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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81화 (180/405)

181화

패전 혹은 승전

『호오?』

팔짱을 끼고 있던 메피스토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법인데?’라는 그만의 작은 감탄사.

하지만 그건 엘릭을 향한 게 아니었다.

유다를 향한 반응이었다.

‘얕았어.’

엘릭이 빙열을 시도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분명 그는 심안이 그려주는 대로 허점이라 생각되는 지점에 힘을 강하게 실어 넣었다.

하지만 타격은 그리 신통치 못했다.

유다가 마지막에 아주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내빼는 데 성공하고 만 것이다.

분명히 광증에 눈이 멀었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마족이라 그런지 동물적 감각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콰아아앙!

“제기라아알!”

유다는 전신을 뒤흔드는 끔찍한 고통에 울부짖었다.

왼쪽 팔뚝에서부터 뒤쪽 날갯죽지까지. 단박에 날아가 있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이 단박에 먹어치우기라도 한 것처럼.

본래 자신의 머리통을 향한 공격이었던 것을 알았기에. 자칫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위기감이 등골을 따라 스쳐 지나갔다.

문제는 반격을 가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상처 부위에 잔뜩 맺힌 살얼음이 빠른 속도로 육신을 파고들었다.

마기를 잡아먹으면서 순환을 방해하고, 육체의 움직임을 삐거덕거리게 했다. 동상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잔뜩 퍼져 나왔다.

빙독이었다.

“놈!”

마족은 원래 ‘진명’이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비정형(非定形) 생물.

따라서 육체 또한 일정한 형태가 없어 그 어떤 부상을 입더라도, 마기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회복이나 재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일절 불가능했다.

빙독 때문이었다.

엘릭이 방금 그의 몸에 강제로 쑤셔 넣은 빙독은 ‘겨울’이 가진 권능의 소산인 바.

한때 대마왕들과도 자웅을 겨루었던 오토 한의 힘을, 일개 열화판이자 조직 내에서도 반편이에 불과한 유다가 물리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유다는 겉으로는 잔뜩 성내는 것과 달리 속마음은 조급해졌다.

엘릭을 상대로 승산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밀리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광기의 인장이 별반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만은…! 이놈만은 어떻게든!’

분명히 풍기는 위세만 따진다면 자신이 훨씬 우세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엘릭을 죽일 수 있었다.

아니, 죽여야만 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 채로 조직에 돌아간다면, 어차피 죽은 목숨일 뿐일 테니까.

그동안 엘릭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동장군까지 빼앗긴 뒤로… 그는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형태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모시는 신께서 아무리 후손들을 관대히 봐주신다고 한들, 두 번의 자비는 없을 테니!

파아앗!

유다는 남은 날개를 크게 활짝 펼치면서 마기를 있는 힘껏 쥐어짰다.

콰르르릉-

손톱을 바짝 세워 허공을 거칠게 내그으니 마기 폭풍이 그대로 뒤따라왔다.

대지에 커다란 상처가 남고, 공간이 칠흑색으로 물들었다.

쩌저저적-

그 때문에 빙독의 감염을 억누르고 있던 게 풀리면서 빙독이 더욱더 빠른 속도로 전신을 뒤덮어갔지만.

당장 유다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엘릭을 빨리 죽여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자신이 지닌 소화의 인장이라면. 무엇이든지 먹어치워 그 속에 담긴 힘을 갈취할 수 있는 인장의 힘을 빌린다면, 엘릭을 먹어 어떻게든 빙독을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권능까지 도로 빼앗을 것이다!’

겨울의 힘을 자신이 도로 가져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콰콰콰콰!

그 상황에서.

엘릭은 오른발을 반걸음 뒤로 물리면서 발끝을 살짝 돌렸다.

새롭게 맞대응하기 위해 자세를 바로 하려는 것이다.

이번에는 강체술의 묘리 중 일부를 섞어보려 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그때, 그림자 일부가 엘릭의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휼의 사념체가 은근슬쩍 감미로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당장 힘이 부족하잖아. 그렇지?

엘릭은 눈살을 찌푸렸다.

헛소리 그만하고 주변에 떨어진 다른 마족들의 인장이나 먹어치우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런 말을 하기에는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조금 전 공격으로 마력이 거의 바닥 나 버렸다.’

유다에게 피해를 입힌 것까진 좋았지만, 문제는 자신도 피해가 크다는 점이었다.

두 개의 권능을 잇달아 발현한 것만 해도 문제인데, 빙열을 사용한답시고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쥐어짠 셈이니.

‘남은 시간은 1분.’

이제 마력회로도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어찌어찌 유다를 죽인다고 해도, 빠져나가는 것조차 녹록하지 않을 듯했다.

‘아니. 따지자면 그것도 안 남은 셈이니… 어떻게든 다음 공격에 놈을 잡아야만 해.’

소화의 인장.

휼의 사념체도 그런 엘릭의 사정을 눈치챘기 때문에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그것만 가져가도록 하지. 어때? 주인. 너에게도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말이야.

아자젤인지 뭔지 하는 놈의 인장은 맛이 형편없을 것 같거든. 크크.

휼의 사념체가 소화의 인장을 요구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능력이었으니까.

아귀 출신인 녀석이 ‘소화’라는 관념까지 얻어서 융화할 수 있다면, 빠른 속도로 힘을 회복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엘릭은 자신에게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당장 흉성의 인장은 아귀감과 연결되어 있는바.

흉성의 인장이 발달한다면 당연히 자신의 감각도 자연스레 발달하게 된다는 뜻이니.

문제라면, 휼의 사념체가 강해지면 그만큼 녀석을 제어하는 데 역시 힘이 들 거라는 점이었지만.

