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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99화 (198/405)

199화

용의 창시자

『나하… 트람?』

지켜보던 메피스토는 맨 처음 자신이 잘못 본 건가 하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엘릭이 내뱉는 말투가 자신이 알던 엘릭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겨울 현자가 이끄는 군대의 선봉에 서서 깃발을 휘두르던, 아주 무뚝뚝하고 시건방진 작자가 떠오르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엘릭이 얼음창을 쥐고 있는 자세하며 모습이… 그와 상당히 흡사했다.

너무 오버랩이 된다고 해야 할까?

마치 엘릭이 굳게 쥐고 있는 얼음창 위로, 나하트람이 자랑하던 깃발이 크게 펄럭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엘릭이 오토 한이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제 몸에 여러 망령을 빙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엘릭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혀를 차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 그림자인가.』

나하트람은 오토 한과 마찬가지로 메피스토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메르빙거의 수족.

그러니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 만큼 품은 원망 어딘가에는 반가움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띄는 것은 나하트람이되, 나하트람이 아니었다.

그냥 엘릭이었다.

다만, 엘릭이 나하트람의 ‘가면’을 쓰고 그의 사념을 읽어 들이며 그의 흔적을 좇아가는 것일 뿐.

육체를 빼앗기거나 하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엘릭이 나하트람을 ‘도구’로 쓰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여섯 ‘눈꽃’까지 가디언으로 배치해뒀어? 오토 한, 아주 안배가 확실하군.』

메피스토는 오토 한이 북풍으로 남긴 유산이 절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긴 것이다.

먼 미래에 있을 후손을 위해.

그리고 지금.

천 년간 이어진 그 안배가, 이곳에서 제대로 꽃피려 하고 있었다.

* * *

그녀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그 말이 쿠란시빌 자작의 인상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엘릭이 단순히 후계자 운운에 대해 무시해서 그렇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문에서도 익히 아는 자가 적었던 ‘여름’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한 태도가 문제였다.

그녀.

‘여름’의 원주인이 여자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쿠란시빌 자작, 그 역시 가주가 되고 난 뒤, 숱한 자료를 뒤진 끝에야 겨우 알 수 있었던 비밀을.

“가전 마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반편이 놈이 뭘 안다고…!”

“‘여름’을 갖추기 위해서는 3개가 필요하다. 불이 흐르는 강, 모래 설원, 그리고 용. 그런데 그중에서.”

엘릭의 눈을 빌린 바하트람은 쿠란시빌 자작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한껏 더 크게 던질 뿐이었다.

“네가 가진 건 하나도 없는 듯 보이는구나. 그냥 그녀가 남긴 불꽃의 마법서를 하나 얻어서 외웠다고 후계자를 자처하나? 아니면 피를 물려받았다고? 천 년도 넘게 세월이 지났는데, 그런 식이면 ‘이’ 몸에도 일부 섞여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닥쳐라!”

“정곡을 찔렀나 보군.”

“닥치라 하지 않았느냐!”

휘휘휘!

쿠란시빌 자작은 더 계속 말을 엮었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수정구슬에 마력을 최대로 밀어 넣었다.

그럴수록 수정구슬이 더 요란하게 빛을 말하면서 ‘불의 환란지대’의 위력을 강화했다.

콰콰콰콰!

“피, 피해!”

“물러나!”

쿠란시빌 자작이 도저히 주변 사람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찾는 수밖에는 없었다.

“【불 속에 깨어난 마수】.”

출렁이던 화마는 한데 뭉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짐승이 되었으니.

범인지, 사자인지, 아니면 코끼리인지, 도저히 정확한 형상을 읽기 힘든 마수(魔獸)는 지체하지 않고 엘릭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지옥에서 끄집어 올린 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맹렬한 열기가 전해졌지만.

“간지러운 정도군. 그녀의 ‘여름 뙤약볕’은 정말 신경질이 날 정도로 땀이 흐르고 살갗이 탔는데 말이야.”

우선 쿠란시빌 자작의 열기는 엘릭에게 닿지도 못했다.

