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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210화 (209/405)

210화

언령(言靈) 혹은 언령(言令)

드래곤 하트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권능을 잃어서 그런지, 이미 색이 다 바랜 돌덩이 같았다.

하지만.

혀에 닿은 순간, 마치 그것이 그 순간만을 바라마지 않았던 것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며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휘휘휘휘!

순간, 엘릭을 중심으로 막대한 양의 마력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엘릭이 자랑하던 일반 마력풍과는 궤를 달리했다.

용마력(龍魔力).

용의 힘이 잔뜩 실린 마력이었다.

두근!

두근!

그리고 그에 맞춰서 엘릭의 마력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마력회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심장도 미친 듯이 가쁘게 뛰었다.

피가 빠르게 돌면서 그 속에 함유된 마력을 신체 곳곳으로 불어넣었다.

명치에 자리 잡은 마정석도 여기에 호응하듯이, 더 많은 마력을 실타래처럼 풀어냈다.

그것 역시 용마력이었다.

보석룡의 용마력.

여태 엘릭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메피스토의 데몬 쥬얼에 담긴 마기였고, 보석룡의 용마력은 늘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수호룡의 용마력이 보석룡의 용마력을 자극하여 처음으로 밖으로 새어 나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마치 칭칭 감겨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이.

보석룡의 용마력이 신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동시에.

엘릭의 정신도 좀 더 또렷해졌다.

그는 여태껏 짐작하기도 힘들었던 막대한 양의 마력을 느끼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신격과도 맞먹었다던 용의 무한한 힘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시하며 기존의 틀을 깨주기도 했으니.

무의식의 지평이 다시 한번 더 저절로 확장됐다.

눈이… 뜨이는 것만 같았다.

‘아아.’

그런 무한한 황홀(恍惚) 속에서.

엘릭의 머릿속에는 이런 신세계를 그에게 선물해준 수호룡의 유언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심장을 먹으라니요?

처음 수호룡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엘릭은 기겁해야만 했다.

대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하지만.

정작 수호룡은 자신을 죽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아주 덤덤했다.

-너는 용언을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그런 건 사실 배우려 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네 종족에게 내려진 권능과도 같은 것이니. 너희 인간이 태어날 때 역시, 팔다리 움직이는 법을 따로 배우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용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 그렇기에 용언이라 불리는 것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편법은 부릴 수 있겠지. 너는 그분의 심장을 가지고 있고, 용언의 기초나 마찬가지인 언령을 부리고 있다. 그렇다면 당장은 굳어있는 그분의 심장을 깨울 수 있다면, 언령도 저절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촉매제… 로 사용하란 말씀이십니까?

-맞다.

-촉매제라니….

-네 피의 근본을 용혈(龍血)로 바꾸라는 의미다. 용혈에 대한 건 너도 알고 있겠지?

거기서 엘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바투는 용혈의 일부만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막강한 성장세를 이뤘다. 그런데 수호룡은 심장을 먹고, 아예 피의 인자를 용혈로 바꾸라고 한다.

이때 얻게 될 힘은 대체 어떠할까?

-이미 나는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해도, 얼마 가지 않아 결국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라.

-….

-네가 내 심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저 마왕이 내 심장을 대신 앗아갈 것이다. 그리고 사체는 마기에 절여져 저들의 무기로나 쓰이거나, 혹은 본 드래곤(Bone Dragon) 따위로 변하는 데 쓰이고 말겠지.

말을 잇는 내내.

수호룡의 눈빛은 덤덤했지만, 목소리에는 작은 공포가 깔려 있었다.

-죽고 난 뒤에도 그런 식으로 영면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니 네가 대신 내 심장을 가져가라는 거다. 말했듯, 이건 거래다. 나는 내 심장을 너에게 줄 터이니 너는 우리들의 후손을 지켜주고 부화시켜다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 심장에서만 그치지 마라. 내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다.

-내 비늘은 너희들의 방어구로 제작하고, 뼈는 병장기로 사용해라. 살점은 모두에게 나눠주도록 해라.

-그런다면 그들도 용혈을 조금씩이나마 얻을 수 있을 터. 비록 많은 권능을 잃어 기대보다 못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수호룡이 말하는 바는 아주 간단했다.

네가 가진 군대를 모두 용아병으로 만들라는 의미였다.

엘릭도 보석룡의 둥지에서 이미 본 적이 있던 용아병.

그것을 인위적으로 구성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지휘하에 둘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드니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도 절대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네 말발굽 아래 네 적들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나도 그동안 갑갑했던 것을 털어내고 좀 더 편하게 잠들 수 있겠지. 우리의 아이들도 그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테고.

-그러니.

-내 심장을 먹어라.

그러한 수호룡의 유언을 듣고도,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겠… 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서게 되었으니.

콰아아아-

엘릭을 중심으로 불어닥치는 용마력은 점점 더 거세지면서 돌풍이 되었다.

마치 용을 잔뜩 구겨서 엘릭에게로 밀어 넣은 것처럼 막강한 기세마저 느껴졌다.

보석룡의 마력과 수호룡의 마력이 한데 뒤섞이면서 엘릭의 신체 내부를 빠르게 변화… 아니, 개조시키고 있었다.

두둑, 두두둑-

마력회로를 보다 용마력이 흐르기 좋도록 개선하고, 근골을 좀 더 질기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또한, 육체의 기초 성분이라 할 수 있는 인자(因子)까지 조금씩 바꿔나갔다.

