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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70화 (169/405)

170화

별의 종군

스걱-

그런 소리가 났다.

마치 수수깡이라도 분지른 것 같은 소리.

하지만 결과는 절대 그렇게 단조롭지 못했다.

잘린 사그나드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게 무슨…?”

“사그나드 님!”

한순간, 사그나드를 돕기 위해 모여들던 병사들은 멍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그들의 눈에는 현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비쳤으니까.

사그나드가 누구던가!

오랫동안 동부 지방의 방벽을 자처하던 적사자가가 자랑하는 ‘네 개의 발톱’ 중 하나였다.

일찍이 뒷골목의 건달로 자라고 있던 그를 발견하고, 변경백이 직접 거둬 검을 사사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며 오랫동안 적사자가에 몸을 담가온 전설적인 존재가 그였다.

그런 그의 오른팔이 잘려?

하지만 피 분수가 아름답게 바닥으로 쏟아지는 순간, 병사들은 그제야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사그나드 님을 구해라!”

“뛰어! 어서!”

“저놈을 막아!”

기사들이 가장 먼저 마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면서 바닥을 박찼다.

한시라도 빨리 사그나드에게 닿기 위해서.

그들의 수장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엘릭은 다음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조금 전의 공격으로 공력이 급속도로 닳아가는 중이었다.

빙의만 하더라도 절대 작지 않은 마력을 소모로 하는 데다가, <매의 날개>를 펼치면서 의념을 너무 많이 쏟아부었던 터라 한순간 현기증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사그나드를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연쇄 공격이 이어졌다.

발로 땅을 세게 굴리면서 종아리로 녀석의 하반신을 쓸어갔다.

<매의 날개>가 마치 보라매가 날개를 활짝 펼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이번에 펼치는 <매의 발톱>은 활강을 시도하며 먹이를 낚아채는 매의 움직임을 연상케 했다.

촤촤촤촤!

마치 잘 뽑힌 보도(寶刀)와도 같았다.

걷어차는 각법(脚法)에 이어 되돌려 차는 퇴법(腿法), 심지어 무릎으로 찍어 올리는 슬격(膝擊)까지.

강체술과 하나로 섞인 <매의 발톱>은 매서워도 너무 매서웠다.

사그나드는 그 앞에서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에 불과했다. 뒤로 최대한 몸을 내빼려 해도 이미 강풍은 녀석을 크게 휘감으면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을 만들었으니.

빠아악!

뻐걱-

덕분에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든 돌려차기가 사그나드의 허리에 틀어박혔다.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등뼈가 박살이 나면서 척추가 골절되고 만 것이다.

컥.

사그나드가 피를 토했다. 내장도 같이 박살 나고 말았던 건지 각혈 속에는 내장 조각이 같이 섞여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엘릭을 막아 세우고자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왼손을 앞으로 뻗었지만, 엘릭의 움직임을 제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퍼퍼퍼퍽!

결국 연쇄 공격이 사그나드의 남은 척추를 완전히 부수고, 경추마저 끊어버렸다. 사그나드는 바로 거기서 절명하고 말았다.

『1분.』

‘흡…!’

엘릭은 마력이 한순간 텅 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계점에 다다랐던 건지, 빙의가 탁 풀리면서 무력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져서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손날을 바짝 세웠다. 병사들이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다. 놈들이 에워싸기 전에 챙겨야 할 것이 있었다.

촤아악!

바짝 세운 손날로 허물어지던 사그나드의 목젖을 갈랐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려던 머리통을 잡고 대지를 박찼다.

“【솟구쳐라】.”

파아아앗!

마지막 남은 마력이 소모되었다. 엘릭의 몸이 한순간 가벼워지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엘릭은 허공에다 마력장을 계단처럼 잇달아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연거푸 밟아 최대한 높이 뛰어올랐다.

때마침 겨울 폭풍이 끝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발아래로 다시 생성되는 결계가 보였다.

“놈을 잡아!”

“놈이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사그나드 님의 머리를 되찾아야만 해!”

슈슈슈슉!

엘릭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무시하고,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이사벨과 별의 종군이 있는 곳에 착지했다.

“엘릭…!”

이사벨이 그런 엘릭을 보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그들의 시선은 온통 엘릭의 왼손에 들린 사그나드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단신으로 요새에 뛰어들어 적장의 머리만 취해서 돌아오다니!

이사벨이 시키는 대로 엘릭이 요새에 제대로 진입할 수 있도록 스크롤을 찢긴 했다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작전이 정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상대가 4체인을 완성한 마스터 급의 고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파란이 일어날 만한 전공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엘릭과 이사벨의 목표는 그냥 적장을 암살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요새를 점령하는 데에 있었다.

“이사벨!”

엘릭은 비틀거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이사벨을 불렀다. 눈치 빠른 브라이언이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진력을 쥐어짠 나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사벨은 엘릭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별의 종군을 향해 소리쳤다.

“전원 퇴각 준비!”

아테가 이에 호응하면서 마력을 담아 군을 이끌기 시작했다.

“모두 퇴각한다!”

“퇴각한다!”

“퇴각한다!”

장교들의 일사불란한 명령에 따라, 이미 언제든 내뺄 준비를 하고 있던 별의 종군은 재빨리 후퇴를 개시했다.

그들의 얼굴은 온통 환희에 젖어 있었다.

쾅!

