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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67화 (166/405)

167화

별의 종군

아침.

‘별의 종군’의 숙영지는 대본영에서 내려온 명령서로 한창 떠들썩해졌다.

“갑자기 출전? 미쳤…!”

“이거 정신없어도 너무 없겠는데.”

멤버들은 여독을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출진해야 한다는 소식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분위기는 대체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피로는 금방 풀 수 있는 데다가, 오히려 몇몇은 잘 되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포문을 여는 자리를 자신들이 장식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실력을 증명할 좋은 기회가 될 테니.

더군다나 멤버들은 절대 자신들의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기리라.

별의 마도사가 그러하듯, 라센트의 영웅이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자신들이 패배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으니까.

두근!

두근!

출전을 준비하는 그들의 눈에 힘이 잔뜩 실렸다.

* * *

‘누이와 션 쪽은 아직인가?’

엘릭은 본격적으로 출전을 개시하기 전에 잠시간 군영 쪽을 돌아봤다.

곧 전장에 합류할 거라던 헤이즈와 블랙 스컬, 션과 네레스타 가문이 군영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한 상태.

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뒤에나 만날 수 있겠단 생각에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재미난 서프라이즈를 해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점박아, 가자.”

히히힝!

점박이는 오랜만에 엘릭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던지 크게 투레질을 하면서 전진을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

『개전을 너희들이 장식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메피스토는 헤르만 외에 배웅을 나오지 않은 대본영 쪽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자고로 선봉은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군대의 전체적인 기강과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

당연히 첫 전투를 개시하는 별의 종군에도 의욕을 진작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모양새를 갖출 법도 하건만.

정작 엘릭과 별의 종군이 받은 것은 숙영지를 떠나기 직전, 대본영에서 보낸 사절로부터 정식 명령서를 하달받은 게 전부였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일개 정찰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대본영에서도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을 테구요.]

엘릭의 입술 끝이 크게 비틀렸다.

[그러니까 더더욱 저들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가야겠죠?]

엘릭의 엷은 웃음소리에 메피스토는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그릇 크기 한 번 대단한 작자로군.』

메피스토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그런 작자가 이렇게 커다란 제국의 황태자가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투였다.

“하여간 후딱 빨리 끝내고 돌아갑시다. 이랴!”

점박이가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진군이, 시작되었다.

* * *

“출전했다지?”

제라이츠 황태자가 던진 질문에 감찰4국의 부장, 파트란이 허리를 쭈뼛 세웠다.

“그렇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그런가.”

제라이츠 황태자는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눈가에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짜증, 분노, 살의… 그만한 권력자가 지니면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는 난폭한 감정의 편린들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회한이나 한심함도 같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얼마나 한심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라이츠 황태자에게 있어 엘릭은 신경 써도 그만, 쓰지 않아도 그만인 존재였다.

메르빙거의 가주라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지만, 글쎄?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메르빙거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된 가문인 반면에, 그는 차후에 제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끌 지고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정히 신경 쓰인다면 황좌에 앉은 뒤에 적절한 죄목을 뒤집어씌워 날려버려도 그만이란 뜻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최근에 와야 언론이 신성이니 뭐니 하면서 비춰주기 시작한 엘릭 메르빙거를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건만.

그는 계속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이사벨… 은 역시나 놈을 따라갔고?”

“그렇습니다.”

“기어코 가고 말았군. 청사자… 내 의중을 이미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짓을 저질러.”

이 때문이었다.

이사벨 바일.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꽃이 자꾸만 그놈과 엮이기 때문이었다.

제라이츠 황태자는 그것이 싫었다.

그녀가 엘릭 메르빙거와 엮이는 것도 싫었고, 자신이 자꾸만 그쪽에 신경이 쏠려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이런 걸 두고, 뭐라고 해야 할까?

질투?

시기?

그로서는 전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어디까지 옹졸해질 수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감정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거스를 수 없는 건, 제아무리 황태자라고 해도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벨… 외유를 좌시하는 것도 이번까지만이요. 이번 일만 끝나면… 반드시. 반드시 놈을 쳐내고 당신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고 말겠소.’

하지만 제라이츠 황태자는 그런 자신의 속마음을 버리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번 토벌을 성공적으로 마치겠노라고 더욱더 열의를 불태웠다.

이 일이 끝난 뒤라면. 황태자의 자리를 확고하게 할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신을 거스를 수 없을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넣게 될 테니.

그때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엘릭 메르빙거를 옆으로 쳐내고, 이사벨을 이 손에 거머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자신을 막아섰던 이들도 더 이상 이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아버지인 황제라 할지라도!

“메르빙거가 무슨 생각으로 명령서를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들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파트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르빙거와 그를 따르는 ‘별의 종군’에는 그들이 개전(開戰)을 알리는 서전(緖戰)을 여는 것이라 일러두었다지만.

사실 제라이츠 황태자와 감찰4국이 생각하는 서전은 그곳이 아닌 변경주의 서부에 만들어진 전선(戰線)이었다.

“그래도 메르빙거가 가진 이름이 있으니 뭔가 있는 게 아닐까 할 게 분명할 터… 주력이 어딘질 몰라 저들이 혼란해진 틈을 타서 단박에 들이친다.”

