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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40화 (40/405)

40화

스포트라이트

“다들 제일 궁금해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대체 네가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는지.”

“아하.”

엘릭은 이해한다는 듯이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아무도 치료하지 못한다는 절맥증이 떡 하니 나은 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또래에서도 손꼽히는 선두 주자가 되고 말았으니.

뭐라더라? 사자들은 이런 걸 두고 ‘후기지수’라고 한다던가?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하긴. 원래 치료법을 찾은 지는 꽤 오래됐는데 시기하고 견제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숨기게 됐다. 그러다 둥지에서 기연 얻어서 완치하고 마법까지 통달했다고 했지. 안 그럼 말이 안 되니까.”

마법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된 것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션의 판단이었다.

두 달 만에 이렇게 성장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나? 옆에서 직접 보고 있는 자신도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데.

그러니 션은 의심이 될 만한 걸 완전히 틀어버렸다.

엘릭이 그동안 자신을 숨긴 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으로.

물론, 그 이유는 전부 베럭스 교수 때문이었고.

-베럭스 교수가 지난 수년간 엘릭 메르빙거를 계속 핍박했던 건 전부 마도명문의 가보를 빼앗고, 메르빙거의 정통성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엘릭 메르빙거는 그런 베럭스 교수로부터 살아남고,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숨겨왔다!

이미 세간에는 이런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이론 분야에 있어서는 항상 최상위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니 엘릭이 의심받을 일도 없었다.

“역시 우리 션이야. 내가 많이 아끼는 거 알지?”

“소름 끼친다. 그딴 말 하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흐흐. 그나저나 가뜩이나 우리 학장님 상태도 안 좋으신데 더 안 좋아지시겠네.”

현재 베럭스 교수는 난동 및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

여론도 너무 좋지를 않아 아카데미에서 퇴출된 것은 물론, 학계에서도 완전히 제명되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형량이 끝나 출옥을 한다고 해도 다시 복귀하긴 힘들 거란 관측이 많았다.

“하여간 운이 좋은 줄 알아, 이것아. 네가 화려하게 귀환했니 마니 하면서 그동안 사람들 속이고 있었던 건 묻힐 수 있었던 거니까.”

“알았어. 알겠으니까 그만 구박해. 잠잠해질 때까지 여기서 조용히 지내란 뜻이잖아, 그렇지?”

정말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는 걸까.

션은 유들유들하게 웃는 엘릭을 보면서 다시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대체 이번에 들어서 몇 번째 한숨인 건지.

“그런데 그게 쉽게 되겠냐?”

엘릭은 슬쩍 커튼을 옆으로 치우면서 창 너머를 가리켰다.

네레스타 가의 가병(家兵)들이 지키고 있는 대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 딱 한 마디만, 한 마디만 인터뷰를 나누면 되니까 이것 좀 통과시켜줄….”

“어, 어? 엘릭 메르빙거다!”

“뭐? 어디?”

“‘네이처 튠’의 산드로 엘레강스 기자입니다! 엘릭 메르빙거 님, 이번 사안에 대해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베럭스 학장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저희는…!”

웅성웅성!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은 엘릭을 발견하자마자 화들짝 놀라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덕분에 가병들만 화들짝 놀라 그들을 억지로 밀어내야만 했다. 안쪽에 있던 가병들도 덩달아 몰려 나와서 그들을 돕는 한편.

뒤쪽에서 들어갈 타이밍을 재고 있던 고위 관료와 마탑 인사들이 눈을 반짝이더니, 네레스타 가 쪽 사람들과 이야기를 바쁘게 나눴다.

아마 자신들은 들여보내 달라는 부탁일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직급을 내세우며 강제로 진입을 시도할 테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네레스타 가가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나 찾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좀처럼 쉽게 안 꺼질 것 같은데.”

엘릭은 흡족하게 웃으면서 커튼을 다시 쳤다.

션은 검지로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 너 잘났다.”

* * *

사실 션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자들은 취재진이 아니었다.

그런 놈들이야 그냥 가병을 앞세워 내쫓아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로비스트들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들이 등에 업고 있는 조직들은 하나같이 굵직한 곳이 대부분이고, 개중에는 네레스타 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곳도 많았다.

