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161화 (160/405)

161화

보라매의 기상

-뭐? 푸하하하핫! 나만큼 강해지는 법도 아니고, 나를 이길 만큼 강해질 방법을 가르쳐 달라?

황금사자는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투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흥미 가득하다는 투로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설마 그걸 내가 순순히 말해줄 거라고 믿는 멍청이인 건 아니겠지?

-그런 멍청이가… 맞는 것 같소만.

-이런. 어쩌나. 나는 너 같은 그런 멍청이가 아닌데.

-아니, 되겠소?

당시 헤르만은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황금사자가 보여준 압도적인 무용에 감화되어, 어떻게든 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황금사자도 헤르만의 그런 눈빛을 읽었던 터라 그냥 물리치지는 못하고 헛웃음만 잔뜩 흘려야 했다.

그러다 갑자기 변덕이라도 생겼던지 한쪽 입술 끝을 크게 말아 올렸다.

-이런 멍청한 놈이라면 좀 더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날 죽여줄지도 모르겠군, 그래?

황금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아주 오래전이긴 한데. 과거에 날 꺾을 ‘뻔’한 놈이 하나 있었거든? 근데 그놈이 후인을 남기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단 말이야. 그걸 찾아봐. 그럼 방법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오? 찾아보겠소.

-음…! 그러게. 이름이 뭐였더라?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황금사자는 한참 고민하다가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몰라. 기억 안 나. 패배자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주의라.

* * *

그 뒤로.

헤르만은 황금사자를 꺾을 ‘뻔’했다는 자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대륙을 좁다 하며 들쑤시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푸른 매는 그냥 미친놈이 헛소리를 지껄인 것뿐인데 그걸 어떻게 믿느냐는 투로 항의했지만.

헤르만은 어쩐지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록 어투나 행동이 경망스러워 보이기는 했어도, 황금사자는 거짓말을 해서 그를 피곤하게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 눈빛이 진짜였다.

그래서 헤르만은 대륙에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황금사자의 행적을 좇고 또 좇았고, 수소문에 수소문을 거듭하며 장장 10년을 넘게 이름도 모를 그 사람을 좇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헤르만의 명성은 나날이 커지면서 ‘청사자’의 직위까지 내려졌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허울 좋은 직위 따위야, 결국 황금사자 앞에서는 전부 무용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랜 바람은 결국 이뤄지고 말았으니.

남방의 수림 지대에서 우연하게도 이름 모를 존재의 행적을 찾는 데에 성공했고,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안가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는 괴물이다.」

「하지만 나는 괴물을 이기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음이니.」

「그가 대지를 질타하는 백수의 왕이라면, 나는 능히 하늘을 가르는 백조(百鳥)의 왕이 되리라.」

「하지만… 나의 날개와 부리가 완성되기도 전에 두 번 다시는 사자의 갈기를 다시 마주할 수 없는 현실이 통탄할 따름이로구나.」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서책을 남긴다.」

「이것의 이름은 <보라매의 기상>일지니.」

「백조의 왕인 보라매가 다시 하늘 높이 비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사자를 눈 아래에 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남기노라.」

헤르만이 처음 <보라매의 기상>을 찾았을 때, 그는 기뻐하기보다는 커다란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분명히 서책에 적힌 <보라매의 기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닌 검술서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

도저히 어떻게 입문해야 하는지를 막막하게 만드는 엄청난 난이도를 지니고 있었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무도가인 자신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검술서라니.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하지만 의형제들과 머리를 맞대어 사흘 밤낮을 연구해본 끝에 내린 결론은 단 하나.

<보라매의 기상>은 진짜라는 것이었다.

구현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기는 해도, 내용만큼은 틀린 구석이 하나 없는 완벽한 이론과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헤르만과 푸른 매가 대외적인 활동을 끝마친 것이.

헤르만은 가문으로 돌아와 바일 가문을 무가로 만드는 데 집중했고, 의형제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라매의 기상>을 해석하고, 입문하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흘러버린 세월이 꼬박 20년이었으니.

“그중 내가 해석한 <보라매의 기상>에는 <매의 부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매의 부리….”

엘릭은 헤르만이 파울의 목을 치면서 펼쳤던 검술을 떠올렸다. 공간을 쪼개버릴 정도로 날카롭던 공세. 아마 그것이 매의 부리인 모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해석한 <매의 부리>는 미완성이었고… 그것을 억지로 익히기 위해 체인을 하나 더 추가하려다가 입마증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지.”

