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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16화 (215/405)

216화

용아병단(龍牙兵團)

“이런다고 해서 너희들이 감히 나를 감당할 수나 있을 것 같으냐! 【휩쓸리는 광풍】!”

캘리거 백작은 배반자들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는 듯, 메모라이즈 해뒀던 마법을 전개했다.

그의 두 눈은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도구! 마도구 들어!”

“【매직 캔슬링】!”

“【캔슬】! 【캔슬】!”

“【항거의 힘】!”

캘리거 백작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가신들은 미리 준비해뒀던 마도구를 허겁지겁 꺼내 어떻게든 마법 발동을 취소시키려 했지만.

“【빗발치는 섬광】!”

캘리거 백작이 로브 자락에서 꺼낸 작은 스태프를 기울이며 새로운 마법을 발동한 순간, 죄다 널리 튕겨나야만 했다.

미니 스태프의 끝부분에 달려있던 수정구에서부터 노란 벼락이 채찍처럼 쏟아지면서 그들을 일제히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뇌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파괴적인 힘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는바.

거기다 ‘빛’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 속도는 육안으로 어떻게 쫓아볼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 때문에 가신들이 들고 있던 마도구는 마법을 발동하기도 전에 뇌기가 죄다 박살 내버렸고.

몇몇은 타고 있던 말과 함께 통째로 뇌기에 반 토막 난 채로 쓰러져야만 했다.

콰르르릉, 콰르르!

우르르르-

탄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지면 곳곳에는 벼락이 휩쓸고 지나간 충격으로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눈이 머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빛 때문에 말들이 놀라 투레질까지 해댔지만, 울음소리는 천둥에 가려져 들리지도 않았다.

“캘리거 백작을 죽…!”

하지만 가신들을 더 조급하게 만드는 점은 따로 있었다.

뇌기란 절대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튀어 오른 불씨가 다시 저들끼리 연결되면서 새로운 뇌전망(雷電網)을 형성하거나, 처음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력적인 새로운 벼락 줄기가 돌출할 수 있다는 것.

문제는 그러한 뇌기의 성질을 캘리거 백작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캘리거 백작은 원래 매사에 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많던 인물.

아무리 제 가신들을 믿고 아꼈다고 한들, 자신이 품고 있던 비장의 패까지 노출 시킬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우롱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콰콰콰콰!

미니 스태프를 안쪽으로 잡아당기니, 바닥에 남아있던 노란 불씨들이 다시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뇌전망이 형성되고 말았으니.

그나마 살아있던 가신들도 그 속에 갇혀 죄다 갈려 나가고 말았다.

방어 마법을 전개하거나, 결계를 구축해봐도 연속으로 빗발치는 뇌기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배, 백작님!”

“왜 저희들까지…!”

그 안에는 배반하지 않은 가신들도 더러 있었건만.

“너희들에게는 미안하구나.”

캘리거 백작은 독한 눈으로 그렇게 답변할 뿐이었다.

지금 사용한 이 힘은 어떻게 재주 좋게 피아를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신도 반대편에 설 것을. 그들도 원통함에 젖은 얼굴로 모두 죽어버렸다.

그리고.

쿠르르르…!

결국 모든 뇌기가 가라앉은 후.

자리에 온전히 서 있는 것은 캘리거 백작, 그뿐.

주변은 온통 초토화되어 새카만 그을음만 곳곳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퍼졌다.

“로데오! 정신 좀 차려보려무나, 로데오!”

캘리거 백작은 재빨리 아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 깨워봐도,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인 아들은 원통하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

캘리거 백작은 이를 악물면서 그런 로데오의 눈을 감겨주었다.

언제나 생각 없이 굴고 망나니처럼 행동했긴 해도,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이었다.

아이의 죽음은… 뱀처럼 차갑게 식은 심장을 가진 캘리거 백작에게도 아프기만 했다.

“너의 복수는… 이 아비가 어떻게든 해주마. 엘릭 메르빙거를 곧 네 길동무로 보내줄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려무나.”

