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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삼킨 마법사-38화 (38/405)

38화

스포트라이트

‘여긴 갑자기 왜 봐?’

션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누님이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로브를 분명히 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본 거지?

씩!

거기다 기분 나쁘게 갑자기 웃기까지 한다.

션은 혹시 위로 하나 있는 누님이 뭔가 잘못 먹기라도 했나 싶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음?’

그러다 뒤늦게 타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바로 옆에 고정되어 있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엘릭을?’

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녀석은 어떻게 안 거지? 분명히 누님도 엘릭이 병실에 있는 줄로만 알 텐데?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

‘그럴 리가 없잖아!’

션은 타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도도하며, 욕심 많은 누님을.

절대 확신이 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는 건 엘릭에 대해서 뭔가를 눈치챘단 뜻.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걸까, 정말 눈치를 챘다면 무슨 훼방을 놓지는 않을까, 노파심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

엘릭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얼굴로 단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 * *

“…그러니 실수를 저지르고 사회적인 이슈를 만든 건 제 과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과 실패를 여러 차례 거친 후에야 이번과 같은 결실 또한 얻을 수 있으니, 앞으로도 이 점을 관철하여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베럭스 교수는 준비했던 최종 연설이 끝난 순간,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됐다! 총장 자리는 내 것이라고!’

이런저런 말들로 꾸며대긴 했어도, 그가 내건 공약은 아주 간단했다.

발굴권을 가져온 건 자신의 솜씨였고, 앞으로도 이런 대발견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내용.

아카데미 쪽 관계자들이라면 흥미가 돋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마탑에도 어느 정도 손을 뻗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문’으로서 발굴에 함께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비록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굴권을 둔 경쟁자였다지만, 그래도 마탑에게는 투표권이 있었다. 차후 정계 진출도 고려한다면 절대 적으로 둬서는 안 되었다.

‘그래. 대의 앞에서 영원한 적은 없으니까. 션 네레스타도 계속 옆에 둬야겠지. 그 배은망덕한 놈을 가만둬야한다는 게 짜증나긴 하지만…! 그래도 시에스타가 한 말처럼 멀리, 멀리 봐야지.’

라줄리… 카를이 주는 조언들은 하나같이 베럭스 교수에게 천금과도 같은 것들이라, 그는 어느샌가 시에스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지금도 보라.

자신에게로 향하는 선거 대표들의 시선이 전부 긍정적이지 않은가.

‘내게는 앞으로 장밋빛 미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정도쯤은 내 넓은 아량과 미덕으로 가벼운 해프닝인셈 쳐줄 수 있지 않겠나. 하하하!’

베럭스 교수는 입가로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우우우! 물러나라! 살인자! 사기꾼!”

“무슨 정치하러 나왔냐? 꺼져라!”

“흠! 생도들에 대한 장학 지원 확대는 괜찮지 않아?”

“굳이 이렇게까지 반발할 건 없을 것 같은데….”

객석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갈채와 야유조차 그로서는 전부 환호로 들릴 뿐이었다.

“후보자님들께서는 전부 자리에 앉아주시고… 그럼 투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베럭스 교수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결과 따위야 보지 않아도 뻔했지만.

그래도 그는 지금 이 순간을 한껏 만끽하고 싶었다.

“음….”

“이미 다들 어느 정도 생각해두신 후보가 있는 것 같으니, 바로 진행합시다.”

선거 대표들은 저마다 대표하고 있는 조직의 결정을 곱씹으면서 하나둘씩 푯말을 들 준비를 했다.

이미 그들 대부분이 베럭스 학장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고, 그와 어느 정도 거래도 마친 상태.

그러니 크게 고민할 건 없었다.

그래도 겉으로 티가 나서는 안 되고, 체면도 있어 짐짓 고심하는 척하려는데.

“아직 선거 대표가 다 모인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벌써 시작하신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객석 한가운데에서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뭐야, 저 자는?”

“이의 제기인가?”

순간, 선거 대표들이며 관리 위원들,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까지 전부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검은 로브를 깊게 푹 눌러쓰고 있는 사내.

얼굴은 물론, 성별이나 이렇다 할 별다른 특징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이상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분명히 객석의 온갖 응원과 잡담 등으로 시끌벅적한데도 불구하고.

‘뭐야, 저놈은?’

베럭스 교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분위기를 좀 즐기려는데 웬 이상한 놈이 초를 치니 짜증이 날 수밖에.

그래서 재빨리 사회자, 리번에게 눈짓을 보냈다.

“메, 메르빙거 가의 대표께서는 병환 중이라, 1석은 공석으로 표기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관객께서는 객석에 앉아주시고,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정숙해주시기 바랍…!”

리번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사내가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엘릭 메르빙거다!”

어느 기자의 외침에 좌중은 큰 충격에 잠기고 말았다.

“허, 헉!”

“어, 어떻게 된 거지…?”

“마, 마, 마도명문의 수치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오늘내일하고 있던 거 아녔어?”

찰칵!

찰칵, 찰칵!

취재진은 본능적으로 특종을 직감하고 다급하게 그쪽으로 촬영 도구를 들이대기까지 했다.

이 자리에서 엘릭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엘릭의 이름이 워낙에 많이 회자되다 보니, 그의 몽타주도 꽤 많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르거나 긴가민가했던 이들도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금세 눈을 크게 뜨고 말았으니!

“메르빙거 가의 적자, 엘릭 메르빙거. 찬성공작으로서 선거 대표로 참여하길 희망하는 바입니다만?”

“…!”

“…!”

“…!”

“그, 그, 그것이…!”

