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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30화 (229/405)

230화

아자젤

쿠릉, 쿠르릉-

콰콰콰콰!

세계를 뒤덮은 어둠을 따라, 또 다른 어둠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면서 갈가리 찢겼다.

마치 천을 불로 활활 태우는 것 같은 광경.

끼아아아!

음산한 귀곡성이 퍼지면서 어둠의 종말을 고하는 것 같았다.

푸른 하늘이 겨우 다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시작이군.”

메피스토는 그 광경을 보면서 지겨워 죽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아아아-

어디선가 다시 검은 바람이 몰려오더니 와류를 그리면서 거대한 갈까마귀의 형상을 갖추었다.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날개를 지닌 갈까마귀.

“이젠 아주 귀찮을 지경이야.”

메피스토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그를 따라 휘감고 있는 뿔 달린 늑대의 형상도 똑같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벌써 저 빌어먹을 것과 부딪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좀처럼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곳이 현실 세계와 시간이 전혀 다르게 흐르는 만큼, 구태여 기간을 짐작해 보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점이 있어야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지, 이렇게 끝도 없이 재생을 반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뭐지? 벌써 끝인가, 그럼 너무 실망인데?”

흐흐흐….

갈까마귀가 눈동자를 붉게 빛내면서 부리를 열었다. 음산한 목소리가 잔뜩 퍼져 나왔다.

광기에 잔뜩 젖은 목소리였다.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끄집어낸다고 했던 건, 네가 아니었나?”

아자젤의 웃음소리에 메피스토는 다시 인상을 구겨야만 했다.

사실 그와 아자젤의 싸움은 거의 백중세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들의 성격은 정반대였을지언정, 결국 둘 모두 마신이 총애한 대마왕이었던 건 사실이었고.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힘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었기에 승부도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다.

하지만 현재 둘 사이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메피스토는 엘릭에게 기생하고 있는 반면에, 아자젤은 엘릭의 무의식 세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것.

둘의 차이는 아주 컸다.

이 세계가 전부 아자젤에게 있어서는 마역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으니.

이곳에서 그는 무한하게 부활과 재생을 반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능력만 따지면 백중세를 이룬다고는 해도, 상처를 입으면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는 메피스토와 다르게, 아자젤은 언제든 새로운 육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차이가 컸다.

그것이 바로 시간이 지날수록 메피스토가 계속 밀리고, 아자젤이 점점 승기를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메피스토를 엄호하면서 아자젤을 압박하려는 나하트람, 체페슈, 다미르도 마찬가지.

“정말이지, 끝도 없군. 이런 건 밖에서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인데.”

“이만큼 찢어놨으면 정신력이라도 소모되어야 하잖아? 대체 왜 그런 것도 없는 거지?”

“차라리 밖이라면 신성력이라도 먹여서 강제 정화라도 시도할 텐데. 흠…!”

이대로는 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머릿속에 공통으로 든 생각이었다.

아자젤이 그들을 보면서 한껏 비웃었다.

“말하지 않았나. 너희들은 이 몸을 잡을 수 없노라고. 그러니 순순히 내게 먹혀라. 쓸데없는 발버둥 따위는 그만 치고!”

쉬쉬쉬쉭!

다시 한번 더 까마귀의 깃털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세 가신도 거기에 맞춰서 다시 주문을 영창하는 가운데.

‘이것까지 꺼내야 하나?’

메피스토는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이.

그라고 해서 아자젤처럼 숨기고 있던 패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애당초 여기서 꺼내려던 것이 아니었다.

보다 더 먼 미래.

힘을 모두 되찾고 난 뒤에 있을 시기에 꺼낼 생각이었지만, 만약 여기서 보이게 된다면 정작 그때 가서는 비장의 한 수로써는 더 이상 쓸모가 없을 터였다.

‘조금만 더 지켜봐야 하나…?’

그러면서 메피스토는 뒤를 슬쩍 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저 멀리, 엘릭이 여전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 * *

퍼걱!

분명히 주변에는 이렇다 하게 부서진 게 아무것도 없건만.

엘릭의 주변에서는 그런 소리가 났다.

미간에 살짝 골이 팼다. 뺨을 따라 식은땀도 흘러내렸다.

“끊어졌어. 다시.”

하지만 옆에 있던 미아는 무뚝뚝하게 다시 시도하라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엘릭도 다시 의식을 내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심상 세계와의 연결.

이 작업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에 집중해. 아귀감이라고 했지? 그걸 계속 넓게 펼쳐봐.”

미아는 계속 엘릭에게 머릿속에서 심상 풍경을 그려낼 것을 주문했다.

감각으로 포착해낸 모든 것들을 구체화하여 바깥 세계와 똑같이 만들라고.

그래야만 심상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서 말이다.

몇 번을 시도해본 끝에 어느 정도는 성공해낼 수 있었다.

겨울 6장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메피스토가 내뿜는 마기의 잔향이 맡아졌다. 대지의 떨림이 전해졌고, 하늘을 뒤덮는 광기가 느껴졌다.

들끓는 광기. 모든 것을 잡아먹을 것만 같은 광기였다.

덕분에 엘릭이 그려내는 심상 풍경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얼추 그럴듯한 모양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철컥.

그런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심상 풍경과 무의식 세계의 일부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였다.

