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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28화 (227/405)

228화

아자젤

“그보다… 대마왕이라니.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란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그게 이런 곳일 줄이야. 크크크.”

체페슈는 전체적으로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깡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뒤집어쓰고 있는 로브의 뒤쪽에는 해골 문양이 떡 하니 박혀 있었으니.

음험한 기세까지 흘리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시대는 물론, 과거에도 흑마술은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건만.

정작 그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아니, 오히려 체페슈는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한 눈치였다.

마기인지, 마력인지도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을 기세를 마구잡이로 흩뿌리기까지 해댔으니!

그럴수록 로브에 그려진 해골 문양이 더 화려하게 타올랐다.

“우리 후손이지만 참으로 골 때리는 분이시란 말이지. 누군가와 똑같아. 아주.”

중얼거리는 체페슈의 말투에는 어쩐지 짙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체페슈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허공에 높이 들어 올렸다.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원숭이의 것인지는 몰라도 아주 자그마한 두개골이 손에 잡혀 있었다.

“【나의 아이들이여, 일어나라】!”

체페슈의 시동어는 언령이나 진언에 가까우면서도, 그와는 조금 상이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언령 마법이 단순히 언어 속에 담긴 개념만으로 마나 스트림을 비튼다면, 그의 시동어는 강제로 의지를 쑤셔 넣는 느낌이었다.

쿠쿠쿠…!

체페슈의 옆으로 마방진이 크게 내려앉더니, 곧 지면이 크게 떨리면서 땅거죽을 뚫고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인이었다.

해골로 만들어진 거인.

장장 십여 미터는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 거구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대기가 사방으로 떠밀려 나는 게 육안으로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크오오오!

해골 거인이 하늘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양손에 들린 거대한 도끼와 검이 파르르 떨렸다.

“저건…!”

엘릭은 난생처음 보는 스켈레톤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 역시 금술(禁術)로 지정되었던 강체술에 직접 손을 댔을 정도로, 딱히 금술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바.

그렇기에 흑마술에 깊게 심취하지는 않았어도,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다.

권능 ‘북풍’을 손에 넣었을 때 버벅거리지 않고 비교적 잘 다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연코 그들이 부리는 언데드 중에 저런 종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흔히 스켈레톤이나 구울, 좀비 따위를 부리는 것이 고작일 뿐.

그나마 실력 좋은 자들이 리치를 부리기도 한다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인 경우가 많았다.

학문이 익히기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언데드를 소환하는 것 자체는 쉬운 데 반해 그들을 다루는 것은 무척 힘들기 때문이었다.

스켈레톤 따위의 저급 언데드만 하더라도, 죽은 자의 사념이 조금씩 남아 있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동성을 가지고 있건만.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와 자아가 훨씬 더 강한 리치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흑마법사가 닿을 수 있는 결말은 두 가지였다.

언데드들을 제어하다가 자신도 함께 미쳐버려 결국 자멸하거나.

혹은 언데드에게 속아 잡아먹히거나.

대부분 불운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리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가 없어.’

체페슈가 부리는 흑마술은 아예 그런 수준을 벗어난 것 같았다.

쿵!

쿵!

해골 거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지가 흔들렸다. 불어오던 바람이 녀석의 뼈대에 부딪혔다가 곳곳으로 흩어졌다.

살아생전에 이 땅에서 사라졌다던 거인이기라도 했던 걸까?

대충 감지되는 기세만 하더라도 마왕 급은 될 것 같았다.

‘아니. 달라. 거인족은 아니야.’

전체적인 체격이 거인과 비슷하되, 달랐다.

보다 음험하고 원시적인 것 같은….

“체페슈는 원래 뛰어난 소환술사야. 주로 자신과 계약을 맺은 괴물을 부리는데, 대게 마해(魔海)에서 끄집어 올린 것들이지.”

미아는 체페슈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볍게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엘릭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해? 그게 뭡니까?”

“아, 넌 모르겠구나. 그냥 우리가 붙였던 이름이었으니. 보통 사람들이면 잘 찾지 않기도 할 테고.”

“…?”

“흑의 설원. 아주 깊숙한 곳. 3천(泉)이나 4천쯤 되는 곳들을, 우리가 가리키는 은어라고 생각해.”

“흐, 흑의 설원을, 그렇게 깊게 들어 가셨었다구요?”

엘릭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안배 때문에 흑의 설원을 직접 다녀왔던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수인족이 살던 1천만 하더라도 동장군이 머물며 사시사철 험난한 환경을 자랑했건만.

그것을 넘어 더 깊숙한 곳까지 갔다고?

‘잠깐. 3천이면….’

엘릭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다급히 미아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악마수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

쿠쿠쿠쿵!

크어어…!

엘릭과 미아의 대화가 길어지기도 전에. 갑자기 해골 거인이 앞으로 잘 걷다 말고 뒤로 거칠게 밀려나고 말았다.

치이이이-

마기가 작렬한 해골 거인의 가슴팍에서부터 짙은 수증기가 활활 피어올랐다.

어느새 아자젤이 이쪽의 상황을 깨닫고 손을 쓴 것이다.

“하, 하하하! 그동안 이 몸을 귀찮게만 굴던 날파리들이 한꺼번에 나타났구나. 메르빙거, 메르빙거! 오늘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전부 먹어 치워주마…!”

아자젤은 드높은 상공에서 이쪽을 보며 흉측하게 웃었다.

아주 즐거워 죽겠다는 듯.

그로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앙숙이나 다름없었던 메피스토를 앞에 두고, 여기다 원한 관계가 깊게 남아 있던 메르빙거의 수족들까지 한꺼번에 만난 셈이었으니!

