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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13화 (212/405)

213화

용아병단(龍牙兵團)

인장이란 마족과 마왕에게 있어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것.

인간의 영혼이 심장에 머물 듯, 인장은 마족의 영혼이 머무는 영소(靈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파괴된다는 뜻은 단 하나.

“컥!”

레다가 숨을 거칠게 토해냈다.

마치 무언가에 목이 단단히 졸린 사람처럼.

창백해진 인상을 한 채, 손으로 목을 부여잡으면서 발버둥쳤다.

“안… 돼…!”

벨롯이 뒤늦게 레다의 일을 눈치채고 휼의 사념이 있는 곳으로 급히 손을 날렸지만.

카카카카.

참으로 달구나. 참으로 달아!

이미 휼의 사념은 그림자에 녹아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의 목소리도 멀어지고 있었다.

“레…다… 정신…차려라…!”

벨롯은 다급히 레다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레다에게 마기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면서 본단으로 향하는 속도를 더욱더 박차기 시작했다.

실책이었다.

좀 더 주변을 신경 쓸 것을….

평상시라면 휼의 사념이 주변에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감지해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어서 본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혹은 크게 다치고 만 부상이 감각을 교란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사장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발을 쉴 새 없이 놀렸다.

레다가 당한 것은 유명의 인장. 아직 아자젤이 남기신 광폭의 인장이 남아있으니 어떻게든 목숨이 붙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 끊어져 가는 레다의 수명만 겨우 붙잡아놓고 있을 뿐. 죽음이 완전히 비켜 가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레다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파아아-

손끝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육체의 결속이 느슨해지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져만 갔다.

마기가 되어 흩어지는 내내.

레다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것이.

레다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파아아…!

* * *

파아아아!

레다를 구성하던 마기가 흩어지던 그 시각.

주인을 잃은 마기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몰려들고 있었다.

넝마가 된 옷깃 사이로. 엘릭의 오른쪽 등, 날갯죽지를 따라 유명의 인장이 새겨지고 있었다.

원죄, 동계, 흉살에 이은 네 번째 인장이었다.

‘레다는 강했어. 특히 마기를 다루는 게 여태껏 만난 마족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고. 이것이라면 마력량이 급증한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유다가 가진 소화의 인장이 마기의 성질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는데 특화가 되어 있었다면.

유명의 인장은 마기를 아주 세밀하고 정밀하게 다루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실제로 엘릭은 레다를 상대하는 내내 자꾸만 압도적인 마기 폭풍에 계속 밀려나기만 했었으니까.

『그릇이라고 표현하더니. 하! 아자젤의 마기를 순조롭게 수용할 수 있는 인장을 개발하려 했던 것이라고 봐야 하나?』

메피스토는 유명의 인장을 보면서 엘릭과 비슷한 생각이 든 건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리의 마왕들은 모두 두 개의 인장을 가진다.

하나는 아자젤로부터 이어지는 광폭.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

[광폭의 인장은 도저히 다스리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마기의 성질이 난폭하고 거치니까, 그것을 온전히 붙잡아 줄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현재 네가 본 것들은.』

[전부 다 실패했죠.]

소화의 인장은 광폭의 인장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홀로 폭주를 하다가 결국 무너졌다.

유명의 인장은 광폭의 인장을 보다 정밀하게 다루긴 했지만, 결국 그 마지막 한계까지 쥐어짜는 데는 실패했다.

만약 광폭의 인장이 지닌 힘을 제대로 뽑아냈더라면, 더 강한 힘을 자랑했겠지.

『죄다 반편이들 뿐이로군.』

레다가 유다를 멍청한 실패작이라며 놀려댔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녀석 역시 유다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레다를 처치하고 얻은 인장은 예상대로 엘릭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육체 변화를 마치고도 여전히 힘이 넘쳐서 이리저리 꿈틀대던 용혈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으니까.

유명의 인장에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쭉쭉 뻗어 나가면서 용혈과 연결되고, 조금씩 엘릭의 통제 하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잡아 온 것인데…. 아쉽군.

휼의 사념은 그것을 보면서 입맛을 크게 다셨다.

자신이 따라붙어 쟁취한 것이건만, 고스란히 엘릭에게 상납(?) 아닌 상납을 해야만 했으니까.

특히 여태껏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맛이라, 그로서는 더욱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 미련은 두지 않았다.

인장은 엘릭에게 갔어도, 그래도 같이 따라온 마기는 모두 그의 차지였으니까.

먹을 것은 여기에도 많고 말이지.

더구나 이곳은 전장.

그리고리의 마족들이 죽으면서 남긴 마기가 곳곳에 많아도 너무 많았다.

특히 그 속에 맺힌 원한과 원념을 생각해본다면, 모두 그에게 있어서 별미나 마찬가지였다.

잘 먹겠습니다!

찰칵-

찰칵-

지면을 따라 그림자가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톱니처럼 자글자글한 이빨이 마족의 시체들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마치 수면 위로 상어가 갑자기 나타나 먹이를 단박에 낚아채듯이.

* * *

“여긴…?”

엘릭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백색 세계.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걸까?

분명히 자신은 유명의 인장을 흡수하고, 한창 용혈을 다스리고 있었을 텐데?

어찌나 거기에 집중했던 건지, 장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런 이상한 곳에 와있었다.