리번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베럭스 교수 쪽으로 두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하지만 베럭스 교수도 베럭스 교수대로 소스라치게 놀란 상태였다.

‘저,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게야!’

베럭스 교수는 한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비록 네레스타 가가 병실을 막고 있어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태 모습을 비추지 않아 정말 혼수상태인 줄 알았던 놈이 여기에 떡 하니 나타났으니…!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사람도 아닐 것이다.

‘시에스타! 시에스타는 어디로 갔어?’

베럭스 교수는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어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대로 엘릭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도록 내버려 둔다면, 정말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옆에서 완벽한 도움을 주었던 조언자는 어디로 갔는지, 있어야 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젠장! 하필 필요할 때…! 안 돼! 놈을 절대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베럭스 교수는 리번에게 눈치를 주었다.

어떻게든 녀석을 막으라는 의미.

리번은 허겁지겁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에, 엘릭 메르빙거께서는 딸꾹! 사, 사, 사전에 메르빙거 가의 대표로 참여하시겠다는 딸꾹!”

‘저 멍청한 놈이! 거기서 딸꾹질은 왜 하고 지랄이야!’

“의, 의사를 바, 밝히시지 않으셨으니, 투, 투표 자, 자격이 없으십…!”

엘릭은 딸꾹질 하랴, 말 더듬으랴, 베럭스 교수의 지시를 이행하랴 바쁜 옛 친구를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했습니다만?”

“무, 무슨…?”

“사회자께서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1차 투표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의사서를 본부에다 접수해둔 상태입니다.”

“…!”

리번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때, 갑자기 단상 위로 관리 위원이 달려와 그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무, 뭐라고…? 접수가 됐… 딸꾹! 딸꾹!”

“다행히 뒤늦게라도 확인이 되었나 봅니다. 그럼 참여하겠습니다.”

의사서는 사실 접수가 마감될 때쯤 카를을 통해 넣어둔 상태. 그러니 여태 사회자와 후보들이 모를 수밖에 없었다.

엘릭은 다행이라는 듯이 더 크게 미소를 지으면서 단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지만, 똑바른 걸음걸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무게감도 가득했다.

찰칵, 찰칵!

중앙대관은 금세 적막에 잠겼다.

모든 이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감 가득한 시선으로 똑같이 그의 뒤를 쫓았다. 촬영 도구가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베럭스 교수의 안색은 점차 하얗게 질렸다.

분명히 총장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에게는 일개 생도에 불과할진 대도.

심리적 압박감 때문인지, 어쩐지 엘릭이 점차 커지는 것 같았다.

‘이, 이걸 어떻게 해야…?’

베럭스 교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로 시선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객석에 앉은 일반 시민들도.

기자들도.

학계에서 제법 명성을 알린 교수평의회의 교수도.

총동창회의 부회장도.

마탑에서 파견된 마도사도.

황실 측 고위 인사도.

모두 엘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황홀하게, 누군가는 흥미롭게, 누군가는 신기하게, 누군가는 못마땅하게.

저마다 보이는 반응이나 태도는 다 달랐어도, 하나 같이 엘릭만을 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 참.”

바로 그때, 엘릭의 걸음이 멈췄다.

뚝!

사람들의 시선도 똑같이 거기서 정지했다.

“선거 대표로 참여하기 전에 먼저 다른 위원분들께 참조하시라고 알려드릴 사안이 있었는데, 깜빡한 게 있습니다.”

엘릭이 당당하게 허리를 세우며 선거 대표들을 보면서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연기라고 느껴질 정도로 과도한 동작이었지만.

이미 그가 던진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그걸 부자연스럽게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제 옷을 입은 듯, 엘릭에게 잘 어울려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션은 작게 웃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으니까.

저건.

‘위엄… 이지?’

많은 사람들을 눈 아래로 둘 수 있고.

기품을 타고난 자들만이 갖출 수 있는 위엄.

‘허울만 남았다고 해도, 공작은 공작이란 거냐?’

그렇게 생각할 때쯤.

“그게 뭐죠?”

여태 엘릭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타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물었다.

“우스던 아카데미로 넘어갔던 발굴권, 회수하겠습니다.”

“…!”

“…!”

“아, 아니, 그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이미 발굴권 계약은 다 끝난 게 아니오!”

베럭스 교수는 폭탄선언에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고, 그와 발굴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선거 대표들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했다.

하지만 엘릭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둥지의 소유주인 제 허락도 없이 이뤄진 계약일 텐데요? 제 서명으로 이뤄진 계약서도 없고, 본 가에서 내어준 공문도 일절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면 제가 모르는 이면 계약이라도 이뤄진 겁니까?”

사람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런 게 있다면 전면 무효화하겠습니다. 발굴권 입찰은 제 입회하에서 처음부터 다시 공정하게 이뤄질 겁니다.”

“…!”

“…!”

“무엇보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베럭스 학장님께서는 저와 션 네레스타의 발견에 대해 일체 도움을 주신 게 없다는 사실도 밝히는 바입니다.”

“….”

“….”

“오히려 본 가의 가보까지 강탈하려 드셨던 터라…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소송으로 잘못을 여쭐 생각입니다. 물론, 증거도 있습니다.”

“허!”

“그런…!”

“다들 하실 말씀은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제겐 그럴 이유도 의무도 없으니 말입니다.”

엘릭은 허탈해하는 선거 대표들을 쓱 훑어봤다.

여전히 타샤 만큼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웃고 있어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베럭스 교수를 직시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럼 바로 투표 진행하시죠.”

재능 삼킨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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