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율호왕(律虎王)
‘삭풍(朔風).’
엘릭의 눈가로 언뜻 무언가가 비치는 것 같았다.
흑의 설원이 보였다.
새카맣게 물든 평원. 빽빽하게 늘어선 수목들.
수분이 거의 없다시피 한 황량한 대지 위에 불어닥치는 바람은 아주 날카롭고 매섭기 짝이 없다.
이따금 마치 진짜 칼날처럼 베이거나 상처를 입을 수도 있어서, 수인족들은 흑의 설원에 부는 바람을 일컬어 ‘칼바람’이라고 했다.
이번 안배에서 획득한 인장이 바로 그런 칼바람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삭풍.
등급은 진귀. 설산왕이 주었던 냉혹의 인장과 같은 등급이었다.
‘하지만 아직 트리거는 알 수 없네.’
이번 안배는 한꺼번에 떠먹여 줄 생각은커녕, 고작 일부를 알려주는 것조차 시간이 참 많이 드는 듯했다.
엘릭은 여기에 대해 뭔가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동백의 신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새 내뺐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자신의 왼쪽 어깨에 있던 동백의 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마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려는 거겠지.
엘릭은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이번 안배가 모두 끝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한참 남은 모양이었다.
* * *
이튿날.
“…저더러 친위대에 들어오란 말씀이십니까?”
엘릭은 순간 율호왕이 한 말을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젠장. 빌어먹을 숙취….’
전날 밤, 엘릭은 축제를 좋아하는 수인족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그들이 내어주는 술을 꾸벅꾸벅 마시다 말고 도중에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마유주? 하여간 그런 특이한 이름을 가진 술이었다.
처음에는 비린내가 너무 역하기도 하고, 처음 마셔보는 것이라 피하려 했건만.
‘새로운 형제에게 내어주는 의리주다’라는 저들의 강권을 이기지 못하고 한두 잔씩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언제부턴가 꿀떡꿀떡 넘어가는 게 좀 맛있어지기도 했었고.
[그러다 변고라도 당했으면 어쩌려고 그러나요? 쯧!]
동백의 신은 삭풍의 인장에 관해 물어볼 때만 내뺐을 뿐, 어느새 다시 돌아와 그의 심심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다만, 어젯밤에는 너무 무방비로 있었게 사실이라, 동백의 신은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이건 저도 잘못한 거라 뭐라 변명할 말이 없네요. 하지만 보셨잖아요? 거기서 마력 돌렸다가 걸려서 벌주로 더 많이 마셔야 했던 거.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흥!]
[그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경계심이 강한 이들이 수인족이고 또 안트로모프 부족입니다. 제가 경계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이지 않아야, 저들도 제가 자신들을 신뢰한다고 믿겠죠. 이해 좀 해주십시오. 네?]
엘릭은 단단히 토라진 동백의 신을 어떻게든 달래야만 했다.
솔직한 속내로는 ‘동백 님이 삐치신 거, 제가 지난밤에 안 놀아드렸다고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게 될 것 같아서 꾹 참아야 했다.
[하여간 본 녀의 속을 썩이는 건, 선조나 그대나 똑같군요. 처음에는 그래도 다른 메르빙거와 다른 줄로만 알았더니 갈수록 그들과 똑같아지니. 에휴!]
마치 자신이 돌봐주지 않으면 누가 이 어린애 같은 아이를 돌봐주겠냐는 투.
엘릭은 지금이다 싶어 재빨리 동백 신의 마음을 긁어주었다.
[그래서 제가 더더욱 동백 님을 믿고, 따르며, 또 어머니처럼 의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흠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여기 안배에 뚝 떨어진 뒤로 선조님은 저를 괴롭히기 바쁘시지만, 계속 제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옆에서 인도해주시고 같이 고민해주신 건 동백 님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어제 제가 그렇게 무방비로 잠든 건, 그만큼 동백 님을 믿고 있었던 것도 있구요. 너무 어리광만 부린 것 같아 죄송하기만 하네요.]
