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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89화 (188/405)

189화

권능 해석

두 자루의 얼음창이 유령 기사를 압박해 들어갔다.

분명히 유령 기사가 휘두른 창이 더 월등한 실력으로 한 자루를 쳐냈지만, 그 빈자리를 다른 얼음창이 끼어들어 오다 보니, 투로가 꼬일 수밖에 없었다.

두 얼음창의 궤적은 너무나 상이해서 유령 기사로서도 도무지 투로를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두 명의 엘릭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듯했다.

『하나로 안 된다면 두 개로 상대한다니. 아주 단순한 셈법이로군.』

[아직 응용이 안 된다면 변칙이라도 사용해야죠, 안 그래요?]

메피스토는 엘릭의 대응책이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어린애들이나 할 것처럼 아주 단순한 발상이긴 해도, 엘릭은 정말 그걸 해내고 있었으니까.

엘릭은 타고난 오성과 계산력을 바탕으로 이미 트리플 캐스팅까지 수월하게 해내고 있는 바.

그것을 창술에도 똑같이 접목하고 있었다.

오른쪽 얼음창으로 공격에 특화된 1초식을 전개한다면, 왼쪽 얼음창으로는 방어에 충실한 4초식을 그려냈다.

그리고 각 초식이 부딪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계산하여 오히려 맞물려 돌아가도록 만들었으니.

이렇게 되자 두 얼음창은 단순히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투로를 다변화하고 공세를 강화하는 시너지 효과까지 낳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촤아악!

“어때, 이건?”

얼음창이 보이는 궤적은 어딘지 모르게 아주 낯이 익었다.

유령 기사는 조금 전 좌측 어깨에 새겨진 생채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두 눈은 녀석이 적잖게 느끼고 있는 당혹감을 말해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풍을 그리며 내뻗는 찌르기는… 불과 몇 초 전에 자신이 엘릭에게 펼쳤던 응용식이었으니까.

“네 걸로 되받아치기 당하니까 좀 짜증나지?”

엘릭은 실실 웃으면서 손가락을 이쪽으로 까닥거렸다.

처음 그가 넘어졌을 때, 유령 기사가 그를 약 올리면서 했던 것과 똑같은 동작.

파아앗-

유령 기사의 눈덩이에 박힌 푸른 불꽃이 한순간 거칠게 타올랐다.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렸다.

쉬쉬쉬쉭-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는 창의 궤적을 보면서.

‘역시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어디로 달릴지.’

엘릭은 이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심안에 그려지는 결의 움직임은 너무 복잡했지만, 이전처럼 읽을 수 없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중복되는 패턴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있어. <다섯 개의 회오리>.’

유령 기사가 아무리 자기 식대로 해체하여 재조립한 창술을 쓴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그 창술의 기반은 <다섯 개의 회오리>에 있다.

그렇다는 건, 기존에 <다섯 개의 회오리>가 갖고 있던 데이터에 기반하여 결의 움직임을 패턴으로 인식하고, 알고리즘을 해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해킹은 이미 엘릭에게 있어 숨을 쉬듯 아주 자유로운 것.

그 방식만 알 수 있다면, 그것을 고스란히 복사하여 이쪽으로 가져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

엘릭은 지금 유령 기사의 투로를 모방(模倣)하려 하고 있었다.

‘너무 어려워서 대응하기가 어렵다면, 통째로 베끼면 그만이지!’

그야말로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진 엘릭이기에, 오직 그만이 가능한 일.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다섯 개의 회오리>라는 기반 데이터가 있는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였다.

메피스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엘릭은 마투술과 강체술까지 익히고 있는바.

이런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모방한 창술은 더욱더 위력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펑!

찌르는 돌(突), 내려치는 절(切), 연신 두들겨 대는 고(叩)와 안으로 잡아당기는 나(拏), 밀어내는 회(回)….

동작 하나하나를 구현할 때마다 강체술의 구결을 섞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창이 모두 두 자루이니, 유령 기사의 손발도 점차 어지러워지다가.

퍼억!

하나가 오른쪽 허벅지에 틀어박히면서 유령 기사의 발을 묶어버리고.

촤악-

다른 하나가 횡대로 날아들던 창을 바깥으로 튕겨냈다.

그리고.

퍼어억!

엘릭이 단숨에 유령 기사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면서 어깨로 녀석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몸통박치기였다.

유령 기사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다 재빨리 자세를 바로 갖추면서 일어서려 했지만.

“어딜?”

어느새 엘릭의 얼음창이 유령 기사의 미간에 다다라 있었다.

유령 기사가 멈칫거렸다. 여기서 더 움직였다간 창날이 그의 머리통을 단박에 꿰뚫을 것 같았다.

두 개의 잔잔한 푸른 불길이 엘릭을 직시했다.

이전처럼 엘릭을 도발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미건조.

담담함만이 풍길 뿐이었다.

별다른 감정적 동요가 없었지만, 엘릭은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여태 자신을 무시하던 녀석이 드디어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을.

전사는 힘으로 말한다.

그런 힘으로 꺾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할 말은?”

유령 기사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질렀다.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뜻.

그것은 한마디 말조차 오가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충성 서약이 되었다.

그 순간.

철컥, 철컥!

