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보라매의 기상
[마도명문의 대파란!]
[라센트의 영웅, 그의 질주는 어디까지인가?]
[메르빙거&바일. 그 연대의 종착지는?]
[차대 청사자로 점지된 엘릭 메르빙거. 마법에 이어 무도에서도 천재라 불리는 그의 진짜 실력은?]
[추종자들의 열렬한 구애!]
매일 같이 기사들이 쏟아졌다.
엘릭 메르빙거가 일으킨 기적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영지전을 선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모든 소란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파울 바일을 효수(梟首)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가문에서 억울하게 쫓겨나다시피 했던 헤르만을 다시 청사자의 자리에 앉히고, 차대 자리까지 제안받지 않았던가.
마법사가 사자의 자리를 꿰차거나, 무도가가 육망성에 앉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던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절로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당초 마법과 무도는 신학(神學)까지 포함해서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은 진리를 좇으며,
무도는 자아를 단련하고.
신학은 보이지 않는 신을 따른다.
이것이 세간에 잘 알려진 세 분야에 대한 정의(定義)였으니.
그 어디에도 겹쳐지는 영역은 보이질 않았다.
단 하나만 추구해도 평생을 통틀어 그 끝을 통달할 수 있을까 말까 할 텐데, 두 개 이상을 동시에 추구한다?
도저히 말도 안 되었다.
특히 마법과 무도는 아예 반대되는 영역이라 평가받기도 했다.
마법은 정신적 영역, 무도는 육체적인 영역이라는 통설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 마법사나 무도가도 똑같이 가진 편견이었다.
『헛소리.』
“뭐가요?”
『무도가 마법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는 말 말이다. 개소리라고 하는 것이다.』
메피스토는 엘릭이 싹싹 긁어온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쭉 훑더니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단순히 마법이 정신적인 영역이니, 무도는 육체에만 국한되어 있다느니 한다? 그렇게만 한정 짓고 있다면 결과야 불에 보듯 뻔한 일이지.』
메피스토의 말투에는 어쩐지 아주 냉소적인 기세가 다분했다.
『본디 정신과 육체는 불가분의 관계이니라. 아니, 나아가 정기신(精氣神), 이 3개는 절대 떼어 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가 없지. 육체가 무너지면 마력과 정신이 따르질 못하고, 마력이 흔들리면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고 정신에 입마가 들지. 반대로 정신이 피폐해지면 육체는 쓸모가 없어지고 마력은 폭주를 일으킨다.』
엘릭은 입마증에 걸렸던 헤르만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는 육체, 마력, 정신 등 3개의 요소 중에서 단 하나만 흐트러졌는데도 불구하고, 몸을 원 상태로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그리고 그건 엘릭,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세세하게 따지자면 정은 무도를, 기는 신학을, 신은 마법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것들은 하나 같이 그것들이 다 따로라고 말하고 있으니… 멍청한 소리, 아니, 사이비가 틀림없음이야.』
멍청한 놈들이 뭔가를 아는 척하고 떠드는 것만큼이나 골치 아픈 것도 없지. 메피스토는 그렇게 뒷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들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결국 발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엘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여태 봤던 ‘절대자’나 ‘최강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어느 하나에만 치중된 경우가 없었다.
마왕을 직접 죽이기까지 했던 오거스틴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이역시 육체 단련은 꾸준히 하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헤르만도 정신적 수양이 아주 깊어서 이따금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율호왕도 마찬가지였었지.
하지만 그것이 망가졌을 경우에는 혈미왕이나 동장군처럼 불가사의가 되어버리곤 했다.
『우리 마족들도 절대 흑마술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가까이는 네놈만 봐도 알 수 있지.』
메피스토가 칭찬을 하니 뭔가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뒷말에 엘릭은 두 눈을 깊게 가라앉혀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무도와 마법은 본래 원류(原流)가 같다.』
“…!”
『아니, 정확하게는 마법이 보다 그 원류에 가깝지. 신학이니 수인족들의 강체술이니 하는 것도 결국 그 원류에서 새어 나온 곁가지일 뿐이야. 저놈들이 ‘오러연공법’이라고 부르는 기예. 몇 번이나 봤다만. 우습더군.』
메피스토의 한쪽 입술 끝이 크게 비틀렸다.
『마법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정립해왔던 ‘마력 순환법’을 일부 떼와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개발한 것인 마냥 시시덕대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메피스토의 시선이 날카롭게 엘릭에게 닿았다.
『그건 네놈도 느끼고 있지 않았더냐?』
엘릭은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학문이라는 게 엄연히 도중에 갈라지다가 겹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엘릭은 얼핏 느끼고 있었다.
그가 여태 익힌 것들은 아주 방대하고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깊이 다루면 다룰수록. 상충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연결고리가 될 만한 지점도 많았다.
엘릭이 마투술과 강체술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것도 전부 그런 연결고리들 덕분이었다.
『그래도 결국 원조는 거스르지 못하는 법이지.』
메피스토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여하튼 본 왕의 눈에는 이 사자니 뭐니 하는 것도 결국 ‘우리’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수밖에 없음이니. 네놈의 선택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결국 메르빙거의 가르침을 엇나갈 일은 하나도 없다.』
엘릭은 말없이 웃었다.