주력은 제라이츠 황태자, 그가 직접 이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금 크롬헬 황자를 지지하고 있는 인사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무력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황태자는 이렇다 할 전공을 보이지 못할 만큼 유약하다’였으니.

제라이츠 황태자는 압도적인 전공을 바탕으로 크롬헬 황자를 확 가려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여태 숨겨둔 무예 실력도 맘껏 뽐낼 예정이었으니.

비록 크롬헬 황자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는 충분히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엘릭 메르빙거는 ‘미끼’로써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완수하게 되리라.

물론, 엘릭이 서전을 승리한다면 제라이츠 황태자의 전공은 빛이 가려지는 것이 될 테지만.

글쎄?

‘고작해야 살아 돌아오면 다행일 테지.’

제라이츠 황태자와 파트란, 두 사람 중 누구도 설마 엘릭이 승리를 거둘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엘릭의 실력을 철두철미하게 관찰한 감찰국은 물론, 이번 작전을 내놓은 참모진도 똑같은 결과를 내놓을 정도였다.

필패(必敗).

혹은 필사(必死).

설사 어떻게 운이 좋아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아니, 어찌어찌 천운이 따른다고 해도, 결국 뒤이어 쏟아질 재앙을 생각해본다면.

메르빙거가 두 번 다시 재기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다면 이사벨도 자연스레 그의 것이 되는 것이다.

제라이츠 황태자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 * *

별의 종군이 받은 명령은 아주 간단했다.

-윈즈 변경주의 북쪽 요새, 케트라인 성(城)을 공략하라. 단, 공략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그쪽의 상황에 대해서 면밀히 파악하라.

하지만 엘릭이 받아들인 의미는 전혀 달랐다.

-케트라인 요새에서 최대한 전력을 격파하고 그쪽으로 적사자의 이목을 집중시켜라.

대본영에서 직접 공략하라고 명령내린 케트라인 요새는 아직 군단으로서의 가치가 입증되지 않았기에 별의 종군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윈즈 변경주를 둘러싼 3개의 요새가 전부 그러하지.’

윈즈 변경주는 제국의 동쪽 변경 지대를 보호한다. 예부터 동쪽 지역에는 거룡 산맥에서부터 쭉 이어져 오는 여러 산줄기를 따라 조성된 협곡과 산지를 터전으로 삼는 야만인들이 있어 제국에 많은 위협이 되곤 하였으니.

그로 인해 윈즈 변경주의 주요 요새들은 야만인들로부터 영지와 군영지를 보호하고자 많은 개‧보수 작업이 이뤄지곤 했다.

난공불락의 성채인 셈이었다.

그리고 각 요새의 성채는 적사자가를 수호한다는 ‘네 개의 발톱’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클레이모어’의 사그나드.

‘바스타드 소드’의 테단.

‘레이피어’의 니르프.

‘세이버’의 제노바.

각각 검의 명칭을 별칭으로 삼은 이들은 윈즈 변경주가 단숨에 세력을 확장하고, 오늘날 황실도 위협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공신들이었다.

이중 케트라인 요새는 현재 ‘클레이모어’ 사그나드가 맡고 있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케트라인 요새는 윈즈 변경주의 북쪽 지역 전체를 관장할 만큼 커다란 대요새로 알려져 있는바.

여기에 ‘클레이모어’ 사그나드까지 더해져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본영에서도 이곳을 공략하라고 명령을 내린 건, 사실상 어디까지나 그만큼 정찰 임무에 충실하라는 의미가 강했다.

그리고 나아가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엘릭의 명성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는 속셈이겠지.

하지만.

‘그러니 더더욱 해야지.’

엘릭은 대본영의 바람과 달리, 케트라인 요새를 어떻게든 떨어뜨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전쟁 기간 내내 제라이츠 황태자에게 질질 끌려다닐 게 뻔했으니까.

“현재 이쪽 길목에는 수색병이 보이질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 협곡과 능선이 많은 터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킬지 알 수가 없습니다.”

멤버들 중에서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아테의 보고에 엘릭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라면 헤르만이 붙여준 부관들 덕분에 지휘가 이토록 유기적으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우리의 움직임은 적들에게 얼마 가지 않아 들킬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들켰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엘릭은 굳이 제라이츠 황태자가 무슨 수를 썼을지 모른다는 뒷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해도, 어차피 저들에게는 우리가 어설퍼 보일 테니까요.”

아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그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속전속결로 가겠습니다.”

“속전속결이라고 하시면…?”

“단박에 들이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그냥 바위에 계란 치기가 아닙니까?”

아테는 엘릭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케트라인 요새가 가진 위명을 생각해본다면, 엘릭의 말은 너무 허황된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요새에 주둔 중인 병력은 대략 3천 명으로 파악되는바.

반면에 별의 종군은 멤버가 백 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숫자에서도 차이가 어마어마한 데다가, 적은 요새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속전속결로 가야죠. 저들도 설마 이 정도 숫자로 공성전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허를 찌르는 거죠.”

“허…!”

아테는 그 말이 더더욱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래서 공성전은 저만 치를 겁니다.”

“…?”

“…?”

“…?”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혹시 자신들이 엘릭의 말을 잘못 들었나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저 이사벨만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을 뿐.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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