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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19화 (218/405)

219화

용아병단(龍牙兵團)

엘릭은 짜증 섞인 투로 한참을 씩씩대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그냥 아직 내 마법 실력이 못 미더우니까 그랬다고 말씀하시면 될 것을.”

엘릭은 뚱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사실 그는 단박에 우스던이 남긴 편지 속의 숨겨진 의미를 눈치챌 수 있었다.

우스던이 하나뿐인 손자가 상처 입는 게 싫어 그렇게 둘러 표현했다는 것을.

“그래도 걱정하셨던 ‘겨울’도 그렇게 잘 헤쳐나왔는데, 아무려면 다른 건 제대로 수습조차 못 할까 걱정하시는 건가?”

‘겨울’만 터득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엘릭은 마왕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

그러니 다른 사계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자부했지만, 우스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후에 있는 것들의 난이도가 그만큼 어렵다던가.’

엘릭은 마른 침을 삼켰다.

여하튼.

조부님이 자신의 기억에다 봉인을 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렇게 그가 남긴 편지를 만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봉인이 풀리지 않은 데에도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뭔가 조건을 더 충족해야 하는 걸까?’

혹은.

‘다른 사계에 괜히 신경을 분산시키지 말고,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면 우선은 그리고리를 퇴치하는 데만 전념하라는 의미이실 수도 있고.’

확실한 건 일단 주어진 숙제부터 해결해야 뭐든 길이 보이리란 것이었다.

엘릭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양피지를 회수하고, 천천히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우스던이 창천의 신과 계약을 맺고, 별의 점지를 좇아 복구했다는 시조의 마법.

그중 첫 번째로 기술된 것은.

<용아병(龍牙兵)의 술(術).>

‘용아병의… 술?’

엘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대체 뭘까?

<이 책자를 네가 손에 넣었을 때쯤이면 보르푸르 족의 수호룡과 만났거나, 혹은 만나기 직전일 테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 현재 우리 가문은 물론, 전 인류를 통틀어 용과 관련된 마법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네가 용혈을 다스리는데도 상당한 착오가 있을 테니. 그런 용혈을 다스리는 법을 남긴다.

‘용아병의 술’은 용이 자신의 몸을 일부 떼어다 구성했다는 병사를 기르는 방법으로서….>

용아병의 술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분류되었다.

하나는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반응하기 일쑤인 용혈을 통제하는 방법을.

다른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고대의 용아병처럼 강인한 전사로 거듭날 방법을 다루고 있었다.

엘릭이 수호룡으로부터 어렴풋이 지식을 전달받긴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들.

엘릭이 당장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우스던은 어떻게 한 것인지, 그런 실전된 마법들을 습득하고 해석했던 모양이었다.

과연 대마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답다고 해야 할까?

엘릭은 그가 가진 방대한 지식의 양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거… 나뿐만 아니라, 별의 종군에도 큰 도움이 되겠는데?’

그리고 엘릭은 여기서 단박에 용아병의 술이 가진 가치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수호룡이 남긴 유언에 따라, 그의 살점은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비늘은 병장기와 방어구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용아병의 술을 적잖게 활용한다면, 별의 종군도 단박에 무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이라면 억지로 흡수하다시피 한 프란츠와 쿠란시빌 군도 완전히 내 쪽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들이 아무리 엘릭에게 불만을 품는다고 해도, 더 맛있는 당근을 제시한다면 넘어올 수밖에 없을 테니.

물론, 배신하는 이가 나올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사람은 가려야겠지만.

엘릭은 아예 책을 붙잡고 자리에 주저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당장 실전에서 써먹어야 하니, 여기서 기본적인 개념이라도 터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네 조부라는 사람 말이다.』

그러다 엘릭은 책에 집중해 있다 말고, 메피스토가 불쑥 꺼낸 말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

『어떤 사람이었느냐.』

“갑자기 그건 왜요?”

『말이 안 돼서.』

“음?”

엘릭은 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이 진지해도 너무 진지했으니까.

『이만한 지식 체계를 이 정도 수준으로 복구하고, 재해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토 한, 그놈이 돌아온다고 해도 가능한 수준이 아니란 뜻이다.』

“….”

『대체 뭐냐, 이 자는?』

엘릭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자신의 조부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으니까.

대마왕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가문의 중시조로 평가받는 오토 한에 비견될 정도라니.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가슴에 깊숙하게 박혔다.

『이 시대에도 이만한 자가 있었다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너의 조부는.』

메피스토의 목소리에 어린 감정은 감탄이었다.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좋았겠군.』

메피스토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이만한 자라면 능히 본 왕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즉. 그 지식의 한계가, 또 힘의 끝이 어디인지 아주 궁금해지는구나.』

잔뜩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유독 짙게 빛났다.

메피스토는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젠가 황금사자에 대해서 들었을 때 보였던 것과 똑같은 모습.

“메피.”

『왜? 본 왕이 네 조부를 인정해주니 감격이라도 하였느냐? 그럴 필요 없다. 본 왕은 본디 적이라 하여도 뛰어난 인물에게는 그에 합당한 가치와 칭찬을 매기기를 꺼리지 않던…!』

“저 공부 좀 하게 조용히 해주세요.”

