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마도사 자격증명시험
흔히 세간에서는 심장에 6개의 고리를 그린 마법사, 즉 6써클을 이룬 이들을 전부 ‘마도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 잘못 알려진 등치 개념이었다.
6써클이라고 해서 모두가 마도사로 인정받는 건 아니었고, 그건 7써클이나 8써클을 이룬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반면, 5써클밖에 이루지 못한 마법사 중에도 마도사라 불리는 이가 종종 있었다.
마도사란, 황실과 정부, 그리고 마탑 세 곳에서 공인(公認)되거나, 아니면 그만한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수여되는 일종의 칭호나 자격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흔히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나 자유혁명군에 가담한 이들 중에는 실력이 뛰어나도 스스로 마도사로의 추인을 거부하는 이들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도사는 그런 호칭 자체만으로도 마법사에게 있어 명예와도 같은 것이었으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마도사 자격증명시험은 바로 그런 마도사를 선별하는 시험이었다.
마도사 자격증명시험은 총 3단계로 이뤄졌다.
첫 번째는 필기시험.
필기는 모두 마법학의 대표 분야라 할 수 있는 6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소, 물리, 강령, 연금술, 고대사, 그리고 흑마술과 언령술 따위를 총괄하는 잡학(雜學)까지.
마법이 학파마다 맡은 분야가 세세하게 나뉘어 있다고는 해도, 결국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반드시 총괄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각 분야의 시험지는 100개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전부 학계에서도 소문난 인사들이나, 은퇴한 기인들이 직접 감수할 만큼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다.
전 분야에 걸쳐서 만점을 받는 것은 수십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였으며, 한 분야에서만 만점을 받아도 충분히 마도 지식이 뛰어난 인재라 여겨져 여러 학파와 기관에서 앞다퉈 데려가기 바빴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통틀어 총 600문항의 시험지와 씨름을 하고 나면 두 번째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는 마력 시험이었다.
아무리 이론적 분야가 뛰어나도, 마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마도사’라 인정받기 힘든 법.
그렇기에 응시자들은 보통 여기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편이었다.
다만, 마력 시험은 필기시험과 달리 아주 간단했다.
딱 두 가지만 보기 때문이었다.
접속권(接續權)과 제어권(制御權).
정확하게는 마나 스트림에 접속해서, 그것을 끌어와 제대로 제어할 수 있냐였다.
이때, 제어되는 마력의 총량과 순도가 일정 기준치를 넘지 못한다면 절대 통과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기준치는 웬만한 마법사들 따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엄청 높았다.
그래도 이마저 통과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자질을 검증하게 되니.
그 때문에 응시자들은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을 두고 흔히 이렇게 불렀다.
퀘스트(Quest)라고.
* * *
중앙마도관리청 소속의 5급 시험관 브라이언은 아침부터 기분이 그다지 좋질 않았다.
‘아직도 이딴 식으로 신분만 앞세우는 머저리가 있다니. 대체 마법을 뭐라고 보는 거야?’
전날에 이미 상관으로부터 특시가 있을 것이니 준비하라는 언질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스로가 7써클 마법사란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그 재능과 능력을 황실과 마탑에 바치는 것에 뿌듯함을 가지고 있는 브라이언으로서는 이런 준비야 골백번도 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이런 준비가 다 불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특시 제도가 있는 것은 보통 개인의 사정으로 인해 자격증명시험을 응시할 수 없게 된 이들을 고려해서였다.
상을 당한다거나, 군대 복무 때문에 황도로 직접 오기 힘든 등 다양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시 제도는 귀족가 자제들의 유희로 전락해버린 상태였다.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지방 귀족가에서 자식들을 어떻게든 입신양명시키겠다며 어린 시절부터 영약을 들이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보통 나이에 비해 방대한 마력량을 가지게 되니, 그것만 믿고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녀석들은 줄줄이 낙방하기 바빴다.
마도사가 되는 게 그리 쉬웠다면 진즉에 귀족들이 죄다 독차지했을 테니까.
‘문제는 그런 놈들이 그냥 응시 날에 같이 치면 편할 텐데, 꼭 특권 의식에만 찌들어서는 특시를 치르려고 한다는 거지.’
저들 딴에는 일반 평민들과 같이 뒤섞이기가 싫다나?
개중에는 특정 날짜에 맞춰서 지방에서 올라가기 귀찮아서라는 정신 나간 대답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때문에.
특시가 있을 때마다 매번 준비를 담당하는 시험관으로서는 짜증만 날 뿐이었다.
특히 문제 유출 우려 때문에 특시 때마다 일일이 다시 문제를 추려내야 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으. 그 생각하니 또 열 받네.’
그래서 브라이언은 오늘 치르게 될 특시의 응시자도 별 다를 바 없는 지방 귀족 자제라고 생각했다.
응시자와 시험관 간의 유착 우려 때문에, 시험관은 응시자의 이름을 당일이나 되어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엘릭 메르빙거.]
‘…흠.’
메르빙거란 응시자 명단을 받는 순간, 브라이언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마법사로서는 절대 모를 수 없는 성(姓)이 거기에 떡 하니 적혀 있었으니까.
마도명문의 수치에서 라센트의 영웅으로, 하루아침에 명성을 날리게 된 이가 아니던가.
비록 최근 몇 달 새에는 행적이 묘연해져서 명성이 다소 사그라들었다지만.
그래도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체질을 개선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듣기론 나이도 20대 초중반이라던데. 마도사 시험을 친다고?’
