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186화 (185/405)

186화

패전 혹은 승전

우걱우걱.

바투는 스테이크를 씹어먹으면서 손에 묻은 핏물과 기름기까지 열심히 쪽쪽 빨아먹었다.

제국의 귀족이나 상류층 인사들이 본다면 교양 없다면서 비난할 법한 모습.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대고 뭐라고 말하지는 못하리라.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 속.

아무리 비위가 강하다고는 해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조금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어울리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고기가 목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바투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고기를 꼭꼭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기까지 했으니.

그 모습이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고, 심지어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군신.

모든 산악민족에게 있어 공통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신화 속 존재를 연상케 한다더니.

그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릴 정도였다.

“설익었군. 구울 것이면 바짝 구울 것이지, 피가 새어 나오게 하다니. 역시 제국 놈들은 이해를 못 하겠어.”

분명히 그의 앞에는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 있어도, 그에게는 별 쓸모없는 것들일 뿐이었다.

사실 바투는 의도적으로 그러고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 따위를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국에서나 강요하는 규칙일 뿐.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집으로 삼는 야생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일 뿐이니.

보아라.

너희 제국이 너희의 법칙에서 살아가듯, 우리는 우리의 규율에서 살아갈지니.

지난 세월 동안 너희가 너희의 질서를 강요하였듯, 이제는 우리가 너희에게 강요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려는 것이다.

“살려…!”

그러다 바투는 아래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자연스레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노인네 하나가 바닥을 박박 기어오면서 바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바다 족의 족장.

하나바다 족은 보르푸르 족이 바투 휘하에서 덩치를 불리기 전까지만 해도 산악 12민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 때문에 그곳의 족장은 항상 옛 영광에 도취해 언제나 바투를 깔보기만 했었다.

거기다 제국의 문물을 항상 동경하면서 자신은 언젠가 이렇게 비루하고 남루하기만 한 산악지대를 떠나 제국의 귀족이 되겠노라고 큰소리를 뻥뻥 쳐댔었지, 아마?

그러다 갑자기 큰 승전을 겪게 되자 돌변하여 자신이 전부 일을 주도한 것처럼 으스대기만 했었고.

그 꼴이 같잖아서 가만히 내버려 두었었는데.

머리가 반쯤 깨진 몰골로 이렇게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 우습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퍼억!

하나바다 족장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뒤에 다가온 전사가 철퇴로 남은 머리를 깨버렸던 것이다.

부서진 살점이 옷깃에 튀었다. 바투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그것을 툭툭 털어내면서 남은 스테이크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어머. 비위도 좋네. 나는 영 입맛이 없어져서 아무것도 못 먹겠는데.”

그런 바투의 태도를 비꼬기라도 하듯, 라피스가 매혹적인 어투로 씩 웃어왔다.

사실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된 건 모두 바투의 제안 때문이었다.

-어차피 12명이나 되는 우리 민족의 수장은 너희와 함께 하는 데 있어서 방해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골치를 내가 단박에 털어주지. 어떤가?

처음 바투가 자신들과 적사자군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까지만 해도, 라피스와 라줄리는 권력에 눈이 먼 작자라면서 그를 우습게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만나고 보니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이런 자리를 따로 만들지 않았어도, 저자는 언젠가 다른 부족들을 하나로 엮었을 게 분명해.’

하지만 혼자서 그러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테지.

그런 불필요한 수고를 덜어주면서 빚을 씌울 수 있었으니, 오히려 이쪽이 행운이라고 봐야 했다.

‘적사자는 바투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아니, 따지자면 오히려 그게 당연한 건가?’

안드레는 오랫동안 동쪽 변경을 맡아왔으니. 바투가 어떤 존재인지 이미 알고 있었을 터.

어쩌면 바투가 이렇게 판을 만들도록 그가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산악민족의 전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지리멸렬한 명령 체계보다는 하나로 통일된 게 더 나을 테니까.’

거기다 12개 부족 곳곳에 바투의 추종자들이 숨어 있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아마 지금쯤 저들의 본영에도 상당한 소란이 있을 게 분명했다.

집단 쿠데타인 셈이었다.

‘재미있어, 아주.’

라피스는 피비린내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 아주 흡족했다.

“피차 더 나눌 이야기는 없는 듯하니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바투는 포크 옆에 곱게 접혀 있던 흰 천으로 입가를 문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가 제국의 예의에 무지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안드레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네임리스는 여전히 그쪽으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그들 간에 맺어진 비밀 협약은 제국 본토까지 쳐들어오는 것에만 있었을 뿐.

이후부터는 서로 각자 갈 길을 따로 가면 될 일이었다.

“가자.”

바투는 피가 철철 흐르는 철퇴를 든 채로 자신의 명령에 따라 대기하고 있는 수하들을 보면서 말했다.

척척척. 흉흉한 눈빛을 내던 전사들이 썰물처럼 대막사를 빠져나간 뒤.

“하아! 겁나 멋있어.”

라줄리가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라피스가 어이없다는 투로 그런 쌍둥이 동생을 꾸짖었다.

“어머, 얘는. 저렇게 무식하고 우악스럽기만 한 남자가 뭐가 좋다고 그래.”

“나는 마초가 취향이거든.”

“하여간 남자 보는 눈이 이렇게 없다니까.”