눈보라가 쉴 새 없이 불어닥치면서 열기를 싸늘하게 식히는 데다가, 오히려 지반에는 서리까지 내려앉을 정도였다.

엘릭이 그런 빙판을 걸을 때마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쩌걱. 쩌걱. 그러면서 일어난 얼음 가루가 창대 끄트머리에서 걸리면서 깃발처럼 펄럭였으니.

그것이 창대 쪽으로 맹렬하게 감기면서 폭발했다.

쾅! 쾅! 쾅!

마치 대포가 터진 것처럼 세 번의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마수의 머리통이 터지고, 어깨가 날아가고, 몸뚱이의 절반이 부서졌다.

엘릭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굴다가, 단 세 번에 부서져 내린 것이다.

쿠란시빌 자작으로서는 도무지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광경.

‘이, 이게 무슨…!’

이것은 그가 아주 오래전에 가문의 서고에서 찾은 ‘여름의 마도서’에서 발췌한 마법 중 가장 강한 공격 마법이었다.

동물의 형상을 한 주제에 실제로 영성(靈性)도 띠고 있어 지능이 높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건만.

별다른 힘을 쓰지도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쩌적!

퍼어엉-

그러다 쿠란시빌 자작은 엘릭이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빙판을 으스러져라 밟으면서 이쪽으로 달려오자, 그제야 황급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불살라지는 군대】, 【쏟아지는 불의 소나기】, 【불 속의 무희(舞姬)】!”

메모라이즈 되었던 마법의 숫자가 착실하게 줄었다.

소환 마법에 따라 불로 구성된 다른 마수들이 잇달아 튀어나와 엘릭의 앞길을 막았다.

하늘에서는 불덩이가 쏟아졌고, 대지 위를 달리는 불길은 커다란 소용돌이를 그리면서 엘릭의 퇴로를 차단해서 이동 범위를 축소하고자 했다.

화마(火魔)라는 틀로 만든 감옥 속에 엘릭을 가두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불길을 모두 꺼뜨렸고.

얼음창은 날아드는 족족 소환수들의 머리통을 부수면서 강제로 소환을 해제시켰으며.

빙판에서 치솟는 얼음 가시는 오히려 불덩이를 부숴버렸다.

“【불어라】.”

도리어 한설이 불면서 쿠란시빌 자작이 하려던 수작 그대로 당해야만 했다.

불이 꺼진 자리로 칼바람이 실린 냉풍이 불어닥치면서 보호 마법이 모조리 깨져 나갔다.

얼음벽이 치솟아 퇴로를 강제로 막아버리고, 하늘에서는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얼음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혼을 잔뜩 빼놓았다.

“이, 이런!”

수정구슬을 사용해 어떻게든 불길을 토해내어 얼음과 눈보라를 치워보려 해도, 그 뒤를 다시 새로운 얼음벽이 차지하니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촤르륵, 촤륵!

촤르르르-

빙판을 뚫고 냉혹의 사슬이 튀어나올 때면 간담이 서늘해졌다.

발목을 묶고, 팔을 감싸려고 한다. 끊어내려고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사슬은 닿는 자리마다 강제로 빙독을 심었다.

마치 녹슨 쇠사슬에 속박되었을 때, 파상풍에 걸려 손발이 뒤틀리듯이.

냉혹의 사슬이 주는 빙독은 근육을 괴사시키고, 나아가 마력기관까지 얼어붙게 만들어 마력 순환의 효율을 극대로 저하했다.

쐐애애액-

얼음창이 하늘에서부터 아래로, 비스듬한 형태로 떨어졌다. 그것을 막아보겠답시고 남은 메모라이즈 마법을 탈탈 털었지만, 얼음창은 단박에 그것을 모두 꿰뚫었다. 부서진 잔해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

또 한 번 그 모습이 깃대에 걸려 나부끼는 깃발의 모습처럼 위용 있고 박력 있었다. 쿠란시빌 자작은 거기서 그냥 압도적으로 눌릴 수밖에 없었다.