[흠흠! 흠! 본 녀의 얼굴에 금칠을 많이 해주시는군요. 본 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엘릭은 동백의 신이 헛기침을 하는 내내 마음이 이쪽으로 돌아온 것을 알고, 일부러 정색하는 척하면서 말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그럼 제가 서운해집니다.]
[호호호! 어쩔 수 없군요. 본 녀가 조금 고생스럽긴 해도 계속 그대가 엇나가지 않도록 돌봐주어야지, 안 그러면 그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좋아요. 지금처럼 계속 기특한 마음으로만 있으면 된답니다.]
엘릭은 동백의 신이 완전히 넘어온 것을 깨닫고 회심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행히 동백의 신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신이 조금씩 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맞은편에 있던 율호왕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얄궂게 웃고 있었다.
“그래. 내 옆에서 날 보좌하란 뜻이다. 왜? 싫나?”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알기로 친위대는 부족 내에서도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족장님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이들만 가리고 또 가려서 뽑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외부인이었던 제가 그런 중책을 제대로 맡을 수 있을까 싶어서 여쭌 것입니다.”
엘릭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좋은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외치면서도, 겉으로는 슬쩍 뒤로 한 발을 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미 랄프를 꺾으면서 실력은 증명해 보였다. 사실 강체술의 전승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자격은 충분히 차고도 넘친 거였지만.”
율호왕은 팔짱을 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네가 갑자기 친위대까지 된다고 하면 질투나 시기가 많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정면에서 치고 나가야 하지 않겠나?”
율호왕의 한쪽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물론, 싫다면 지금 싫다는 의사를 밝혀도 좋다. 나는 본인의 의사를 거스르는 제안 같은 건 하지 않는 주의니까.”
하지만 엘릭은 그 말에서, 그의 입이 뱉는 대답이 승낙이 아니라면 율호왕이 그나마 주었던 호감이 싹 사라질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겨우 가라앉힌 의심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 수도 있겠지.
‘어제 보인 패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좋겠지. 율호왕이나 수인족의 분위기도 그런 쪽을 선호하는 것 같으니.’
어차피 엘릭도 율호왕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좋은 것이니 거절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율호왕도 그제야 엘릭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좋다. 그럼 친위대원이 된 기념으로 첫 번째 임무를 내리도록 하지.”
“…?”
“우리 부족이 정착해야 할 지역을 찾아와라.”
“…!”
* * *
‘이건 기회다!’
엘릭이 처음 율호왕의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호재였다.
‘원 역사에서 예정된 대로 데스웜의 군락지로 이들을 정착시킬 수 있다면… 나무를 키우기에 훨씬 유리해져.’
그래서 엘릭은 지시를 받은 자리에서 데스웜의 군락지를 추천했다.
“아, 거기 말인가?”
다행히 율호왕도 이미 위치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확실히 그곳도 후보지로 예상해두긴 했던 곳이긴 하다. 외부 방어도 용이하고, 수원도 가까우며 무엇보다 마기 침식이 적어서 토질도 아주 좋지. 다만, 문제는….”
“데스웜의 군락지라는 점이죠.”
“맞아. 그래서 개척하기가 영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보류했었는데….”
“그래도 그만한 장소를 찾기는 힘들 겁니다.”
“그도 그렇지. 음, 어쩐다?”
율호왕은 잠시 고민에 잠기다가 뭔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눈을 반짝였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
그리고 그 결과.
‘…이 골치 아픈 것들과 같이 방법을 찾아야 한다니.’
엘릭은 율호왕의 명령에 따라 함께 움직이게 된 랄프와 흑랑족 3인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친위대와 함께 하는 것은 좋다만, 저 치들과 바로 같이 붙여놓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단 말이죠. 그대를 시험해보는 것 같은데… 일이 참 재미나게 되었어요.]
동백의 신은 엘릭이 어떻게 자신을 적대시하는 랄프 등을 설득할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율호왕의 배짱에 크게 놀라워하고 있었다.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을 같이 붙여놓으면 자칫 친위대 내에서 분란이 벌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런 명령을 내려버렸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얼마든지 봉합할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역시 대 군주가 되었던 사람이라 그런가, 생각이 다르긴 달라. 나로서는 귀찮기만 할 뿐이지만.’