‘그거야 동계의 인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테고… 어쩔 수 없군.’

당장 급한 건 자신이었다.

엘릭은 눈을 차갑게 빛냈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런 의사가 휼의 사념체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키키키킥.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간만에 포식을 해서 그런지, 때마침 아주 좋은 걸 쓸 수 있게 되었거든.

엘릭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사이에 휼의 사념체가 한 층 더 존재감이 또렷해졌다는 사실을.

등급도 벌써 고급을 넘어 진귀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가디언들이 해치운 마족들을 빠른 속도로 잡아먹으면서 한껏 덩치를 불린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절대 한눈을 팔면 안 되는 놈이었다.

지금은 그 덕분에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츠츠츠츠-

좋아. 그렇게 힘을 빼고.

그림자가 움직였다.

나를 받아들여라.

한순간.

엘릭이 사방으로 뿌려뒀던 검은 그림자가 소용돌이를 그리면서 맹렬한 속도로 그에게로 빨려 들어왔다.

그림자는 엘릭의 몸 위를 지나면서 천천히 얼음 창으로 스며들었으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던 얼음 창이 새카만 칠흑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그림자를 압축할 대로 압축해놓은 것처럼. 한계까지 꾹꾹 눌러 담은 검은 창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쩌어어엉-

키에에엑!

창명(槍鳴)과 함께 울린 귀곡성(鬼哭聲).

그것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섬뜩한 뭔가가 숨어 있었다.

동시에 엘릭은 아귀감이 한 층 더 증폭되고, 모든 정신이 창끝에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이 순간.

그는 자신과 창이 하나로 연결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신창일체(身槍一體).

무도가들 중에서 경지를 이룬 사람들만이 다다를 수 있다는 묘리가, 엘릭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비록 휼의 사념체가 빙의한 엘릭의 상태를 활용해 억지로 끌어낸 경지라 하여도, 그것만 해도 이미 대단한 일이었다.

퍼어어엉!

창끝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단순히 앞으로 내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창은 단숨에 공간을 뚫고 유다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녀석의 몸을 감싸고 돌던 마기 폭풍도. 무엇이든 먹어치우던 소화의 인장도. 공력을 증폭시키던 광기의 인장도. 엘릭을 찢어발기려던 공격도.

전부 그 일격의 전진을 가로막지 못했다.

유다의 머리통이 단숨에 날아갔다.

기능을 다 한 얼음 창도 똑같이 폭발했다.

죽기 직전까지. 녀석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조차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빙열(氷裂).

쩌저저적-

차차차창!

빙독이 단숨에 남은 몸뚱이를 뒤덮었다.

얼음 속에 갇힐 새도 없이 단숨에 전신에 균열이 퍼져나가면서 수십 수백 개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키키키킥! 잘 먹겠습니다.

휼의 사념체는 바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톱니 이빨을 훤히 드러내면서 아래로 우수수 쏟아지던 유다의 사체 파편을 전부 먹어치웠다.

그러면서도 제 딴에는 약속은 지킨다는 뜻인 듯, 소화의 인장만 고스란히 삼키고 나머지 마기와 광기의 인장은 고스란히 엘릭에게 넘겨주었다.

파아아-

그사이 흉성의 인장은 시린 빛을 뿜어내면서 서서히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흉살(凶煞).

또다시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덕분에 엘릭은 아귀감은 물론, 마력에도 한 층 더 공격성이 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한 줌만…!’

그는 전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유다를 죽이면서 빼앗은 마기 중 일부만을 먼저 마력으로 치환하는데 급급할 뿐.

마력회로가 어느새 완전히 동나버리면서 북풍과 한설, 두 개의 권능도 함께 정지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빙의가 풀렸다. 가디언의 소환도 통째로 해제되었다.

“유, 유다 님?”

“유다 님이 죽었다!”

“메르빙거도 빈사 상태다! 어떻게든 죽여!”

남은 마족들은 뒤늦게 상황을 판단하고, 어떻게든 엘릭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리 내에서 그들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신세.

그런데 엘릭을 잡기는커녕 주요 전력인 주교만 잃은 채로 돌아가서는 모두 ‘양분’ 신세를 면치 못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엘릭이 도망칠 기미를 보이자 막으려 드는 것이었지만.

그리고리 내에서도 말단에 불과한 그들은 여태 잘 몰랐다.

엘릭이 어떤 인간인지를.

그가 한 줌의 마력을 필요로 한 건 단순히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디언들이 그의 의지에 따라 미리 곳곳에 깔아둔 트랩을 격발하기 위해서였지.

“【터져라】.”

그는 엘릭 메르빙거.

마족의 천적이라 불리는 메르빙거의 당대 가주일지니.

가문의 오랜 숙적들 앞에서 도망친다는 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퍼퍼퍼펑!

콰르르릉-

“이, 이게 뭐야!”

“어, 언제…!”

“컥!”

마족들은 저마다 발밑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는 폭발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설을 이용해 깔아둔 빙판 곳곳에 가디언들이 직접 마력탄(魔力彈)을 심어뒀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기존에 죽은 마족들의 마기를 따로 뭉쳐뒀다가, 마치 지뢰처럼 곳곳에 설치해 뒀던 것이다.

너무나 조용하게 벌어졌기에 아무도 몰랐을 뿐.

그리고 뒤늦게 눈치챘다고 해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때는 이미 목숨이 사라진 뒤였으니까.

찰칵!

찰칵!

그사이.

휼의 사념체가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부서진 마족의 잔해들을 먹어치우는 소리만이 음산하게 전장을 울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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