엘릭을 그릇으로 점지한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엘릭은 물론, 저들까지 한꺼번에 집어삼켜 양분으로 삼을 기회인 것이었다.

그런다면 과거의 힘을 금방 되찾는 것은 물론, 오히려 그 너머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는 셈이니.

당연히 저절로 흥분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를 둘러싼 거대한 갈까마귀도 기쁨에 찬 괴성을 질러대면서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하늘이 금세 새카만 어둠으로 뒤덮이는가 싶더니.

쉬쉬쉬쉭-

갑자기 길쭉하고 까만 섬광 같은 것들이 소낙비처럼 빗발치기 시작했다.

까마귀의 깃털로 보이는 그것은 닿는 모든 것들을 부수고, 증발시켰다.

바위에 부딪히면 깊은 구멍을 뚫었고, 절벽에 부딪히면 절벽을 그대로 무너뜨렸다. 대지는 그대로 녹여버릴 정도로 짙은 산성을 품고 있었다.

무차별적인 폭격인 것이다.

여태껏 엘릭이 상대했던 마기 폭풍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보니, 공격을 시도하려던 겨울 6장으로서도 당장은 수비 태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크어엉!

해골 거인은 손에 쥐고 있던 투박한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그러자 공간이 마구잡이로 찢기면서 강렬한 충격파가 쭉쭉 뻗어 나가 허공에서 깃털을 격추시켰다.

“저놈은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도 미친 듯이 날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그때, 여태 가만히 있던 다미르가 천천히 입을 뗐다.

여태 무슨 주문이라도 외웠던 건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뭔가를 웅얼거리기만 하던 그는 전신이 온통 시퍼런 휘광에 젖어 있었다.

성스럽다.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신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성인(聖人)들만이 뿜을 수 있다는 배광(背光)이 분명했다.

“다미르는 성기사였어. 그것도 아주 신실해서 교황까지 될 뻔했던.”

이번에도 미아의 설명이 덧붙었다.

엘릭은 다미르의 기운을 읽고 그가 어느 신을 모셨는지를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자애의 신입니까?”

“맞아.”

“…교단이 그냥 놓아주려 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자애의 신을 모시는 교단은 현재 가장 큰 성세를 구가하는 종교 집단 중 하나였다.

크기나 영향력만 두고 본다면 마탑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신교 동맹에서 그들은 무려 4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애의 신은 신명만큼이나 내세우는 교리 또한 민중 사이에 파고들기가 아주 쉬웠기 때문에, 천 년 전에는 오히려 더 큰 성세를 구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의 교황까지 지낼 뻔했다고?

실제로 엘릭이 느끼는 다미르의 힘만 하더라도, 자애의 신이 과거에 그를 얼마나 총애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저만한 거물이 메르빙거가 되었었다니.

엘릭으로서는 저절로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개인적인 사정은 있으니까.”

“….”

미아가 쓰게 웃으면서 내뱉는 말에 엘릭도 더 이상 깊게 묻지는 않았다.

대신에 어느새 해골 거인의 옆에 붙어 하늘로 떠오르는 다미르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의 등에는 어느새 천사를 연상케 하는 순백색의 날개가 달려 있었으니.

마치 단신으로 마왕의 소굴을 향해 뛰어드는 전설 속 용사를 보는 것 같았다.

비록 그가 아자젤까지 금세 닿을 수 있도록, 해골 거인이 뒤에서 연거푸 까마귀의 깃털을 제거해주고 있었지만.

성기사와 흑마법사.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조합은 너무나 잘 맞았다.

저렇게 같이 손발을 맞춰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란 뜻이었다.

체페슈와 다미르. 둘 모두가 오토 한과 함께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다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이들이었는가에 관한 정보까지 상세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엘릭으로서는 더더욱 놀라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신화 속의 전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눈 감아.”

엘릭은 미아가 시키는 대로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눈을 감았다.

저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자신은 심상 세계를 탈환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육체가 버티는데에도 시간적 한계가 있을 테니 어떻게든 그 안에 끝내야만 했다.

“의식을 집중해. 너를 둘러싼 이 모든 세계를 네 감각 안에 전부 담는다고 생각하고… 아니, 전부 담아. 그것이 1번이야.”

미아는 당대에 오토 한과 함께 최고의 자리를 구가했던 대마법사.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가전 마법들의 대부분에 그녀의 손길이 닿았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기도 하다.

그런 그녀로부터 직접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역시 기연이라고 할 만할 것이다.

“담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그려. 처음에는 결을 따라서 대체적인 뼈대부터. 그 위에 채색을 조금씩 더하는 거야. 심상 풍경을 ‘그려낸다’고 생각해.”

엘릭은 미아가 옆에서 속삭이는 대로 천천히 감각 속으로 자신을 녹여 내리기 시작했다.

* * *

“션아.”

“예. 작… 원로원주님.”

션은 자신을 부르는 오거스틴의 목소리에 재빨리 호칭을 변경하며 그쪽으로 돌아봤다.

현재 이곳은 더 이상 가문의 영역이 아니었다.

가문의 이름으로, 가문의 깃발을 앞세우면서 활동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평상시에도 예의를 갖춰야만 했다.

평소라면 그런 션의 모습을 기특하게 봤을 오거스틴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불어닥치기 시작한 강렬한 마기의 파장 때문이었다.

적사자가와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 그리고리의 마족들이 양지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이제 전장에서 마족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 그들이 감지한 마기는 그런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최소한 마왕 급이 아니고서야 풍길 수 없는 짙은 마기.

이 근방에…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찾았다!”

저 멀리서, 야수왕 길리티가 환희에 젖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제자 놈을 찾았단 말입니다, 형님!”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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