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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50화 (50/405)

50화

청연의 미궁

하지만 엘릭이 본 ‘심’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순도가 높은 마기는 오히려 원기(元氣)에 가까우니, 일반 인간이 그냥 섭취하면 재생력을 돋워주고 마력을 늘리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

『인장을 가진 너라면, 충분히 강화도 할 수 있겠군.』

“…!”

엘릭은 쾌재를 외치고 싶은 수준이었다.

‘이건 그냥 심을 본 정도가 아니잖아!’

엘릭이 보통 인간들과 달리 인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갖게 된 이점.

그는 손등에 난 인장을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었다.

가뜩이나 안배가 끝나고 나서 인장의 성취를 올릴 방법이 깨달음 외에는 크게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차였는데.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횡재를 만난 셈이었다.

『흠! 그런데 정말 이런 게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지? 과거에 무슨 마왕의 손길이라도 닿은 것인가?』

메피스토는 여전히 의문을 가득 드러냈지만.

엘릭의 귀에는 그런 자질구레한 것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인장뿐만 아니라 재생력을 돋워주고, 마력까지 회복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효과가 두 배인 셈이었다.

-그럼 이거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엘릭은 재빨리 글자를 휘적거렸다.

오거스틴이 이끼를 잘 뒤져보라고 말한 건, 그냥 섭취하거나 빻아서 바르는 등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어서겠지만.

보통 이런 영약의 경우에는 약효를 최대한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메피스토의 말투로 봐서는 아마 오거스틴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 같았다.

『맨입으로?』

당연하지만, 메피스토는 팔짱을 낀 채로 잔뜩 거들먹거렸다.

이런 호기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거겠지.

-선제시.

『허허. 인간의 아이야. 너는 어찌 이리도 상도의라는 것을 모르느냐.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본 왕의 마음에 찰만한 것을 가져오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지!』

엘릭은 한순간 욱하는 심정을 가까스로 억눌러야만 했다. 그리고 뭔가를 휘적이려는데.

『물론, 애교 지옥 넉 달 면제 같은 되도 않는 조건을 내세우는 거라면 협상은 없다.』

“….”

한순간, 엘릭의 손동작이 뚝 멈췄다.

메피스토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설마 그거였던 건 아니겠지?』

-하,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감히 제가 메피스토펠레스 님 같은 위대한 마왕님께 그런 이상한 조건을 달리 있겠습니깝쇼?

『그렇지? 그래. 그래서 네가 내놓을 수 있는 제안이 무엇이냐?』

메피스토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아악! 짜증난다, 짜증나!’

엘릭은 속에서부터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삭여야만 했다.

오거스틴도 그렇고 메피스토까지!

정말이지 나이를 먹은 것들은 인간이고 마족이고 간에 어째서 다들 이 모양 이 꼴인 건지!

물론, 그런 생각을 절대 내색하지는 않았다.

『얼굴에는 짜증나 죽겠다는 감정이 아주 역력하군?』

-헤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깝쇼?

『안 넘어오는군. 쳇!』

엘릭은 넘겨짚기가 통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메피스토에게는 언젠가 이 굴욕을 갚아 주겠다고 다짐했다.

‘애교 지옥 면제가 있고 난 뒤부터는 계속 기어오른단 말이지. 두고 보자! 여기만 나가기만 한다면…!’

엘릭은 와신상담의 자세로 속으로 분루를 삭히면서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당장 메피스토의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것.

대체 뭐가 있을까?

하지만 도통 떠오르질 않아 계속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데.

『흐흐! 돌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

‘하여간 말싸가지 하고는 진짜!’

『좋아. 이번만큼은 아량이 하해와 같이 넓으신 본 왕이, 소변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기만 하는 네 노력을 높이 사 한번 봐주도록 하지.』

‘…응?’

『아낙수나문의 화초는 아무 사전 준비 없이 그냥 먹으면 탈이 나고, 빻아서 덧바르면 약효의 태반을 유실하게 된다.』

‘…?’