지금까지야 절대 안정을 핑계로 거절했지만, 머지않아 곧 그들에게는 따로 문을 열어줘야 할 터였다.

그러니 그전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둥지 발굴권,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션은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엘릭의 생각이 궁금했다.

남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골칫거리이기만 했으니까.

빨리 옆으로 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

“당연히 네레스타 가에서 해줘야지.”

“…!”

엘릭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투였다.

순간, 션이 인상을 굳혔다.

“야!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거야. 그러니까 만약에 빚을 갚겠다는 생각이면…!”

“걱정도 팔자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나도 이게 이득이 될 거라고 판단한 거야.”

“자세히 설명해봐.”

엘릭의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어도, 발굴을 진행하기에는 당장 메르빙거 가가 가진 역량이 너무 부족하단 내용.

“투자자 모아서 발굴대 만드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지만, 그래서야 시간만 잡아먹을 거고 통제도 어렵잖아? 그러니까 폐쇄하고, 너랑 내가 같이 나눠 먹자고. 그리고 사실 너도 여기에 지분 좀 있잖아?”

션은 아주 잠깐 고민에 잠겼다.

엘릭이 말은 저렇게 했어도, 사실 이번 일로 가문과 학계에서 눈총을 받고 있을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당분간 여기에 집중할 겨를도 없어. 신학기 준비도 해야 하고, 논문 쓸 것도 있고, 미뤄둔 가문 일에 마법 수련도 해야 하고….”

‘겨울’이라는 것도 완성하러 꽃의 신전도 들러야 하고.

물론, 뒷말은 생략했다.

“이런 와중에 너 말고 믿길 사람이 있겠냐?”

“…그렇게 들으니까 꼭 뒤치다꺼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같다?”

“설마.”

엘릭은 능글맞게 웃었지만, 사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둥지에서 내가 얻을 것도 크게 없으니까.’

어차피 그가 가장 필요로 하는 용의 마법 체계는 결계를 해석하면서 대부분 습득한 상태.

다른 사료들도 있다지만, 여흥 거리일 뿐 목을 맬 정도는 아니었다.

설사 다른 기연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엘릭으로서는 당장 주어진 언령과 인장, 그리고 마정석만 해도 감당하기에 벅찬 상태.

차라리 그런 게 있다면 션에게 주는 게 그로서도 좋았다.

“흠!”

션은 어쩐지 또다시 엘릭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하아! 그래. 알겠다, 알겠어. 당분간 발굴에나 집중하면서 머리 식히고 있어야겠네.”

션은 어쩌면 잘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에 계속 남아있어 봤자 주변의 눈총만 살 뿐이고,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교수 세계에도 신물이 난 상태였다. 당분간은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용의 둥지만한 곳이 없었다.

발굴 정도에 따라서는 완벽한 커리어가 될 테니까.

때에 따라서 더 큰 자리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역시 네레스타 가의 사람.

야욕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동안 나섰던 건 오로지 엘릭을 돕고 싶다는 선의였을 뿐.

“그럼 이렇게 된 거,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되냐?”

“뭔데?”

“사실 계속 내 선에서 미루긴 했는데. 아버지께서 너랑 밥 한 끼 하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셔서. 어때? 불편하면 어쩔 수 없고.”

순간, 엘릭의 눈이 살짝 빛났다.

션의 아버지라면 네레스타 가의 가주, 가이 네레스타를 뜻한다.

당대 최고의 마법사를 꼽으라면,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9써클의 철인(哲人).

그쯤 되는 사람이 직접 식사에 초대했다는 건, 절대 적잖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발굴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면, 밑에 있는 시종단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조부님이 직전 제자로 두고 싶어 하셨다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엘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좋아. 언제 가면 되는데?”

* * *

“뭐라? 그년이 살아남아?”

‘검푸른 삵’. 표홀하고 날카로운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붙여진 별칭이었지만.

임무에 실패하고 멍청하게 홀로 돌아온 것으로도 모자라, 괴상한 보고를 지껄여대는 수하를 보는 파울 바일의 눈매는 정말 야생의 삵처럼 날카롭게 휘어지고 있었다.

“그, 렇습니다…. 주, 죽여주십시오!”

