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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117화 (117/405)

117화

꽃샘추위

엘릭의 고개가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

아자젤이 부활했다고?

그건 도저히 그냥 좌시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었다.

30년 전에 대륙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대마전쟁만 하더라도, 당시 마족 진영에는 마왕 급의 인사들이 존재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알고 보면 그중에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한 격을 지닌 대마왕 급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알려지기로 마족 진영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절대적인 권력자는 없었다.

반면에 인간 진영은 제국이라는 통일된 체계가 있었기에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니.

마족 진영의 패배는 바로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메피스토와도 견줄만하다는 대마왕 아자젤이 부활했다?

당장 황실이나 육망성에다 보고를 해야 할 사안이었다.

실제로 엘릭은 앙드류의 몸에 빙의한 존재가 풍기는 마기의 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소량이라 그런지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을 뿐.

그렇기에 경악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니군.』

메피스토는 한참 동안 앙드류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엘릭이 다급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소립니까?]

『저놈, 복제품이다.』

[복제품?]

『아자젤이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열화판… 뭐, 그렇게 보면 될 것이다.』

메피스토는 상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제 한껏 비웃음마저 던지고 있었다.

『본 왕을 비롯한 4명의 대마왕들은 모두 봉인되거나 죽은 상태. 특히 아자젤은 갈가리 찢겨 죽었다. 존재가 삭제되었단 뜻이지. 하지만 진명이 남아있는 한, 인외에 있어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음이니.』

[…아자젤의 진명은 남아있다는 겁니까?]

메피스토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본 왕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고리가 어떻게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저 모습을 보니 사실이었던 듯하군.』

그리고리가 아자젤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아니, 정확하게는 ‘광기’라는 진명을 재생시키기 위해서 온갖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 엘릭의 머릿속으로 북방으로 올라오던 길에 여러 화전민촌에서 발견했던 아자젤의 토템이 떠올랐다.

그 속에는 상당한 양의 마기가 담겨 있지 않았던가.

그것도 순수악(純粹惡)이라고 해도 될 만한 깨끗한 순도와 밀도를 자랑하던 마기가.

아무래도 그것들이 모두 아자젤의 부활을 위해 쓰이던 모양이었다.

‘단순히 신앙을 긁어모으기 위한 희생제(犧牲祭)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 큰 거였단 말이지?’

엘릭으로서는 더더욱 그리고리를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될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저놈은 메피와 같은 상태란 말이네요?]

『뭐?』

메피스토는 어떻게 저딴 하품 열화판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냐는 짜증 섞인 얼굴로 엘릭을 노려봤다.

엘릭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잖아요? 메피도 본체가 완전히 뜯기면서 거죽만 남은 사념체라면서요.]

『그래도 본 왕은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노라! 기억과 권능,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저딴 가짜와 비교를 하느냐!』

엘릭은 너무 쉽게 발끈하는 메피스토를 보면서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그리고리 내에 저런 놈들이 아주 많다는 거군.’

빙의가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면 얼마나 강할까?

엘릭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그리고리가 그의 숙적이 될 것은 불에 보듯 뻔한 일.

그렇다면 여기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파악해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래서 엘릭은 더 이상 놈들에게 정체를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감찰국한테 열심히 쫓기고 있을 테니, 당장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기도 어려울 게 분명했으니.

“그. 렇. 다. 면.”

앙드류가 으스러져라 이를 바득 갈더니 마기를 더 크게 불태웠다.

“죽. 어. 야. 지.”

화아아아!

마기가 들불처럼 번져나갔지만.

“그르트믄 주그야지. 말도 제대로 못 하냐? 어버버.”

엘릭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한껏 비웃음마저 던졌다.

파아앗!

앙드류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면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신형이 움푹 아래로 꺼진다, 싶더니 엘릭 앞에 나타나 있었다.

이미 아귀감이 주는 경고에 따라 녀석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던 엘릭은 이미 재빠르게 다섯 개의 손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강체술.

맹호출현.

퍼어엉-

충격파와 함께 두 사람이 뒤로 쭉 밀려나고.

“【휘몰아쳐라】. 그리고 【속박하라】.”

엘릭은 자신이 탄생시켰던 3개의 마법 중 ‘눈보라’와 ‘냉혹의 사슬’을 잇달아 전개했다.

휘휘휘!

삭풍의 인장과 냉혹의 인장이 동시에 뿜어낸 마기가 마력장에 스며들면서 일대에 걸쳐서 거대한 설풍(雪風)을 만들어 냈다.