두두두두-

그때, 때마침 요새의 문이 활짝 열리며 일단의 기마군단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든 별의 종군을 쫓으려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사그나드의 수급을 되찾고 이런 참사를 저지른 엘릭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엘릭과 이사벨의 작전에 다 예측되어 있던바.

“부디 몸조심 하세요.”

다만,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기존 예측보다 엘릭의 마력 소모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었다.

이사벨은 걱정 어린 얼굴로 엘릭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엘릭은 브라이언과 이미 즐겨 입던 로브를 바꿔 입은 상태. 후드만 뒤집어쓴다면 멀리서 봤을 때는 둘을 구분해낼 수 없으리라.

지금부터 브라이언은 엘릭을 흉내 내면서 별의 종군과 함께 추격대를 ‘함정’이 있는 곳까지 끌어들일 예정이었다.

그동안 엘릭은 마력을 재빨리 보충하고 빈집털이를 할 예정이었으니.

단 한 번밖에 시도하지 못할 도박 같은 작전이었지만, 그만큼 성공한다면 케트라인 요새라는 커다란 경품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이사벨 님도 조심하십시오.”

엘릭은 이사벨을 보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은 싱긋 미소를 짓다가, 별의 종군과 함께 썰물처럼 장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놈들이 도주하는 것이 보인다!”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해라!”

“전원, 산개하여 놈들을 포위해라!”

추격대는 별의 종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네 개의 소대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퇴로를 막아 어떻게든 포위망을 갖추려는 속셈인 것이다.

“【가려라】.”

엘릭은 그림자를 잔뜩 위로 끌어올리면서 몸을 공간 속에 숨겼다. 그러자 마력향이 흩어지면서 그가 언제 그곳에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 * *

두두두두!

이사벨은 말을 거칠게 몰면서 뒤쪽을 슬쩍 보았다. 기마병들이 어느새 바짝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 보였다.

별의 종군에 가담한 멤버들도 대부분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라 승마에 일가견이 있던 것을 감안해도 놀라울 정도의 기마술이었다.

‘말 위에서 지내는 시간이 땅 위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많다더니.’

하지만 사실 윈즈 변경주의 기마병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이 아주 당연할지 몰랐다.

대대로 동부 변경 지대는 협곡과 산악지대를 터전으로 삼는 야만인들로 인해 몸살을 많이 앓아왔다.

그네들은 대부분 뛰어난 체력과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한바. 하지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거친 산자락도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는 기마술에 있었다.

거룡 산맥의 정기를 품고 태어난 동부 지방의 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뛰어난 상등품으로 유명했다. 그런 말들을 다뤄야 하니 당연히 야만인들의 기마술 역시 뛰어나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윈즈 변경주에서도 그들을 상대하면서 기마술이 자연스레 발전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사벨도 애당초 그런 이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는 반격을 가해야만 한다.

최대한 많은 적의 병력을 깎아 놓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목표였으니.

‘지금부터는 내 차례야.’

이사벨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태껏 엘릭은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왔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뛰어난 업적을 세웠으니.

그런 그의 옆에 서려면 자신도 똑같이 가치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이번 전쟁이 바로 그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신기하게도 긴장감이 물로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에 냉정한 사고가 눈을 떴다.

“브라이언.”

“예. 군사.”

군사.

그 단어가 이사벨의 입가에 감돌았다.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바짝 실렸다.

“틀어요!”

방향을 꺾으란 의미였다.

잘 달리다 말고 갑자기 왜 목적지로 곧바로 향하지 않고 우회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브라이언은 이사벨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좌로 90도!”

그저 시키는 대로 고삐를 옆으로 홱 잡아당기면서 행군의 이동 경로를 옆으로 틀 뿐이었다.

뒤따르던 멤버들도 똑같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방향을 꺾는 그 순간, 숲 자락에서부터 다른 기마군단이 불쑥 튀어나왔다.

별의 종군이 어디로 이동할지 예측하여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별의 종군의 측방을 급습해서 그들을 와해시키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추격대는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종군의 후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테!”

“3번 스크롤, 찢어!”

이사벨의 명령에 따라 후미로 이미 이동해 있던 아테가 재빨리 수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멤버들은 품속에 넣어둔 스크롤 중 세 번째로 잡히는 것을 뽑아 잇달아 찢었다.

‘떨어지는 화구(火球).’ 흔히 ‘파이어 볼’로도 유명한 마법이었다. 화염 계통이라 그만큼 공격력과 파괴력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콰콰콰쾅!

쿠르르-

“젠장!”

“피, 피해!”

“으아아악!”

선두에 있다가 고스란히 파이어 볼에 얻어맞은 기마병들은 그대로 낙마하고 말았다.

불똥이 바닥 여기저기에 쏟아지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자고로 말이란 생물들은 겁이 많다. 특히 불을 만나면 소스라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히히히힝!

“젠장!”

“워, 워워!”

놀란 말들이 일제히 투레질을 하자 추격대의 전열은 삽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다행히 피해가 덜 미친 후방의 전열은 재빨리 좌우로 흩어져 다시 추격을 개시했지만, 이미 별의 종군은 다시 저만큼이나 거리를 벌려놓은 뒤였다.

“순순히 잡히지 않는다, 이 말이렷다?”

빠드득!

기마군단의 장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고삐를 세게 후려쳤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주마.”

그의 두 눈은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별의 종군을 쫓아 향하는 곳이 그들 자신도 접근하기를 꺼리는 길고 좁은 협곡이라는 사실을.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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