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마도사 자격증명시험
프란츠 백작가.
메피스토가 인정했을 만큼 한때 ‘붉은 벽의 프란츠’라는 말이 유명세를 탔던 명문가.
비록 봉신 가문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제국의 수많은 귀족 가문 중에서도 프란츠만큼 손꼽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문은 많지 않았기에 프란츠를 무시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귀족 세력을 나누는 파벌 중에서도 친(親) 황실파의 대표 격이기도 할 만큼 강한 성세를 자랑하는바.
덕분에 이제는 중앙 정치계에서 프란츠 백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현재 프란츠 백작가가 누리는 성세의 대부분은 메르빙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다만, 메르빙거의 부활을 경계한 황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프란츠 백작가의 당대 가주, 캘거리 프란츠도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오랫동안 가문에서 메르빙거의 그림자를 씻어내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해왔다.
덕분에 프란츠 백작가가 이만큼 발전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봉신 가문 출신’이라는 딱지는 그리 손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특히 최근 들어 메르빙거의 이름이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자, 캘리거 백작으로서는 더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바퀴벌레 같은 것들…! 분명히 절맥증을 앓았던 녀석이 어떻게 마법을 되찾은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부활한 메르빙거’라는 헤드라인을 단 신문이 계속 발간되면서 프란츠 백작가와의 지난 관계도 계속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비상하고자 하는 메르빙거. 그들을 곧 맞이할 프란츠 가문의 대응책은?]
[메르빙거의 칼이었으나, 이제는 그들을 겨누게 된 프란츠! 두 가문의 속사정을 집중 취재.]
[마도명문의 부활에 연일 쏟아지는 가문들의 찬사. 반면에 묵묵부답 중인 캘리거 프란츠 백작.]
이 정도쯤이면 노이로제에 걸릴 판국이었으니.
결국.
캘리거 백작은 도중에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지울 수가 없다면 그냥 삼켜버리자고.
4황자를 지지하던 감찰13국이 접근해왔을 때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 계속 놈들을 피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프란츠다. 이제 메르빙거 따위는 고개도 들 수 없을 만큼 위대한 프란츠…! 과거의 영광과 상관없이, 현재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똑똑히 알려주자.’
어차피 프란츠 백작가는 4황자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인바.
그렇다면 차라리 메르빙거를 끌어들여서 자신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행보 차이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게 훨씬 나았다.
아들인 로데오를 보낸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오만한 성격이 흠이긴 하나, 그래도 사리판별이 빠르고 엘릭 메르빙거와 과거에 친분이 있었던 그라면 얼마든지 엘릭을 4황자에게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실패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엘릭에게 메르빙거와 프란츠 가의 격차만 깨닫게 해줄 수 있다면 충분했으니까.
어차피 엘릭과 황태자 간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정보도 익히 받았던바.
엘릭이 4황자가 아니면 이렇다 하게 댈 줄이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 라고?”
캘거리 프란츠는 순간 시종장이 가져온 보고에 마시던 찻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떨그럭.
그럴수록 시종장의 머리가 더 깊이 조아려졌다.
“로데오 도련님께서… 왼팔이 잘린 채로 오시어서 현재 치료를 받고 계신 상태이십니다.”
“왼팔이 잘리다니! 그게 무슨 소린지 소상히 설명해라!”
캘리거 백작은 턱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노성을 터뜨렸다.
아들이 귀가했단 소식을 듣고 직접 보고를 받으려 하고 있었는데, 정작 돌아온 건 이런 날벼락 같은 말이었으니.
“…그러니까 내 아들의 팔을 자른 게 엘릭 메르빙거, 그놈이 아니라 4황자였다고?”
“그, 그렇다고 합니다.”
시종장은 북방의 국경수비대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설명을 잇는 내내 차마 캘리거 백작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여기서 잘못하다간 자신에게 불똥이 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
캘리거 백작은 순간 분기를 참지 못하고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순간, 갈무리에 실패한 마력이 캘리거 백작에게서 퍼져 나왔다.
찻잔이 거세게 흔들리다가 쩌걱 하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새어 나온 찻물이 바닥에 쏟아지고, 저택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배, 백작님! 진정하십시오!”
시종장은 어떻게든 그런 캘리거 백작의 분노를 눌러보고자 했지만, 그리 쉽지 않았다.
캘리거 백작 역시 ‘대마도사’의 칭호를 단 8써클의 마법사.
그런 만큼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도 대단할 수밖에 없어 시종장은 매번 이렇게 진땀을 빼야만 했다.
“크롬헬…! 네놈이 기어코 우리 가문에 수치를 주는구나!”
캘리거 백작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당장 4황자가 있는 흑광궁(黑光宮)으로 직접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난날 그와 맺은 맹약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일 뿐이었다.
‘본인도 그걸 잘 아니 잘도 이런 짓을 저지른 거겠지…! 고얀!’
당장 4황자에게 이 분노를 쏟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캘리거 백작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메르빙거… 너희들이 저지른 일이니 너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겠다.’
이런 일이 만들어지게끔 유도한 엘릭에게 징벌을 가해야만 했다.
‘하지만 대놓고 물어서야 4황자에게도 경고가 되지 않겠지.’
캘리거 백작은 이참에 아예 엘릭에게 프란츠 가와 메르빙거 간에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 직접 찍어눌러 버리리라. 다시는 메르빙거라는 이름이 대가리를 치켜들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메르빙거에 금인칙서가 내려졌다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캘리거 백작은 아주 잠깐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심에 잠겼다.