캘리거 백작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엘릭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죽은 것도. 가문이 몰락한 것도. 전부 로데오가 엘릭을 북방에서 만나면서부터였다.

애당초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아니 엘릭이 지금까지 메르빙거의 수치로만 남아있었어도, 프란츠 백작가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것이고, 로데오는 자신의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엘릭의 잘못이었다.

그가 옛 시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메르빙거를 어떻게든 부활시키려 했기 때문에 아들과 가문이 다치게 된 것이다.

자신의 가신들이 이러한 멍청한 선택을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

그러니 언젠가는 벌하리라 분노를 곱씹으면서.

파아아아!

캘리거 백작은 로데오의 시체에 마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화르륵. 시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제대로 된 장례를 취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원통했지만, 그래도 메르빙거 일당에게 들켜 수치를 당하는 것보단 이게 백 배는 나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그의 두 눈은 다시 진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요란해도 너무 요란했다. 별의 종군도 이쪽을 발견했을 것이야. 서둘러야 한다.’

죽은 아들은 안타깝지만, 가슴에 묻어둬야만 한다. 지금은 살아남은 자신이라도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야 아들의 복수도, 가문의 재건도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세 개의 알. 그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부활할 자신이 있었다.

예로부터 용은 황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신수로 각광을 받아왔던 바.

하나는 황제에게, 또 하나는 4황자에게 바친다면 그들은 자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것이다.

그럼 자신은 하나 남은 알을 부화시켜 재기(再起)의 발판으로 삼으면 되었다.

‘아니. 4황자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냥 이참에 황태자 쪽으로 갈아타는 수도 있겠지.’

4황자에게 붙잡혀 있는 약점? 그따위는 이제 더 이상 고려할 대상도 아니었다. 이제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다행히 캘리거 백작에게는 아직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었다.

‘텔레포트 스크롤…. 어쩔 수 없지만 이것이라도 여기서 써야겠어.’

장거리 공간전이(空間轉移) 마법은 원래 좌표가 고정되어있는 게이트가 없으면 다들 사용하기를 꺼렸다.

물질계에서 좌표란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수식으로 계산해서 넣는 것은 상당한 수고가 드는 일이었다.

그마저도 계산을 마치고 나면 다시 좌표가 변동되어 불필요해질 때가 많았다.

더군다나 소모되는 마력량도 엄청나 이동 가능한 인구도 한두 명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캘리거 백작에게는 그런 장애들을 해소해줄 수 있는 마도구가 있었다.

비록 일회용에 불과하지만, 자신과 로데오를 제국으로까지 무사히 옮겨다 줄 스크롤이었다.

즉, 애당초 캘리거 백작도 가신들과 같이할 생각이 없었다는 뜻.

하지만 그래도 마법 발동을 위한 안전지대부터 확보하고 난 뒤에 로데오와 같이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스크롤이 그의 예상보다 일찍 발동되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기 전에 이것부터 넣어둬야겠지.’

공간 전이를 위해서는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해야만 했다.

캘리거 백작은 용의 알이 든 상자를 번쩍 들었다.

무게가 엄청났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이것을 보관할 방법이 있었다.

마법 보고(魔法寶庫), 인터레시아.

인터레시아는 아공간에 설정된 창고이다 보니, 공간전이 마법을 발동할 때에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

‘오랜만에 열어보는구나.’

화아악!

반지에다 마력을 불어넣자, 그 끝에 달린 보석이 화려하게 빛났다.

‘마도경식, 그것이 있어야 어떻게든 마지막 방을 열어볼 수 있었을 것인데. 이번에는 해내나 싶었던 것을 기어코 해내질 못하는구나.’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쩌저저적!

캘리거 백작 앞으로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공간이 열리려는 것이다.

그 순간.

까아악! 까악!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너무 시끄럽게 우는군. 재수 없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공간 쪽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는데.

‘…까마귀?’

