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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66화 (66/405)

66화

북방으로

쿠쿠쿠…!

엄청난 마력 파동이 저택을 크게 뒤흔들었다.

엘릭과 메피스토의 고개가 똑같이 천장으로 향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엘릭의 얼굴에는 웃음이, 메피스토의 안면에는 짜증이 단단히 어려 있었다.

[슬슬 내뺄 때 된 것 같은데. 빨리 결정하시죠?]

부들부들!

메피스토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크게 떨면서 엘릭을 노려봤다.

그럴수록 엘릭의 웃음은 커질 뿐이었지만.

[콜?]

『콜이다! 이 개새끼야!』

[내놓으시죠.]

『제기랄! 원죄의 인장을 사용하려면 먼저 자격을 갖춰라!』

[그건 늘 했던 말이고.]

『그 자격이란 게 대체 무엇이겠느냐?』

순간, 엘릭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냉혹의 인장을 획득했을 때. 그는 상당히 많이 굴러야만 했다. 설산왕에게 덤비고 또 덤볐었다. 죽기도 많이 죽었고. 하지만 인장을 아주 조금씩 뺏어오다가 결국 이겼다.

그만큼 인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인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원죄의 인장도 마찬가지라면?

[하위 인장?]

『그래. 계보 상으로 ‘원죄’보다 아래에 위치한 것들을 습득해라. 그런다면 트리거로 가는 길이 열릴 거다.』

엘릭의 입술 끝이 크게 말려 올라갔다.

드디어 막막했던 그림자가 걷혔다.

[그럼 계보가 어떻게 됩니까?]

『모른다.』

[여기까지 밝혀놓고 또 무슨 헛소리를…!]

『사실이다! 본 왕은 처음부터 이미 완벽한 존재였느니라. 눈을 떴을 때부터 마신의 옆을 지키고 있었고, 만마(萬魔)를 발아래에 두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했다.

『또한, 아자젤 놈처럼 비겁하지도 않았으니, 따로 옆에 심복을 두거나 하지도 않았다. 홀로 걷고, 홀로 살았다. 그런 본 왕이 하위 인장 따위를 알 리가 있겠느냐!』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길을 걷고 업적을 쌓아, 결국 ‘전설’을 만들었기에 유아독존(唯我獨尊).

메피스토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대단해 보였다.

[그냥 아싸였단 거잖아요? 그게 뭐가 자랑이라고.]

『이놈이!』

[그럼 다른 힌트라도 내놔봐요. 세상에 마족이 몇인데 그걸 일일이 다 족칠 수도 없잖아요?]

아주 잠깐, 메피스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릭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가만히 메피스토를 바라봤다.

『인장의 각인문양! 됐냐!』

그거면 충분했다.

엘릭은 재빨리 어깨에 있는 원죄의 인장을 내려다봤다.

[늑대?]

『이 이상은 더 요구하지 마라!』

더 캐물었다간 정말 완전히 틀어질 기세였다.

엘릭은 나중에 기회가 잡혔을 때 더 긁어내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약속대로 흡수한 인장의 조각을 원죄의 인장 쪽으로 옮겨주었다.

『오, 오오! 드디어…!』

여태 엘릭 때문에 짜증으로 단단히 얼룩졌던 메피스토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 찼다.

그동안 어떻게든 얻고 싶어도, 아자젤의 방해와 다른 대마왕들의 견제로 얻지 못했던 조각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을 획득하는 순간, 그는 아자젤에 대해서 보다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당장 아자젤을 꺾을 수 있는 비법을 알아낼 수 있다거나, 빼앗긴 마기를 되찾을 수 있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단서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요긴하게 쓰일지 몰랐다.

그것이 메피스토가 다른 대마왕들과 달리 따로 세력을 일구지 않아도, 그가 최강의 대마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다.

‘광기, 광기… 그렇게 불리더니 이런 메커니즘으로 되어 있던 거였나? 단순히 미친 것만이 아닌, 광오한 면도 포함되는 거였군.’