아무래도 메피스토는 자신의 고민을 정확하게 읽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엘릭은 헤르만의 제안에 대해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세간에는 마도명문이라 알려진 가문이 메르빙거가 아니던가.
그런데 청사자의 제안을 받는다면 가문의 정체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지만.
메피스토는 오히려 그런 잡생각 따위가 불필요하다고 일갈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녹야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지. 만류귀종(萬流歸宗), 결국 세상사 모든 흐름과 가르침은 하나로 귀의하게 된다고.’
어쩌면 그 말의 원뜻은 다른 건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단 하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다방면에 걸쳐서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원점으로 올라가는 것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으로 말이다.
* * *
“그래. 결정을 내렸나?”
엘릭은 바일 가문의 영지에 머물고 있었다.
자신들과 함께 윈즈 변경주로 가지 않겠냐는 제안 때문이었다. 메르빙거와 마찬가지로 바일 가문에도 황실의 금인칙서가 내려왔던 것이다.
엘릭은 처음에 괜찮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다른 건 거절해도 이것까지 거절하면 자신들의 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사벨의 설득에 머물게 되었다.
다만, 이사벨로서는 되도록 많은 편의를 제공하려 했음에도, 엘릭에게는 그리 편한 시간이 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동할 때마다 바일 가의 가신들과 식솔들의 시선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엘릭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복잡미묘했다.
바일 가문에 있어서 엘릭은 은인이면서도 원망의 대상이었으니까.
헤르만을 입마증에서 구해준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 아마 그 어떤 것으로도 보답이 되지 못하리라는 건 그들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영지전을 벌이면서 가문 내의 수치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언론에 전부 까발리게 만든 것은 밉기만 했다.
그러니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엘릭이 차대 청사자 직까지 제안을 받았다.
그 덕분에 기사단 내에서도 많은 혼란이 있는 중이었다.
엘릭이 세운 전공을 본다면, 헤르만의 후계자가 되어도 절대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마법사. 마법사가 사자가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데다가, 그가 실제로 어떤 실력을 지녔는지 역시 검증된 바가 없었다.
아니, 최연소 마도사가 되었으니 실력 검증이 되긴 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 분야였지 무도 분야는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파울이 죽었으니 내심 헤르만의 후계자를 노려볼 만하다고 여기고 있던 이들도 적잖게 있었다.
그런 이들의 눈에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였으니.
물론, 직접 여기에 대해 항의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한때 이사벨을 위기로 내몰았던 죗값이 있는 데다가, 헤르만의 뜻이 워낙 완강해 도무지 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파울의 일파를 쳐내면서 비워진 요직을 꿰찬 푸른 매가 전부 엘릭을 지지하고 있었으니.
도저히 엘릭을 거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엘릭이 그동안 바일 가문의 영지에 머물면서 외지인 취급을 받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엘릭은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고.
헤르만도 그런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별달리 손을 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후계자로 점찍은 엘릭이라면 그들의 색안경 따윈 쉽게 깨부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엘릭이 갑자기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헤르만은 엘릭이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엘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사실 메피스토의 언질이 있고 난 뒤에도, 엘릭은 여러 가지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국 내려진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라면 받아들이자.
그리하여 메피스토가 말한 그 ‘원류’에 닿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
시조만이 닿았다는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역시. 잘 생각했네.”
헤르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말해보게.”
“제게는 청사자의 의무보다 메르빙거의 가주로서의 의무가 더 중요합니다. 만약 두 가지가 상충한다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녹야의 전승자가 되었을 때와 똑같은 조건이로군?”
“예.”
헤르만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쯤이야 각오하고 있던 것이라네. 바일 가의 의무를 자네에게 짊어지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네. 어차피 정말 청사자로서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기사단은 알아서 자네에게 충성을 바치게 될 것이니. 그리고 가문의 의무는 딸아이에게 맡길 생각이야.”
헤르만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닫는 바가 아주 많았다.
후계자 지명이 필요한 일임은 진즉 알았지만.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기에 후계자에 대한 욕심도 그만큼 컸다. 무도와 상도, 둘 모두가 완벽한 후계자를 찾다가 보니 마땅한 이가 없어 지금까지는 미뤄왔지만.
굳이 그걸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검술은 엘릭에게 물려주되, 가문은 이사벨에게 남겨줄 생각이었다.
딸아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이 굳이 연인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뜻을 같이 함께 하는 동지가 될 테니 자신이 해낸 것보다도 더 크게 가문을 일궈낼 거란 믿음이 있었다.
또한.
‘이것을 완성해줄 것이란 믿음도.’
헤르만은 자신의 오랜 바람이 이제 곧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헤르만 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도 없습니다.”
“그것도 이미 각오하고 있다네. 나 역시 내 욕심에 자네를 이 길로 끌어들인 것이고, 자네를 통해 구현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서일 뿐이니. 그래도 가르침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야. 괜찮겠지?”
“예. 좋습니다.”
엘릭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걸리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먼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뭘 하긴.”
헤르만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웃었다.
“우선 그동안 미뤄뒀던 기본기부터 마무리해야지. 그리고 그 뒤에 자네는 익히게 될 것이라네.”
헤르만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우리 의형제들의 오랜 숙원을.”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