이사벨 일행을 급습하고 홀로 살아남았던 청랑은 차마 파울의 눈을 마주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네놈을 죽이고 말고는 내가 결정한다. 상세히 설명해라. 그년이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청랑은 임무에 동원되었던 2조와 3조가 어느 정체 모를 마법사에게 당한 내용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꿈틀!

그럴수록 파울의 한쪽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 그리고….”

“더 있나?”

“주군께 목을 씻고 기다리라고….”

“뭐?”

그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지던 그때.

“조심하십시오!”

갑자기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청랑의 몸이 터졌다.

퍼어엉-

와장창창!

마치 유리잔이 깨진 것처럼 부서진 살점들이 파울을 덮쳤다.

하지만 파울은 이미 4체인을 이룬 소드 마스터(Sword Master).

아니, 5체인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슈페리어 급의 인사였다.

고작 이런 조잡한 폭발에 당할 위인은 아니었기에 진즉에 몸을 뒤로 물리면서 검을 휘둘러 살점들을 죄다 옆으로 치워버렸지만.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만큼은 절대 막을 수가 없었다.

“…얼음?”

파스스!

바닥에 나뒹구는 살점들이 흐물흐물 녹으면서 수증기가 치솟았다.

빙계 마법이 작동되었단 뜻.

“괜찮으십니까, 주군?”

그때, 힐튼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파울의 굳은 인상은 도저히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똑바로 설명해야 할 거다, 1조장.”

“제 실책입니다.”

“설명하라고 했다!”

“…방금 전 죽은 놈이 올린 보고 그대로입니다. 청랑이 당했고, 아가씨께서 도주하셨습니다. 방금의 폭발은… 그 마법사의 짓인 듯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분명 돌아온 청랑의 몸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이런 불상사가 벌어질 줄은…! 검문을 한 놈의 목을 치라고 이르겠습니다.”

힐튼의 고개가 더 깊이 숙여졌다.

지금은 어떻게든 파울의 심기를 달래야만 했다.

“놈의 이름은?”

“엘릭 메르빙거입니다.”

“메르빙거?”

“예. 우스던 메르빙거의 손자, 당대 찬성공작입니다.”

“그놈은 절맥증이 아녔나? 아니, 황도병원에 있다던 놈이 왜 거기에 있었던 거지?”

“자세한 건 현재 파악 중입니다만… 그동안 세상의 눈을 속이며 설인의 고원에서 수련을 하다가, 우연히 아가씨 일행과 접촉을 했던 모양입니다.”

“애당초 처음부터 잘못 짚고 있었던 거군!”

으드득!

파울이 으스러져라 이를 갈았다.

“그리고….”

“뭐지? 더 있나?”

“조금 전… 아가씨께서 카노이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일을 대체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파울의 검은 당장이라도 힐튼의 머리 위로 떨어질 태세였다.

이사벨이 황도로 오지 않고 청사자에게로 갔다는 건, 투항이 불발되었단 뜻.

보다 쉽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다 꺼진 장작을 들쑤셨다가, 불길만 다시 키운 셈이었다.

때문에 힐튼은 최근 저잣거리에 나도는 풍문 따윈 꺼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파울 바일이 권력에 눈이 멀어 하나뿐인 조카를 시해하고, 그 자리를 강제로 찬탈하려 한다는 소문….

때문에 라센트에서 빚어진 화재까지 더해져 파울의 악명은 일파만파 퍼지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썼지만.

최근 엘릭이 황도에서 빚어낸 일들로 유명세가 더해지면서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개떡 같은 일이 빚어지는군…!”

황금 사자에 접촉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느라 일을 소홀히 했던 것이 패착이었던 셈이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수습할 수 있도록 방책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다만, 현재는 황실에서 직접 이번 일을 수사할 수도 있단 말이 나오고 있어… 자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힐튼.”

“…예. 주군.”

“내가 널 여태 죽이지 않고 옆에 뒀던 건, 네가 가진 잔재주 때문이란 걸 잊지 마라.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하지 못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힐튼은 정수리가 땅바닥에 닿도록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흘러내린 소맷자락 사이로 초승달 모양의 문신, 아니, 인장이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울은 자신의 계획을 망가뜨린 거로도 모자라, 시건방지게 경고까지 보낸 놈에게 분노를 토해냈다.

“엘릭! 엘릭 메르빙거란 말이지…? 오냐. 너부터 똑같이 찢어 죽여주마.”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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