찰나의 순간, 불현듯 머릿속으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엘릭에 대한 뒷조사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자유혁명군의 옛 간부, 야수왕 길리티 렌즈가 엘릭의 스승이 되었다던 내용.

당시에는 한때 제국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던 야수왕이 어째서 메르빙거의 수치 따위에게 관심을 기울이겠냐는 안일한 결론만 내리고 그냥 무시했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화르륵!

캘리거 백작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곧장 손끝에서 불덩이를 피워 까마귀 쪽으로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까마귀의 대응이 한 발 더 빨랐다.

쐐애애액-

까마귀가 어느새 검은 화살이 되어 캘리거 백작의 손가락을 자르고 지나간 것이다.

스걱!

“크아악! 감히…!”

콰아앙!

캘리거 백작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어떻게든 까마귀를 잡기 위해 불덩이를 터뜨렸지만, 까마귀는 이미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물고 하늘 높이 떠오른 뒤였다.

까아아악! 까악!

열리려던 인터레시아의 문이 다시 닫혔다. 까마귀가 하늘에서 승리를 자축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내 반지! 내놓지 못하겠느냐!”

캘리거 백작은 분노를 터뜨리면서도, 허겁지겁 품에서 미니 스태프를 꺼냈다.

이대로 반지를 뺏겼다가는 정말 큰일이었다.

그가 재기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용의 알뿐만 아니라, 인터레시아의 존재도 크게 한 몫을 차지했었으니까.

저곳에는 역대 메르빙거의 유산이 거의 다 담겨 있었다.

저것을 빼앗긴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가뜩이나 달리기 시작한 사자나 마찬가지인 메르빙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될 테니까!

파지지직!

콰르르릉-

잔뜩 응축된 뇌기가 방출되었다.

가신들을 단박에 휩쓸었을 때와는 달리, 여러 줄기로 나뉘어있던 뇌기를 한 줄기로 합쳤다. 까마귀를 서둘러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다간 자칫 반지도 상할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급한 나머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캘리거 백작의 의도와는 달리, 세상을 쪼개버릴 것처럼 위협적으로 내려치던 뇌기는 까마귀에 닿지도 못했다.

파라라락!

별안간 까마귀가 허공에서 몸을 크게 뒤틀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실타래처럼 풀리다가 한순간 황금색으로 변했으니.

그 속에서부터 엘릭이 나타났다.

금발을 흩트리고, 백색 로브를 휘날리면서.

그는 차갑게 웃고 있던 그대로 언령 마법을, 아니, 이제는 진언이 된 새로운 마법을 발동시켰다.

“【흩날려라】.”

콰콰콰콰!

새하얀 눈발이 회오리치면서 뇌기를 갈가리 찢어 사방으로 흩뜨려놓았다.

가뜩이나 엉망이 된 주변으로 부서진 뇌기가 떨어지면서 이전보다 더 큰 먼지구름을 일으켰지만, 곧 눈발에서 불어닥친 강풍에 휩쓸려 가라앉고 말았다.

“엘릭 메르빙거어어어!”

캘리거 백작은 엘릭이 여태 자신을 우롱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성을 질렀다.

엘릭은 인터레시아의 열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레시아의 열쇠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그리고 사용법은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용의 알을 몰래 가져가도록 내버려 뒀던 것도, 전부 이를 위한 미끼였던 모양이었다.

캘리거 백작으로서는 당연히 자신이 그동안 엘릭이 짜놓은 판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놀아난 멍청이에 불과했단 사실에 격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시끄러워 죽겠네. 이봐 아저씨, 도둑질하다가 걸렸는데 너무 당당한 거 아냐?”

엘릭은 비웃음을 한껏 터뜨리면서 잘린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어 자신의 손에 끼웠다.

철컥!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듯.

원래의 주인을 찾아서 다행이라는 듯. 반지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엘릭의 손가락에 아주 부드럽게 감겼다.

그리고.

파아아아!

화아악!

목에 걸려있던 마도경식과 반지가 동시에 환한 빛을 뿌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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