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마도사 자격증명시험
하나뿐인 동생이 경악에 찬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거나 말거나.
타샤는 여전히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둥지의 소유자에게 그동안 있었던 발굴 작업에 대한 중간보고 브리핑을 하는 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이 시간이 압박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마치 놀이라도 하는 것 같은 즐거운 시간으로 다가왔다.
‘정말이지. 너무 황홀한 시간이었어.’
그녀로서는 이런 꿈 같은 기회를 준 엘릭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엘릭과 계약을 맺은 직후. 그녀는 자신의 사조직 ‘불새의 홰’를 데리고 용의 둥지를 집중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가이 네레스타로부터 발굴 탐사대에 대한 모든 권한까지 위임받았기 때문에 그녀를 막을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따금 아카데미나 마법성에서 자신들에게도 한자리 내줄 수 없겠냐는 청탁도 넌지시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런 건 전부 아랫사람들 선에서 잘라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타샤는 좀처럼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따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도 전부 중단시키거나, 수하들에게 떠넘기고 여기에만 몰두할 정도였으니.
그만큼 용의 둥지가 타샤에게 주는 매력은 아주 대단했다.
용의 습성을 조사할 중요한 사료로 삼을 수 있을 만큼 거의 원형으로 보존되다시피 한 둥지의 상태부터.
여전히 일부나마 작동 중인 용언 마법진, 그리고 온갖 보물 창고와 실험실들까지.
하나하나가 전부 마도를 걷는 이로서는 황홀경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러다 타샤는 조사 중에 알게 되었다.
이 둥지의 주인이 단순히 ‘보석룡’이라는 희귀한 용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대룡, 어쩌면 용왕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용왕(龍王)이 무엇이던가.
그 개체만으로도 거의 신에 필적할 만한 힘과 권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용들을 대표하는 왕이었다.
수천 년도 너끈히 살았다는 용의 기나긴 수명과 독립적인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왕’이라는 단어가 붙는 존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현재 학계에서 보고된 바로는 용의 생존기 동안 용왕은 단 8마리에서 9마리에 불과했을 거라는 게 주요 학설이었다.
그러니 션이 툭 하면 ‘용 성애자’라고 불러대는 타샤로서는 여기에 계속 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특히 그걸 찾을 수 있었던 건 최대의 수확이었어.’
그녀는 발견하게 되었다
그토록 찾고자 갈망했던 것을.
‘「용의 회명서」…. 그게 실존하고 있었을 줄은.’
타샤의 눈이 순간 크게 빛났다.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도저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처음 그걸 발굴해냈을 때 설레서 며칠 동안 잠을 설쳤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야.]
[뭐? 누나한테 야? 뒈질래?]
그러다 타샤는 션이 메시지 마법을 걸어오자 미간을 팍 찡그렸다.
나이도 한참 차이 나는 놈이, 뭐? 야?
이놈의 머리통을 파이어볼로 날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변태 같이 웃는 거 좀 그만하지?]
[…많이 티 나냐?]
[티 나는 정도가 아니거든?]
[흐.]
타샤는 그제야 자기도 모르게 헤벌쭉 웃고 있단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용의 회명서를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 흠흠! 조금 더 정신을 바짝 차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은 타샤 네레스타.
만인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며 아이돌처럼 생각하는 마도사니까.
거기다 이 자리에는 둥지의 주인인 엘릭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어야 했다.
타샤가 다시 다소곳한 자세를 갖추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자, 션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지랄한다.]
타샤는 왠지 오늘따라 동생이 좀 많이 개기는 것 같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래도 간만에 남매 사이에 서열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그시 노려보는데, 엘릭이 갑자기 서류를 보다 말고 한 곳을 짚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여기 용의 회명서… 이게 정말 제 둥지에서 발굴되었단 말씀이십니까?”
타샤는 재빨리 화사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너무 오래된 양피지 조각으로 남아 있고, 글자도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해석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어요. 조각들의 순서는 일단 맞춰둔 상태구요.”
“흠.”
엘릭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용의 회명서는 그도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서책 이름이었다.
회명(晦冥)은 하늘에서 해와 달이 가려져 어두컴컴해진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용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빠른 속도로 몰락하던 시기를 여기에 빗대어 ‘회명기(晦冥期)’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용의 회명서는 용이 멸종의 길을 걷던 시기에 쓰인 서책이란 뜻이었다.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내용이 다 담겨 있다고 했다.
용들이 개발하고 보존하던 마법들의 기원이나, 용의 역사와 같은 것들이.
그리고 그것을 발굴할 수만 있다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용에 관한 연구에 획기적인 지침이 될 거란 말까지도.
다만, 그 존재 여부는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워낙에 편의적인 내용이 많고, 전설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많아서였다.
그런데 그게 진짜 있었다고?
그것도 자신의 둥지에?
“이건 우선 저희가 정리한 내용이에요.”
타샤는 따로 챙겨온 서류를 엘릭에게 내밀었다.
현재까지 파악한 용의 회명서의 내용이었다.
[만물은 강을 따라 흐르고.
강은 모이고 모여 대하를 이루며.
대하는 다시 모이고 모여 바다를 만든다.]
그냥 앞선 3줄만 봤을 뿐인데도, 엘릭은 용이 서술한 역사서나 마법서라고 보이기보다 무슨 시가 모음집 같은 것으로 보였다.
『뭔가 했더니. 흥! ‘호크마의 나침반’이었군.』
[그게 뭡니까?]
『용의 마법을 구술한… 이딴 식으로 설명해봤자 너희들은 알아듣기 힘들 테고. 흠.』
메피스토는 팔짱을 끼면서 말꼬리를 슬쩍 흐렸다.
더 알고 싶으면 다른 걸 내놓으라는 의미.
