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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90화 (189/405)

190화

권능 해석

역사가 기술된 이래.

제국이 가진 전력은 역대 최고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만큼 수많은 인재가 태어나고, 기라성과 같은 고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는 뜻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이 가지게 된 단점도 분명 존재했다.

바로 계급 차였다.

육망성과 같은 거대 세력이나 명문가 출신이 아닌 이들이 성장에 있어 한계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이는 높은 경지로 비교적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상승 공부를 접하는데 난관이 생겨서 그런 것이니.

발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상류층은 절대 자신들이 가진 이권을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거대 세력들이 무수히 많은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형국이었고.

그런 ‘간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며 고개를 떨어뜨려야만 했다.

사실 그건 브라이언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이대를 생각해본다면, 분명히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가 결국 평소에 뜻을 두었던 마법이 아닌 관료제 사회에 발을 들였던 것도 더 이상 성장하기는 힘들겠다는 미래에 대한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눈앞에 두 권의 책자가 놓였다.

강체술과 마투술.

마법사이던 무도가이던 간에, 어느 정도 기반 지식이 있는 이라면 모두 두 가지 기예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강체술은 탄생 과정이 사이하다고 하여 마탑에서도 복원하던 중에 금술(禁術)로 분류해버린 것이고.

마투술은 마법학에서도 단련하는 이가 극소수인 학문이었지만, 익힌 이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워메이지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둘을 그냥 내놓겠다고 한다.

당연히 브라이언의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그럼 그렇지. 브라이언은 한순간 잔뜩 달아올랐던 기분이 살짝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러다 짓궂게 웃는 엘릭의 미소를 보면서 깨달았다.

장난이라는 걸.

“전 앞으로도 저와 계속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분들께만 이걸 드릴 겁니다.”

브라이언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했다.

“가신이 되라는 의미시군요.”

“제겐 앞으로 저와 함께할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브라이언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별의 종군이 엘릭의 뒤를 따르고는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명성을 좇는 추종자 집단일 뿐. 아직 엘릭과 확실하게 이렇다 할 관계가 성립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엘릭이 그걸 이제 확실하게 하겠다고 나섰다.

“고립된 상황에서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엘릭이 뒷말을 덧붙이려던 그때.

갑자기 브라이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엘릭이 도중에 말 허리를 끊어야만 했다.

“엘릭 님이 저희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이런 위험한 내지까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저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다 새로운 기회까지 주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따를 수밖에요.”

브라이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힘이 가득했고.

“신(臣) 브라이언, 찬성공작 엘릭 메르빙거 님을 유일한 주군으로 모실 것을 맹세합니다.”

두근!

엘릭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동안 뜻을 함께하고 자신을 도와준 이들은 많았지만.

자신의 뒤에 서서 가문을 함께 일구기로 한 사람은 브라이언이 처음이었으니.

‘내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아주 기쁘기만 했다.

엘릭은 브라이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주군께서 수하에게 경어를 쓰셔서야 되겠습니까.”

“잘 부탁하지.”

엘릭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면서도, 나름대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헤르만과 율호왕 등, 여태 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이들과 비슷한 말투였다.

브라이언의 입가에도 살짝 미소가 걸렸다.

* * *

별의 종군을 가신으로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엘릭이 내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사벨의 의견이었다.

-별의 종군, 메르빙거의 기반으로 삼으실 생각이시죠?

-그렇긴 그렇습니다만.

-그럼, 결속력을 더 단단하게 만드시는 건 어떨까요?

-결속력을요?

-네. 사실 지금 별의 종군에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엘릭은 잠시간 말을 잃어야 했다.

사실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자신을 쫓아 이런 위험한 적진까지 들어오지 않았나. 그런데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언젠가 동요가 퍼지긴 퍼질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별다른 말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안일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했을 때, 이사벨이 가볍게 웃어버렸다.

-아, 그 불안함이 엘릭 님에 대한 불신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오히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별의 종군은 어느 때보다 단단하답니다. 어쨌거나 여태껏 불패(不敗)였고, 무적(無敵)이었으니까.

불패.

무적.

모두가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그만한 무게를 가진 단어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불안해하는 건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에요. 엘릭 님과의 관계, 고립된 상황에서의 미래… 모든 게 정립된 게 없으니까요.

-결속력을 만든다는 건, 그런 불안감을 잡겠다는 말씀이신 겁니까?

엘릭은 그제야 이사벨의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든 게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다잡아주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소속감.

마음 놓고 등을 기댈 수 있는 동료와 조직이 굳건하게 있으면 된다.

이사벨은 엘릭에게 그러한 나무를 만들어주라고 건의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저들을 메르빙거의 가병(家兵)과 가신(家臣)으로 삼겠다는 걸 발표하세요.

-물론, 그냥 말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죠? 저들의 관심사를 메르빙거 쪽으로 돌릴 만한 것도 필요로 할 테죠.

-이를 테면.

-메르빙거‘만’이 가진 무기 같은 거.

엘릭은 한순간 떠오른 게 있었다.

메피스토가 이전에 했던 말.

군주는 군주의 시야에서 모든 걸 굽어다 봐야 한다는 말.