라피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안드레 쪽으로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남자는 자고로 강한 것에다 이성적인 사고와 지성미까지 갖춰야 하는 법인데. 그렇지 않아요, 안드레?”

“…우리 쪽 볼일도 끝났으니 다음에 뵙도록 하겠소.”

안드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네임리스도 따라서 일어섰다.

“재미없어라. 사람이 그렇게 무뚝뚝하게만 살면 인생이 참 재미없을 텐데.”

라피스가 속을 알 수 없는 말을 던졌지만, 안드레는 전혀 개의치 않고 네임리스와 함께 막사를 빠져나갔다.

밖에는 그의 ‘검’이자 ‘발톱’이라 불리는 세 명의 심복이 서 있었다.

예의를 갖추는 그들을 보면서, 안드레의 눈가에 슬픔이 깃들었다.

원래 저 옆에는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까.

워낙에 덩치가 컸던 녀석이니만큼 오늘따라 유달리 그 빈 자리가 크게 보였다.

‘사그나드….’

안드레는 고개를 털면서 가장 가까이 있던 ‘세이버’ 제노바에게 물었다.

“저쪽은?”

“한창 혼란이 벌어지는 중입니다. 하지만 내분으로 격화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쉽다고 해야 할지.”

산악민족 내에 한창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안드레는 이대로 바투가 실권을 잡는 것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한평생 적이었던 저들이 이 기회에 지리멸렬하지 않은 것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많은 면에서 모순적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는 심복들이며 병사들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으니.

그것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피가 흐르겠구나.’

수하들을 살리기 위해서 일으켜버린 전쟁.

하지만.

그곳에는 수하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대신 아무 잘못도 없을 제국민들의 피해를 강요하게 될 것이니.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자신이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그걸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과연 이 전쟁의 끝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안드레는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모든 것이 슬플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툭툭.

네임리스가 말없이 손을 뻗어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고개를 들었다.

피비린내 나는 지상과 다르게 하늘은 참 더럽게도 맑았다.

* * *

“‘자신들은 제국과 다르게 명예를 아는 전사들이기 때문에 패잔병에게 인색하지 않다’…. 그런 전언을 보내왔습니다.”

답변이 별의 종군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자 세일러가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내자, 하루도 되지 않아 사절이 돌아온 것이다.

사절도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그들 내에서도 딱히 길게 논의를 나누지 않고 즉흥적으로 승낙했다는 뜻.

그 때문에 오히려 주춤하게 된 것은 별의 종군이었다.

“이거, 함정은 아니겠지?”

“아닐 것이네. 내가 아는 보르푸르 족은 머리를 쓰는 것만큼 골치 아파하는 건 없거든.”

헤르만이 걱정을 던졌지만, 세일러는 단박에 그 걱정을 불식시켰다.

“결정은 나왔네요. 갑시다.”

그렇게 엘릭의 결정에 따라, 별의 종군은 동쪽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산악민족이 제국 본토를 한창 휩쓸려는 지금. 오히려 적의 내지(內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니.

자살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엘릭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불안감을 보였던 멤버들도 차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별 일, 없겠지…?”

“엘릭 님이 괜찮다고 하시지 않나. 그러니 믿어야지.”

“하긴 엘릭 님의 결정이라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캘리거 백작과 쿠란시빌 자작이었다.

“계속 이대로 있을 생각인가?”

“그럴 리가. 기회를 보고 있을 뿐이야.”

사실 그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이미 그들 휘하의 병사며 부관 중에도 엘릭에게 적잖게 동경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엘릭이 보여준 활약상에 반쯤 마음이 넘어간 것이다.

더군다나 애시당초 그들의 뿌리가 메르빙거에 있었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었으니.

캘리거 백작과 쿠란시빌 자작이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비밀리에 논의를 나누는 동안.

별의 종군은 어느덧 윈즈 변경주를 완전히 떠나 산악지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세일러가 감회에 젖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거칠고 뾰족하게 서 있는 산들이 보였다.

나무들이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선 건지, 울창하다는 느낌보다 갑갑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이사벨은 여기서부터 ‘진짜’ 산악민족의 영토라 할 수 있었기에 브라이언에게 따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군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던 그때.

“카카파 샤구나두, 차샤, 세일러?”

숲 자락이 흔들리더니 일련의 무리가 나타나 별의 종군 앞을 가로막았다.

표범 가죽을 몸에 두르고, 전신에 크고 작은 문신을 새긴 이들.

엘릭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보르푸르 족의 전사들이었다.

엘릭은 알아듣기 힘든 저들의 말에서 유일하게 ‘세일러’라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샤타. 카쿠기, 세일러.”

세일러가 앞으로 나서자, 젊은 부족원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툰?”

“툰.”

“야바.”

“따라오라는군.”

세일러의 말에 엘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심안과 아귀감을 활짝 열어 혹시 있을지 모를 기습에 대비했다.

다행히 근방에 다른 이상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딱히 함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흐음?』

여태껏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던 메피스토가 미간을 살짝 좁히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릭은 그가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전부터 조금씩 느끼긴 했는데…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갈수록 이상해서 말이다.』

[뭐가요?]

엘릭은 혹시 자신이 놓친 점이 있나 싶어 바짝 긴장하는데, 메피스토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용된 것 같긴 하다만. 저놈들, 어째서 용족어(龍族語)를 쓰고 있는 거냐?

재능 삼킨 마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