헤르만은 당시 조급함에 빠지고 있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성장은 정체되었고, <매의 부리>를 완성하는 것도 더뎌지기만 했으니. 결국 무리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도 엘릭을 만나게 된 것이다…. 헤르만의 설명은 바로 거기서 끝났다.

“물론, 그 사이에도 나는 몇 번이고 황금사자에게 도전장을 던져봤다. 그래도 일단 겉으로는 사자공가의 봉신인 셈이니.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지. 일초지적(一招之敵). 난 그것밖에는 되지 않더군.”

엘릭은 헛웃음을 흘렸다.

헤르만을 단 한 번의 칼질로 제압하는 실력이라니.

제아무리 오거스틴도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괴물이라는 말이 정말이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말했었지.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자신을 죽여줄 것이냐고 말이다.”

엘릭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이기라거나 꺾으라는 게 아니라 죽여달라고 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는 정말이지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또 행동이 자유분방하고… 뭐, 하여간 어떻게 이거다, 하고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헤르만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여하튼 너는 이제부터 모든 기본기를 마치고 난 뒤, 나에게서는 <부리>를, 둘째에게서는 <발톱>을, 셋째에게서는 <날개>를… 그런 식으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분류한 것들을 차례대로 습득하여 <보라매의 기상>의 원전(原典)에 다가갈 것이다. 비록 우리는 해내지 못했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있다.”

엘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강체술과 마투술을 통해 체술에도 어느 정도 통달한 그가 아니던가.

오히려 이런 뛰어난 무술을 배울 수 있다면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엘릭을 청사자로 만들고, 나아가 보라매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 * *

“검, 도, 창, 편, 권… 무기의 종류는 너무 다양하고 쓰임새도 가지각색인 까닭에 뭐 하나가 최고라고 딱 하나로 규정할 수만은 없다네, 조카사위.”

윈즈 변경주로 이동하는 동안.

엘릭은 헤르만이 말했던 대로 청사자가 되기 위한 준비 작업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보라매의 기상>을 익히기에는 아직 이르기 때문에 우선 6명의 의형제가 돌아가면서 무술의 ‘기본기’부터 가르쳐줄 예정이었다.

마침 푸른 매가 각자 단련하는 병장기의 종류는 물론, 추구하는 무술의 특징과 방향도 다 달랐기에 가능한 수업 방식이었다.

다행히 엘릭은 이미 흑의 설원에서도 비슷한 수업을 받았던 상태.

수업이 별달리 다르거나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조금 귀찮은 점이 있다면.

‘다들 자기애가 참 대단하시단 말이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를 손꼽으라고 말한다면, 나는 응당 창술을 이야기할 걸세.”

셋째 하만은 자신이 쥐고 있던 장창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창은 모든 무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네. 손발의 연장선으로서 호신(護身, 몸을 보호함)을 위해 만들어졌지. 그러다 점차 수신(修身, 몸을 갈고닦음)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고. 덕분에 창술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면서도, 그 속에 무한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네.”

하만은 자신이 익힌 창술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대단해 보였다.

창술이야말로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는 굳센 믿음.

“검? 창으로 찌르는 것만 떼어 보인 것일 뿐이지. 도? 창으로 휘두르던 것에다 무게만 더하지 않았나. 편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전부 창에서 다 쓰이는 것들을 변용한 형태에 지나지 않고.”

하만의 두 눈이 굳게 빛났다.

“그러니 창에 몰두하게. 그 끝을 밟을 수만 있다면 다른 것들은 그냥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니 말일세.”

창술에 대한 기초 개론은 그러고도 한참 동안 떠든 뒤에야 끝날 수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여섯 개의 동작을 보여주겠네. 이것을 전부 터득할 수 있다면, 다른 무술은 볼 필요도 없이 수월하게 얻을 수 있을 게야. 이거야말로 최고거든.”

하만은 엘릭이 창술만큼은 쉽게 다룰 수 없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가 지금부터 가르치려는 동작들은 겉보기에는 아주 간결한 기본기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각도와 자세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이미 이전에 엘릭을 가르쳤던 맏형인 헤르만이나 둘째 형 라셀은 엘릭이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깨닫는 천재라면서 침이 튀도록 칭찬해댔지만.

‘그렇게 천재로만 놔둘 수는 없지!’

하만은 엘릭에게 커다란 장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고로 천재는 좌절과 시련을 겪어야만 다시 절치부심 노력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법.