엘릭이 배속된 곳은 제3친위대. 흑랑족이 다수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엘릭은 어제 부족에서 겪었던 분위기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자신을 경계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놈들을 대체 어떻게 한다? 그냥 어제처럼 힘으로 확 찍어 눌러버려?’
수인 사회에서 가장 좋은 건 서열을 확실히 만들어놓는 것이지만.
‘아니. 지금 상황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오히려 반발만 사기 쉬울 거야. 자칫 데스웜을 물리치던 중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거고….’
엘릭은 자신이 뒤통수 때리는 건 괜찮아도, 맞는 건 혐오하는 주의였다.
‘역시 차근차근히 접근하는 수밖엔 없나.’
데스웜을 물리칠 방법을 고심하는 것만 해도 머리 아파 죽겠구만, 이제는 인간관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 거슬릴 뿐이었다.
“데스웜을 꼬여내는 게 가장 골치로군. 이게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
제3친위대의 대장, 요르의 말에 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유일하게 엘릭을 배척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호의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딱 중간.
그 정도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웬 이상한 놈이 쓸데없는 말만 안 했어도 이런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때, 랄프가 아무렇게나 툭 던진 말에 흑랑족과 대원들이 낄낄거리면서 맞장구를 쳐댔다.
“그러게 말이야.”
“괜히 쓸데없는 데 힘이나 쓰고….”
“솔직히 데스웜들이나 살던 늪지가 뭐가 좋겠습니까? 족장님 눈에 띄려고 그냥 누가 개수작 부리는 거지.”
‘이 새끼들 봐라?’
누가 봐도 자신을 저격하는 말들이라, 엘릭의 눈썹이 꿈틀대는데.
짜아악!
별안간 요르가 걸음을 멈추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랄프의 싸대기를 후려갈겼다.
“대, 대장…!”
“분명히 말했을 텐데? 사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까진 괜찮아도, 그걸 부대 안까지 끌고 와서 분위기를 망치는 짓은 하지 말라고.”
“…!”
“한 번만 더 이상한 논지로 분위기를 흐려놓는다면, 그때는 내가 네놈의 머리통을 뽑아버릴 거다.”
요르가 송곳니가 훤히 드러나도록 으르렁거리자, 랄프를 비롯한 대원들은 하나 같이 자라목이 되어야만 했다.
“알아들었나?”
“예, 예…!”
“제대로 대답해라. 알아들었나?”
“옙!”
“옙!”
대원들은 군기가 바싹 들어간 채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야만 했다.
‘이걸 믿는 거였구만. 날 그냥 밀어 넣은 게.’
요르는 당장 율호왕과 부딪쳐도 크게 뒤지지 않을 것처럼 사나운 기세를 갖고 있었다.
이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대장으로 있는 곳이라면, 분란이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차단할 수 있겠지.
엘릭은 고맙다는 뜻으로 요르에게 목례를 취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 투였다.
마치 자신이 할 도리를 다했을 뿐이라는 듯한 태도.
그것이 엘릭에게는 더더욱 마음에 들게 다가왔다.
저 정도로 공정한 입장만 취해도 밉지는 않을 테니까.
‘아카데미에서도 저런 교수가 있었더라면 좀 더 발을 붙일 수 있었을 텐데.’
엘릭은 그렇게 쓴웃음을 짓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있어서 요르에게 물었다.
“대장, 뭐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데스웜은 원래 둥지 밖으로 잘 안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피를 대량으로 뿌려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질문을 받은 요르는 아주 잠깐 엘릭을 빤히 바라봤다.
엘릭은 순간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별안간 요르가 랄프 쪽으로 가더니 반대쪽 뺨을 후려쳤다.
“분명히 대원들에게 모두 일러두라고 했었을 텐데?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거냐?”
“대, 대장! 그, 그것이 차후에 말하려 했…!”