-네 깃발 아래에 선 적들이, 숨을 쉬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나하트람이 엘릭에게 깃발을 쥐여주면서 했던 말이, 고스란히 이뤄진 셈이었다.

퍼어억!

“컥!”

쿠란시빌 자작은 오른쪽 가슴이 얼음창에 꿰뚫린 채 피를 토해냈다. 얼어붙은 마력기관을 어떻게든 쥐어짜 수정구슬을 작동시키려 했지만.

쩌저정!

퍼걱, 파스스스-

수정구슬이 조각조각 부서지더니 곧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무리한 마력 운용으로 인해 마도구의 수명이 다하고 만 것이다.

“아, 안 돼…!”

쿠란시빌 자작은 자신의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사라지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리고 이내 빙독이 혈관을 따라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자 안색은 물론이고 상반신 전체가 시퍼렇게 질렸다. 얼어붙은 새파란 핏줄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엘릭은 녀석의 눈에다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붙이면서 차갑게 내뱉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후손이랍시고 이딴 꼴불견인 모습을 보이면 뭐라고 할 줄 아나?”

“무슨 소리를…!”

“병신.”

“…!”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거든. 안하무인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떠들어대지. 하지만 억울한 게 그게 사실이란 말이지. 도도하고, 고고하고, 오만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엘릭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번들거렸다.

“네깟 버러지 따위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덜덜덜….

쿠란시빌 자작의 몸이 떨렸다.

그것은 단순히 빙독에 의한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엘릭의 기백에 압도되어 생긴 공포 때문일까?

“…넌, 넌 누구냐!”

“나? 엘릭 메르빙거.”

“아, 아, 아냐! 너는 엘릭 메르빙거일 수가 없…!”

쿠란시빌 자작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자는 전사였다. 그것도 수많은 전장을 전전한 역전의 용사. 또한, 숨겨진 가문의 옛 비사(祕史)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망령이 엘릭에게 내려앉은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엘릭은 그런 녀석의 추측을 단호하게 잘랐다. 나하트람의 사념을 빌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행위의 주체는 자신이었으니까.

메르빙거가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메르빙거를 운운하는 꼬락서니가, 그로서는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엘릭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이 왼손을 활짝 펼쳤다. 서리가 내려앉으면서 손바닥이 환하게 빛났다.

소수(素手). 그가 개발한 마법으로 쿠란시빌 자작에게 마지막 단죄를 내릴 생각이었다.

“제, 젠장! 트, 트워크의 병사들은 대체 뭘 하느냐! 이 역적을 당장 추포하여 끄, 끌어내지 않고!”

쿠란시빌 자작은 몸을 덜덜 떨면서 어떻게든 살길을 도모하고자 했다. 말을 할 때마다 김이 풀풀 날렸다. 이미 빙독이 마력기관을 전부 뒤덮고, 오장육부까지 괴사한 마당에 여길 빠져나가도 살아날 방법 따윈 없었음에도 그는 절실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선뜻 나서서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작가 병사들은 물론, 언제나 충성을 바치겠다며 입에 발린 말을 해대던 장교들까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쿠란시빌 자작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나마 뜻이 있어 보이는 이들도, 강제로 격리되거나 제압된 듯 보였으니.

“아직도 모르고 있나 보군.”

소수를 내려치기 전에. 엘릭은 여전히 현실을 깨닫지 못한 자작에게 비웃음을 한껏 던졌다.

“…뭐?”

“이미 네 편은 여기 아무도 없어.”

쿠란시빌 자작의 눈이 커지고.

“‘이번에 복귀하는 자에게 한하여 트워크 자작가에 내린 파문령(破門令)을 거둔다’. 그런 약속을 한마디 던졌다고 다들 저러더군.”

“…!”

파문령.

과거 트워크 자작가가 메르빙거의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받았던 명령.

‘너희들은 모두 죄인이니 다시는 메르빙거의 우산으로 들어오지 못하며, 언젠가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쿠란시빌 자작은 그것을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한 메르빙거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며 무시하고, 그동안 잊고 있었건만.

엘릭은 여태 그것을 절대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밖으로 끄집어낸 모양이었다.