“흥!”

앙드류는 콧방귀를 끼면서 광풍의 인장에다 마기를 한껏 불어넣었다. 진짜 앙드류가 펼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세기를 자랑하는 돌풍이 설풍과 반대 방향으로 맞물리면서 강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콰드드득!

그 사이로 눈밭을 뚫고 사슬이 잇달아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면서 앙드류의 손발을 강제로 묶어갔다.

촤르륵, 촤르르륵!

콰쾅! 콰앙-

하지만 앙드류가 뿌려대는 마기가 얼마나 강력하던지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도중에 부서져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엘릭은 앙드류가 자신의 마법을 막는데 급급해하는 동안, 재빨리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손바닥을 활짝 펼치면서 ‘소수’를 전개하고 있었다.

“【싸늘해져라】.”

강체술.

흑호좌동 – 장(場)

장심에서부터 투명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면서 오른손이 삽시간에 순백색으로 물들고.

“【부서져라】.”

앙드류의 왼쪽 옆구리에 닿는 순간, 한껏 응축되었던 빙독이 터져 나오면서 삽시간에 상반신의 절반에 동상을 입혔다.

그리고 짤막하게 외친 언령과 함께 동상 부위가 일제히 잘게 쪼개졌다.

쩌저적!

와장창창-

마치 유리라도 깨진 것처럼 얼어붙은 살점 조각이 폭발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빙열(氷裂).

안배 속에서 설산왕이 자랑하던 시그니처 스킬이었다.

상대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가 부숴버리는 기술.

하지만 앙드류는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갔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은 일절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기를 더 크게 줄줄 흘리면서 부서진 육체를 수복하는 한편, 남은 팔 하나를 갈고리처럼 구부리면서 엘릭의 옆구리를 쓸어왔다.

“【치솟고】, 【단단해져라】.”

엘릭은 재빨리 발을 굴려 지면을 찍었다. 적설이 위로 튀어 단단한 얼음벽을 만들어 내면서 앙드류의 공세를 막아내고.

“【꿰뚫어라】.”

얼음 화살이 잔뜩 맺히면서 그대로 앞으로 쏟아졌다.

콰콰콰쾅!

콰아앙-

앙드류는 제자리에서 몸을 크게 뒤틀면서 주먹을 연거푸 휘둘렀다. 얼마나 빠르던지 주먹이 날아드는 족족 얼음 화살이 박살나면서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엘릭은 속으로 혀를 차야만 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상대가 너무 강했으니까.

‘겨우 빙의한 정도로도 이만큼 강하다면 본체는 대체 얼마나 센 거야?’

이만한 작자라면 그리고리 내에서도 그렇게 낮은 신분이지는 않겠지.

“이름이나 묻자. 너 이름이 뭐냐?”

“….”

하지만 앙드류는 곧 죽게 될 놈이 무슨 이름이 필요하냐는 식으로 콧방귀를 끼면서 더 거세게 공세를 퍼부어댔다.

퍼퍼퍼펑!

엘릭도 ‘소수(素手)’를 잇따라 뿌리면서 공격을 막고, 흘리며, 파고들어서 반격을 가하는 등, 앙드류를 궁지로 몰아넣고자 했다.

안배에서 강체술을 익히고, 냉혹의 인장을 ‘대성’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더라면 절대 이룰 수 없었을 접전.

콰아아앙!

그러다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치면서 엘릭은 우측으로, 앙드류는 좌측으로 크게 돌아가 자세를 바로 세워야만 했다.

둘 사이로 눈보라가 가로지르는 가운데, 엘릭은 심안으로 앙드류를 잔뜩 노려봐야만 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결이 녀석에게 응집되어 있는 게 보였다.

빙의가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육체와 영혼 간의 괴리가 생기면서 그만큼 약점이 많아졌다는 뜻이었지만.

반대로 시간이 갈수록 앙드류의 공세는 비단 더 거칠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파괴력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릇의 생명력을 강제로 소모하고 있단 뜻이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아.’

앙드류의 육체에 생명력의 잔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어서야 당장 어떻게 역전을 꾀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복제품이니 열화판이니 치부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마왕의 아류다. 너 정도의 후기지수에게 그렇게 쉽게 꺾여버린다면 그것 나름대로 쪽팔릴 일이지.』

너로서는 아직 멀었다. 메피스토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릭도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끽해야 막상막하.

