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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44화 (144/405)

144화

오토 한

이들이 훔친 물건이 오토 한의 사가 혹은 안가(安家)에서 나온 건지 확실하게 알 방법은 없었다.

물론, 강제로 빼앗아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증도 없이 심증만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는 없는 일.

기껏 구해줬는데 여기서 파묻어(?) 버릴 각오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행동한다면, 기껏 구해준 일마저도 오히려 세간에는 이상한 방향으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그럼 어떡하려고?』

[가만히 보십쇼. 예상했던 게 맞는다면 아마 알아서 무덤을 팔 테니까요.]

『…?』

메피스토는 엘릭이 절대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렇군.』

메피스토는 볼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녀석들끼리 눈빛을 빠르게 주고받는 것을.

단순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서로를 다독이는 것이 아닌, 기회를 잡은 자들이 가질 법한 탐욕에 찬 눈빛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런 상황이 아주 익숙한 듯, 곧장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여인이 조심스레 엘릭 쪽으로 운을 띄웠다.

“저기…!”

두 눈을 끔뻑거리면서 다가오는 태도가 남자로 하여금 보호해 주고픈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절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엘릭은 전혀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면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렇게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호, 혹시 저희를 도와주실 수 없으실까요! 저희 동료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친구들이 있어요.”

『하하! 내다 버린 친구들이겠지.』

“사례는 얼마든지 해드릴 테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다른 두 사내도 뒤질세라 재빨리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였다.

누가 보더라도 동료를 구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모습.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정도로 의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아니면 여자 앞에서 멋을 부리고 싶어 하는 멍청한 남정네들도 포함될 것 같았다.

엘릭은 어느 포지션을 취할까 싶다가, 괜히 발연기를 해서 의심을 사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그냥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죠. 어딥니까?”

“저,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순간, 녀석들의 얼굴에 환희가 살짝 맺혔다.

희망을 발견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엘릭에게는 넝쿨 째 굴러들어온 먹이에 환호하는 것으로만 비쳤다.

“이곳입니다! 다른 벤시 리퍼들이 어떻게 나설지 모르니 서두르겠습니다!”

녀석들은 혹여나 엘릭이 말을 바꿀까 싶어 서둘러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쯧쯧! 딱한지고. 하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이놈에게 걸려서,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지.』

메피스토의 혼잣말에 그림자가 유일하게 동의한다는 듯이 살짝 일렁거렸다.

* * *

“은인의 존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릭입니다.”

세 남녀는 엘릭을 데리고 숲속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면서 이래저래 말을 붙였다.

엘릭과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으려는 듯한 태도.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들을 상대로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술수였다.

엘릭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면서 그렇게 이름을 밝혔다.

“아, 릭 님이시군요. 어쩐지 뛰어난 마법 솜씨만큼 이름도 범상치 않으세요!”

여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엘릭에게 달라붙었다. 덕분에 가슴이 살짝 엘릭의 팔뚝에 닿았지만, 여인은 전혀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뗐다.

“부족한 실력일 뿐입니다.”

“결례가 아니라면 어느 학파에서 수학하셨는지 여쭐 수 있을까요? 나중에 돌아가는 대로 일행들과 함께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괜찮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은혜를 갚아 드려야….”

“원래 이런 일은 말없이 돕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인, 소피아는 순간 기가 찬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 새끼, 혹시 고자 아니야?’

자신만한(?) 미녀가 이렇게 친한 척 치근덕대는데 어떻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을 수가 있는 건지.

계속 몸을 바짝 붙이면서 친한 척 말을 걸어도, 엘릭은 계속 무덤덤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소피아는 순간 엘릭이 어딘가 기능(?)이 모자라거나, 혹시 성적 취향이 다른 곳에 있나 싶었지만.

‘아니구나. 나 때문에 긴장해서 뻣뻣해진 거구나. 어쭈. 마법 실력은 제법이었는데, 알고 보니 골방 샌님이었구나?’

소피아는 곧 비밀(?)을 눈치채고 배시시 웃었다.

계속 뻣뻣하게 군다 싶더니.

아무래도 평소에 공부만 냅다 파서 여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긴 했다.

마탑의 학파 중에도 철저하게 금녀(禁女)를 외치는 학파가 있다고.

이성과 사귀기 시작하면 공부에 그만큼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나?

규율이 ‘순결의 신’의 교단만큼이나 엄격하기로 유명해서 소속 마법사들이 밖으로 나올 때 이성 문제로 적잖게 고생한다고 들었다.

어쩌면 이 금발 녹안의 사내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제법 반반한 게 내 취향이고. 이번 일만 아니었다면 확 잡아먹었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소피아는 자신의 속내와 달리 함정으로 끌고 가는 즉시 엘릭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면 충분히 그 동굴을 공략할 수 있을 거야.’

소피아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사실 그들은 트레저 헌터(Treasure Hunter)였다.

일반적으로 트레저 헌터는 숨겨진 던전이나 고대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탐험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실상은 전문 도굴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

소피아 일행이 딱 그런 경우였다.

평상시 거래하던 골동품 수집상을 죽이고 빼앗은 보물 지도를 바탕으로, 오랜 탐험 끝에 붉은 유령의 숲에서 숨겨진 던전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곳에는 수십 개의 방에 걸쳐서 온갖 재화와 고서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었다.