그것이 이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밤을 꼬박 새워서 두 개의 책자를 집필하는 데 성공했다.

‘분명히 가전 마법 중에도 나눠줄 만한 것들이 많아. 하지만 당장은 실전에서 써먹을 만한 것들을 내놔야 해.’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강체술과 마투술이었다.

강체술은 그가 율호왕에게서 받아 개량한 버전이 있으니, 적당히 뜯어고친다면 가병들도 쉽게 익힐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물론, 마탑에서 금술로 지정한 것이니만큼 외부로 노출되어도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끔 특정 요소들을 배제해야겠지만.

‘문제는 이거란 말이지.’

다만, 마투술이 조금 걸리긴 했다.

엘릭이 익힌 마투술은 어디까지나 녹야의 것.

오거스틴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건드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엘릭은 곧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한 호흡법과 기초 입문용 정도면 괜찮겠지.’

마력의 순환에 대해 깨닫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정도로만 써먹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육체를 단련케 하는 건 강체술이니, 이것을 보조하는 역할로 잡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거스틴이 누누이 하시던 말씀이 있지 않은가.

녹야의 전승자가 되거든,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는 네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오거스틴은 그저 자신의 비원만 이루면 족했다.

그러니 마투술을 어떻게 다루든, 메르빙거에 귀속된 이상 그것에 대한 소유권과 처분은 엘릭에게 있었다.

그렇게.

엘릭과 이사벨의 결정이 떨어진 뒤, 별의 종군은 하루 종일 떠들썩해졌다.

“저, 정말 이런 걸 우리한테 주신다고?”

“아무리 메르빙거라고 해도… 이런 결정은 쉽지 않으셨을 텐데.”

“헛소리 마, 인마. 메르빙거니까 이런 화통한 결정을 내리시지.”

“하긴 그도 그렇군. 엘릭 님이면 항상 파격, 그 자체시니.”

“그리고 항상 우리를 아끼시는 게 느껴지지 않나.”

“이거라면 막혔던 벽도 어떻게든 뚫을 수 있겠어!”

별의 종군에 합류한 병사 중에는 허영심과 명성을 좇는 이들도 분명 있었지만, 대개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복무한 이들이었다.

재기를 시도하려는 메르빙거의 뒤를 따라다니다 보면 혹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혹은 목마름.

물론, 그동안 별의 종군에 있으면서 푸른 매가 그들을 도와주는 등 많은 것을 배우긴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그들의 허기와 갈증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니.

그런데 갑자기 떨어진 콩고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이만한 상승 공부는 웬만한 명문가나 거대 세력에서도 절대 쉽게 내놓지 않는다.

신원이 확실하고, 최소 5년 이상 확고한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문호를 개방할까 말까 한 수준이었으니까.

한데, 엘릭은 아낌없이 내어주겠단다.

기뻐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물론, 확실하게 메르빙거의 소속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긴 했지만, 그런 것이야 성장의 기회를 생각해본다면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끈끈한 연대감과 강렬한 소속감이 생기게 되면서 ‘내가 메르빙거다’라는 사명이 그들의 심장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별의 종군의 하루 일과도 많이 달라졌다.

전술 훈련은 잠정 중단되었다.

대신에 개개인의 기량을 끌어 올리는 데 집중했다.

새벽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마투술의 호흡법을 익히며 감각과 마력을 길렀고.

간단한 아침 식사 후에는 오후 12시까지 강체술의 기본기를 단련했다.

그리고.

오후 6시까지, 엘릭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지도 편달을 시도했다.

마법사에게는 마법을. 무도가에게는 무도를. 일반 병사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공부를.

엘릭도 이때 즈음해서는 가디언 중 절반 이상의 충성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에 대해 큰 자신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여러 실전을 거듭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가신들에게 바로바로 쥐여줄 수 있었으니.

괄목상대.

일취월장.

어쩌면 그런 말들이 별의 종군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열의는 자연스레 군영 내 다른 집단에도 전달되었으니.

“저들도 저러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제 막 일어나기 시작한 이들에게 꿇려서야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가장 먼저 바일 가문의 기사들이 자극을 받아 개인 훈련에 들어갔고.

연이어 블랙 스컬도 똑같이 소속원들끼리 대련을 하는 등, 군영은 조용할 날이 별로 없었다.

반면에 별의 종군과 어울리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던 프란츠 백작가와 트워크 자작가의 가병들 사이에서는 적잖은 동요가 일었다.

원래 따지자면, 별의 종군이 아닌 자신들이 메르빙거를 떠받치던 기둥이었으니까.

그런 자신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다른 돌들이 굴러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니 배알이 적잖게 꼬였던 것이다.

물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이 모시는 가주들이 과거에 내린 결정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이런 열의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다.

시샘. 질투. 그런 감정이 그들 사이로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군영 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일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져 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분위기는 외부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적진에서 내분이 벌어졌다간 정말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캘리거 백작과 쿠란시빌 자작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을 때쯤.

여전히 단조롭기만 하던 군영 생활에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으하하! 찾았다! 찾았다고!』

[뭘요?]

『어디긴 어디겠느냐. 당연히 용의 둥지지!』

“…?”

엘릭은 메피스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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