이곳이 퓨리의 영역 한복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뭐지?”

“다들 멈춰봐.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아무리 동장군이 빚어내는 한파의 소음이 크다고 해도, 엘릭과 앙드류의 싸움이 너무나 거칠었기 때문에 감각이 예민한 수인족을 모두 속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물며 침입자에 대한 경계가 철저한 지금이라면 더더욱.

“저 안쪽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침입자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2팀과 5팀은 즉각 나를 따라 이동한다!”

수인들이 서둘러 이쪽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당장은 시야를 가리는 동장군의 눈보라와 어둠 때문에 엘릭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애당초 소리소문없이 동장군만 훔쳐서 빠져나갈 속셈이었던 엘릭으로서는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게 되는 셈.

“아. 무. 래. 도. 내. 가. 이. 긴. 것. 같. 군.”

앙드류도 그런 엘릭의 사정을 눈치챈 건지 차갑게 입꼬리를 비틀고 있었다.

파아아!

마기가 다시 한번 더 파문을 그리면서 지면을 타고 퍼져나갔다. 동시에 사납게 일렁이던 바람도 성질이 바뀌면서 엘릭을 중심부 쪽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예 그가 달아날 수 없도록 이곳에다 발을 묶어버리려는 속셈인 것이다.

엘릭은 삭풍의 인장으로 앙드류의 바람을 일일이 상쇄시키는 한편, 허공을 심안으로 바라봤다.

시시각각 이쪽으로 수인족들의 결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단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포위망이 구축되고, 달아날 방법은 아예 없어질 게 분명했다.

처음 몰래 침입했을 때처럼 투명화와 기척 차단 마법을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앙드류가 절대 그런 시도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왔. 군.”

츠츠츠-

앙드류의 광소와 함께 설원 곳곳에 소환진이 생성되면서 다른 마족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빙의가 이뤄지기 전의 앙드류에 비견할 만한 마기를 품은 녀석들.

전부 그리고리의 마족들인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것들을 세트로 가져다 놓아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테지만.

『이대로는 완전히 발이 묶인 셈인데, 좋은 생각이라도 있느냐?』

엘릭을 귀찮게 만들기에는 아주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메피스토도 그런 상황을 간파하고, 그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를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있겠어요? 없죠. 조금만 더 여유 시간이 있으면 생명력을 전부 소진시켜서 날려버릴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안 되겠네요.]

『그럼 어쩌려고?』

[그거 알아요, 메피?]

『뭘?』

[우리 가문에는 아주 좋은 문화가 있어요.]

『…?』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놈들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라.]

『…!』

메피스토는 엘릭의 말뜻을 눈치채고는 어이없다는 투로 바라봤고.

엘릭은 재빨리 3개의 인장에다 있는 힘껏 마력을 쏟아부었다.

화아아악!

설풍이 불고, 그 속으로 그림자가 스며들면서 자글자글한 톱니 이빨이 바람 사이로 드러났다.

“【모이고】, 【쏟아져라】.”

엘릭은 그것을 최대한으로 압축시켜 웬만한 칼보다도 더 날카로운 칼바람을 만들어 앙드류 쪽으로 쏟아냈다.

“허. 튼. 짓.”

앙드류는 엘릭이 위기에 내몰리자 의미 없는 저항을 한다고 여기고 콧방귀를 뀌면서 광풍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동시에 신호를 받은 마족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면서 엘릭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엘릭이 갑자기 앞으로 내뻗었던 손을 반대로 뒤집는 게 아닌가!

“무. 슨.”

그것이 마법을 구성하는 일종의 수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앙드류는 뒤늦게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 마!”

허겁지겁 안쪽으로 잡아당겼던 광풍을 다시 엘릭에게로 쏟아부으려 했지만.

파바밧!

그 전에 이미 칼바람은 갈 방향을 잃고 도중에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동장군을 구속하고 있던 사슬을 잇달아 때렸다.

그리고.

그 아래, 설원 저 깊숙한 곳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까지 송두리째 뒤집어버렸으니!

여태 동장군을 봉인하고 있던 마법 장치가 우스던 메르빙거가 만든 것이니만큼, 그것이 가진 결점은 누구보다 엘릭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채채채챙!

동장군을 구속하고 있던 사슬이 한순간 일제히 모조리 터져나갔고.

“미. 쳤…!”

앙드류가 외친 비명은 곧 동장군이 내지르는 괴성과 한파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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