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 삼킨 마법사-67화 (67/405)

67화

북방으로

“감찰국… 파트란…! 두고 보자!”

절뚝, 절뚝.

카야는 한쪽 날개를 다리 삼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럴 때마다 상처 부위에서는 끈적끈적한 피가 떨어졌다.

왼팔과 오른쪽 무릎 아래. 카야가 살기 위한 대가로 내놔야 했던 것들이었다.

그만큼 파트란은 아주 강했다.

워낙에 오래전부터 부딪쳤던 악연이라 그가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았다.

‘빌어먹을 사형 제도…!’

더군다나 감찰국이 자랑한다는 비술, ‘제도(制度)’는 발동되는 순간 요원에게 막강한 버프(Buff)를 제공한다.

여기다 파마(破魔)니 축사(逐邪)니 하는 성질이 담긴 마도구까지 사용하면?

마족이라면 누구나 지금 카야와 같은 꼴이 되고 마리라.

카야를 비롯한 마족들이 어떻게든 마왕을, 아니, 그보다 더 고대적인 존재라는 대마왕을 부활시키려는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만한 존재가 있어야 인간의 계속된 발전에 대항할 수 있을 테니.

‘문제는 지금 이딴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지만.’

카야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수하들은 자신을 보호하려다 거의 전멸한 상태.

그나마 남아있던 녀석들도 감찰국의 시선을 따돌려보겠다며 가버렸으니, 이제 그만이 남았다.

하지만 카야는 자신이 살아날 방도 따윈 없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금고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내가 도망칠 수 없게 저택을 바로 무너뜨렸던 것도 전부… 놈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만반의 준비를 했었던 게 틀림없다.’

하나 같이 전부 오해에 불과한 것들이었지만, 카야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 놈들의 눈을 피해 달아난다고?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다 내 몸 상태도 최악이고.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걸음을 멈춘 카야의 두 눈이 푸른 광망을 토해냈다.

‘놈들의 허를 찌르는 것!’

감찰국은 지금 그가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계속 놀아난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카야는 그것을 뒤집어서 오히려 공세를 가할 참이었다.

지금 이런 몸 상태로 반격을 가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도 못 할 테니.

‘너희들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우리가 토템에다 무슨 짓을 해놨는지.’

카야와 조직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부활의 의식에 아주 중요한 토템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토템에는 하나같이 특이한 향이 묻어 있었다.

어디에 있든지 카야, 자신만이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이!

그것은 물체를 직접 봉인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알아챌 수도 지울 수도 없게 되어 있는바.

‘내가 스스로 발산한 체취를 어찌 못 찾을까?’

카야의 진명은 향취(香臭).

그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향을 풍겨 추적을 하는데 사용하기도, 적을 상대할 때 독취를 풍겨 중독시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다.

‘토템에는 하나 같이 마기가 가득 쌓여 있다. 그것들을 내가 차라리 먹어치운다면… 그때는 몸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인장을 개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조직의 허락 없이 함부로 토템에다 손을 대는 건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조직이 꾸린 추격대에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

하지만 어차피 카야로서는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을 위기가 아닌가?

차사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봐야 했다.

‘오히려 파트란 쯤 되는 작자의 머리를 들고 가면 조직에서도 공을 참작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순간, 카야는 발걸음의 방향을 바꾸었다.

곧장 토템의 향이 풍기는 곳으로 달려갈 참이었다.

‘파트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주마!’

카야의 두 동공 위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 * *

“대단한 놈. 정말이지 너 같은 인재를 어째서 지금 와서 만나게 되었는지, 참!”

“스승님께서 워낙에 대단한 안목을 지니셨으니 저 같은 인재를 찾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허허허허!”

션은 서로 상대의 얼굴에다 금칠 해주기 바쁜 오거스틴과 엘릭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있었던 가롯 자작가의 소동 이후.

엘릭 일행은 그대로 현장을 내빼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북방으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아주 기분이 좋구나. 마족 놈들을 싹 쓸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감찰국에도 엿을 단단히 먹여놨으니. 그놈들의 면상이 일그러질 것을 생각해보니 참 속이 시원해 죽겠단 말이지!”