그것이 트워크 자작가의 병사들을 자극한 것일 테지.

몰락했다면 모를까, 라센트의 영웅으로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엘릭이 새로 일구려는 메르빙거.

그것이 가진 매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으니.

하물며 트워크 자작가의 병사들에게는 원류(原流)였던 메르빙거에 대한 향수가 알게 모르게 아주 조금씩 남아있었다.

쿠란시빌 자작이 우려했던 점도 바로 이 점이었다.

병사들이 겉으로는 자신을 따르는 척해도, 마음은 젊고, 영웅적이며, 전통 있는 메르빙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던 것인데.

별의 종군과의 갈등을 어떻게든 유도하려 했던 것도 그의 솜씨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게 쉽게 이뤄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야망 넘치는 몇 명에게 접근해서 당근을 던져주기만 해도, 여론을 주도하기는 쉬울 테니.

다른 가병들도 메르빙거에 호의적인 여론에 휩쓸린 것이겠지. 겉으로는 불만이 가득한 척해도, 결국 속마음은 ‘동경’과 ‘부러움’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엘릭은 암암리에 자작가와 백작가, 전부에 손을 뻗쳤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속마음들은 여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쿠란시빌 자작과 캘리거 백작이 아직 이렇다 할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명분을 뺏기고, 승부마저 엘릭에게 기울어 대세가 완전히 메르빙거 쪽으로 넘어가게 된 지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메르빙거의 뒤에 서는 것.

파문령을 거둬준다는 데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기존 별의 종군에 융화되어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게, 그들로서도 고리타분한 자작가나 백작가에 남아있는 것보다 훨씬 이로우리라.

메르빙거에 별 동경심 없이 진짜 분노를 품었던 자들도, 대세가 그러하니 자연스레 넘어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쿠란시빌 자작이 엘릭의 손에 무너졌을 때. 자작가도 결국 끝장난 셈이었다.

‘창칼’이라 불리던 트워크 자작가의 모든 기반이 메르빙거 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놀아난 셈이구나.’

캘리거 백작의 서찰이 현재 엘릭의 손에 있는 것처럼. 결국 그들 모두가 엘릭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셈이었다.

그저 골방에 틀어박혀 수련이나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들을 모두 장기말처럼 어루만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단한 심계…!’

쿠란시빌 자작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했다. 척수까지 얼어붙으면서 뇌에 혈류 공급이 끊어지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메르빙거의 가주, 찬성공작 엘릭 메르빙거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쿠란시빌 자작은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엘릭을 바라봤다. 그토록 바라던 부귀영화는 결국 꿈도 꾸지 못한 채 이대로 저무는가. 자작은 죽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엘릭은 가문의 배신자인 그를 절대 그냥 보내줄 생각 따윈 없다는 것을.

“기존에 그대에게 내려진 파문령에 따라, 지난날 본 가에서 그대에게 내려준 모든 것을 회수하고, 그에 합당한 징치를 하리라.”

새하얀 소수가 쿠란시빌 자작의 정수리에 얹어졌다. 순간, 쓰러지려던 쿠란시빌 자작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 어떻게 말로 표현 못 할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안 돼! 그렇게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돌아오라】.”

엘릭이 내뱉은 한 마디에.

쿵!

쿵!

콸콸콸-

여태껏 쿠란시빌 자작이 수십 년 동안 적공(積功)한 모든 마력이, 기술들이, 업적들이, 얼음에서 깨어나 역류하기 시작했다. 강줄기가 모두 정수리를 따라 올라가면서 엘릭의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회수한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트워크 자작가가 그동안 메르빙거 덕분에 얻은 모든 수혜를 이 자리에서 거둬간다는 의미였다. 쿠란시빌 자작의 공부도, 심지어 영혼까지도.

북풍의 그림자가, 쿠란시빌 자작의 영혼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죽어서도 메르빙거의 종복이 되어 영원토록 죗값을 치러라, 쿠란시빌.]

‘아, 안 돼애애애애!’

그 상념을 끝으로.

툭!

영혼을 잃은 쿠란시빌 자작의 시체가 힘없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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