딱 보기에도 값이 많이 나가 보이던 것들이었다.

덕분에 횡재했다며 눈이 돌아간 나머지 보물들을 챙기느라 주변 탐색을 게을리하고 말았고, 결국 던전을 지키던 가디언들에게 발각되어 동료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고 말았다.

여기까지 그들을 쫓아왔던 벤시 리퍼가 바로 그런 던전 가디언 중 하나였으니.

흔히 알려진, 가디언은 던전의 영역을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였다.

때문에 소피아 일행은 보물을 잔뜩 챙겨왔어도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단 위기에 빠져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러던 것을 엘릭이 기적같이 나타나 구해준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나마 챙겨온 보물을 가지고 도망쳐야 옳겠지만.

옛날부터 한탕주의를 외쳐왔던 소피아는 생각했다.

어쩌면… 던전에 허망하게 두고 와야만 했던 다른 보물들까지 싹 다 쓸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엘릭이라면 던전 가디언들을 전부 처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피아는 다른 두 동료와 눈빛을 교환하며 그들도 똑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엘릭은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순진한 풋내기에 불과했다.

이런 풋내기를 실컷 부려 먹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않던가.

‘가디언들을 거의 다 잡았을 때쯤에 뒤통수쳐서 던전 한가운데에다 던져두면 어차피 사람들이 찾지도 못할 테고 말이지.’

소피아는 이만한 작전도 없을 거라고 자부했다.

다만, 조금 찝찝한 점이 있다면.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란 말이지? 어디서 봤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점인데….

‘어디 모임에서라도 봤나?’

소피아는 아마 사교계에서 스치듯이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따금 자신의 장기인 외모를 살려 어리숙한 귀족가 영식들을 몇몇 꼬드긴 전적도 있었으니까.

아마 그런 식으로 지나가듯이 봤을 테지.

겉모습만 본다면 엘릭은 영락없는 걱정 없이 자란 귀족가 호구… 아니, 자제였다.

“저곳입니다.”

소피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일행은 어느새 목적지인 던전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숲속 깊은 곳, 숲길이 거의 나 있질 않아 웬만해서는 찾기 힘든 지형에 위치한 아주 작은 땅굴이었다.

그 순간, 엘릭의 눈가에 아주 잠깐 이채가 어렸지만, 소피아 일행 중 아무도 미처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후면 던전의 남은 보물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어디서 어떻게 던전 가디언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 상반된 감정으로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하십시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엘릭은 입구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동료 분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저희가 던전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안쪽에 있었으니… 아마 다들 아직까지 무사하다면 네 번째 복도에서 틀어진 곳에 숨어 있을 겁니다.”

“제법 깊게 들어가야겠군요.”

“네…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한 번 돕기로 했으면 마지막까지 도와드려야죠.”

엘릭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끼아아아-

키에에엑!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벤시 리퍼가 네 마리가 동굴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기 때문에 소피아 일행이 화들짝 놀라 뻣뻣하게 굳는데.

“【휘몰아쳐라】.”

엘릭을 중심으로 삽시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면서 벤시 리퍼를 뒤덮어나갔다.

“안…!”

소피아는 한순간 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 놀라면서도, 그런 공격으로는 벤시 리퍼에게 유효타를 먹이기가 힘들 거라고 소리치려 했다.

형상이 없는 녀석들을 상태로 원소 계통 마법이 효과가 없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얼음 화살로 이미 한 번 잡았다지만, 거기엔 파마(破魔)나 벽사(辟邪)와 같은 다른 마법이 섞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쩌저저적-

소피아는 말을 하려다 말고 도중에 입을 쩍 벌려야만 했다.

단 몇 초 사이에 네 마리나 되는 벤시 리퍼가 얼어붙고 말았으니까.

심지어 대낫을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소피아는 재빨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엘릭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마법사인 것 같았다.

‘우리… 괜찮겠지?’

소피아는 처음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 * *

콰콰콰쾅!

키에엑- 키엑!

캬아악!

쩌저저적- 퍼퍼펑!

“마, 말도 안 돼….”

“가디언들이 쓸려나가고 있어…!”

언제나 불안한 생각은 현실이 된다던가?

소피아 일행은 바로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던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내내. 엘릭과 어느 정도 막상막하를 이룰 줄 알았던 가디언들은 그야말로 쓸려나가고 있었다.

허공에서 잔뜩 응결된 얼음 화살이 가디언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바닥에서 치솟아 오른 얼음 사슬이 손발을 묶어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

이런 판국에는 유령들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접근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다.

마법을 남발하고 있으니 혹시 마력이 바닥나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도, 엘릭의 안색은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숨소리도 여전히 편한 상태 그대로였으니.

아무리 기회를 노려도 빈틈이 보여야 하지, 그런 것도 없이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주는 먼치킨 앞에서 까불어봐야 개죽음밖에 되지 않았다.

쿠에에엑!

쿠쿠쿵-

또다시 싹 쓸려나가면서 깨끗해진 복도를 보면서 소피아 일행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

“….”

“….”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고.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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