그리고 그때 넘게 된 난관은 평생 그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하만은 창술이 엘릭에게 그런 난관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창술에 흠뻑 매료될 테니까!

그래서.

하만은 조금 반칙을 쓰기로 했다.

‘형님들 미안하우. 하지만 어쩌겠수? 이만한 천재를 가로채려면 꼼수라도 써야지, 암. 그렇고 말고!’

휙, 휘휘휙-

하만은 보이는 창술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때로는 묵직하고, 때로는 활기차며, 때로는 날카로웠다.

하나하나가 간단해 보여도 절대 ‘기본기’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들.

<다섯 개의 회오리>.

언젠가 하만이 <보라매의 기상>을 터득할 목적으로 주로 단련했던 창술이었다.

정확하게는 그가 은퇴하고 난 뒤에도 계속 갈고 닦았던 창술의 요체(要諦)이자 정수(精髓)였으니.

지금 하만은 언젠가 후계자가 생긴다면 가르쳐줄 예정인 것들을, 엘릭에게 물려주려 하고 있었다!

‘미리 후계자 삼는다 치면 되는 것 아닌가, 으하하핫!’

물론, 엘릭은 아무런 사실도 모른 채 <다섯 개의 회오리>를 익힐 것이다. 그리고 창술의 벽은 너무 높다며 좌절을 겪을 것이다.

엘릭의 체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창술의 ‘창’자도 모르는 사람이 쉽게 터득할 수 있을 정도로 <다섯 개의 회오리>가 만만한 무술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그때 낙심(?)한 조카사위를 잘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무사부(武師父)로서 가까워질 수 있겠지. 이놈은 내 꺼다. 내 꺼라고!’

하만은 엘릭의 재능을 익히 눈여겨봤기 때문에 그를 의형제들에게 나눠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타닥!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무술 시연을 마치자, 창날 끝에서 회오리가 멋있게 굽이쳤다.

자신이 봐도 뻑 갈 수밖에 없을 만큼 화려한 모습.

당연한 말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엘릭은 난감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쉽지… 않겠는데요?”

“쉬우면 그게 어디 무술일까. 일개 잡기에 불과하겠지.”

하만은 엘릭에게 자신의 창을 건네주면서 최대한 멋있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무술도 결국 계단이다. 한 계단, 한 계단을 꾸준히 밟고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 어디 한번 해보려무나.”

“예.”

엘릭은 창을 잡으면서 가만히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눈빛이 단단해졌다.

기도가 날카로워졌다.

‘호오! 역시. 자세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눈썰미가 좋아도 너무 좋아.’

하만은 그런 엘릭을 보면서 눈을 크게 빛냈다. 헤르만과 라셀이 바라던 그대로였다.

‘이런 아이가 어떻게 무도명가가 아니라 마도 쪽에서 태어나서는…! 아쉽…!’

하만은 찬탄을 하다말고 생각을 길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쉬쉬쉬쉭!

자신이 보였던 동작들을 엘릭이 구현하기에 잘못된 지점이 있으면 곧장 지적하려 했는데… 그럴 건더기가 전혀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쐐애애액-

휘리리릭!

미풍, 회풍, 돌풍, 폭풍, 태풍의 순서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초식들이… 자신이 보여주었던 것과 너무나도 똑같았으니까!

‘마, 말도 안 돼!’

심지어 마지막에 살짝 실수한 부분까지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처럼 똑같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만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잔머리를 쓴 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자신이 다른 의형제들 몰래 꼼수를 부리려 했던 것처럼. 헤르만과 라셀도 분명히 기본기만 가르쳐준다고 해놓고서 자신들의 요체와 정수를 익히게 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엘릭은 지금처럼 똑같이 그걸 따라 했을 테고.

아무래도 하나를 알면 백을 안다고 했던 그런 칭찬은 그냥 나온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거… 다른 아우들까지 몽땅 밑천이 다 털리겠는걸?’

하만은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이만한 천재성이라면 정말이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수준이 아닐까.

다만, 조금 의아한 점도 있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숙련도까지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마치 다른 창술사가 옆에서 조언이라도 해주는 것 같단 말이지.’

물론, 이 자리에 엘릭과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기에 엘릭에게 창술에 대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재라서 그런가 보다.

천재들은 일반 범인이 설명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니 그냥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는 미처 보지 못했다.

엘릭을 따라 잿빛 기류가 조금씩 감싸고 있는 것을.

‘겨울’의 권능, 북풍이 조금씩 작동하며 망령(亡靈)이 그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재능 삼킨 마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