『…너란 놈은 정말이지 어여삐 보려야 어여쁘게 볼 수가 없구나!』

“남자한테 어여삐 보여서 뭣 하려고.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흥! 여자가 주는 예쁨은 받을 자신은 있고? 모태솔로 놈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여자 손도 못 잡아본 놈이!』

“있거든요?”

『유아 때는 빼라.』

“…지는 여자한테 차여서 천년 넘도록 질질 짜는 주제에.”

『그거 아니라고 해도!』

엘릭과 메피스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참 동안 투닥거렸다.

그러다 엘릭은 계속 이러고 있다간 정말 시간을 다 잡아먹겠다 싶어 마저 보던 것을 후다닥 다 끝내고, 다음 챕터로 넘어갔다.

당장 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책자에 서술된 마법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만 체크해 둘 요량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폭멸천지탄.」

“…?”

대체 이 어렵기 짝이 없는 이름은 또 무엇인지.

이름만 봐서는 어떤 마법인지 좀처럼 짐작도 가지 않았다.

「순수 마력을 응집시켜 단박에 폭발시키는 마법이다. 비상시에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엘릭은 흥미롭다는 얼굴이 되었다.

폭발 마법이라?

엘릭만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마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아주 많았다.

그래도 시조께서 쓰셨다는 마법이라고 하니 구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위력적인 걸까?

그런 부푼 마음을 안고 다시 한참 살폈다.

그러다.

“….”

갑자기 엘릭의 미간이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만난 것처럼.

그러다 폭멸천지탄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이거.’

엘릭은 인상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책자에서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마족의 인장이… 있어야 하잖아?’

* * *

용아병의 술만이 아니었다.

「뇌벽의 세.」

「군신의 가호.」

뇌벽의 세는 공중에서부터 뇌전을 다발로 터뜨려서 지상에 있는 적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기술이고.

군신의 가호는 백병전에 참여하는 본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전부 힘을 실어주는 군중 제어 마법이었다.

딱 보기에도 하나같이 엘릭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게 분명한 마법들이었지만.

‘당장 구사할 수가 없어.’

함정이 있었다.

용아병의 술을 제외한 나머지 세 마법 모두가 구사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필요했다.

‘용아병의 술이야 용혈이 있어야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것들은 대체 왜…?’

엘릭으로서는 속이 갑갑해질 노릇이었다.

차라리 구사하기에 마력이 부족하다거나, 구성 방식을 아직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룰 수가 없다면 납득이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마족의 인장이 없어서 구사할 수가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 걸까?

‘폭멸천지탄은 마기를 증폭시킬 수 있는 종류의 인장이 있어야만 다룰 수 있어. 뇌벽의 세는 뇌기와 관련된 상위 등급의 인장이 있어야 하고…. 군신의 가호는 버프 계통의 인장을 여러 개 조합해야 하나?’

혹시 이것들만 그런 건가 싶어 다른 마법들도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책자에 수록된 마법들은 이 네 가지가 전부.

‘폭멸천지탄은 유명의 인장과 흉살의 인장으로도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어. 하지만 다른 것들은 대체….’

엘릭은 많은 부분에 있어 혼란스러웠다.

시조가 직접 창안하고 사용하셨다던 마법들. 그런데 그 기본 조건이 인장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이상할 것도 없어. 결국 오토 한의 마법과 권능들도 동계의 인장을 완성해야만 쓸 수 있었으니.’

어쩌면 마족의 인장을 흡수해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개념은 단순히 빠른 성장만을 위한 방식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추측했던 대로, 어쩌면 시조와 마족 간에는 짙은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관계가….

‘그보다 여기에 필요한 인장들을 어디서 구한다?’

인장을 조합해야만 구사할 수 있는 마법들.

그렇다고 해서 이 뛰어난 마법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엘릭은 이 조합식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수식을 계산하면서 언젠가 가문의 서고에서 보았던 마족의 계보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어느 인장과 어느 인장을 조합해야만 뇌벽의 세와 군신의 가호를 완성시킬 수 있을지를 가늠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뇌벽의 세: 뇌기(혹은 뇌전과 같은 뇌雷 속성) 계통 + 중압의 인장.

-군신의 가호: 드래곤 피어 + 속성 변환 계통 + 백병(白兵) 계통 + 전염의 인장.

뇌벽의 세는 뇌기 계통의 마법에 중력을 다루는 중압의 인장이 있으면 쓸 수 있었다.

‘뇌기를 최대의 한도로 압축시켰다가 해제한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자랑할 테니까. 그리고 그걸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원하는 지역에만 떨어뜨릴 수도 있을 테고.’

군신의 가호는 조금 더 까다로웠다.

사기를 끌어 올릴 때 쓰일 인장이야 드래곤 피어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이것이 아군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도록 속성을 변환시키고, 또 넓게 퍼질 수 있게 만드는 인장들은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당장 수용할 수 있는 인장의 개수에도 한계가 있고. 머리를 잘 굴려야겠어.’

여태 인장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었던 만큼, 대부분 마기로 분해하여 휼의 사념체에게 던져주거나 메피스토의 힘을 복원하는 데에 사용했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엘릭은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우스던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들어맞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남긴 시조의 마법들을 사용할 만한 방법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마왕들. 그리고리의 마왕들을 잡으면 남은 두 개도 어느 정도 완성될 것도 같은데.’

마침 레다를 잡아서 획득한 유명의 인장과 흉살의 인장을 섞으니 폭멸천지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남은 마왕들을 더 적극적으로 사냥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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