“동감이오, 형님. 흐흐흐! 얼마나 웃었던지 배가 다 아플 정도라더라니까?”

오거스틴과 마찬가지로 길리티도 쉴 새 없이 히죽 대기 바빴다.

젊은 시절 감찰국의 집요한 추격 때문에 얼마나 진절머리를 쳤던가?

네레스타 가의 빈객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감찰국에서 붙인 꼬리들이 있어 울화가 치밀어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아마 남은 평생에도 오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대체 전생에 무슨 좋은 짓을 했기에 이렇게 말년에 복이 굴러들어온 건지! 제자님이 아주 예뻐 죽겠다는 거 아니오!”

엘릭을 바라보는 길리티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슬금슬금. 엘릭은 어쩐지 얼굴 옆면이 너무 따가워 엉덩이를 슬쩍 반대편 문가 쪽으로 옮겼다.

“으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자꾸 잊나 본데 너는 2인자야! 엘릭은 우리 녹야의 것이라고!”

그때, 오거스틴이 길리티의 시선을 도중에 차단했다.

“생각이 바뀌었소. 엘릭은 우리 웰-노운 학파의 전승자로 둬야겠소.”

“그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이야기가 다르잖나!”

“원래 사람 사정이란 게 뭐,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아니겠수? 내 그래도 형님과의 지난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두 번째 자리까지는 막지 않으리다.”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

“안 돼! 절대 안 돼! 엘릭은 우리 녹야의 보물이다! 누구에게도 못 줘!”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이런 미친놈이!”

친형제보다도 더 깊은 우애를 자랑한다던 오거스틴과 길리티가 처음으로 제자를 두고 분열할 조짐을 보이던 그때.

션이 조심스레 엘릭에게 물었다.

“두 분,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내버려 둬. 저러시다 말겠지. 한두 번도 아니고.”

션은 황당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럼 저런 상황이 비일비재했단 말이잖아?’

그가 그동안 가문에서 뵈었던 오거스틴은 짓궂은 면은 있어도 항상 다가가기 어려운 큰 어른이었고, 길리티는 괴짜 기질이 강해서 아버지가 아니면 가솔들도 말을 붙이기가 항상 어려웠다.

그런데 두 분 다 엘릭이라고 하면 껌뻑 죽을 정도였고, 이제는 서로가 더 가깝다며 유치하게 다투고 있으니.

그동안 막연하게 갖고 있던 이미지가 와장창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여태 자신만이 알고 있던 엘릭의 가치가 이제 완전히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니.

친구가 잘된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잘난 척하는 태도는 여전히 재수 없지만.’

션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보는 엘릭을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은 대체 어디다 쓰려고?”

“어디다 쓰긴. 가문 일으키는 데 써야지.”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

순간, 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가문, 다시 일으키려고?”

“슬슬 준비해야지. 이번 여행 끝나면 고향 한 번 들릴 거야. 지금 있는 집도 너무 낡아서 개보수 좀 해야 하고, 옛날에 팔았던 영지도 되찾아와야지? 가문을 재기시키려면 돈이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랍니다, 부잣집 도련님.”

션은 슬쩍 헤이즈를 돌아보았다.

“….”

헤이즈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두 눈동자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엘릭의 선언에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번 여로까지 성공한다면 가전 마법도 상당수 복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다면 진짜 제대로 개파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그 전에 마도사 자격증명시험부터 통과해야겠지만. 할 게 너무 많단 말이지?”

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엘릭의 실력을 보면, 전혀 가망 없는 말도 아니었다.

“너라면 잘할 거다.”

“당연하지.”

엘릭이 씩 웃으면서 대답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대신에 일단 회수할 수 있는 건 다 회수해야겠지?”

“…?”

션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뭔가 또 엘릭이 말없이 꾸민 게 있다 싶었으니까.

그때, 여전히 말싸움을 하고 있던 오거스틴과 길리티가 시선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헤이즈의 똑같이 그곳을 보면서 해머 쪽으로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마…족?”

마차가 뚝 멈췄다.