더 이상 그를 따라 마력 파장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종장은 오히려 깊게 착 가라앉은 백작의 두 눈이 더 무섭게만 와 닿을 뿐이었다.
저 눈빛에 잡아먹힌 메르빙거의 봉신 가문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나마 남아있던 메르빙거의 가산까지 탕진하게 만든 늑대가 바로 캘리거 백작이었다.
“트워크 자작가에 연락을 넣어라.”
“트, 트워크에다 말씀이십니까?”
시종장은 순간 놀라야만 했다.
트워크 자작가는 현재 제국에서도 변두리로 취급되는 남서쪽에 영지를 틀고 평화롭게 지내는 곳.
하지만 한때는 프란츠 백작가와 함께 메르빙거를 지키는 쌍벽(雙璧)이었으며.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프란츠 백작가와 원수가 되다시피 한 곳이었다.
교류가 끊어진 지도 벌써 20년은 다 되어가건만.
갑자기 그들에게 손을 뻗는다?
“그래. 조만간 내가 직접 방문할 것이라고. ‘인터레시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면 즉각 반응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시종장은 ‘인터레시아’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과거 메르빙거가 소유했던 보물 창고에 관해서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캘리거 백작한테 들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시종장이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캘리거 백작은 한참 동안 집무실에서 이를 갈아야만 했다.
* * *
30분 만에 마도사 자격증명시험을 통과한 엘릭에 대한 이야기는 금세 특종이 되어 황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라센트의 영웅, 이번에는 마도청의 영웅이 되다!]
[엘릭 메르빙거의 화려한 비상!]
[새로운 신성(新星)의 도약!]
[전 부문 만점! 그의 공부 비결에 대해 집중 취재!]
[찬성공작, 최연소 마도사가 되다.]
[‘술 한잔이 식기 전에 되돌아오겠소’ 마차에서 내리기 전 친우에게 자신감을 밝혀.]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다들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몰라.”
엘릭은 탁상에 한 무더기로 쌓인 신문들을 보면서 싱글벙글 웃어댔다.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
그런 엘릭을 바라보는 션으로서는 기가 찰 뿐이었다.
“재수 없는 새끼.”
엘릭은 분명히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것인지를.
저렇게 똑똑한 새끼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 기만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진짜 30분 컷이라니.’
물론, 엘릭이 시험에서 낙방할 거란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30분 만에 돌아오겠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천재 중의 천재였던 누이도 그렇게 빨리 시험장을 나오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엘릭은 진짜 그 미친 짓을 해냈다.
덕분에 항간에는 엘릭을 3대 신성 옆에다 새로운 신성으로 놓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조금씩 나올 정도였다.
특히 북방에서 엘릭이 4황자를 암살 위기에서 구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이런 여론이 더욱더 탄력을 받는 중이었다.
“내가 뭘?”
“됐다. 내가 더 말하면 뭐하겠니. 내 입만 아프지.”
“야. 그런데 이거 술 한 잔은 뭐냐?”
“몰라. 그냥 넘겨. 이번 일 때문에 별의별 소설이 다 쓰이고 있으니까.”
“흐흐.”
“좋냐?”
“좋지. 그럼.”
“하여간 관종(‘관심종자’의 준말) 새끼.”
“그게 뭐가 나빠? 유명세는 타면 탈수록 좋지.”
션은 차마 그 유명세 때문에 자신이 오늘 아침에 또 얼마나 원로원과 빈객청의 영감들에게 시달렸는지를 말할 수가 없었다.
‘순번 정하는 거야 엘릭이지 내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다들 사람 말이라고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분들이니…!’
엘릭은 아직까지 원로원과 빈객청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그들이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한 마법 목록들을 보면서 필요한 것들만 쏙쏙 골라내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엘릭과 원로원이라는 두 고래 사이에 끼인 션만 새우 등 터지듯 고생하고 있었다.
네가 친구이니 옆에서 잘 좀 이야기해보라는 협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엘릭을 제자로 삼을 수 없다면 너부터 다져버리겠다(?)는 말을 왜 그리도 잘도 웃으면서 해대는 건지….
덕분에 션은 이제 노이로제라도 걸릴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엘릭에게 여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결정은 어디까지나 엘릭의 몫으로 끝나야지, 녹야의 전승자가 되었을 때처럼 떠밀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 그보다 3차 시험은 어디로 갈 건지 정했어?”
션은 여전히 머리 한편에서 메아리처럼 울려대는 영감들의 목소리를 겨우겨우 지우면서 화제를 돌렸다.
온갖 신문들은 벌써 엘릭이 ‘완전한’ 마도사가 된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1, 2차 시험을 통과한 것일 뿐, 아직 최종 3차 시험은 준비 중이었다.
이른바 퀘스트(Quest)라고 불리는 실전 증명까지 치러야, 완전한 마도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임시 자격증이 발행된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어딘데?”
“‘붉은 영혼의 숲’.”
“음? 의외네? 거긴 사람도 꽤 많을 텐데? 너 혼잡한 거 싫어하잖아?”
붉은 영혼의 숲은 황도 인근에 위치한 미개척지로, 스펙터나 벤시 같은 유령형 몬스터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난이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만큼 지형 지도나 공략법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무도가와 마법사들이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 퀘스트를 진행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게 분명했다.
션으로서는 한창 주가를 높이 띄우고 있는 엘릭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의문을 가질 뿐이었지만.
“어. 남은 기한도 얼마 없으니까. 후딱 해치우고 가려고.”
엘릭은 별 이유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정말이죠, 메피? 거기에 오토 한이 머물던 사가가 있다는 게?]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