마치 작은 톱니바퀴와 커다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린 것처럼. 첫 결합을 이뤄낸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심상 풍경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처음에는 100미터, 그 다음에는 200미터, 또 그 다음에는 400미터대 로….

문제는 바로 이때 생겼다.

범위가 확장될수록 심상 풍경이 점차 옅어진다 싶더니, 곧 무의식 세계와의 연결도 같이 끊어졌다.

“지금 워낙에 주변 광경이 혼란스럽게 변해서 그런 거야. 차분하게, 최대한 천천히. 네 것을 되찾아간다는 생각으로.”

엘릭은 미아의 주문대로 숨을 크게 내쉬면서 어떻게든 침착함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내 것을 되찾는다는 생각으로….’

엘릭은 다시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지난 시간 동안, 여러 번의 훈련 끝에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아귀감이 다시 넓게 주변부로 확장되었다.

예전에는 주변 지형과 기척을 포착하는 게 전부였다면, 아귀감은 이제 모든 감각을 하나로 엮어서 머릿속에다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육감의 영역에 다다른 것이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세상.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육안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상세하게 보였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나가니 모든 의식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찰칵!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좋아. 지금 네가 잡고 있는 게, 네가 설정한 권역(權域)이야.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껴봐. 네 앞에 있는 것처럼.”

항상 실패했던 구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권역 통제.

미아는 그렇게 불렀다. 설정한 권역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심상 풍경을 계속 또렷하게 그려나간다면, 그것이 완전히 자신의 손에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무의식 세계를 감싸는 ‘축’을 돌리면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엘릭은 유달리 이 부분이 가장 이상했다.

느끼라고?

이것보다 더?

하지만 엘릭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미아는 ‘그려낸다’는 느낌으로 무의식 세계를 완전히 장악한 것 같았지만, 엘릭은 그런 표현이 너무 두루뭉술해서 좀처럼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쪽을 선호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를 ‘만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분명히 나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텐데….’

엘릭의 생각이 깊어졌다.

‘뭘까?’

엘릭은 자신과 미아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았다.

아니, 타인과 구별되는 차별성을 떠올려봤다.

남들은 보지 못하지만 자신은 볼 수 있고, 남들은 만질 수 없지만 자신은 만질 수 있는 것.

혹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것.

‘결.’

엘릭의 머릿속에 벼락이 튀는 것 같았다.

‘심안. 그게 있었어.’

엘릭은 그동안 아귀감과 어렴풋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눈을 감고 있어서 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기술을 떠올렸다.

왜 미처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심안은 근본을 꿰뚫어 보는 눈. 그렇다면 무의식 세계의 근본도 꿰뚫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귀감을 통해 그려낸 심상 풍경을, 심안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속에 가려진 뭔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억지로 아귀감의 영역을 넓히지 않아도 되었다.

다행히.

엘릭은 이제 심안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타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고.

그 감각을 고스란히 가져와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심상 풍경에서 열어보려 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손쉽게 해낼 수 있었다.

철컥-

그리고 그 순간, 조금 전 보다 더 깊숙하게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미아는 설명을 하다 말고, 갑자기 엘릭을 따라 감도는 새로운 분위기에 눈을 크게 떴다.

엘릭을 거부하는 것처럼 겉돌기만 하던 세상이… 엘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고오오오-

무의식 세계와의 접촉이 더 긴밀하게 이뤄진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미아로서는 엘릭이 아직 심상 풍경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그그극-

맞물린 톱니바퀴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이 다음 과정을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의 법칙이 엘릭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버, 법칙이 네 손바닥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심상 풍경이 네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서 블록을 쌓는 것처럼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 조금씩 조작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미아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다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아니. 블록이 아니라 실타래를 감듯이.’

엘릭은 이미 그녀의 주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동안 진전이 없었던 것은 오로지 미아의 말만을 따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자신이 배운 마법 체계의 대부분이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설명이 전부 올바르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재 엘릭의 마법은 언령이었고, 구동 방식도 기존의 가전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원래대로라면 결을 뭉쳐서 마력장으로 형성했다면, 지금은 이것을 만져서 잡아끌고….’

엘릭은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결 한 가닥이 손끝에 걸렸다.

원래대로라면 볼 수는 있어도 잡을 수는 없었던 거지만, 이제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귀감의 감각이 또렷해지면서 생긴 결과.

미아의 훈련법이 완전히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엘릭은 손끝에 걸린 결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결도 자연스럽게 풀려나오면서 엘릭의 손에 돌돌 말렸다.

그 끝은 저 멀리, 아자젤이 장악한 검은 하늘까지 닿아있었다.

‘이것을 어떡한다?’

엘릭은 자신의 손에 뭉쳐진 결의 실타래가 미아가 누누이 말하던 무의식 세계의 ‘법칙’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어권이 손에 잡힌 것이니, 이것을 다루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었다.

‘마력장으로 쓸 수 있다면.’

엘릭은 그 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그러니 그것을 감… 너, 눈을 뜨면 어떡…?”

미아는 엘릭이 다시 실패했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엘릭이 제어권의 일부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엘릭은 여전히 손에 잡혀 있는 이것을 어떻게 다룰까 고민하다가, 아자젤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처음으로 한 방 먹일 기회가 생겼는데, 이왕이면 녀석이 넌더리가 날 만한 것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딱 쓰기에 알맞은 것이 있었다.

뇌벽의 세.

바로 시조 마법이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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