같나?”

엘릭은 그제야 그 말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리가 있는 한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릭은 또 그런 괴물을 상대해야 하냐는 얼굴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메피스토의 말이 모두 맞았다.

애당초 천년도 전에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아자젤의 부활은 모두 그리고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부활할 기미가 없었던 건 봉인된 메피스토 정도였고….’

엘릭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렸다.

“결국 제대로 아자젤을 해치우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겠네요.”

그러면서 손가락 하나를 꼽았다.

“아예 후대의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하게 완전히 봉인을 해버리던가, 아니면….”

엘릭의 깊어진 두 눈이 메피스토에게로 향했다.

메피스토는 한쪽 입술 끝을 말아 올리고 있었다.

“메피한테 다 줘버리던가. 그렇죠?”

“대마왕을 잡아먹을 수 있는 건 같은 대마왕밖에는 없으니까.”

“흠.”

메피스토의 입술 끝이 더 크게 올라갔다.

“그러니 저것을 어서 본왕에게 다오. 본왕이 가져간다면, 아무리 아자젤 놈이 부활한다고 해도 저만큼 힘의 총량이 깎인 채로 돌아올 수밖에 없느니라.”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아자젤의 마기를 가리키는 메피스토의 눈가에 희열이 번뜩였다.

“놈의 입장에서는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할 테니, 어떻게든 앙갚음을 하려 들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본왕이 아자젤 놈의 힘을 가진다면, 충분히 파훼할 방법이 생길…!”

“헛소리.”

그때, 미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메피스토의 말허리를 끊었다.

메피스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으며 그쪽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아는 담담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귀담아듣지 마, 엘릭. 저자의 말은 지금 본질을 흐리고 있어.”

“본왕이 지금 너의 가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이질 않느냐? 노비 출신이라 그런가, 예의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구나. 미아 발렌타인.”

노비 출신.

그 말에 미아의 눈에서 순간 불똥이 튀었지만, 이를 악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대마왕을 잡아먹을 수 있는 건 분명히 대마왕이 맞아. 하지만 그만큼 강해지게 된 대마왕은 절대 쉽게 잡을 수가 없어지게 돼. 마신에 가까워지게 되는…!”

“지금 본왕이 너의 가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라고 하였을 텐데?”

고오오오-

메피스토에게서 풍겨 나온 기도가 사방을 휩쓸었다.

미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짜부라뜨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무의식 세계를 뒤덮었다.

짙은 어둠이 깔린 자리.

메피스토의 두 눈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흉흉하게 빛났다.

“본왕이 메르빙거와 부딪치던 시절에도, 사석에서만큼은 오토 한도 본왕에게 예의를 갖췄었노라. 한데, 당시에는 합석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가신들 따위가 감히 본왕의 말에 훼방을 놓는 것이냐?”

미아가 재빨리 마법 수식을 발동해서 메피스토의 압박을 빗겨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마법진은 허공에 맺히다 말고 족족 파훼 되었다.

메피스토가 주는 압박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2라운드라도 해보자는 건가?”

“이건 좀 치우지?”

“좀 쉬나 싶었는데. 또 고생하게 생겼군.”

더 이상 메피스토를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미아의 옆으로 나하트람, 체페슈, 다미르가 나란히 섰다.

덕분에 메피스토의 마기 중 상당수가 옆으로 빗겨날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메피스토의 냉소는 더 짙어질 뿐이었다.

“‘하르간’과 ‘숀’도 없는 주제에 너희들만으로 본왕을 막아보겠다고?”

메피스토가 언급한 두 사람은 겨울 6장 중에서도 최강을 다툰다는 존재들이었다.

오토 한이 가주로 있던 시절, 실질적으로 그의 양팔이라 할 수 있었던 이들.

하지만 그들은 엘릭을 인정하면서도 내심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네 사람만으로 메피스토를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아자젤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전부 메피스토가 있었던 덕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래서, 뭐?”

네 사람은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는 투였다.

오히려 다시 싸워야 한다면 얼마든지 싸워보겠다는 투.

애당초 이깟 압박으로 꿇릴 것 같았으면, 그들을 일컬어 메르빙거의 가신이라 할 수도 없었다.

메피스토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곧 활짝 펼쳐진 손바닥 위에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르륵!

마치 지옥을 따라 흐른다는 유황불을 끄집어 올리기라도 한 듯,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기어코 벌주를 마시겠다면 본왕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그렇게 다시 충돌하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미아, 나하트람, 다미르, 체페슈.”

여태 생각에 잠겨 있던 엘릭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네 가신의 시선이 엘릭에게로 돌아갔다.

엘릭은 어느새 장난기를 싹 씻은 얼굴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얼굴.

어쩐지 오토 한을 떠올리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물러나십시오.”

“하지만…!”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

“….”

네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번은 메피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저와 메피가 협상을 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발언권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네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번처럼 이번에도 저를 아직 믿지 못하겠다고, 메르빙거의 가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시겠다면 그냥 이곳에서 방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죠. 다시는 부를 일이 없을 겁니다.”

엘릭은 강요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을 새로운 가주로 인정할 건지 말 건지를.

인정할 것이라면 물러나되,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도 더 이상 옛 가신으로 대우를 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네 사람은 엘릭의 저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토 한도 그러했지만, 메르빙거의 역대 가주들은 자신들이 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지키는 편이었다.

그래서야 겨우 천 년 만에 바깥세상의 바람을 쐬게 된 마당에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저마다 한 가지씩 소망이 있었다.

자신들의 기예를 물려줄 수 있는 후임을 찾는 것.

살아생전에는 가문을 일으키는 데에만 골몰했던 나머지 후계자를 제대로 양성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있다고 해도, 흔적이 제대로 남아있지도 않거나.

여하튼.

이런 와중에 더 버틴다는 건 엘릭의 자존심만 뭉개는 일일 뿐.

시조 마법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이제 시조의 후계나 다름없는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으니.

결국 네 사람은 차례로 물러나고 말았다.

미아만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이제 메피도 그거 거두시죠?”

“흥.”

메피스토는 엘릭의 말에 손을 가볍게 털었다.

마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줄 것이냐, 말 것이냐?”

“약속은 약속이니 드리죠.”

“흐흐. 네가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할 줄은 몰랐…!”

“그보다 이제 슬슬 좀 가르쳐주시죠?”

“뭘?”

“원죄의 인장. 사용법.”

메피스토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가, 엘릭의 시선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걸 알면 본왕이 진즉에 알아서 네놈에게서 떨어질 방법을 찾아봤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느냐?”

“당연히 해봤죠.”

메피스토가 뚱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힘들다? 마정석이 내 소유니까?”

“대체 누가 걸어놓은 건지는 몰라도, 네가 차고 있는 목걸이에 걸린 마법은 지독해도 너무 지독하다. 네놈이 본왕의 인장을 사용하는 방법도, 결국 그 마법에 있다는 뜻이겠지.”

메피스토는 지긋지긋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제대로 사용해보고 싶다면, 본왕의 수준까지 빨리 올라오던가.”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엘릭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이번에 아자젤 레이드를 뛰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메피스토의 마법은 분명히 시조 마법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원죄의 인장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진 것이다.

그렇기에 엘릭은 뜻하지 않게 한 가지 단서를 더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원죄의 인장이 풀리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마정석의 결속이 아직 덜 풀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메피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원죄의 인장도 그만큼 기능을 되찾아. 그런다면.’

츠츠츠츠-

“자, 오너라!”

저 멀리. 어느새 허공으로 떠오른 메피스토가 아자젤의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인장의 트리거를 찾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지도.’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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