엘릭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계속 이럴 겁니까? 그리고리 잡을 때까지는 전략상 동맹이라면서요?]
『용과 관련된 건 아직 협의하지 않은 것 같지만… 뭐, 이 정도는 서비스로 알려주지.』
메피스토는 한참 거들먹대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용언(龍言)으로 가는 입문서다. 되었느냐?』
[…!]
두근!
엘릭은 순간 가슴이 크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당장 욕심낼 생각 따윈 추호도 하지 마라. 뱁새가 황새를 쫓으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정도로 안 끝나는 법이니까.』
[…그럼 어떡합니까?]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직 마왕은커녕 군장 급도 홀로 잡지 못할 놈이 무슨 욕심을 그리 부리느냐?』
엘릭도 그제야 차분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메피스토의 말마따나 용언은 아직 자신에게 너무 무리한 목표이긴 했다.
‘아직 언령도 완전히 깨우치지도 못해서 진언(眞言)도 열지 못한 상태인데, 무슨.’
엘릭이 현재 언령을 사용하는 방식은 마법적 지식을 상상으로 쉽게 풀어내거나, 획득한 인장을 발동시키는 트리거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방식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를 해서는 큰일만 나겠지.
‘아직 회명서의 해석이 완전하지도 않고.’
그래도 언령 마법을 어떻게 갈고 닦으면 좋을까 싶던 차에 새로운 이정표가 제시된 셈이니.
뜻하지 않은 수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서류를 보니 회명서로 추측되는 이 양피지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타샤 씨의 의견도 동일하십니까?”
그래서 엘릭은 최대한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자 했고, 타샤는 눈을 크게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획기적인 발견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좋습니다. 그럼 더 자세한 연구 부탁드리겠습니다. 추가로 더 알아내신 게 있으시면 바로 저에게 따로 보고해 주시구요. 다른 발굴 과정도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그대로 진행하시면 될 것 같네요.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릭은 별문제 없다는 듯이 덤덤하게 보고서를 돌려주면서도, 슬쩍 용의 회명서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즉각 보고할 것을 주문하는 걸 잊지 않았다.
마치 타샤와 불새의 홰가 중요하게 생각하니 자신도 그만큼 집중해서 챙겨보겠다는 투로 들렸다.
거래에서 되도록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잘도 포장하는구나. 여차하면 몰래 날름할 생각이면서.』
[혼자 먹고 입 싹 닦고,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닙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진짜더냐?』
[…흠흠!]
『쯧쯧.』
그럼 그렇지.
메피스토는 헛기침을 하는 엘릭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자격증명시험이 원래 1년에 딱 한 번만 시행되는 거 알지?”
“그랬었나?”
“…그랬었거든?”
션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이 돌아오는 엘릭의 대답에 또다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야만 했다.
그럴수록 엘릭의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기만 했지만.
“야. 마법 입문도 제대로 못 했었는데, 마도사 자격시험까지 내가 신경 쓸 겨를이나 있었겠어?”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 없지만. 하여간 원래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특시(特試)로 따로 빼뒀어.”
마도사 자격증명시험.
‘마도사’라는 직급은 이제 스승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 자립하고 자신만의 마도(魔道, 마법의 길)를 걷기 시작한 이들에게만 수여되는 훈장, 즉, 자격증과도 같은 것.
당연히 가슴 속에 풍운을 안은 수많은 마법사가 여기에 도전하고, 고배를 마시게 된다.
실제로 자신이 마법사라면서 잰 체를 하다가 평생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꺾인 마법사들이 수두룩했으니.
이 때문에 곳곳에서 시험 난이도를 좀 낮추라는 온갖 압력이 마법성에 가해져도, 제국 정부나 마탑은 이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자격증명시험은 1년에 단 한 차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월 둘째 주 목요일에 치러지게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엄동설한의 한파가 몰아친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봄이 끝나 서서히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5월.
당연히 자격증명시험이 있을 때까지는 아직도 반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엘릭만큼은 그것을 앞당겨서 치를 수 있었다.
특시라는 형태로.
“역시 권력이 좋긴 좋구나?”
“배려라고 해주지? 그리고 올해는 적사자가의 반란 때문에 시험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수 있단 말도 들려. 그래서 소수에 한해서 특시를 치르는 거고.”
“그 말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울겠는데?”
“황실이나 정부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쓴 거 본 적 있냐? 그리고 어차피 태반이 떨어질 놈들인데, 무슨.”
션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자격증명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은 일 년에 많아야 다섯 명, 많아도 열 명을 절대 넘지 않았다.
그 역시 지망생 신분이었고.
“너는 마도명문의 가주라는 상징성이 있으니까 마법성에서도 특별히 재가를 해준 거야. 금인칙서 때문에 전장에 발 묶여서 시험을 치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도 정상참작 되었고. 또….”
“그냥 메르빙거의 현 상황이 궁금한 꼰대들이 많은 거겠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해?”
션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마도명문에 대한 마탑의 견제가 여전히 크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포장이 그리 잘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근데 정말 벼락치기 같은 거 안 해도 돼? 매년 시험 내용들 보는데 수준 장난 아니더만.”
“수준은 무슨.”
엘릭은 피식 실웃음을 흘리면서 옆에 있던 타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어려웠어요?”
타샤는 대답 대신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뜻.
엘릭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렇다는데?”
“….”
천재인 새끼들은 원래 다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건가? 션은 목 언저리까지 치밀어오른 의문을 겨우 삭여야만 했다.
엘릭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침 목적지인 중앙마도관리청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시험 시간이 여덟 시간이라고 했지?”
“…그런데?”
“30분 컷 해서 만점 받고 나온다. 기다려.”
역시 재수 없어.
션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