엘릭은 한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피스토가 왜 이렇게 순순하게 가르쳐주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뒤늦게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장이 강화될 수 있다… 고 했었지?’

그 말은 냉혹의 인장뿐만 아니라, 원죄의 인장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뜻.

그로서는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좋은 기회일 테니, 억지로라도 어떻게든 엘릭에게 먹여야 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걸 마치 네가 간절히 원하니 도와준다는 식으로 포장을 할 줄이야.

자세히 보니 설명하는 내내 메피스토의 입꼬리가 연신 씰룩거리고 있었다.

제 딴에는 억지로 참으려는 것 같은데.

예전부터 느끼던 것이었지만, 메피스토는 원래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편이었다.

‘이 영감님, 진짜 속 보이네?’

엘릭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미미하게 눈살을 좁혔다.

‘흥. 누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줄 알고?’

엘릭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 일단 메피스토의 설명에 집중했다.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인장의 강화와 메피스토에게 엿이라도 먹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명을 전부 머릿속에 숙지 해둬야만 했다.

* * *

“…엥?”

“형님 제자, 이번에는 또 뭘 꾸미는 거요?”

오거스틴과 길리티는 수정구를 보다 말고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엘릭이 갑자기 검은 이끼를 이리저리 매만지더니 한 움큼 뽑아서는 제자리에 앉아 한데 모으더니, 마법으로 불씨를 일으켜 전부 태우기 시작했다.

이끼가 품고 있는 수분 때문에 매캐한 연기가 풀풀 날리면서 수정구의 시야를 잔뜩 가릴 정도였다.

“생사초를 저렇게 쓴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데…? 아니, 그보다 생사초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길리티도 생사초에 대해 그리 많은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오거스틴과 호형호제를 하면서 ‘마(魔)’에 가까워지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 일이 없었겠지.

그만큼 아주 희귀하고, 구하기도 힘든 물건이었다.

반면에 사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절구통 같은 곳에다가 곱게 빻아서 상처 부위에다 바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면 생사초가 품고 있는 마기가 모공으로 천천히 스며들어 피부와 근육을 자극하여 재생력을 북돋아 주며, 나아가 골수까지 닿으면서 근골을 전부 단단하게 잡아주게 된다.

인간의 골격이라 할 수 없을 ‘마골(魔骨)’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대대로 녹야의 전승자들이 이곳을 성지(聖地)로 삼아왔던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륙 어디에도 청연의 미궁만큼 생사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곳은 없었으니까.

녹야의 전승자들이 일반 마법사들과 다르게 전투적이고, 워 메이지로서 특화되어 있던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떤 전승자의 경우에는 4체인의 기사도 꺾은 적이 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길리티는 생사초의 효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오거스틴의 도움으로 그동안 생사초에 절여지다시피 살면서 나이에 걸맞지 않은 건강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내성이 생겨 별 효과도 못 보는 중이었지만.

여하튼.

엘릭은 수많은 이끼 중에서 용케 생사초만 쏙쏙 뽑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불로 태우는 해괴한 짓거리를 해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초를 종류별로 골라서 여러 실험이라도 해보려는 건가 싶었지만.

정작 골라내는 건 생사초 뿐이니 의문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엘릭은 그렇게 새카맣게 타버린 이끼들을 한데 끌어모으더니, 이번에는 얼음으로 얼려 만든 절구통 안쪽에다 넣고 돌로 곱게 빻았다.

그러면서 추가로 주변에 있던 다른 이끼들도 쏙쏙 고르더니, 적절히 양을 조절하면서 절구통으로 밀어 넣었다.

가뜩이나 다이어 울프를 상대하고 나서 몸도 좋지 않을 텐데도, 저렇게 끙끙 앓으면서 일을 하는 모습이 용케 대단하게 보일 정도였다.