하지만 엘릭이 생각했던 것보다 개조 속도가 느렸다. 보석룡의 마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나오지 않아, 수호룡이 말했던 용혈이 생성되질 않고 있었다.

“막아! 어떻게든 저놈을 막으란 말이다아!”

레다는 엘릭이 뭘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챘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자신도 어떻게든 엘릭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어서 당장 입안에 삼킨 것을 뱉으라며 멱살이라도 쥐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쿵! 쿵! 쿠쿵!

결계 위에 올라탄 마족들은 어떻게든 결계를 부수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육탄 돌격을 해보기도, 마력을 뿌려보기도 했지만, 결계는 균열만 조금씩 갈 뿐 파괴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켜!”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레다가 달려들던 휼의 사념체를 뿌리치고, 날개를 접으면서 급전직하를 시도했다. 그 와중에 왼팔이 뜯기고 말았지만, 그런 건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투였다.

역시! 예상대로 맛있어! 이건 내가 더 가져가야겠다!

휼의 사념체는 레다의 왼팔을 한입에 꿀꺽 삼키며 눈을 반짝이고는, 레다의 뒤를 바짝 쫓았다. 이미 한쪽 팔로도 인장이 부쩍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머지를 먹었을 때는 어떻겠는가!

콰아아앙!

레다가 내려앉은 자리. 결계가 박살이 났다. 주변에 있던 마족들도 줄지어 피떡이 되었지만, 레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계는 몇 겹으로 중첩된 터라, 아직도 너덧 겹은 더 남아있었다. 레다는 그마저도 같이 부숴버리려 했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엘릭은 생각보다 느린 개조 속도에 이를 악물었다.

두둑. 두두둑. 지금도 신체는 조금씩 변화를 하고 있었지만, 속도가 갈수록 느려졌다. 아무래도 수호룡의 심장만으로는 용혈을 끌어내기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권능이 쇠락해버려 심장의 기능도 많이 떨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그 전에 레다와 싸우면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말았으니, 절대량도 부족했….

‘잠깐.’

그 순간, 엘릭은 둔기로 머리 뒤쪽을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피…?’

분명히 수호룡은 레다와 싸우면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만큼 많은 피를 쏟았다. 그렇다면 그 피는 전부 어디로 갔을까?

‘동굴!’

지금 자신의 발아래. 지면 곳곳에 용의 피가 남아있을 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엘릭은 지체하지 않고 언령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그 언령은 기존에 그가 사용하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도 범위도 확실했다.

굳이 일일이 마력장의 범위를 설정하지 않아도, 엘릭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마력장이 저절로 설계되었다.

“【얼어붙고】.”

쩌저저적-

발아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는 소리가 들렸다. 증발하지 않고 곳곳에 남아있는 용의 피가 얼음이 되는 소리였다.

“【스며들어라】.”

그리고 그것을 전부 이쪽으로 잡아당긴 순간, 얼어붙은 피들이 일제히 땅 위로 올라와 엘릭에게로 스며들었다.

콰득, 콰드드득-

그리고 그럴수록 느려졌던 개조 속도도 다시 빨라지다 못해 오히려 가속까지 붙었으니.

덕분에 엘릭은 피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보다 많은 마력을 꽉꽉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신체 곳곳에 힘이 부쩍 실렸다.

용혈이었다.

그리고. 이로써 엘릭은 용마인(龍魔人)이 되는 데 성공했으니.

“제기라아아알!”

레다로서는 자신이 다 잡은 아자젤의 제물을 눈앞에서 빼앗기고 만 셈이니 분개할 수밖에 없었고.

콰아아앙!

거친 폭발과 함께 남은 결계 모두를 겨우 부서뜨렸을 때, 다른 어느 때보다도 광폭의 인장이 타오를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광기에 완전히 눈이 멀었다는 뜻이었다.

“안 된다면 네 피라도 가져가겠다, 메르빙거!”

엘릭은 굳이 거기에 대해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에 용혈이 가져다주는 웅혼한 힘을 느끼면서 재반격을 가할 준비를 할 뿐이었다.

“【이리 오라】.”

단순한 언령이 아닌 진언(眞言)으로 발동된 마법과 함께, 동계의 인장이 타오를 듯이 빛났다.

3성, 4성….

인장의 획수도 빠르게 늘어나면서 두 개의 권능도 더 폭발적으로 위력이 팽창하고 있었으니.

엘릭은 자신의 몸 위에 내려앉는 나하트람의 망령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여태껏 단순히 그의 힘만 취했다면, 지금은 그의 감정이나 사념 따위도 읽힐 정도였다.

「이제야, 그나마 마음에 드는군.」

그동안 도저히 들을 수 없었던 나하트람의 목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을 정도였으니.

지금까지는 답답해도 너무 답답했다며 엘릭에게 항의하는 듯했다.

「이제야, 조금 날뛰어볼 만하겠어.」

‘그렇습니까?’

엘릭은 피식 웃으며 거기에 간단하게 대답하며 지면에서부터 얼음창을 뽑아 올렸다.

그러고는 끄트머리를 레다에게 겨눈 채로 지면을 박찼다. ‘한설’, 겨울 폭풍도 불어닥치면서 쏘아진 일격이었다.

콰아아앙!

두 사람이 충돌한 채로 허공에 튀어 올랐다.

검은 마기와 새하얀 눈발, 상반되는 두 기세가 연거푸 충돌하면서 대지와 하늘을 잇는 거대한 기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컥!”

튕겨 난 레다의 한쪽 날개에는.

커다란 바람구멍이 훤히 뚫려 있었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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