메피스토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아주 미약하지만, 광기였다.

‘그렇다면 이것을 본 왕의 인장에다 대비시킨다면, 우선 기선을 꺾는 것부터 시작할… 응?’

메피스토는 생각을 잇다 말고 도중에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원죄의 인장으로 잘 스며들던 아자젤 인장의 조각과 마기가 도중에 뚝 그쳤으니까.

그러다 보고 말았다.

엘릭이 이쪽을 보며 씩 웃고 있는 것을!

『너, 설마?』

[전부 다 준단 말은 안 했쥬?]

『야!』

[힌트 준 만큼 저도 준 겁니다. 다른 거 더 생각나면 말씀하세요.]

『이 새끼야아아!』

메피스토는 결국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엘릭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물리적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엘릭은 메피스토를 그냥 무시하고 손길을 거둬들였다. 마기와 인장 조각을 몽땅 빼앗긴 토템이 가루가 되어 주저앉았다.

‘역시 인장이 안 생기네.’

엘릭은 다른 마족들의 인장을 빼앗을 때처럼 아무 변화도 없는 것을 보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건 선조들의 안배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목적은 완수했으니까…!’

엘릭은 션과 헤이즈를 돌아봤다.

그쪽도 이미 상황 정리가 끝났던지 엘릭을 보고 있었다.

“나갑시다.”

“내빼는 거, 가능하겠어?”

션이 위쪽을 슬쩍 보았다.

상당한 숫자의 병사들이 이쪽으로 다급히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기습은 성공했지만, 도망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그걸 생각 못 했으려고? 원래 혼란은 더 큰 혼란으로 덮는 거야.”

엘릭은 헤이즈를 돌아봤다.

“누나. 부탁해.”

헤이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지하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주요 기둥만 골라 때렸다.

하나 같이 엘릭이 미리 바짝 얼려놓았던 것들.

쾅, 쾅, 콰앙-!

우르르…!

그러다 보니 해머가 스칠 때마다 기둥도 너무 쉽게 부서지고 말았으니.

그 큰 저택이 주저앉는 건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튀어!”

결국 엘릭의 외침과 함께.

쿠르르릉!

가뜩이나 여러 번의 충격으로 위태롭던 저택이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아직 저택에 남아있던 감찰국 요원과 마족들을 포함한 채로.

* * *

“감사합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울 게 뭐가 있나. 빨리빨리 움직이게. 뒤에 다른 사람들도 있잖나.”

“그러시다면 부디 이름이라도…!”

“어허! 나랏일을 하는데 어찌 이름을 앞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알게 되는 즉시 본 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히이익! 아닙니다, 아닙니다요!”

마을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

오거스틴은 한창 마을 사람들을 밖으로 빼돌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정체가 들켜서는 안 되니 감찰국의 까만 가면을 쓴 채로.

‘흘흘. 이렇게 영웅 놀이하는 것도 나름 재미긴 하군. 감찰국 놈들을 조롱할 수도 있고.’

오거스틴과 길리티가 맡은 건 감찰국에 대한 감시만이 아니었다.

자작가 영지에는 죄 없는 양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다는 감찰국이 그런 사정을 고려할 리가 만무한 일.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들을 밖으로 빼돌리는 일도 맡기로 되어 있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한평생 마왕 휼만 쫓아다니고, 가문인 네레스타 가의 부흥에만 몰두했기 때문일까?

오거스틴은 이런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저택이 무너졌소.]

그때, 오거스틴의 머리 위로 매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귓가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길리티의 패밀리어였다.

[나도 곧 가지.]

오거스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엘릭과 션, 헤이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탈출로를 열 때였다.

* * *

“이런 미친 것들이…!”

무너진 저택 더미 속에서.

파트란은 거칠게 신경질을 내면서 몸을 겨우 일으켰다.

자신들이 마족들을 궁지로 내몰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이딴 짓을 벌일 줄이야.