“다른 이끼들의 배합 비율을 맞추는 걸 봐서는 분명히 뭔가 아는 것 같은데… 흠!”

길리티가 손으로 턱을 쓰다듬는데.

“우리가 모르는 다른 용법이라도 있나보지.”

오거스틴이 흡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 형님, 간만에 거둔 제자가 아주 똑똑하니 좋은 건 알겠소만, 그래도 저렇게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쓰는 건 좀 위험할지도 모를…!”

“험험! 자네, 몰랐나?”

“뭘 말이오?”

“이 늙은이의 제자가 실은 아카데미의 수석이라는 것?”

“아카데미라면… 우스던?”

“그렇다네.”

“허!”

길리티도 우스던 아카데미는 잘 알고 있었다.

명실상부한 마도 엘리트들의 배출 장소.

거기서 수석을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석 출신은 대개 학계에서도 크게 이름을 떨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거스틴이 각별하게 아끼는 타샤도 수석 출신이었고.

“물론, 전부 이론 분야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방법을 어디선가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지. 무엇보다.”

오거스틴은 이제 두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있었다.

열의였다.

“엉성하긴 해도… 저건 분명히 ‘연단술’일세.”

“헐? 정말로?”

동방에서 유래했으며, 녹야의 전신이 되는 중심 기예, 연단(鍊丹).

문제가 있다면, 녹야의 전승자들이 실전 마법을 주로 추구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연단술이 거의 실전되다시피 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엘릭이 그걸 선보이고 있었으니!

오거스틴이 들뜨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엘릭의 저 배합이 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뤄지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점인데….

그사이.

엘릭은 곱게 빻은 가루들을 한데 모으고, 물을 소량만 부어 둥근 환의 형태로 뭉쳤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환이 모두 십여 개.

엘릭은 평평한 돌을 가져와 그 위에다 십여 개의 환을 모두 가지런히 놓고, 돌 밑에다 불을 지펴 뜨겁게 달구면서 환을 바짝 말렸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입에 넣어 꼭꼭 씹어먹었다.

“먹는다… 라.”

“저래서야 마기 때문에 탈이 나기 십상일 텐데?”

길리티로서는 마기가 가득할 생사초를 복용한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 얼굴이었지만.

오거스틴은 달랐다.

“설마 정제를 한 건가?”

오거스틴은 머리 한편에서 이제 지식으로만 남은 연단술의 과정 중 하나를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훈연(燻煙).

약초는 작업 전에 반드시 정제 과정을 통해 독성을 제거해야만 한다.

보통 약효와 독성이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연단술의 8할은 바로 그 연단에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효과가 가장 확실하면서도 어려운 방법이 훈연이고.’

열을 가해 만든 연기로 정제 과정을 거치면, 약초 특유의 생생함을 유지하면서도 인체에는 유해한 독성을 전부 말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그런데 엘릭이 시도한 게 바로 그런 과정인 것 같았다.

생각 이상으로 생사초가 바싹 타긴 했지만, 그거야 마기가 풍부하니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끼들을 모은 건 진사(辰砂)라고 치면… 음! 정말 거의 완벽한 연단술인 셈인데.’

진사는 약효를 몇 배로 증폭시키기 위해 추가되는 과정으로, 흔히 주가 되는 영약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다른 약초들을 의미했다.

만약 오거스틴의 생각대로 엘릭이 생사초의 제대로 된 복용법… 아니, 연단법을 알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박이지 않은가!’

엘릭은 차례로 환단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 있었다.

5분 간격으로 하나씩.

마치 아끼고 아껴뒀던 맛있는 간식을 천천히 즐겨 먹는 것처럼 꼭꼭 씹어먹었다.

16개를 전부 다 먹고 난 뒤에는 곧장 자리에 털썩 앉더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약 30여 분 뒤.

주르륵-

엘릭의 모공을 따라 시커먼 진물이 쉴 새 없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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