“변명은 되었다. 이번 일은 따로 흑랑족의 수장에게 항의할 예정이니 그리 알고 있도록. 그 외에 친위대 차원에서 별도의 징계도 있을 것이다.”
“…!”
한순간, 랄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지샜다. 그러고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엘릭을 원망에 찬 시선으로 노려봤다.
[참으로 안하무인인 아이가 따로 없군요. 어찌 저토록 제가 저지른 잘못은 보지 못하는지. 누가 보면 그대가 크게 실수라도 한 줄 알겠는데… 원래 저렇게 편협한 성격은 아니었을 텐데, 어렸을 때라 저랬었나?]
[내버려 두죠. 나중에 잡아다가 아주 크게 참교육을 해줄 생각이니까요.]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꼴인지 알기나 할지 모르겠는데. 뭘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영업 비밀입니다.]
동백의 신이 웃는 동안, 요르가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데스웜은 ‘아낙수나문의 화초’라는 것이 내뿜는 향에 지극히 민감하다. 그것으로 홀려 밖으로 모두 끄집어 올릴 생… 뭐냐?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엘릭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거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낙수나문의 화초, 녹야에서는 생사초라 부르던 걸 그가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엘릭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머릿속은 팽팽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생사초가 데스웜이 좋아하는 약초였나? 그걸 왜 여태 생각 못 했지?’
확실히 생사초가 품은 질 좋은 마기라면 데스웜이 좋아할 것 같긴 했다.
다만, 생사초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까다로워 이 생각을 못 했었건만.
“아낙수나문의 화초가 여기에도 많이 나 있습니까?”
“마기가 지맥을 타고 흐르며 뭉친 용혈(龍穴)에는 항상 피기 마련이지. 흑의 설원에는 그런 곳들이 흔치는 않지만, 더러 있긴 하고. 몰랐나?”
엘릭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마기가 뭉친 장소는 마물도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서 많이 피해 다녀서요.”
“하긴. 그도 그렇군. 여태 혼자서 생활했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겠지.”
다행히 변명이 통한 모양이었다.
“여하튼 아낙수나문의 화초에 빙열초나 아타락시아 풀, 타라반 등을 섞으면….”
“그것들을 각각 5:1:3의 비율로 섞고, 남은 1은 에시소시티아, 청마귤, 소마 등을 섞어 아홉 번 정도 화로에 구워내서 환으로 빚으면 알싸한 향이 아주 강하게 풍기게 되죠.”
요르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화식환(火息丸)’에 대해서 알고 있나?”
화식환.
엘릭이 메피스토로부터 배웠던 연단술의 결과물이었다.
이것까지 흑의 설원에 전해진 모양이었다.
사용 용도는 전혀 달랐지만.
“스승님께서 동방에서 온 친구에게서 배운 잡기라고 하셨습니다.”
“연단술을 가지고 잡기라니…! 자네의 스승님은 참 기인이시로군. 강체술을 가르치시면서도 이름을 알리지는 않으시고, 연단술사나 되는 친구를 두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으니.”
“주변과 속세의 시선을 별반 신경 쓰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니 기인이시라는 거지.”
요르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자네가 알고 있는 연단술은 우리 부족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상세한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 정보를 공유해줄 수 있겠나?”
“이미 전 안트로모프의 부족원입니다.”
“하하! 떠보려 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네.”
엘릭은 여태껏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요르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걸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또 뜻하지 않은 곳에서 횡재를 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내가 고마워할 일인데 말이지.’
화식환은 엘릭에게도 아주 필요한 물건이었다.
벌모세수가 거의 끝났다지만, 그래도 마기를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나쁠 건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좋았다.
마정석의 용해율이 그만큼 올라가고, 마력의 효율도 높아질 테니.
“아낙수나문의 화초 군락은 여기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네.”
엘릭의 눈이 보석을 주운 것처럼 크게 반짝였다.
아무래도 이제 공략이 순조롭게 이뤄질 모양이었다.
‘겸사겸사 내 마기도 좀 챙기고.’
삭풍의 인장을 비롯한 여러 인장의 성취도를 대폭 상승시킬 수 있는 폭렙의 기회였다.
재능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