집단 생매장이라니.

자신들이 받을 피해나 희생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까?

물론, 그만큼 녀석들에게 이 저택이 가진 가치가 대단하다는 것일 테지만, 그래도 기분이 너무 나빴다.

이 때문에 파트란은 카야를 거의 다 잡아 놓고서도 바로 눈앞에서 놓쳐야만 했으니까.

“헬, 요트, 샤넌!”

파트란은 같이 움직였던 수하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폐허가 들썩이면서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둘 다 상태는 그리 온전치 못했다.

“…샤넌이 사망하였습니다.”

“멍청한 것! 죽은 놈은 내버려 두고. 헬, 피해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저택에 있을 금고나 밀실을 찾아라! 요트, 너는 당장 카야 놈을 쫓아! 팔다리가 하나씩 날아갔으니 그리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복명!”

“복명!”

“서둘러!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보고 계신다! 이번 일에 실패하면 큰 문책이 따를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요원은 바쁘게 움직였다.

가면으로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 안색이 다급했다.

여기서 파트란이 말한 ‘문책’이 결코 시말서나 감봉 따위의 시시한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엘릭 메르빙거 때부터 뭔가 자꾸 일이 꼬이는군.”

파트란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삭이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갑자기 저택이 무너지면서 일이 조금 꼬이긴 했다지만.

사실 그는 그리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카야는 그에게 당해 아주 크게 다친 상태.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영지 주변은 시위군이 물 샐 틈 없이 촘촘히 포위망을 구성해두기도 했었고.

거기다 그리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빴으니, 어떻게 서류나 중요 물품 따위를 빼돌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파트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서 발견되는 증거 자료들에다 메르빙거가 연관되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준다면… 훗! 놈을 처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어차피 필요에 의한 증거 조작 따위야 감찰국에서 허다하게 이뤄지는 일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파트란은 이 기회를 통해 엘릭 메르빙거 뿐만 아니라, 메르빙거 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을 참이었다.

거기다 엘릭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놓은 네레스타 가에도 적당히 책임을 물 수 있을 테니… 마탑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거머쥘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공을 제라이츠 황태자에게 돌린다면?

차기 황위에 대한 완전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뤄질 그리고리에 대한 토벌도 전부 황태자께서 직접 지휘하시게끔 만들면 더더욱 금상첨화겠지.’

파트란은 벌써 제4국장 자리가… 아니, 총국장 자리가 자신의 손에 떨어진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이제 여기서 발견될 증거 자료들만 황태자에게 갖다 바쳐 신임을 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크, 큰일 났습니다!”

파트란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돌아온 헬을 보고 한순간 불안감이 들었다.

“무엇이냐? 밀실을 찾지 못했나?”

“아닙니다. 찾았습니다. 그런데…!”

“똑바로 말해!”

“금고가 모두 비어있습니다! 제3자가 개입한 듯한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

가면 아래, 파트란의 눈이 단단히 굳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카야 등의 흔적이 도중에 끊어… 졌습니다.”

카야를 쫓았던 요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설마… 혹시 제3자가 있었느냐?”

“그, 그렇습니다. 영지를 둘러싼 포위망에 갑자기 기습이 벌어져 구멍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카야 잔당들과 영지민들 일부가 그쪽으로 내뺀 듯합니다.”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손끝에 닿는 듯했던 창창한 미래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쫓아! 어떻게든! 놈들을 찾기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 따윈 추호도 하지 마라!”

“보, 보, 복명!”

요원들은 혹시 상사의 분노가 다르게 튈까 싶어 다시 발에 땀띠가 나도록 뛰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파트란이 받은 충격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놈들은 분명 우리가 기습을 벌일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리가 없잖은가!”

순간, 두 눈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본국! 본국 내에 마족들의 첩자가 있구나!”

카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파트란도 크게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지만.

그가 그걸 눈치채기는 이미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대로 꼬여 사실을 알기 어려운 뒤였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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