파아아-

엘릭은 심장 한편에서 무언가가 강제로 연결되고 단단히 잠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심장에서부터 눈앞에 있는 유령 기사까지 이어지는 붉은 선을 볼 수 있었으니.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그것이, 유령 기사와 자신 간에 체결된 연결 고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도 가디언들을 받아들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지만, 그때와는 또 달랐다.

기존보다 두터워지고, 단단해진 느낌.

그리고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 붉은 선이 연결된 유령 기사의 영혼까지 전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진짜’ 주인으로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다른 놈들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어.’

엘릭은 자신의 방식이 옳았다는 생각에 살짝 미소를 흘렸다.

바로 그때.

「해냈구나.」

“…!”

엘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왜 그러냐?』

메피스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에 그 말 못 들었어요?”

『무슨 말?』

“누가 저한테 말을 걸었잖아요!”

『누가?』

메피스토는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엘릭이 뭐라고 설명하려는데.

「고생했다.」

대견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 목소리에는 따스한 정겨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엘릭은 본능적으로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듣기에 따라서는 오토 한의 목소리로도, 혹은 마도경식에 내재된 선조의 목소리로도 들릴 수 있었지만.

엘릭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우스던 메르빙거의 목소리였다.

‘역시 가문의 안배…! 거기 전부에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아있어. 분명해.’

꽃의 신전에서도 우스던의 손길이 닿아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잠깐. 설마 그렇다는 건…?’

엘릭은 한순간 ‘봄’으로 연결되는 안배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 혹시 우스던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닐지도 몰랐다.

‘욕심내지 말고 우선 ‘겨울’부터 완전히 소화하라는 의미이신 걸까?’

역시나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엘릭은 서둘러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알 것 같았다.

『얼굴이 놀랐다가, 울상이 되었다가, 또 웃고… 갑자기 머리통에 무슨 헛바람이라도 든 것이냐?』

메피스토는 엘릭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여겨졌는지 빤히 얼굴을 이쪽으로 가까이 붙였다.

아픈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희멀건 얼굴이 너무 앞에 있었다.

“메피.”

『왜? 말을 하는 걸 보니 정신은 드는 것 같…!』

“입 냄새 나요. 머리 좀 옆으로 치우시면 안 될까요?”

『이놈이!』

메피스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지만, 엘릭은 그냥 무시하고 여전히 유령 기사의 미간을 겨누고 있던 얼음창을 거둬들였다.

“이제 다음 타자…!”

다른 유령 기사를 부르려던 그 순간.

츠팟!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유령 기사가 다시 도전적인 불길을 태우면서 이쪽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엘릭은 재빨리 얼음창의 하단을 잡아 수직으로 쳐올렸다.

촤아아악!

얼음창이 유령 기사의 사타구니에서부터 우측 어깨까지 직선으로 내달렸다.

힘을 잃은 유령 기사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쳐지더니.

퍼석! 파아아-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지면서 엘릭의 그림자로 다시 깃들었다.

“젠장.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충성 서약까지 해놓고서 빈틈이 보이니 달려드는 꼴이라니. 그러면서 마지막에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웃는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끝까지 기량을 시험하겠다는 뜻인지.

엘릭으로서는 좋았던 기분이 팍 꺼질 수밖에 없었다.

『본 왕은 이유를 알 것 같구나.』

“뭔데요, 이유가?”

『누가 봐도 메르빙거의 가르침을 받은 가신의 모습이 아니냐.』

“….”

『통수는 메르빙거에 있어서 미덕이지. 암, 그렇고말고.』

뭐가 옳다는 건지, 메피스토는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고 있었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니, 있어도 했다간 괜히 말꼬리만 붙잡힐 것 같아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다음 놈, 【나와라】!”

츠츠츠-

그림자가 불쑥 올라오면서 새로운 유령 기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사그나드가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엄청난 크기의 클레이모어를 들고 있었다.

엘릭은 얼음창 대신에 얼음 칼을 뽑으면서 녀석에게로 겨누었다.

이런 식으로 일일이 가디언들을 때려눕혀 전부 충성 서약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 * *

‘벌써 열흘 째인가.’

브라이언은 엘릭을 따라 별의 종군이 산악 민족의 영역에 들어온 일수를 꼽아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보니 별의 종군의 책임자 및 총관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지만… 이대로 계속되면 안 좋을 텐데.’

갑갑할 노릇이었다.

현재까지 야만족과 완전히 남남처럼 떨어져 서로에게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언제 저들이 다른 부족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밀고할지 모른다는 위험이 항시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외부로 정찰병을 보내 바깥 상황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들리는 소식은 암담한 것들 뿐이었다.

‘이미 적사자군과 야만족은 제국 본토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황태자가 전선을 꾸리며 반격을 가할 준비를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동부 지방 전체에 걸쳐서 징병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별의 종군은 완전히 표류해버린 난파선이 되어버린 상황.

일단 병사들이 흔들리지 않게 잘 단속하고 있다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병사들을 단합시킬 만한 새로운 돌파구가.

“오늘부터 병사들에게 이것을 익히게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엘릭이 자신을 부른 자리에서 책자를 하나 내밀었을 때, 브라이언은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강체술 개론(槪論)>

<마투술 요본(要本)>

일반 마법사나 무도가라면 누구나 욕심낼 만한, 아니, 눈이 뒤집힐 만한 상승의 공부를 내어주겠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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