그러던 그 순간.

파아아!

갑자기 새하얀 세계가 좌우로 갈라지더니, 궁정의 홀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벽을 따라 온갖 그림과 조각상이 잔뜩 나열해 있는 곳. 바닥에는 고급스러운 융단이 깔려 있었다.

엘릭은 반사적으로 몸을 반대로 돌렸다.

융단의 끝이 닿아있는 곳.

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여섯 개의 옥좌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중 다섯 개에는 모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어 사람이 앉아있는지, 아니면 비어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엘릭은 직감적으로 그 여섯 옥좌의 주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겨울 6장!’

살아생전 오토 한의 옆을 지키면서 메르빙거의 최전성기를 열었다던 여섯 가신들.

그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옥좌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유일하게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지 않던 곳이었다.

“벌써 마왕까지 잡아낼 줄이야. 용혈을 얻었다고 해도, 제법이구나.”

그는 키와 덩치가 아주 컸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도 야수처럼 아주 맹렬했다.

하지만 엘릭의 시선을 가장 끄는 것은 그의 오른손에 잡힌 엄청난 크기의 깃발이었다.

5미터?

아니, 6미터는 되지 않을까?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무겁고 길어 보이는 깃대의 끄트머리에는 메르빙거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이 달려 있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항상 대열의 선봉에 서서 메르빙거가 강림했음을 알렸다던 기수(旗手), 나하트람은 엘릭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제법은 무슨.”

“네가 돕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텐데.”

“아니지. 실상 따지자면 밖에 있는 놈들이 다 한 거지. 청사자? 회사자? 아무튼 그놈들이 아니면 마왕을 잡기나 할 수 있었겠어? 특히 청사자라고 했나, 그놈은 우리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것 같던데.”

“아니지. 그래도 우리가 위다. 세월이 한참 뒤지는 후배에게 실력으로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것들, 참. 못났다, 못났어. 그래도 후손이 이만큼 일을 해냈으면 칭찬은 못 해줄망정. 으이그.”

“뭐래?”

“난 아무 말도 않았다.”

“자랑이다.”

옥좌가 있는 쪽이 꽤 시끄러웠다.

마치 시장 바닥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저들끼리 떠드는 대화 속에는 친밀한 정감이 흘렀다.

그림자 사이로 뭔가가 움직이거나 꿈틀대는 것도 보였다.

순간, 엘릭의 눈이 반짝였다.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전에 이들을 만났을 때는,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 ‘감지했을’ 때에는 이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그에게 관심을 두는 이도 없었다.

그저 간절한 호소에 나하트람만이 겨우 나서서 그에게 힘을 실어줬을 뿐.

그런데 이제는 형체만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을 볼 수 있을뿐더러,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 그에 대한 ‘관심’은 생겼다는 뜻.

‘아니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거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엘릭으로서는 북풍에 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다들 조용히 해. 후손을 앞에 두고 쪽팔리게 무슨 짓이야?”

나하트람은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한 옥좌 쪽을 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든 위엄과 체통을 지키려는 모양새였지만.

“쟤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뭐라고 하긴. 나이 어린 후배 앞에서 폼 좀 잡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입 좀 닥치라는 거지.”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데.”

“그러게.”

“폼 좀 못 잡게 어떻게 하지? 의자 위에 올라가서 엉덩이 춤이라도 출까?”

도저히 질서나 두서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대화에 나하트람의 인상이 종잇장처럼 와락 구겨졌다.

그것을 듣고 있던 엘릭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번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는 엄청난 위압감을 선사하던 이들이었건만.

지금은 그런 걸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아니. 이게 오히려 당연한 건가?’

생각해보니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었다.

이들도 ‘메르빙거’라는 것.

오늘날, 세상에 알려진 메르빙거의 악명(?) 아닌 악명이 퍼지도록 체계를 세운 이들이라면…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런 광경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너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냐. 천둥벌거숭이 같은 것들.”

나하트람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야만 했다.

엘릭은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끝이 없겠다 싶어 불쑥 끼어들었다.

“저를 부르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하트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진중한 얼굴로 돌아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이제 너도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어 불렀다. 지금보다 더….”

“오, 또 폼 잡는다.”

“으리와 으야그를 느늘 수 이게따 시퍼 부러따. 어때? 똑같냐?”

부글부글.

나하트람은 말을 잇다 말고 다시 뒤에서 날아오는 딴죽에 주먹을 꽉 쥐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분노로 가득했다.

‘…피해야 하나?’

엘릭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싶어 슬쩍 뒤로 물러날까 했지만, 나하트람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뒤에서는 여전히 깐족대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똑같긴 개뿔. 네가 하면 경망스럽지.”

“그럼 나하가 하면?”

“나하는 느끼하지. 훕!”

“좀 닥쳐, 이 새끼들아! 말 좀 하자! 말 좀!”

결국 나하트람은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마 좀 흐자. 마 좀! 어때? 이건 똑같지?”

“카아아악!”

나하트람은 손에 들고 있던 깃발을 들고 옥좌 쪽으로 몸을 날렸다.

우당탕탕!

엘릭은 난리법석을 피우는 그쪽을 보면서 생각했다.

‘가풍은 저기서부터 시작된 거구나.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메피스토가 들었다면 기겁했을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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