응시자의 평균 연령대가 40대고, 지난번 최연소 합격자가 30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도 안 되는 뻘짓거리였다.
실제로 현존하는 20대 마도사도 딱 한 명이지 않던가.
‘타샤 네레스타.’
차기 제국을 이끌 동량이라는 3신성은 되어야 가능한 수준인 것이다.
‘그동안 잠잠했던 게 이걸 준비하느라 그랬던 거였나…? 바닥에 떨어진 마도명문의 명예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응시하는 것이라고 쳐도, 자칫 낙방하게 되면 오히려 이미지에 좋지 않을 텐데?’
그 때문에 브라이언은 엘릭 메르빙거가 신분을 앞세워 ‘경험 삼아’ 응시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마도명문의 가주가 응시했다는 것에만 포커싱을 둔다면 충분히 언론 플레이용으로 괜찮을 테니… 흠. 그런 거겠군.’
그런 생각이 드니 브라이언은 심장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라센트 시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름 응원하기도 했었건만.
‘역시 귀족들이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법이지.’
아무리 몰락했다고 해도 결국 본질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허투루 감독할 수는 없는 일.
“안녕하세요?”
브라이언은 엘릭이 처음 관리청에 들어오며 밝게 인사할 때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응시자이신 엘릭 메르빙거 씨가 맞으십니까?”
“예.”
“간단한 신분 조회 뒤에 시험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브라이언은 절차대로 시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뭐야, 이 사람? 장난이라도 치러 왔나?’
브라이언은 곧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필기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엘릭이 별다른 고민도 없이 시험지를 휙휙 넘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항을 제대로 읽기라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답을 빠르게 체크해 나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눈살이 서서히 좁혀졌다.
‘어쭈, 콧노래까지 흥얼거려?’
누가 본다면 너무 쉬워서 표기하는 줄 알 것 같았다.
보통 만점자들도 시험을 치르는 내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몇 번이나 정답 표기를 고민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아카데미에서 필기 분야는 항상 수석이라는 말을 들어서 아무리 경험 삼아 온 것이라고 해도 이건 진지할 줄 알았는데… 하!’
결국 이 놈팡이가 원하는 건 그냥 그럴듯한 이미지였을 뿐이었다는 거군. 브라이언은 이제 헛웃음을 흘릴 정도였다.
‘차라리 잘 되었군. 퇴근은 일찍 할 수 있을 테니까. 나중에 문제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게 짜증 날 뿐이지만.’
다른 녀석들은 괜히 마지막까지 시간을 잡아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브라이언은 이왕에 이렇게 된 것 긍정적으로 마음먹자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마음가짐이 쉽게 이뤄질 리는 만무했다.
으레 모든 마법사가 그러하듯, 가슴 한편에 메르빙거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있는 그로서는 제 조부의 명성을 더럽히는 엘릭이 같잖게만 보일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검산이 필요한 수식 계산에서도 별 고민 없이 답을 기재했을 때는 그 마지막 남아있던 마음까지 놓아버렸다.
“끝. 여기요.”
그러다 엘릭이 마지막 시험지까지 넘겼을 때.
‘딱 15분이 걸렸군.’
브라이언은 헛웃음을 흘렸다. 600문항을 전부 정독해도 그보다는 훨씬 많이 소요될 것 같건만.
아마 오늘이 최단 시간 출퇴근 기록이 아닐까. 수고하셨습니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손목에 차고 있던 아티팩트를 갖다 댔다.
실시간으로 점수를 체킹하는 아티팩트. 여기서 일정 점수가 넘질 못하면 바로 낙방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삐리릭, 삑!
“…응?”
브라이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600/600]
스크린에 적혀 있는 점수였다.
모든 항목 전체 만점이라니.
유일한 전체 만점자였던 타샤 네레스타도 모든 시간을 꼬박 채웠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고장인가?’
브라이언은 아티팩트를 손으로 툭툭 두들겼다.
“왜 그러세요?”
“아티팩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브라이언은 몇 번이고 재채점을 해봐도 그때마다 계속 만점이 뜨자, 결국 밖에서 대기 중이던 동료 시험관을 불러야만 했다.
그리고.
[600/600]
“응?”
그도 브라이언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것도 고… 장이 났나?”
결국 다른 시험관들도 소환해야만 했고, 그때마다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그제야 시험관들은 안색이 새하얗게 지새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그 뒤에 이어지는 시험들도 브라이언과 동료 시험관들을 모두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어? 벌써 찼네?”
2단계 시험은 마력 총량과 순도를 체크한다.
속이 비치는 투명 수정구에다 손을 가져다 대고, 마력을 불어넣기만 하면 되는 구조. 부여한 마력량과 순도에 따라 수정구가 띄는 색과 명암도 전혀 달랐다.
그런데 엘릭이 마력을 얼마 불어넣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정구가 금세 순백색으로 물들더니 명암까지 완전히 티 하나 없을 만큼 맑아지는 게 아닌가!
그러다.
쩌걱!
수정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균열을 내면서 반으로 쪼개졌을 때.
브라이언과 시험관들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 * *
션은 기지개를 가볍게 펴면서 관리청의 정문을 빠져나오는 엘릭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설마설마 했건만.
시계를 보니 정말 약속대로 딱 30분, 아니, 29분을 맞춰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엘릭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투로 손에 쥐고 있던 걸 보였다.
[마도사 임시 자격증]
[메르빙거 가문 소속]
[가주 엘릭]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