그 앞에는 마족 한 명이 마기를 살벌하게 피우면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마부 카를이 이쪽을 보면서 물었다.

그도 당혹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대낮에 마족이 대놓고 활보를 하고 다닐 줄이야.

미친 건지, 아니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고 해야 할지.

대마전쟁 이후, 마족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대륙에서 자취를 거의 감춘 상태였다.

간간이 발견되는 개체들도 그때마다 족족 제거되고 있었기에, 웬만한 놈들은 인두겁을 쓰고 정체를 숨기기 바빴다.

그런데 저런 놈이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냥 자살하고 싶어서 왔나?’

이곳에 오거스틴이며 길리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인외의 천적이라 불리는 메르빙거의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도 당연했다.

“저거 내가 부른 거야. 누나, 내가 처치할 테니까 내버려 둬.”

헤이즈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말했잖아? 쓸어올 수 있는 건 죄다 싹 쓸어와야지. 저거라고 다르겠어?”

“…너, 그럼 설마 인장 회수하려고?”

“응. 저놈, 아마 저택에 있던 놈들 대가리일걸.”

“야, 이…!”

헤이즈는 기가 찬다는 얼굴이 되어 버럭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엘릭은 그보다 먼저 후다닥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허허허허! 역시 내 제자로다! 그래. 이 늙은이의 제자라면! 녹야의 당대 전승자라면 그만한 배짱은 있어야지!”

오거스틴은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면서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길리티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 제자라니까?”

“이놈이! 보고도 모르겠느냐? 저런 호승심은 당연히 우리 녹야지!”

“형님이야말로 뭘 모르시는구만. 우리 웰-노운이야말로 명석함을 제일로 따지니 우리에 가장 가깝소.”

“녹야래도!”

“웰-노운이래도!”

다시 시작되는 말싸움.

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엘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혹시나 했는데, 진짜 왔네?”

카야는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놈들… 감찰국이 아니다!’

자신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당황해하지 않는 것도 그렇거니와.

중요 물품을 옮기고 있다면 응당 따라다니고 있어야 할 호위병력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그냥 나들이 나가는 듯한 고위 귀족의 마차가 전부.

거기다 마치 자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마차에서 내리는 청년, 엘릭을 본 순간 본능이 울어댔다.

여기는 함정이라고!

“넌… 누구지?”

“나?”

엘릭은 씩 웃으면서 품에서 뭔가를 꺼내 얼굴에다 썼다.

“이건데?”

검은 가면.

조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오히려 보는 사람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한 가면이었다.

툭!

순간, 카야의 머리 한편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우리를… 우리를 기만하였구나!”

카야는 복잡하게 헝클어졌던 머릿속 의문들이 한순간 제자리를 찾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도, 감찰국도 우롱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알았냐? 멍청하긴.”

“…!”

“궁금한 게 있는데. 마족들은 원래 다 그래? 내가 아주 잘 아는 마족도 좀 그렇거든.”

『…그 잘 안다는 마족이 설마 본 왕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테지?』

[어? 눈치채셨네요. 그렇게 나쁜 건 아닌가 보네.]

『이 새끼가!』

카야는 엘릭이 메피스토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동안, 분노가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인간 한 놈 때문에 자신과 조직이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것들이 전부 엉망이 되고 만 셈이었으니.

“죽여버리겠다아아!”

콰앙!

쐐애액-

카야가 지면을 거세게 박차며 이쪽으로 몸을 날렸다.

『저놈 완전히 눈이 돌아버렸군.』

[더 잘 됐죠. 메르빙거로서.]

뚜둑, 뚜두둑!

엘릭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카야를 보면서 몸을 가볍게 풀었다. 밤새 한바탕 날뛰어서 그런지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전력을 다해 싸우지 못했다는 것.

자신의 실력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것.

[하나라도 더 많은 마를 축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엘릭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언령을 발동시켰다.

“【무장 개방】.”

화아아악!

마력이 개방되면서 마력장이 파문처럼 퍼져나가고.

휘휘휘!

콰아아앙-

엘릭은 눈보라를 일으키면서 카야에게로 일격을 날렸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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